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102)화 (103/186)

102화 추방 (2)

아겔은 안톤과 함께 정글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번 개방은 문제가 있어서, 정글도 혼란에 빠진 상황.

려홍의 활녀당이 준비될 때까지 열흘 정도가 있으니, 정글의 상황을 둘러보고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약탈자들이 많겠구먼.’

대륙 동쪽의 ‘화산’이나 남쪽의 ‘사막’에 사는 죄수들.

그들은 대부분 약탈자 소속이었다.

이번 개방은 떨어지는 위치가 랜덤이었으니, 활녀당이 약탈자들에게 공격을 받은 것처럼 정글도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화산과 사막에 비하면 정글과 바다는 살기 좋은 곳이니, 욕심낼 만하지.’

집단이 자원이 풍족한 곳을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지금까지는 악마숭배자들이 정글을, 활녀당이 바다를 지배하고 있었으니, 이런 기회가 흔치 않았다.

바다와 정글까지는 거리가 있어 안톤이라도 반나절 이상은 걸렸다.

전력으로 달리는 것을 기준으로 한지라 아겔은 안톤에게 쉬엄쉬엄 가자고 말했다.

“시간이 있으니 굳이 힘 빼지 말거라.”

“예, 어르신.”

바다와 정글 사이의 바위지대.

황량한 이곳은 먹을 것도 제대로 없고 풀도 잘 나지 않는 지역이었다.

“먹을 것 좀 꺼내 보거라.”

“예.”

안톤은 주섬주섬 배낭을 열어 활녀당에게 받은 건어물을 꺼냈다.

바다는 풍족한 곳이니, 활녀당은 이런 건어물 같은 식량을 비축해 놓는다. 1년 내내 바다에 있을 순 없으니, 오래 저장할 수 있는 식량이 다양한 편이었다.

아겔과 안톤은 커다랗고 평평한 바위 하나를 골라, 위에서 천천히 식사했다.

안톤은 아그작아그작 한입에 건어물을 씹어 먹었고, 아겔은 조금씩 뜯어먹었다.

“질기군요.”

“말린 게 그렇지.”

안톤은 천천히 식사하는 아겔에게 주의를 기울였다.

뭔가 말하고 싶은 눈치라는 걸 깨달은 아겔이 말했다.

“할 말이 있으면 하거라.”

“……별 건 아닙니다.”

안톤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곰 수인은 아겔이 찬란한 초승달 검기를 내뿜는 모습을 떠올렸다.

파도를 가르는 영롱한 검기. 웬만한 건물 높이보다 높은 파도를 단숨에 갈라내는 그 박력은 안톤의 뇌리에서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이제껏 아겔과 함께 다닌 지 오래되었지만, 그가 보여 준 모습 중에 단연 손에 꼽을 정도로 멋있는 검이었다.

“검기를 사용하시는 건 참 오랜만이셨습니다.”

“그렇구나.”

아겔이 검기까지 꺼내 드는 일은 드물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내면으로 끌고 가거나, 굳이 어둠을 사용하지 않아도 대처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나도 무적은 아닌 게지. 혼자 있으면 기를 쓸 수도 없으니.”

아겔은 안톤과 같은 ‘기 생성자’가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기를 생성할 수 있는 자들. 때론 선택받은 자들이라 불리기도 했다.

위령과 려홍만 해도 달빛을 받아 기운을 축적해 사용할 수 있고, 안톤도 스스로 푸른 불꽃의 기운을 사용한다.

아겔은 그게 되지 않았다.

그가 다룰 수 있는 건 오직 ‘어둠’뿐이었다.

“대신 기를 활용하시는 능력이 뛰어나지 않습니까. 바다를 가르던 초승달 검기가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습니다.”

“그것도 너와 같은 사람이 곁에 있어야 가능하지.”

“차라리 저도 어르신과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떽,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각자 다른 게 있는 법이다. 바다에서 내가 보여 줬던 것 정도는 너도 수련을 거듭하면 할 수 있다.”

“매일 그렇게 말씀해 주시지만, 요즘은 한계를 느끼고 있을 따름입니다.”

안톤은 씁쓸하게 자조하는 미소를 지었다.

고독에 들어와 아겔을 만나 무수히 성장한 것을 스스로 체감했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었고, 본인과 아겔을 비교하면 한없이 미약한 반딧불에 불과한 것 같았다.

“너무 스스로 재촉하지 말아라. 마음이 급하다고 해서 어둠을 걷는 게 쉽더냐.”

“그건…… 아니죠.”

안톤은 한계를 느끼면서도 내면의 어둠을 걷는 일은 절대로 쉬는 법이 없었다.

아겔과 같이 되고자 서둘러 어둠 속을 나아가고 싶었지만, 발밑의 공포는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성취가 더뎌진다고 생각이 듭니다. 언제쯤에야 어르신처럼 될 수 있을지…….”

고개를 숙이는 안톤.

아겔은 손에 묻은 건어물 부스러기를 털어 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일어서자 안톤은 의아한 눈을 하고 고개를 들었다.

“오랜만에 한 번 보여 줘야겠구나.”

“예?”

후욱……!

