92화 대화 (1)
복도는 비릿한 혈향과 끔찍한 오물의 냄새가 잔잔히 흐르는 곳이다.
범인(凡人)이라면, 고독의 복도에서 무언가를 먹는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으리라.
죄수들은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만 했지만, 몇 걸음 걷기만 해도 썩어 가는 무언가의 시체와 알 수 없는 분비물이 보이는 복도에 적응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 복도는 술을 마시기에 좋은 장소는 아니었다.
페이든은 복도에서 집행관 멜커와 대작하고 있었다.
조만간 술을 마시자고 하던 말이 다음 날 만나서 바로 마시자는 말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페이든이었다.
오늘 업무를 마치자마자, 그 남자와 자리를 가져야 했다.
페이든은 복도 한쪽에서 성좌 교단에 연락을 마쳤다. 어제 일어난 두 교정관의 사형.
그것에 대해 보고해야만 했기 때문에.
‘……찝찝하기 그지없군.’
연락을 마친 페이든의 복도에 앉아 있는 멜커에게로 돌아왔다.
아까부터 독한 술을 마셨음에도 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창백한 얼굴의 남자.
멜커는 뒤늦게 돌아온 페이든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어서 마셔라. 날 기다리게 하다니. 술상이 마음에 들지 않나?”
“그럴 리가요……”
멜커는 차가운 눈빛으로 페이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직접 준비한 술상은 조악했다.
알 수 없는 생명체의 고기를 대충 구워 가져왔고, 술은 어울리지도 않는 증류주였다.
직접 증류한 모양인데, 냄새가 역하기 짝이 없었다. 도대체 어떤 걸 베이스로 만든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페이든은 손에 꽉 들어찬 잔을 붙잡고 심호흡한 후, 한 입에 내용물을 털어 넣었다.
꿀꺽……!
단숨에 들이켜서 냄새를 최대한 맡지 않도록 했다. 페이든은 부글부글 끓는 속과 위를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후우. 인내하자, 페이든. 업무의 연장선이야. 크흑, 냄새 한번 죽이는군. 성좌시여…….’
독한 술 냄새가 오장육부에 스며드는 듯했다.
마음속으로 자신이 믿는 신을 불렀지만, 신의 이름은 취기를 다스리는 데 그다지 소용이 없었다.
페이든은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큭큭큭, 억지로 참지 마라. 속이 안 좋으면 옆에다 토하고 마셔도 된다. 이 술은 원래 그렇게 마시는 거니까.”
“우읍…… 우웩……!”
페이든은 멜커의 말을 듣자마자, 옆에다 토했다.
멜커는 자신의 바로 앞에서 토하는 신입을 구경하면서 낄낄 웃으며 술을 들이켰다.
“너, 마음에 들어. 자존심 센 것도 그렇고, 술 마시는 것도. 나랑 대작할 수 있는 사람은 고독에 두 명밖에 없는데 말이야.”
으적!
집행관은 게걸스럽게 고기를 씹었다.
페이든은 안주까지 먹으면 속이 뒤틀릴 수도 있음을 깨닫고 술만 마셨다. 이 술만 해도 꽤 강적이라 전력을 다해야 했다.
그는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이겨 내고 질문했다.
“그…… 두 사람이 누굽니까.”
멜커는 망설임 없이 대답해 주었다.
“소장님. 그리고 아겔 영감.”
페이든은 교정관에게 업무를 배울 때, 소장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애주가. 주정꾼. 술고래.
그런데도 위엄과 권위를 잃지 않은 진짜 실력자. 그만한 인물이라면 이 괴물과 대작해도 한 치 물러섬이 없을 법도 했다.
그러나 뒤의 인물은 페이든의 의구심을 불러왔다.
“아겔……? 그 사람은…….”
페이든은 서기관실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교정관 전원이 집합한 그 장소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들어온 죄수.
목에는 51이라는 죄수 번호만이 자리한 이상한 사람.
멜커가 술잔을 홀짝이며 물었다.
“왜. 그가 누군지 궁금한가.”
“예. 궁금합니다.”
