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106)화 (107/186)

106화 월야곡 (3)

아겔은 이오베를 상대하면서도 피에트로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살폈다.

마피아킹.

그의 부하들을 이끄는 둘째.

아겔이 아는 바라면 저 피에트로란 친구는 다음 대의 마피아킹으로 등극할 예정일 것이다.

‘후계자 시험을 하는 건가?’

그가 갑자기 이렇게 무리한 일을 시킬 리 없다.

마피아 클랜이 전멸당할 수도 있는 위험이 있는데, 정글을 넘어 바다를 치라니.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러나 피에트로는 실제로 행하려 했다.

‘놈이 뭔가 바라는 게 있다. 설마…….’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긴 했지만, 아겔은 고개를 저었다.

부웅……!

종이 한 장 차이로 코앞에서 지나간 메이스가 아겔을 현실로 불러들였다.

굳은 피 냄새가 나는 메이스는 아겔의 머리를 부수려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붕붕붕!

이오베가 휘두르는 메이스는 파괴적인 위력을 냈다.

쾅!

땅을 가르고 나무를 손쉽게 꺾어 버리는 힘.

신성력으로 신체를 강화한 이오베는 근접 전투의 달인이었다. 지원형인 성자와는 정반대의 느낌이었다.

“끄으으으…….”

이오베는 공격하면서도 머리를 부여잡고 잠깐씩 멈추었다. 고통이 꽤 심한 것 같았다.

아겔에겐 들리지 않지만, 이오베에겐 들리고 있을 위령의 노랫소리.

원혼이 내는 울음소리는 그 위력이 살아 있을 때보다 훨씬 강력한 모양이었다.

“쯧쯧.”

특정 장소에 설치하는 주술일 경우에는 아겔이 풀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각 개인에게 적용되는 주술은 풀 수가 없을 것이다.

어둠으로 이어져 있지 않은 이상은 말이다.

아겔과 어둠으로 이어진 안톤은 이러한 주술에 면역이 있겠지만, 다른 사람은 스스로 막아 내야만 했다.

파아앗……!

이오베의 메이스에 빛이 담겼다.

“딤나시오 피데이……”

한순간 신성력으로 정글 일대가 밝아졌다.

완전한 혼돈이 지배하고 있는 정글. 미쳐서 날뛰는 죄수들과 그들의 공격을 막아 내는 자들이 뒤엉킨 모습이 드러났다.

신성력이 담긴 메이스는 점점 그 힘이 강력해지고 있었다.

이오베는 빠른 속도로 달려들어 아겔에게 메이스를 휘둘렀다.

쉬이이익……! 팡!

빠른 속도로 휘둘러진 메이스가 아겔의 손에 가로막혔다. 힘이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도록 오히려 달려들어 중간부터 잡아챈 메이스.

그럼에도 손뼈가 박살이 났지만, 아겔은 굳건히 메이스를 잡고 있었다.

“한숨 자게, 이오베.”

뻐억!

아겔의 돌려차기가 이오베의 목에 적중했다.

“컥……!”

원래라면 물리적인 공격에도 끄떡없을 이오베였지만, 아겔의 공격에는 예외였다. 그의 어둠이 신성력을 무력화했으니.

각종 마법과 주술, 신성력과 마기까지 무력화하는 몸은 이럴 때 꽤 쓸모가 있었다.

이오베의 몸이 중심을 잃은 순간, 아겔이 뒤로 돌아가 두 팔로 그의 목을 휘감았다.

순식간에 초크에 걸린 이오베는 아겔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끄으으으……!”

“…….”

아겔에게 붙잡히자 이오베의 몸에 맺혀 있던 신성한 빛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빛을 집어삼키는 어둠 같았다.

천천히 이오베의 신성력이 옅어지더니, 이내 완전히 어둠에 잠식되었다.

신성력으로 강화했던 신체가 원래대로 돌아오자, 이오베는 더는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끄륵…….”

머리로 피가 가지 않자 그는 곧 기절했고, 아겔은 안전한 곳을 찾아 그를 눕혔다.

‘이쪽은 되었고.’

뿌득. 뿌드득.

부러졌던 손뼈가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전에 먹어 둔 알약의 약효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었다.

여유롭게 몸을 회복한 아겔은 피에트로가 있는 곳을 향해 감각을 집중했다.

이제는 관람할 시간이다.

2대 마피아킹이 될 친구의 싸움을.

‘놈이 괜히 저 녀석을 점찍어 둔 게 아니겠지.’

피에트로.

