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대화 (2)
슈리오센 아글라이거.
고독에 단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교도소장(矯導所長).
고독이란 교도소의 모든 통제권을 쥐고 있으며, 그의 말 한마디로 모든 행정이 좌지우지된다.
기실 내부 행정은 베믈리오에게 모두 맡기고 본인은 외부 업무를 보는 편이었지만, 가끔 문제가 발생하면 직접 나서기도 하는 행동파였다.
교도소장의 급수는 무렵 10급.
그와 고독의 한 축을 담당하는 ‘봉인술사’와 동급의 실력자였다.
베믈리오가 계급장을 떼더라도 슈리오센에겐 덤벼들 수 없을 격차가 있었다.
한 손으로 행성도 파괴할 수 있는 남자가 아겔을 노려보고 있었다.
“감히 배신한 놈들을 살리는 것도 모자라 밖으로 빼돌려?”
아겔은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지. 문제는 없었네.”
“문제가 없긴 왜 없어. 주인님께서 눈치채셨다.”
“…….”
슈리오센의 말을 들은 아겔은 담담했지만, 베믈리오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고독의 주인.
그가 베믈리오와 아겔이 벌인 일을 눈치챘다는 말이렷다.
잔혹한 인물인 그가 아마넬과 쉬카를 살려 둘 생각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걸 아는 베믈리오는 식은땀을 흘렸고, 아겔은 잠자코 있었다.
슈리오센은 들고 있는 술병을 입가에 가져갔다.
꿀꺽꿀꺽……!
“푸으…… 주인님께서 내게 연락을 주셨다. 배신한 놈들이 밖으로 나와 있고, 그들의 위치를 찾았다고.”
아겔의 몸이 움찔거렸다.
슈리오센은 그의 반응을 보고도 계속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들의 수송선을 파괴할 수 있다고 하셨지.”
늙은 죄수가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넬과 쉬카의 털끝이라도 건드린다면, 내가 가만 있지 않을 걸세.”
사아아아…….
슈리오센이 짓누르고 있던 서기관실의 분위기가 급격히 가라앉았다.
마치 현실이 악몽이 되는 것처럼 흐물거리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눈으로 보기엔 아무런 차이가 없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베믈리오와 슈리오센은 그 감각을 선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베믈리오는 긴장했고, 슈리오센은 피식 웃었다.
“아겔, 네가 그렇게 반응할 줄 아시고, 그분께서 직접 내게 말씀하셨다. 주인님의 연락을 받아라.”
“그가 직접 말했는가?”
“그래. 너를 찾으라 하시더군.”
슈리오센이 베믈리오의 책상 위에 홀로그램 단말기를 올려 놓았다.
그가 베믈리오를 보고 고개를 까닥거렸다.
“우린 나가 있겠다.”
서기관과 소장 두 사람이 서기관실에서 나갔다.
혼자 남은 아겔은 슈리오센이 책상 위에 놓은 단말기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파직. 위이잉.
누군가의 흐릿한 전신의 영상이 떠올랐다.
곧 영상은 온전해졌고, 젊은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겔은 그가 말을 꺼낼 때까지 조용히 있었다.
-아겔라스토스, 이거 오랜만입니다. 얼굴 보니 반갑군요.
“그렇군. 연락은 한 30년 만인가?”
-5년 만이죠. 그쪽 시간으로 세면 30년이 맞겠군요. 제 연락을 기다렸습니까?
“그럴 리가. 남정네와 연락하는 취미는 없네.”
-후훗,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
체형도 특출날 것 없이 평범했고, 생김새도 그리 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겔을 바라보는 그의 눈만큼은 심히 날카로웠다. 마치 어디 한군데라도 벨 수 있다면 베어 가려는 듯한 포식자의 눈빛 같았다.
외형은 젊어 보이지만, 그는 100년 넘게 살아온 노괴였다.
그는 이내 입술을 씰룩이며 말했다.
-그런데 우리 영감께서 왜 그러셨을까요. 제가 때마다 알약을 보내 준다고 해도 거절하시고, 이렇게 배신자가 나왔는데도 살려 주시고. 최근엔 고독에서 꽤 큰 난장판까지 쳐 놓으셨더군요. 이전과 다르게 말이죠. 이제 살 의지마저 사라진 겁니까?