정신을 바짝 차린 페이든은 물러서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 남자가 무엇이길래 교정관들과 서기관 앞에서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일까.
신입인 페이든은 이 죄수에 대해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멜커는 페이든을 보고 씩 웃었다.
그는 옆에 있던 도자기 술통 하나를 들고 조악한 상 위에 올렸다. 사람 머리 두 개만 한 크기였다.
텅.
“큭큭, 그럼 마셔. 아겔 영감에 대해 말해 주지.”
페이든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멜커의 행위는 명백히 도발적이었다. 마치 너 같은 애송이가 가능하겠냐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입으로만 떠드는 꼬맹이가 아니란 걸 증명해라. 너는 내 무거운 입을 움직일 만한 사내인가?”
페이든은 그를 향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을 했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페이든이 성좌 교단에서 고독으로 파견된 것은 겉으로 보이는 고독의 피상적인 모습을 물리치고, 실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뭐라도 보고할 만한 건더기가 된다면, 페이든은 달려들 생각이었다.
교단을 위하여.
“제가…… 못 마실 줄 아십니까?”
그는 호기롭게 멜커가 올린 술통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는 술통의 입구를 입에 가져갔다.
꿀꺽……! 꿀꺽……! 꿀꺽……! 꿀꺽……!
놀랍게도 페이든은 술을 단숨에 비웠고, 빈 술통은 복도에 던져 버렸다.
쨍그랑!
도자기 술통이 박살 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페이든은 세상이 흔들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끄윽…… 마, 말해 주십시오…… 그 죄수는 도대체…… 뭡니까. 히끅.”
멜커가 그 모습을 보고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크흐흐흐, 교회 다닌다는 놈이 술은 기깔나게 마시는군. 마음에 드는구나. 좋다, 아겔 영감에 대해 말해 주마.”
페이든의 시야는 흐릿했다. 마주 앉아 있는 멜커의 얼굴이 흔들리는 지경이었다.
교단에 연락하기 전에도 계속 술을 퍼마셨던 페이든이었다.
그리고 방금 단숨에 들이켠 것으로 타격이 좀 컸다.
‘아, 들어야 하는데…….’
쿵.
결국, 술에 취한 페이든이 먼저 뻗어 버렸다.
머리를 술상에 박은 페이든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멜커는 쓰러진 페이든을 보며 미소를 짓곤 품에서 단말기를 꺼냈다.
“큭큭, 상사 앞에서 뻗다니 아직 예절이 부족하군. 영감에 대해선 다음에 알려 주마.”
그는 곧장 서기관 베믈리오에게 연락했다. 방금까지 실실 웃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띠릭.
“예, 서기관님. 녀석은 저와 같이 있습니다. 폭탄을 심어 놨으니,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예. 아까 성좌 교단으로 연락한 모양입니다. 예. 모든 것은 주인님의 뜻대로.”
술에 잘 취하지 않는 멜커도 얼큰하게 취한 기분이었다. 그만큼 페이든은 어마어마한 양의 술을 마셨다.
옆에 늘어져 있는 도자기 술통의 개수만 20개 가까이 되었다.
집행관 멜커는 자리에서 일어나, 페이든을 내버려 둔 채 복도의 어둠으로 들어갔다.
* * *
멜커의 연락을 받은 서기관은 단말기를 내려놓았다.
서기관실에는 베믈리오와 아겔 두 사람이 있었다.
한시름 놓은 베믈리오는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놈이 교단 측에 연락했다더군. 경고는 정확히 갔을 거야.”
“그래.”
아겔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독 외부의 인물과 결탁한 배신 세력을 그냥 두면 당연히 성좌 교단과 은하 정부에서 간섭할 거리가 생긴다.
그러나 고독 내부에서 이렇게 철저하게 처리하면 그들도 할 말이 없어진다.
간섭이 생길 여지를 원천부터 잘라 낸 것이다.
거기에 고독의 일에 간섭하면, 교단이 파견한 교정관까지 죽여 버릴 수 있다는 엄포를 은연중에 한 셈.
페이든은 모든 걸 보고했으리라.