마피아킹의 충실한 종복. 그들끼리는 형 동생 하며 부른다지만, 외부에서 보기엔 상하관계나 다름없었다.

쿠라스크와 이오베를 동시에 기절시킬 수도 있었지만, 아겔은 일부러 피에트로에게 하나를 맡겼다.

두 사람을 동시에 상대하려면 알약을 복용해야 했고, 피에트로의 실력도 보고 싶었으니.

아겔은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피에트로의 싸움을 관찰했다.

촤악-! 촤악-!

“쿠와아아악-!”

이성을 잃은 쿠라스크는 마구 팔을 휘둘러, 앞에 있는 건 뭐든지 조각내려 했다. 날카로운 손톱은 닿지 않아도 무형의 기운이 몇 미터 안에 있는 것을 무엇이든 갈아 버렸다.

피에트로는 뭐로 만들었는지 모를 몽둥이로 쿠라스크의 공격을 막아 냈다. 쿠라스크의 공격이 주변에 있는 자신의 클랜원들에게 튀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언제까지 막기만 할지.’

공격을 막기만 해선 쿠라스크를 이길 수 없다.

아겔의 생각대로 피에트로는 곧 반격을 시작했다.

콰득……!

무언가를 씹는 작은 소리.

피에트로는 환약 하나를 씹었다. 그러자 이전에 느껴지지 않았던 무형의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환약. 결국, 쓰는 건가.”

중독성이라는 부작용이 있지만, 이 환약에는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장점이 있었다.

바로 일반인도 ‘기’를 쓸 수 있게 만든다는 점.

마곤이 썼던 불순물이 가득한 것이 아닌, 저렇게 정순한 환약은 차원이 다른 물건이었다.

모두 대륙의 ‘화산’에서 자체 생산되는 것이었다.

환약을 복용한 피에트로는 백중지세로 쿠라스크와 겨루었다.

수인은 본능을 잃고 짐승에 가까워질수록 강해진다. 지금 쿠라스크는 거의 전력이라고 말해도 모자람이 없는 상태.

그런 쿠라스크와 겨우 환약 하나로 피에트로는 맞먹는 힘을 냈다.

뻐억!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쿠라스크에게 몽둥이를 적중시키기도 했다.

고통을 개의치 않는 쿠라스크는 다시 맹렬하게 달려들었지만, 몸에 데미지는 착실히 쌓여 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침착한데.’

환약을 복용한 자들이 미쳐 날뛰는 것과 다르게 피에트로는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전보다 또렷해진 것 같기도 했다. 냉철하게 움직이는 피에트로는 막을 공격을 막고, 피할 공격은 확실하게 피했다.

촤아악-!

쿠라스크의 손톱에 피에트로의 옷 앞섬이 날아갔지만, 오히려 기회였다.

크게 빈 쿠라스크의 허점에 기다렸다는 듯이 몽둥이가 날아왔다.

“이 배신자……!”

빠아아악-! 우드득……!

이전과 다른 소리가 났다.

뼈가 완전히 박살 나는 소리. 하이에나 수인의 갈비뼈가 으스러졌다.

“케엥……!”

고통을 무시하고 미쳐 날뛰던 놈도 이번만큼은 견디기 힘들었는지, 울음소리를 냈다.

피에트로는 그 이후로도 유리한 전세를 절대로 내주지 않으며 쿠라스크를 압박했다.

“배신하고도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냐, 이 새끼야!”

사정없는 몽둥이질이 짐승의 몸을 두들겼다. 가죽이 두꺼워서 몽둥이에 박힌 못은 상처를 입히진 못했지만, 충격 자체는 가죽으로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쿠와아악……!”

반격해 보려는 쿠라스크였지만, 고통에 위축되어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피에트로가 거대 하이에나 수인의 복부에 몽둥이를 제대로 갈겼다.

뻐억-!

“케엥……!”

“후, 이제 끝을 내자.”

손바닥에 퉤퉤 침을 뱉은 피에트로는 몽둥이를 고쳐 잡고 쓰러진 쿠라스크에게 다가갔다.

쿠라스크는 기진맥진한 듯이 널브러져 더는 힘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은밀하게 흘러나오는 살기를 피에트로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피에트로가 몽둥이를 내리치려 할 때.

“쿠와아악……!”

“헛……!”

빠른 속도로 일어나 손톱을 찌르는 쿠라스크. 방어할 타이밍이 늦었으나, 손톱은 피에트로를 찌르지 못했다.

빠각-!