멍한 얼굴을 하고 있던 안톤은 어둠 속에 들어와 있었다.

“헛…….”

사방이 어둠인 내면.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내면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곁에는 아겔이 허리에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어르신, 여기는…….”

“오랜만이구나. 여긴 세로의 내면이다.”

라이칸스로프 왕의 아들, 세로. 두 사람은 그 아이의 내면으로 들어와 있었다.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든 상관없다.

아겔은 자신에게 영혼을 바친 세로의 내면에 언제든 들어올 수가 있었다.

사방에 반짝이는 별들. 마치 우주와 같은 한 사람의 내면.

어둠이 사방을 점거하고 있었지만, 별들의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안톤, 본인의 내면과 다른 점이 거의 없었다.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온 건 처음이군요.”

아겔과 함께하면서 안톤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아겔이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흠흠, 그 꼬마는 우리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있겠지. 오늘은 안부 전하러 온 것이 아니니, 내 말에 집중하거라.”

아겔이 바닥을 가리켰다.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세로가 지금까지 걸어온 곳이다. 이전보다 많이 걸어온 모양이군.”

그렇게 말한 아겔은 손을 들어 한쪽의 별을 가리켰다. 그곳엔 빛나는 별이 하나 있었다.

“저 별이 바로 지금 네가 있는 곳이다. 저 빛이 너와 다름없지.”

“예?”

반짝이는 별 하나. 그것은 안톤이 걷고 있는 곳이었다.

“방향부터 다르지. 세로가 어딜 향해 걷는지 알겠느냐.”

“아, 예. 제가 가고 있는 방향이랑은 거의 반대 방향이군요.”

처음 들어온 타인의 내면이었지만, 안톤은 세로가 어딜 향해 걷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별을 인식하자, 스스로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말이다.

“그렇지. 거기에 이렇게 걸어가면…….”

아겔은 밟고 있는 어둠에서 발을 떼, 허공을 걸어갔다.

뜬 채로 대각선을 향해 걸어가는 아겔을 보고, 안톤은 허겁지겁 그를 따라가려 했다.

“헛…….”

그런데 몇 걸음 만에 도착하고 말았다.

“어떠냐. 몇 걸음 걷지도 않았다.”

“예…… 도착했군요.”

멀리 있는 것처럼 보였던 안톤의 별은 방향만 바꾸어 몇 걸음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어느새 세로의 내면을 떠나 안톤의 내면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현실에선 나타나는 성취와 격차가 크지만, 어둠 속에선 방향이나 걸어온 거리 같은 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 타인과 비교할 필요가 없단다. 오로지 자신이 갈 길만 착실히 걸어가면 되는 게지.”

안톤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충격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적어도 세로보단 많이 걸어왔으리라 생각한 그였지만, 애초에 거리나 방향은 아무 쓸데도 없는 것이었다.

“실제로 여기서 꽤 먼 곳에 있는 놈도 있단다. 예를 들면, 너와 코르브스가 있는 곳은 꽤 거리가 있구나. 하지만 현실에선 겨우 한 급수 차이이지.”

까마귀 코르브스. 7급 죄수이며, 안톤처럼 아겔에게 영혼을 바친 자.

안톤도 그와 면식이 있어 알고 있었다.

뭔가 떠올린 안톤의 눈이 커졌다.

“설마 그럼 이 별들이 다…….”

“그래. 너처럼 내면의 어둠을 걷고 있는 자다. 나에게 영혼을 바치고.”

마치 밤하늘처럼 안톤의 내면엔 수없이 많은 별이 자리 잡고 있었다.

평소엔 앞만 보고 어둠 속에서 한걸음 내딛기 바빠 희미한 빛을 의식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확연하게 보였다.

셀 수 없는 자들이 아겔에게 영혼을 바쳤다. 더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은하수를 이룰 수 있을 만큼.

자세히 살펴보면 별들의 색조차 제각각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안톤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겨 질문했다.

“그럼 어르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나는 네가 볼 수 없다.”

단호한 어투에 안톤은 조금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전 안 되는 겁니까?”

“너 말고도 모든 사람은 날 볼 수 없다.”

아겔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안톤을 바라보았다.

“나는 어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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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겔과 안톤은 다음날 정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악마숭배자들을 몰아내고 찾은 평원. 정글의 중앙에는 죄수들이 한가득 모여 있었다.

아겔과 안톤이 걸어가자, 그 사이에서 누군가 뛰어나왔다.

“어르신! 금방 돌아오셨군요.”

“영감탱이!”

광신도 이오베와 송곳니 쿠라스크.

그들이 돌아온 아겔을 반겼다.

“캬앗, 도대체 어딜 갔다 온 거야! 예의 바른 종교쟁이랑 모기 새끼가 없어져 버렸어! 지금 사이좋게 곰탱이랑 여행이나 다닐 때가 아니라고!”

쿠라스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번 개방이 시작된 지 겨우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내 수하 중 반이나 사라져서, 갑자기 쳐들어온 약탈자놈들을 막기가 힘들어!”

아겔이 질문했다.

“상황이 어떤가.”

“제가 설명해 드리죠.”