“그럴 리가. 난 그 누구보다도 살고 싶다네. 자네보다 더욱. 거래의 내용은 잊지 않았네.”
고독의 주인은 조금 불만스러운 얼굴로 아겔을 바라보았다.
앞에 서 있는 저 허리 굽은 노인은 고집불통 중의 황소였다. 교도소장과 다르게 그는 절대로 자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
물론 그가 아겔의 입장이었어도 그럴 것 같았지만,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한번 건드려 보기로 했다.
-배신자들은 척살하겠습니다.
“…….”
아겔이 입을 다물었다.
수백 광년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연락이었지만, 고독의 주인은 오싹함을 느끼고 씩 웃었다.
여전히 이 괴물 노인은 한 성깔 했다.
노인의 목에서 메마른 소리가 흘러나왔다.
“두 번 말하지 않겠네. 두 사람은 건드리지 말게.”
-여태껏 고독에서 살아 나간 교정관은 없습니다. 이유는 아시겠죠. 그들이 내부 기밀을 누설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발설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습니까?
“…….”
보장 따윈 없다. 그러나 아겔은 쉬카와 아마넬이 고독에 처음 부임했을 때부터 지켜봐 왔다.
둘은 함부로 아겔과 고독에 대해 떠들고 다닐 사람이 아니었다.
-정부나 교단이 눈치챈다면, 더 최악이죠. 둘은 납치당해서 죽을 때까지 고문을 받을 겁니다. 그걸 원하시는 건 아니겠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걱정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없지.”
-맞는 말씀입니다만, 제가 하는 일이 일인지라. 작은 확률도 놓치고 싶진 않군요.
철두철미하고 얼음보다 차가운 성정이 돋보이는 말이었다.
그러나 아겔도 물러서지 않았다.
“작은 게 아니라 아예 없는 걸세. 그렇게 생각하게.”
-이거야 원. 말이 통하지 않는군요.
영상의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입가엔 숨길 수 없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신다면, 이번엔 눈을 감아 드리죠. 들어 보시겠습니까?
남자가 히죽 웃었다.
그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아겔은 목소리에 깃들어 있는 희미한 광기로 그가 웃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얘기해 보게.”
아겔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고독에 제가 원하는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남자는 고독의 주인이면서도 또한 심하게 간섭을 받는다. 원하는 물건 하나 가지러 갈 수 없을 정도로.
우주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주인으로서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가 움직인다는 사실 하나에 정부와 교단이 주목할 정도이니.
“어떤 물건인가.”
고독의 주인이 원할 정도의 물건이라면 보통 물건이 아닐 것이다.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고독에선 자체적으로 아티펙트나 신비한 물건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죽은 이들의 원념이나 저주가 모여 악마적인 물건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소망과 믿음 같은 것이 모여 만들어진 물건도 있다.
남자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제가 들은 보고로는 ‘위령’이란 죄수가 꽤 대단한 성물을 지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걸 가져와 주세요.
“위령이라.”
아겔은 정글을 방문한 려홍을 떠올렸다. 그녀의 어머니, 위령.
안타깝게도 위령은 이미 죽은 지 오래였다. 원혼이 되어 아직 고독에 남아 있을 뿐.
“위령은 이미 죽었다네. 죽은 자가 무슨 성물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죽었어도 혼이 남았다면, 가능한 일이죠. 어쨌든 제 조건은 이것입니다.
아겔은 곰곰이 생각했다.
위령은 죽기 전 상급 죄수였으나, 죽고 난 이후, 정글 서쪽에 있는 ‘바다’에 머무는 혼령이 되었다.
살아 있는 자가 아니라 산 너머에 구속할 수는 없었다.
개방 같은 고독의 시스템도 적용되지 않는다. 원혼은 뿌리 박힌 것처럼 그 자리에 영원히 머무니.
한을 풀지 않으면, 혼은 떠나갈 수 없는 것이다.
‘그 물건이 원한의 중추라도 되는 건가.’
아겔은 가 보면 알겠지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 물건을 넘기면 되나?”
-후훗, 그렇습니다. 수락해 주시리라 믿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조그맣게 웃음소리를 내며 의자를 돌렸다.
-잘 부탁드립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통화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제 고집은 그만 부려 주시기 바랍니다. 알약을 준비했으니, 꾸준히 복용해 주세요.
