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105)화 (106/186)

105화 월야곡 (2)

커다란 나무들 사이에 있는 작은 공터.

피에트로는 달빛이 희미한 이곳에서도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독특한 말투에 키 작은 봉두난발의 노인. 고독에서 그와 비슷한 외형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겔라스토스…….’

지난 수십 년간 어둠 속에서 생활하다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 정글을 차지한 자.

고독에서도 가장 베일에 싸여 있는 존재 중 하나인 그가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못 박힌 방망이라. 꽤 특이한 무기를 쓰는구먼.”

눈에 붕대를 감고 있는데도 그는 마치 앞을 보는 것처럼 말했다.

피에트로는 긴장을 잔뜩 끌어올리고 아겔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쓰고 있던 선글라스는 집어넣은 지 오래였다.

“대답이 없구먼. 말을 못 하는가.”

슥.

아겔이 손을 올렸다.

그에 피에트로는 화들짝 놀라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과민반응이었는지, 아겔은 손을 든 채 딱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 고양이처럼 겁먹지 말게. 우선은 대화해 보고 싶으니.”

“…….”

피에트로는 포식자 앞에 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위협적으로 보였다. 그의 말 또한.

“이리 많은 숫자를 이끄는 것을 보니, 아마 자네가 ‘놈’ 다음 가는 자리에 위치한 것 같구먼.”

아겔은 단번에 피에트로의 정체를 꿰뚫어 보았다.

피에트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제 동생들은 사지로 밀어 넣고 본인은 숨어만 있다니, 고얀 놈.”

아겔이 말한 놈이라 함을 피에트로가 무슨 의미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형님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

“끌끌, 뒷담이 가장 재밌는 법이지.”

아겔이 품에서 과일 하나를 꺼내 아삭 씹었다. 쓴맛이 나는 과육이 일품이었다.

“그래서 여긴 왜 왔는가. 약탈자들과 함께 정글을 치러 왔나? 놈이 그렇게 하라던가.”

타르타스를 필두로 한 약탈자 무리.

피에트로는 그들이 전멸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글 남부를 지나가던 차에, 동쪽에서 어마어마한 굉음이 들려왔었다. 거기에 아겔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오히려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약탈자 무리를 따라 마피아 클랜이 정글의 뒤를 치려고 했다고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안 돼…….’

아겔은 약탈자들에게 좋은 감정을 품고 있지 않았다.

만약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마피아 클랜은 오늘 이 자리에서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피에트로가 아겔의 말을 부정했다.

“아니야. 우린 정글을 치려 한 게 아니었어. 그저 지나가려…….”

“지나가려 했다? 믿기 힘든 말이네. 약탈자의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은가.”

피에트로는 애타는 마음으로 설명했다.

“우리의 목표는 바다다. 형님께선 바다를 치라고 하셨다. 정글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야.”

쿠라스크가 이죽거리며 딴지를 걸어왔다.

“캬앗, 지랄하고 자빠졌네. 어딜 되지도 않는 구라를 치려 해?

그가 희화화하듯 어깨를 으쓱였다.

“아, 죄송합니다. 몰래 지나가려다가 들켰네요. 그래도 공격하려 한 건 아니니까 괜찮죠? 이딴 식으로 말하면 믿을 것 같냐? 이 약쟁이 자식아.”

“송곳니…… 배신자 주제에 낯짝이 두껍구나.”

피에트로는 어금니를 악물고 그를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저 하이에나의 이빨을 털어 버리고 싶었지만,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바로 옆에 아겔이 있었으니.

피에트로가 다시 아겔을 바라보았다.

보이는 느낌으로 쿠라스크는 결정권자가 아니었기에 결국 아겔과 대화해 풀어야만 한다.

“정말로 우리는 정글을 치려고 한 게 아니다, 아겔. 지금 이 설명할 수 없는 증세가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어. 이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야.”

피에트로가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봐라…… 미쳐서 날뛰고 있는 건 짐승 새끼들도 마찬가지야!”

그가 가리킨 곳에는 쿠라스크의 수인들이 있었다.

그들도 미친 마피아들과 마찬가지로 머리를 감싸 쥔 채로 사방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쿠라스크가 이를 드러냈다.