이오베가 조악하게 그린 정글 지도를 가져왔다.

아겔은 어차피 눈이 없지만, 잠깐 자리를 비웠던 안톤을 위한 배려였다.

“정글의 동쪽이 약탈자들의 손에 넘어간 상황입니다. 자칫하다간 현재 자리를 비운 바를라군의 남쪽 지역까지 놈들에게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쿠라스크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했다.

“애들을 다시 모으고 있는데, 저쪽도 수가 만만치 않아. 게다가 우리처럼 6급인 놈들도 있었고. 쉽게 몰아낼 수가 없었어. 내 잘못 아니라고.”

“탓하려는 게 아니야.”

아겔이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니까 놈들이 동쪽에 몰려 있단 말이지?”

“예. 놈들의 숫자는 1만 명 이상입니다. 절대로 물러나지 않을 생각인 것 같습니다. 저희 쪽과 수가 비슷하니 아무래도 전략을 짜는 게…….”

“아닐세.”

설명을 듣던 아겔이 동쪽을 향해 허리를 폈다. 눈이 없는데도 어느 방향인지 알고 있는 그였다.

이오베가 슬며시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전략 같은 게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1만이라면, 자네와 쿠라스크, 안톤만 나와 같이 가면 될 것 같구먼.”

아겔이 단검을 꺼냈다.

“당장 내 영역을 침범한 놈들을 추방하러 가지.”

* * *

대륙에서 마피아 무리를 이끌고 있는 행동대장, 피에트로.

선글라스를 낀 그는 정글의 더위를 느끼며 앞으로 나아갔다.

7급인 마피아킹은 절지에 있으니, 동생들은 6급인 피에트로가 돌보고 있었다.

지금은 형님의 명령에 따라 바다를 치러 정글을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정글에 떨어진 다른 약탈자 무리가 시선을 끄는 데 도움이 되었다.

곁에 있는 동생이 말을 걸어왔다.

“피에트로 형님, 정글에 있는 약탈자들과 정말 안 마주치고 가는 겁니까?”

“뭐 하러. 알아서 잘 시선을 끌어 주고 있는데.”

“그거야…… 다 같이 화산 식구인데 저희가 매정하게 보이는 건 아닐까 해서…….”

“다 같은 식구는 개뿔…….”

피에트로는 알고 있었다.

약탈자 소속이라고 다 유대감이 있고, 친근한 사이가 아니었다.

약탈자 내부에도 무리가 나뉘었다.

마피아 계열 약탈자들이 있는가 하면, 말 그대로 '약탈자'의 직통 수하들도 있었고, 예전엔 비스트 클랜도 있었다.

지금은 도망가 버렸지만.

소속 집단이 그냥 도망쳐 버리는 기이한 사태.

그러니 유대감이 있을 리 없다.

‘우리 마피아도 계파가 나뉘는데, 쯧.’

복잡한 피에트로의 심경도 모르고 곁에 있는 동생은 다른 것을 물었다.

“형님. 그런데 이번에 정말 큰형님께서 대륙으로 직접 내려오신답니까?”

피에트로의 측근 동생조차 믿지 못할 만한 이야기.

피에트로는 궐련을 한번 빨고 말했다.

“형님이 허투루 말하는 거 본 적 있냐. 말씀하시면 그대로 하시는 분이야.”

“하지만…… 절지에서 대륙으로 건너오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페널티가 있을 뿐, 불가능한 게 아니야.”

절지에서 대륙으로 넘어오면 급수가 내려간다.

봉인이 강해진다는 뜻. 절지로 돌아가면 원래대로 돌아오지만, 넘어와서 힘이 약해지는 걸 원하는 상급 죄수는 없었다.

물론 마피아킹은 그 페널티를 감수하고서라도 대륙으로 넘어오려 했지만.

‘이유가 있으시겠지.’

지금은 형님의 말대로 따르는 게 옳았다.

마피아킹은 틀린 적이 없으니.

마피아 죄수들 선두에 서서 걷던 피에트로는 뒤에서 커다란 굉음을 들었다.

콰가가강ㅡㅡㅡㅡ!!

자신들이 지나온 정글의 동쪽.

지금 피에트로와 그의 수하들이 있는 곳은 정글의 남쪽이었다.

동생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피에트로를 바라보았다.

“형님……?”

“괜찮아. 쫄 것 없어. 아겔 영감이 돌아왔다고 해도, 우린 무조건 직진이다.”

피에트로는 간신히 자신의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까지 온 이상 돌아갈 수도 없다. 돌아가려면 굉음이 들려온 쪽으로 가야 했기에.

“다시 움직여! 앞쪽으로 정찰 보내고, 정글에서 마주치는 놈들이 있으면 보고해!”

마피아 무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몰래 정글의 죄수들에게 들키지 않고.

피에트로와 마피아 무리는 남쪽 정글을 지나쳐 바다가 있는 서쪽을 향했다.

콰가가가가강ㅡㅡㅡ!! 쾅ㅡ! 쾅ㅡ! 쾅ㅡ! 쾅ㅡ!

“…….”

자꾸만 뒤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피에트로는 심장에 무리가 오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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