아겔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홀로그램이 꺼졌다.
치직.
그게 끝이었다.
아겔은 가만히 서서 고독의 주인이 제안한 것을 곱씹었다.
‘위령.’
그녀가 성물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아겔도 모르는 일이었다.
알아도 크게 쓸모 있는 정보는 아니었다. 어차피 성물은 아겔에겐 쓸모없는 물건이었으니.
그들도 정글에 원하는 바가 있어서 려홍을 보냈을 테니, 바다로 가서 협상하면 될 일이다.
물론 일이 쉽게 풀릴지는 부딪쳐 봐야 알겠지만.
“끝났나.”
서기관실에 다시 슈리오센이 들어왔다.
“주인님과 이야기는 잘 마무리되었나?”
“그런 셈이지. 자네가 처벌받을 일은 없을 걸세.”
흠흠.
슈리오센은 헛기침을 하더니, 술병을 단번에 비웠다.
그는 품을 뒤적이더니, 통 하나를 꺼내 아겔에게 내밀었다.
“이건…….”
“알약이다. 주인님의 말씀은 들었겠지. 이제부터 가지고 다녀라.”
“별로 받고 싶진 않구먼.”
“‘때’가 차기까지 아겔라스토스의 생존을 돕는 것. 계약 사항이다. 네가 거부하는 것도 주인님의 아량 덕분이었지. 보관 일을 그만두겠다면, 이젠 받아들여라.”
아겔은 통을 받아 들고 흔들어 보았다.
이전에 받았던 것과 같은 한 알당 행성값인 알약이 수십 개나 들어 있었다.
아겔은 혀를 차고 원래 가지고 있던 알약들을 통에 넣었다.
그리고 새 알약 하나를 꺼내 씹었다.
콰득.
“쓰군.”
“몸에 좋은 게 쓴 법이지. 잊지 마라, 아겔라스토스. 너는 절대로 죽어선 안 된다.”
“그렇게 말 안 해도 난 살고 싶다네.”
슈리오센은 아겔이 알약을 삼킬 때까지 지켜보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고집불통 노인네는 끝까지 지켜보지 않으면, 또 언제 약을 뱉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베믈리오, 따라와라. 교정관이 빈자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지. 대책이 있나?”
“예, 소장님.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서기관실을 떠나고, 아겔은 한동안 서기관실에 머물렀다.
…….
침묵을 지키던 아겔은 적막한 서기관실을 떠나 복도의 어둠으로 사라졌다.
* * *
‘끄응…….’
고독의 주인과 통화하고 난 며칠 뒤.
아겔은 복도 한구석에서 찌뿌둥한 몸을 움직였다.
알약은 힘을 북돋아 주지만, 그만큼 몸의 근육이 뻐근하고 관절과 인대는 시큰거려 왔다.
청각 외의 감각이 살아나는 느낌은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감각이 살아날수록 죽음과 멀어지는 것이지만, 애초에 아겔은 매일 죽음의 곁을 걷는 자였다.
“늙은이에게 시키는 일이 많구먼.”
산 너머로 가기 전에, 바다에 가서 성물을 챙기는 게 우선이 될 것 같았다.
고독의 주인은 인내심이 깊었지만, 시간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었으니.
너무 끌다간 오히려 이자가 불어날 수도 있다.
“건강 때문이라도 운동을 좀 해야겠구먼.”
아겔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체력도 붙지 않겠나. 요즘은 예전과 달리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올라서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이참에 몸 관리를 좀 해야 할 것 같았다.
사육사 타이룽의 당부도 있었으니 말이다.
파아아앗.
아겔이 선 자리에서 빛무리가 흘러나왔다.
개방이 시작된다는 징조. 경고음도 함께 들려왔다.
페이든이란 신입이 동력실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큰 시스템이 시작되었다.
아겔은 가만히 서서 빛무리가 자신을 삼키도록 놔두었다.
그리고.
.
.
.
끼룩끼룩. 끼룩끼룩끼룩.
정글에선 들려오지 않을 법한 소리가 들려왔다. 맨발로 선 곳은 정글의 단단한 흙이나 진흙이 아니라 모래였다.
아겔은 공기 중에 만연한 소금기를 느끼고 혀를 찼다.
“쯧.”
정글에 떨어졌어야 할, 그가 ‘바다’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