“짐승 새끼? 이 새끼 입이 주제 파악을 못 하네?”

험악한 분위기에도 피에트로는 아겔을 설득하려 노력했다.

“생각해 봐라, 아겔. 우리가 너흴 공격하려 했으면, 차라리 들키지 않았을 때 시원하게 공격을 퍼부었을 거다. 그런데 뭐냐 이게!”

확실히 피에트로의 말대로 숲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저 적을 죽이는 게 아니었다.

옆에 있던 동료가 미쳐서 당황에 빠진 자들이 대다수였다. 서로의 아군을 말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적과 싸우고 있는 죄수들은 드물었다.

“서로 시원하게 싸우는 것도 아닌 이런 애매한 짓을 우리가 할 리가 없잖아! 그것도 내 소중한 동생들을 데리고!”

피에트로는 감정에 호소하듯이 말했다.

실제로 그의 감정은 애끓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마피아 클랜이 전멸될 테니까.

지독한 교도소에서 서로만 믿고 지켜 온 가족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기에.

쿠라스크가 아겔의 귀에 입을 가져갔다.

“영감. 저 새끼에게 휘둘리면 안 돼. 여기서 다 죽여 버려야 해. 언제 돌변해서 정글을 칠지 몰라. 미쳤다는 것도 놈들의 수작일지 모른다고.”

쿠라스크의 말에 아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

피에트로의 심장이 철렁였다.

아겔이 말했다.

“이상한 사태가 일어난 건 맞지만, 그것과 별개로 자네들은 정글에 무단으로 들어왔지. 내가 자네들을 살려 둬야 할 이유가 있나?”

피에트로는 몽둥이를 굳게 잡았다.

지금 아겔의 말로 방향은 결정되었다.

‘놈은 우릴 살려 둘 생각이 없다.’

하기야 자신이라도 화산에 몰래 들어온 녀석들이 있다면, 곱게 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오히려 약탈자들은 단순히 죽이는 것을 넘어 심하게 수탈하는 것도 우습게 저지를 것이다.

‘정말 여기서 끝인가…….’

아겔과 싸워서 살아남을 확률은 없다. 객기로 덤벼든다고 해도 개죽음을 당할 것이다.

피에트로는 마지막까지 동생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소리를 지르려 했다.

그때 아겔이 말했다.

“이 광증의 원인을 알고 싶나?”

“……뭐?”

아겔의 말에 피에트로는 잠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소리 지르길 망설였다.

싸우자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광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다니.

눈을 크게 뜬 피에트로가 말했다.

“설마…… 이게 무슨 일인지 알고 있는 거야?”

“알다마다.”

확신 섞인 목소리에 곁에 있던 쿠라스크마저 놀란 얼굴이 되었다.

“뭐, 뭐야. 알고 있었어, 영감? 그런데 왜 여태 말하지 않은 거야?”

아겔이 담담하게 말했다.

“말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으니까 그랬다네. 이건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피에트로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뭔지라도 알려 줄 수 있나……?”

그는 동생들을 미쳐 버리게 만든 이 괴이한 사태의 원인을 알고 싶었다.

“어렵지 않지.”

아겔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월야곡’이란 주술이라네.”

“월야곡?”

생소한 단어에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위령이란 이름을 아나?”

아겔의 질문에 피에트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바다의 활녀당 주인이잖아. 그런데 그 사람은 분명 예전에 죽었다고…….”

“예전에 죽었지만, 확실히 이건 그녀가 부리는 주술이라네.”

활녀당의 주인, 위령.

그녀는 주술의 대가라고도 알려진 고독의 상급 죄수였다.

달밤의 곡소리라 해 붙여진 이 주술은 오직 밤에만 그 능력을 발휘했다. 낮에는 사용할 수 없는 주술이었지만, 한정된 시간으로도 파괴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지금처럼 광대한 범위로 사람을 미쳐 버리게 하는 주술.

물론 원래라면 특정 대상을 노릴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원혼이 되어서 무작위로 미쳐 버리도록 한 거지.’

