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위령 (3)
해가 점차 가라앉기 시작하는 시간.
아겔은 려홍과 안톤을 나란히 눕혀 놓고 근처를 경계하고 있었다.
려홍은 아겔이 발견한 지 2시간이 지나서야 의식을 되찾았다.
“으음…….”
“정신이 좀 드느냐.”
비몽사몽하던 려홍의 눈이 한순간 또렷해지고, 자신의 앞에 있는 자를 식별했다.
“어르신……?”
“날 알아보긴 하는구나.”
려홍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누워 있는 곰 수인을 바라보았다.
“이 분은…….”
“네가 한 짓이다. 기억이 나느냐.”
“…….”
려홍은 입술을 씹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녀는 고개를 들고 아겔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어딘지 아십니까?”
“바다에서 정글로 넘어가는 숲이지. 넌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려홍은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조용히 있었다.
아겔은 그녀가 생각할 시간을 갖도록 충분히 기다려 주었다.
당장 억지로 원하는 것을 얻어 낼 수도 있지만, 친우의 자식에게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다.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던 려홍은 우선 사과부터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어르신의 수하를 공격한 건 제 부덕함 때문입니다.”
“수하가 아니라, 친구다. 그리고 사과는 받겠지만, 그건 자네가 해야 할 사과는 아닌 것 같구먼. 혹시 내가 틀린가?”
“아…….”
아겔이 뭔가 알고 왔다는 걸 깨달은 려홍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예…… 알고 오셨군요.”
“위령은 어디에 있나.”
려홍은 말없이 자신의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어머니께서는 바다 건너 ‘끝 섬’에 계십니다. 그곳 제단에 유골함이 있고, 혼령으로 지내고 계십니다.”
아겔은 려홍의 말을 듣고 진실인지 아닌지 가늠했다.
떨림이 없었다. 그녀가 한 말은 진실이었다.
“그럼 네 몸에 빙의한 혼령은?”
“……그것도 알고 계셨군요. 예, 제 몸에 있는 분도 어머니이십니다.”
“자세히 설명해 봐라.”
려홍은 목걸이를 풀어 아겔에게 내밀었다.
아겔은 그녀에게 목걸이를 건네받고 손가락으로 굴려 보았다.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만드신 성물입니다. 이걸 통해 제게 말씀하십니다. 지혜나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제게 말을 걸어 주시죠.”
“말을 건다고?”
“이제는 말을 거는 것을 넘어, 이 목걸이를 통해 직접 제 몸에 강림하십니다. 최근엔……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십니다.”
려홍은 그간 자신의 몸에 빙의한 위령의 감정을 떠올렸다.
끝없는 분노와 회한. 그리고 무언가를 향한 끊이지 않는 집착. 현명하고 온유했던 예전의 모습은 어느샌가 사라진 모습이었다.
“어르신의 벗을 공격한 건 어머니의 소행입니다.”
위령은 다짜고짜 남을 공격할 위인이 아니었다. 살아생전에 그녀는 정과 박애가 많은 사람이었다.
‘설마 아직도 잊지 못했는가.’
뭔가를 떠올린 아겔이 질문했다.
“네 어미가 뭘 원하는지 혹 알고 있는 게 있느냐.”
혼령은 여러 종류가 있다. 지금과 같은 감정에 삼켜진 종류는 ‘원혼’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직 저승에 가지 않았으니 ‘사령’은 아니지만, 원혼 또한 극히 위험한 혼령이다.
혹, 한을 풀 방법이 있다면, 그녀를 저승으로 보내는 것도 가능하리라.
“원하시는 것…….”
려홍은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말씀해 주시는 바가 없었습니다. 강력한 감정에 휘둘려, 어머니께서 강림하셨을 땐, 기억조차 제대로 나지 않습니다.”
“잘 떠올려 보거라. 흐릿한 기억이라도 어렴풋이 떠오르는 게 없느냐.”
려홍은 기억을 헤집기 위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여전히 떠오르는 것은 없는지 얼굴이 밝지 않았다.
“모르겠습니다…… 그저 어디론가 가려고 했다는 것밖에…….”
“음.”
려홍의 대답에 어느 정도 확신을 갖춘 아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되었다. 네 어미가 뭘 원하는지 알겠구나.”
“예……? 정말이십니까?”
“하나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지. 그렇기에 네 어미는 원혼이 된 것 같다.”
“제 어머니가 원혼이 되셨다니…….”