어느새 아겔이 달려와 쿠라스크의 턱에 주먹을 꽂아 넣고 있었다.

완벽한 카운터 펀치. 벌렸던 입이 다물어지면서 혀를 씹은 하이에나 수인은 그대로 뒤로 넘어가 쓰러졌다.

커다란 짐승은 입에서 피를 줄줄 흘렸다.

피에트로의 눈이 커졌다.

“……!”

“여기까지만 하지.”

아겔은 손을 털고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쿠라스크가 이성을 잃고 제대로 힘을 내지 못했어도 겨우 환약 하나 먹은 피에트로에게 졌다.

“실력이 나쁘지 않구먼. 옛날 놈을 보는 것 같아.”

“무, 뭐……?”

“놈도 젊었을 때 혈기가 넘쳤지만, 싸울 때면 아주 차가워졌지.”

아겔은 그를 떠올렸다.

마피아킹이라고 불리기 전, 독기 가득한 아무것도 없는 청년을.

‘놈이 고독에 온 지도 25년. 여기서 산 것만 150년이 지났구먼.’

피에트로가 말했다.

“너…… 우리 형님과 아는 사이냐?”

“알다마다. 녀석이 처음 고독에 들어왔을 때부터 아는 사이였는데.”

“……!”

피에트로의 눈이 커졌다.

마피아킹이 처음 고독에 들어왔을 때부터 알았다면, 정말 긴 시간 알고 지낸 사이라는 뜻이었다.

“그리 친근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가끔 대화 정도는 하곤 했지.”

“어, 어떻게 우리 형님과 아는 사이지?”

“그가 말해 주지 않던가? 개방 때 만났다네.”

쾅……!

아겔이 말하는 순간, 한쪽에서 큰 굉음이 들려왔다. 월야곡에 당한 죄수들이 미쳐 날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옛날이야기를 하는 건 조금 미뤄 둬야겠구먼. 안 그럼 정글이 정말 박살 나겠어.”

피에트로가 주먹을 꾹 쥐었다.

“정말…… 이 광증을 막을 방법은 없는 건가?”

“아예 없는 건 아닐세. 방금 우리가 한 것처럼 기절시키면 되지.”

아겔이 피에트로를 향해 고갯짓했다.

“자네가 가지고 있는 환약이라면 어떻게 될 것 같은데. 잘 활용하면 수면제로도 쓸 수 있지 않나?”

“……어떻게 알았지?”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젊었을 적 그 녀석이 하도 떠들어 대서 나도 만드는 법을 알 정도이니.”

아겔이 환약을 만들 줄 안다는 말에 피에트로의 눈이 커졌다.

아겔은 슬며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딱히 만들어 보진 않았네. 나는 약쟁이가 아니거든.”

명백한 조롱이 섞인 말투였지만, 피에트로는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품에서 환약을 꺼냈다.

형님이 알려 준 레시피대로 만든 환약. 피에트로는 한꺼번에 세 개의 환약을 입에 털어 넣고 씹었다.

콰득.

잘 씹어서 끝까지 삼킨 피에트로는 아겔을 보고 말했다.

“숨을 참아. 안 그러면 너도 잠들 수 있으니까. 흐읍……!”

그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잠시 숨을 참았던 그는 입에서 연기를 내뿜었다.

푸확……!

마곤의 때와 같이 연기.

다만, 색깔은 달랐는데, 분홍 연기를 내뿜던 마곤과 달리 피에트로가 내뿜는 연기는 붉은색이었다.

반복적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뱉자, 정글에 새빨간 연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차오른 연기는 위로 올라가거나 사라지지 않았다.

피에트로는 자리를 옮겨 가며 붉은 연기를 내뿜었다.

연기는 옆으로 퍼져 나가면서 시야를 가렸고, 그 속에 빠진 죄수들이 하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윽……!

-커어…….

-크륵…….

바닥에 자빠진 죄수들은 이전의 광포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전부 잠에 빠져들었다.

확실하게 주변까지 전부 연기를 퍼뜨린 피에트로는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돌아온 자리에 아겔은 없었다.

‘연기를 피하려 물러난 건가?’

환약의 연기는 피아를 가리지 않고 잠에 빠져들게 한다.

물론 마피아 클랜 죄수 중 면역력이 있는 자들은 피에트로가 직접 신경 써서 재웠지만, 면역력이 없으면 잠드는 건 순식간이다.

아겔이 피했다고 생각하고 주변을 둘러보던 피에트로는 자신의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화들짝 놀랐다.

“허엇……!”