위령이 있는 서쪽의 ‘끝섬’. 그곳에 가야만 이 주술을 막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 밤 죄수들이 미쳐서 피아를 가리지 않고 광분하게 될 것이다. 보름달엔 그 정도가 특히 더했다.

아겔은 주술에 걸리지 않겠지만, 다른 죄수에게 걸린 주술은 풀어 줄 수 없었다.

쿠라스크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말도 안 돼…… 겨우 한 사람이 쓴 주술로 정글 전역에 있는 죄수가 미쳐 날뛴다는 거야?”

“위령은 상급 죄수였네. 주술에 대한 재능도 특출났지. 그녀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세.”

중급 죄수와 상급 죄수는 그 격차가 차원이 달랐다.

단 한 급수 차이였지만, 상급 죄수 하나만 있어도 이 ‘대륙’은 몸살을 앓게 될 것이다.

아겔은 생각했다.

‘원혼이 된 위령이라면, 더한 것들도 가능할 거다.’

바다에 있는 활녀당은 주술에 어느 정도 면역이 있겠지만, 다른 곳은 아니었다.

주술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걸리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위령보다 강하지 않은 이상, 누구나 주술에 걸려 미쳐 버리는 것.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어……?”

아겔의 곁에 서 있던 쿠라스크의 눈이 커졌다.

그러더니 이내 자신의 귀를 막고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으으…… 뭐, 뭐야 이거…… 소, 소리가 들려…….”

쿵……!

하이에나 수인은 고통스러워하며 거대한 덩치로 땅을 굴렀다.

갑작스러운 그 행동에 피에트로는 당황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아겔은 그 자리에서 쿠라스크를 지켜보았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가, 쿠라스크.”

“누, 누가 내게 말하고 있어…… 가야 한대…… 여, 여자 목소리…… 끄으으으…… 쿠와아아아악……!”

벌떡 일어선 쿠라스크의 눈에는 이성의 잔재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완전한 짐승이 되어 버린 쿠라스크는 거칠게 팔을 휘둘렀다.

부웅-!

아겔은 날카로운 손톱을 피한 뒤, 피에트로 쪽으로 물러났다.

다른 쪽에서도 목소리가 들려왔다.

“끄으으으…… 영감님…….”

광신도 이오베. 그도 언제 주술에 영향을 받았는지 머리를 감싸 쥐고 나타났다.

“이런…… 이오베마저.”

“도, 도망 가십…… 끄으어억……!”

이오베도 완전히 미쳐 버렸는지 이성을 놓았다. 신성력으로 몸을 감싸도 주술을 막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만큼 원혼이 된 위령의 힘이 막강하다는 뜻이었다.

피에트로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과, 광신도……? 맙소사…… 6급 죄수도 걸리는 거였어?”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네. 자네도 걸릴 수 있다는 말이지.”

“…….”

“일이 꽤 귀찮게 되었는데.”

광증에 걸린 이오베와 쿠라스크.

두 사람은 다른 죄수들과 다르게 걸출한 무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아겔은 생각 하나를 떠올리고 피에트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시적인 동맹을 맺는 게 어떤가.”

“뭐?”

“이 두 친구를 묶어 둘 때까진 서로 공격하지 말도록 하지.”

피에트로는 더욱 당혹스러운 얼굴로 아겔을 바라보았다.

“망설일 시간 없네. 여기서 그냥 저 미쳐 버린 친구들에게 죽고 싶나?”

아겔의 말에 피에트로는 주먹을 쥐었다.

동맹을 맺자는 말.

확실히 저 두 죄수를 내버려 두면, 자신의 동생들이 학살을 당할 것이다.

이오베는 원래도 아무렇지 않게 사람의 머리를 메이스로 깨부수는 자였고, 쿠라스크는 강한데 교활하기까지 한 놈이었으니.

피에트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길, 그래 해보자고.”

“자네가 쿠라스크. 내가 이오베를 맡지.”

“좋아.”

피에트로가 쿠라스크를 향해 뛰었다.

아겔은 여유롭게 이오베를 맞상대하러 달려갔다.

‘녀석이 키운 놈, 실력 한번 볼까.’

이오베의 메이스가 아겔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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