아겔에게 다시 목걸이를 돌려받은 려홍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혼령이 되고서도 활녀당을 위해 지혜를 아끼지 않던 그녀가 이제는 극악무도한 영혼이 되었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위령이 원혼이 된 데에 대한 인과를 밝히는 건 둘째로 하더라도 그녀는 꼭 성불해야만 한다. 한 번 원혼이 되면 절대로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지.”
“어머니를 성불…….”
려홍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아겔의 말대로 원혼은 절대로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성직자의 신성력도 원혼을 성불시킬 뿐, 이전의 순백한 혼령으로 되돌려 놓지 못한다.
그저 저승으로 보내는 일밖에 답은 없었다.
려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면…… 좋습니다. 어머니를 성불시켜야겠습니다.”
“그럼 나와 거래하는 게 어떠냐.”
아겔이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네 어미가 성불하도록 돕겠다. 위령의 생전에 나는 그녀와 친구였지. 원혼으로 놔두는 것도 그리 보기 좋은 일은 아니야. 그렇다고 조건 없이 도와줄 생각은 없다.”
려홍은 아겔이 거래 이야기를 꺼내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거래하는 자.
합당한 값만 치르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고독의 한 집단의 수장인 려홍은 아겔과의 거래를 두려워할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려홍은 그의 제안이 달가웠다. 그녀도 이번 개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활녀당도 결집하지 못한 마당에 홀로 어머니를 성불시킬 수는 없을 거야.’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강림은 빈번해지고, 그 강도도 세진다.
이대로 놔두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그리 좋은 일은 아닐 것 같았다.
려홍은 긴장한 얼굴로 아겔에게 질문했다.
“대가가 무엇입니까.”
“성물. 네 어미가 만든 성물을 내게 넘겨라.”
“성물을요?”
려홍은 조금 커진 눈으로 자신의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위령이 만든 성물은 이 목걸이 외에는 없다.
성물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급수가 7급이었던 위령조차 평생의 소원을 담아 만든 것이 바로 이 ‘달빛 목걸이’.
어머니의 유품과도 같은 이 물건을 달라는 말에 려홍은 잠시 흔들렸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어머니의 존재가 지금 활녀당에게 해악이 된다면.’
조그만 가능성이라도 배제한다. 그런 일은 절대로 두고 볼 수 없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려홍은 목걸이를 꽉 쥐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어머니의 성불을 도와주신다면, 이 목걸이를 드리겠습니다.”
아겔이 천천히 주름진 손을 내밀었다.
“그럼, 거래는 성립이다.”
늙고 짜글짜글한 손이었지만, 내미는 사람이 사람인지라 려홍은 든든하게 느껴졌다.
고독에서 아겔의 지원을 받는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수천 명의 전사를 이끄는 려홍의 마음마저 평안케 하는 약속.
적으로만 만나지 않으면, 그는 고독의 죄수 중 누구보다 믿을 만했다.
그녀는 아겔의 손을 한 번 잡아 굳세게 흔들었다. 손을 놓은 려홍이 말했다.
“그럼 이제 항구로 다시 돌아가서…… 윽……!”
그녀는 말하다 말고 가슴에 있는 목걸이를 부여잡았다. 성물인 목걸이에서 혼탁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아겔은 그 기운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마기.’
분명 성스러운 물건이라 했건만, 려홍의 달빛 목걸이에선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흘러나온 마기는 이윽고 무언가의 형체를 이루었다. 마치 사람의 얼굴 같은 것이 려홍의 등 뒤에서 형상을 완성했다.
[아겔 영감…….]
“위령.”
그것은 위령의 혼령이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려홍의 몸을 잠식했다.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려홍은 눈동자가 사라지고 흰자위만이 남았다. 몸의 통제권은 순식간에 위령에게 넘어가 버렸다.
“왜 죽어서도 자네 딸을 괴롭히는 겐가.”
[난 가야 해요, 아겔. 그이를 만나야 해. 그이가 날 부르고 있어. 날 기다려…….]
그녀는 심한 집착에 빠진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아겔은 그녀가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자넨 마기에 오염되었어. 누가 그랬는지 모르지만, 내가 자넬 성불시켜 주지. 어서 려홍의 몸에서 나오게.”
[그럴 수 없어요. 난 가야 해. 아무리 영감이라도 날 막겠다면…….]
후웅……!
마기의 바람이 퍼져 나가 숲을 시들게 했다.
더욱 악귀처럼 변한 위령의 혼이 아겔을 짓누를 듯 바라보았다.
[부숴 버리겠어요.]
축 늘어져 있던 려홍의 고개가 홱 들렸다.