“뭘 그리 놀라는가. 아까부터 여기에 있었는데.”

아겔은 한 손으론 무릎을 치고 한 손으론 허리를 두들겼다.

“다 재웠으면 얘기 좀 하지.”

“…….”

아겔은 대답을 듣지도 않고 한쪽에 있는 앉기 좋은 바위를 향해 걸어갔다.

피에트로는 귀신을 보는 심정이었다.

‘환약의 연기 속에서 어떻게 멀쩡한 거지?’

환약을 통해 면역력을 키우지 않는다면, 이 연기 속에서 태연하게 서 있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상급 죄수도 마피아킹의 환약에 절대적인 면역력을 가질 수는 없다.

게다가 그곳에 바위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아는지.

자신조차 이 붉은 연기 안에선 시야가 제한되는데, 심지어 그는 붕대로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주변을 보는 것처럼 행동했다.

피에트로는 홀린 듯이 아겔의 뒤를 따라갔다.

“앉게. 해칠 생각은 없으니.”

피에트로는 조심스럽게 아겔을 경계하며 바위에 앉았다.

아겔은 그가 자신을 경계하는 것을 느끼고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피에트로 카바로다.”

“끌끌, 놈의 성을 따른 건가?”

마피아킹의 성은 카바로였다. 피에트로는 조금 자부심이 엿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당연하지. 난 형님의 동생이니까.”

“웃기는 가족 놀이구먼.”

남의 성을 따른다는 말에 아겔은 웃었지만, 이들에게 그 의미는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이들은 형제 관계라는 단순한 틀 하나로 고독에서 생존해 왔으니. 이 지독한 곳에서 살아남았다는 건 자랑할 만한 업적이었다.

“놈은 어떻게 지내나.”

“…….”

피에트로는 잠시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그가 대답해 줄 수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에.

“나는…… 모른다. 그저 형님의 말씀을 따를 뿐이야. 형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내게 말씀해 주시지 않는다.”

“가장 신뢰하는 동생에게도 근황을 감춘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

“최근에도 그를 본 적이 없나?”

“없어. 형님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셔. 우린 송수신기로 연락하고 있다.”

아겔은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마피아킹은 음험한 구석이 있긴 했어도 제 사람은 살뜰히 챙기던 놈이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큰 집단을 일구어 낼 수 있었던 거다.

“그것참 재밌구먼. 아내가 죽었는데도 혼자 감추고 있었다니.”

피에트로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형님에게 아내가 있었다고?”

그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치였다.

마피아킹에게 아내가 있다는 것도, 그리고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조차도.

아무래도 모두에게 숨긴 모양이었다.

“그리 숫기가 없어야, 원. 쯧쯧쯧. 창피해서 그랬나, 자네에게도 숨겼나 보군.”

혀를 차던 아겔이 말했다.

“놈에겐 아내가 있었다네. 몇 년 전에 죽었지만. 꽤 아꼈던 걸로 기억하는데. 자넨 몰랐나?”

“거, 거짓말. 형수님이 있었다면, 형님이 내게 숨길 리가…….”

후웅…….

그때, 아직 가라앉지 않은 붉은 연기 사이로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찌르르 울던 벌레 소리도 순식간에 사라지는 압박감이 주변을 잠식했다.

피에트로가 눈을 크게 떴다.

철컥.

블랙 롱코트를 입고 있는 남자가 어느새 아겔의 뒤통수에 리볼버를 겨누고 있었다.

“혀, 형님……?”

피에트로의 반응에도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모든 신경을 아겔에게 쓰겠다는 듯이 오직 아겔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지, 노인네.”

쓰읍…… 후.

그는 물고 있는 시가의 연기를 한 번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그가 내뱉는 연기는 붉은색이 아닌, 새까만 검은색이었다.

아겔은 머리에 권총이 겨눠진 상태로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호오, 직접 올 줄은 몰랐는데. 반갑구나, 꼬맹아.”

아겔의 말에 남자는 위협하듯이 총구를 들이밀었다.

“꼬맹이였던 시절은 한참 지났지.”

“내 눈엔 여전히 애처럼 보이긴 한다만, 원한다면 다른 이름으로 불러 줄까.”

아겔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들었다.

“오랜만일세, 줄리안. 자네도 많이 늙었구먼.”

“그래. 영감도 주름진 면상은 여전하군.”

환약을 만드는 마피아의 우두머리. 쾌락의 정점이라고 불리는 자.

상급 죄수 줄리안 카바로가 ‘산’을 넘어 지금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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