베믈리오는 아겔을 보고 자세를 바로 했다.
처형식 전날, 베믈리오를 찾아온 아겔은 모든 걸 뒤바꿀 제안을 했다.
-아마넬과 쉬카는 살리는 것으로 하세.
베믈리오는 아겔의 말에 종말이 왔나 의심할 정도였다.
-우리에겐 소류아가 있지. 처형식 때는 귀신으로 대신하도록 하겠네.
아마넬과 쉬카의 모습을 본뜬 귀신. 소류아에게 두 사람을 똑 닮은 생체 인형을 만드는 일쯤은 어렵지 않았다.
소인족인 소류아는 귀신 컨셉을 좋아해서 인형의 외형을 귀신처럼 만들었기에, 그가 만드는 인형을 전부 귀신이라고 부를 뿐이었다.
제대로 만들면 인간과 똑같이 만들 수도 있었다.
꼭두각시 인형이지만, 내부까지 비슷해서 모두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단 하나의 제안으로 아겔이 이루어 낸 것은 몇 가지나 되었다.
고독 직원들의 기강을 잡는 것부터, 성좌 교단이 간섭할 여지도 물리쳤다.
아마넬과 쉬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은 관계자들만이 아는 것이니, 고독의 주인도 알지 못한다.
거기에 베믈리오의 개인적인 소망도 이루어진 셈이었다.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군.”
일은 너무도 잘 풀렸지만, 베믈리오는 내심 불안해졌다.
아겔은 이 제안을 했던 어제, 아무런 반대급부도 말하지 않았다.
이리 엄청난 빚이라면 아겔이 무엇을 뜯어 갈지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철저한 거래 원칙주의자였으니까.
아겔이 말했다.
“그럼 이제 내 요구 조건을 말해도 괜찮겠지.”
베믈리오는 긴장하고 아겔의 말을 경청했다.
“말해라.”
“내 조건은 간단하네. 특수 감방은 이제부터 내가 관리하도록 하지.”
“특수 감방을?”
베믈리오의 눈이 커졌다.
아겔이 멈추지 않고 말했다.
“지금 교정관 두 자리가 비었지. 하나는 페이든이란 신참에게 맡기세. 아마넬에게 업무를 배웠다고 들었는데, 거기에 두어도 괜찮을 듯하네. 동력실의 일은 바쁜 곳이니, 놈이 다른 데로 눈을 돌리기 어렵기도 하고. 남은 자리는 내가 맡겠다는 말일세.”
“아겔 영감, 당신이 특수 감방을 맡겠다니.”
베믈리오는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죄수가 교정관이 해야 할 일을 맡는다? 고독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물론, 이미 한배를 탄 아겔이니만큼 신뢰에 대한 부분은 딱히 이견이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베믈리오가 말했다.
“솔직히 말해도 되나.”
“물론이지.”
“걱정이 앞서는군.”
아겔이 특수 감방을 맡겠다고 한 이유는 베믈리오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그는 이제 숨어 살려는 모습이 아니었다. 조용히 살던 어둠에서 나와 고독을 점령하려는 듯한 기세였다.
배신자를 직접 찾아내 처단하려는 모습부터가 그러했다.
고독에 피바람이 불 것이 자명했다. 특수 감방에 있는 죄수들을 아겔이 풀어 줄 테니.
“영감이 특수 죄수들을 너무 많이 풀면 우리 쪽에서 감당할 수 없다.”
특수 죄수는 간수와 교도관을 공격하거나 살해했기에 특수 감방에 갇힌 자들이었다.
그들이 마구잡이로 구속에서 풀려난다면, 고독의 행정력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 내 통제 아래에 둘 테니.”
아겔이 확언했다.
그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특수 죄수들이 풀려나도 다룰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이미 풀려난 아피스토도 아겔의 말에는 완전히 복종하고 있었다. 탐식의 권능을 가진 죄수라도 아겔이 먹지 말라고 하면, 행동을 멈추었다.
베믈리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겔은 자신의 말을 결코 어기는 법이 없었으니.
조금 안심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불안함은 아직 남아 있었다.