꼭두각시처럼 변한 그녀는 위령의 뜻에 따라 아겔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쾅!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려든 려홍은 주먹질 한 번으로 아름드리나무를 박살 냈다.
아겔은 나무 사이로 몸을 숨기며 외쳤다.
“려홍! 정신 차리거라!”
그에겐 느껴졌다. 거대한 위령의 존재감 사이로 발버둥 치는 하나의 연약한 영혼.
려홍의 부르짖음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러나 원혼이 가진 막강한 힘에 짓눌려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꼭두각시가 된 려홍의 육체는 빠른 속도로 아겔을 압박했다.
아겔은 공격을 전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최대한 충격을 흘리면서 몸을 보호했다.
려홍의 무력은 아무리 아겔이라도 주먹질이 머리에 맞으면 즉사할 만한 힘이었다. 위령의 마기가 더해지자 단숨에 땅을 가를 수 있을 정도로 세진 그녀였다.
퍽……!
복부를 얻어맞은 아겔은 나무에 날아가 부딪혔다.
려홍을 조종하는 위령은 천천히 아겔에게 걸어왔다.
[영감도 아시잖아요. 내가 그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겔은 울컥 솟아오른 피를 뱉어 냈다. 알약의 효과 덕에 진탕이 된 내장이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그놈은 너와 달리 복수에 눈이 멀었지. 이전엔 아니었지만, 이젠 너마저 눈이 멀었구나.”
[아니에요. 제가 가면 그이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거예요. 반드시.]
“그는 널 사랑하지 않는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쾌락에 영혼을 내다 판 놈이 네 육체 말고 어딜 사랑하겠느냐. 그러니 네가 죽고, 놈이 떠난 것이다.”
뿌드드득.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주먹을 쥔 려홍이 아겔을 향해 내리찍었다.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콰아아앙-!
아겔은 황급히 옆으로 굴러 주먹을 피했다. 주먹이 땅을 부수자, 지진이라도 난 듯이 주변이 흔들렸다.
그는 위령의 감정 상태를 확인했다. 그녀의 폭발할 듯한 감정에 영향을 받은 마기가 주변을 삼키고 있었다.
‘도발 덕분에 동작이 커졌군.’
분노란 건 그렇다.
모든 걸 잊게 만들고, 앞에 있는 대상을 부술 욕망으로 인해 스스로 마음을 구속하는 것.
덕분에 아겔은 틈을 얻을 수 있었다.
늙은 죄수의 손이 려홍의 목을 붙잡았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
“돌아가라, 위령. 곧 내가 찾아가 너를 성불시켜 주마.”
[아, 안 돼……! 그러지 마세……!]
어둠이 그녀를 밀어냈다.
강력한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주변을 파쇄하듯 갈아 버렸다. 아겔과 려홍이 서 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회오리가 몰아치는 듯했다.
[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던 위령의 혼이 흐려지고 점차 거칠었던 기운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려홍은 기절한 채로 아겔의 팔에 붙들려 있었다.
아겔은 그녀를 눕히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르신?”
어느새 몸을 조금 회복한 안톤이 서 있었다.
그는 태풍이라도 지나간 듯한 주변 풍경을 보고 힘을 끌어 올린 모습이었다.
“긴장 풀거라. 다 끝났으니.”
아겔은 쓰러진 려홍이 내는 숨소리를 확인했다. 그리고 바다가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바다도 만만한 곳은 아니었지.’
오랜만에 바다에 오니,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글에‘대적자’란 시스템이 있는 것처럼 바다에도 시스템이 있다.
오로지 죄수들을 죽이기 위해 설계된 시스템. 그걸 뚫고 섬까지 가야만 위령을 성불할 수 있었다.
‘가야만 한다.’
아겔의 오랜 친구였던 위령.
그녀의 타락을 이렇게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위령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서는 누군가 개입했을 확률이 높다.
아마 주술사가 한 짓이리라.
놈이 활녀당에게 수작을 부릴 셈이라면, 아겔은 반드시 그 손길을 물리칠 생각이었다.
아겔이 안톤을 불렀다.
“려홍을 업거라.”
“바다로 가시는 겁니까.”
“그래. 바다의 시스템이 뭔지 아느냐.”
“물론입니다.”
안톤의 외눈도 아겔이 바라보는 바다 쪽을 향했다.
“배가 필요하겠군요. 아주 튼튼한 배가……”
“활녀당이 빌려줄 게다. 가자꾸나.”
“예, 어르신.”
려홍을 업은 안톤이 아겔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