“이제 ‘산 너머’를 공략할 생각인가?”
아겔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쉽지 않을 텐데.”
“언제는 쉬웠겠나.”
아겔이 고독에서 살아온 까마득한 시간은 쉬운 시간은 아니었다.
굶주림과 살의에 대항해 살아남는 건 끔찍한 고통과 인내를 요구했다. 아겔은 그 시간을 견뎌 온 자였다.
산 너머에 있는 죽음이 가득한 ‘절지(絶地)’.
주술사를 잡으려면 반드시 그곳으로 넘어가야만 했다.
어둠의 사도와 연결점이 있으리라 의심되는 그를 살려 둘 수는 없었다.
“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는 것으로 하지.”
아겔의 단호한 말에 베믈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하겠다고 하는데, 어차피 말려도 듣지 않을 것이다. 그저 최선을 다해 돕는 수밖에.
베믈리오는 편안하게 아겔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독한 양주를 음미하며 아겔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정말 놀랐다. 난 영감이라면 두 사람을 죽일 줄 알았는데.”
적에겐 한없이 무자비한 아겔이었기에, 두 사람을 살려 주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아겔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오해가 있군. 날 살인마로 보면 곤란하네. 여기서 살인은 숨 쉬는 일이나 마찬가지이니까.”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지만. 어쨌든 이번 일이 잘 넘어가서 무척 다행스럽군.”
베믈리오는 문득 궁금한 게 떠올라서 아겔에게 질문했다.
“하나 묻고 싶군, 영감. 아마넬과 쉬카를 살려 준 건, 감정적인 선택이었나, 이성적인 선택이었나.”
“…….”
베믈리오의 물음에 아겔은 생각에 빠졌다.
상황은 이성적이었다.
성좌 교단의 견제도 막고, 고독 내부의 해이해질 수 있는 기강을 바로잡는 일. 그리고 자신의 적을 도운 배신자를 처리하는 일.
하나 아겔은 그 결정을 내릴 때, 이성보다 앞선 무언가가 있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감정적이었지.”
목소리가 메말랐다고 그의 감정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아겔도 사람인 이상, 적에겐 분노를, 친구에겐 편안함과 정을 느끼기도 했다.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고, 그 감정의 폭이 미미했을 뿐이지.
사로잡힌 아마넬과 쉬카. 두 사람을 보는 순간, 아겔은 과거를 떠올렸다.
사랑스러운 아내.
그리고 그녀가 품은 새 생명.
그 행복했던 시절은 까마득히 먼 시간의 어둠에 지워져 버렸고, 이제 아겔은 혼자 고독에 갇힌 신세였다.
“젊은이들을 보면 가끔 옛날 일이 떠오를 때가 있지. 자네도 그렇지 않나.”
“자주 그러진 않지만, 동의한다.”
이후로도 베믈리오와 대화를 좀 더 나눈 아겔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돌아가 쉬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휴식은 미뤄지게 되었다.
쾅……!
갑자기 서기관실의 문이 박살 났다.
베믈리오의 눈이 커졌고, 아겔은 박살 난 문의 파편이 튀는 데도 가만히 문 너머를 향해 고개를 향하고 있었다.
쿵.
“어딜 가려고.”
묵직한 목소리와 덩치.
커다란 근육과 야성미 넘치는 각진 얼굴, 흐트러진 제복.
굳건한 눈이 방안의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내가 없을 때, 일을 그딴 식으로 처리해, 서기관?”
“소장님……!”
베믈리오는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교도소장.
그가 서기관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베믈리오는 식은땀을 느꼈다.
가볍게 힘을 방출한 것만으로도 베믈리오가 기를 펴지 못하는 상황.
거기서 아겔은 묵묵히 서 있었다.
“아겔.”
“소장, 오랜만이구먼.”
“당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질 각오는 되었나.”
뭔가 하나가 꼬였다는 느낌에 아겔은 입꼬리를 올렸다.
다행히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인 것 같았다.
“책임질 마음이 없다면, 일을 벌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
무거운 긴장감 속에서 아겔은 당당하게 소장을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