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마피아킹 (2)
정글을 지나 서쪽으로 향하는 아겔.
뒤에선 줄리안이 성큼성큼 그를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동이 트는 시각이련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난 나무에 가려진 정글은 쉽사리 밝아지지 않았다.
아겔은 어느새 자신의 뒤에 바짝 따라붙은 줄리안의 발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듯한 걸음걸이였지만, 늙은 죄수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길 따름이었다.
보다 못한 줄리안이 입을 열었다.
“빨리 좀 가지.”
“보채지 말거라. 안 그래도 무릎이 시린데, 업어 주기라도 할 테냐?”
“……절대로 내가 당신을 업는 일은 없을 거다.”
결국,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은 줄리안은 아겔의 속도에 맞춰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
아겔은 뒤에서 따라오는 줄리안의 기운을 느꼈다.
마피아킹이라고 불리는 자.
고독에 존재하는 수많은 약탈자를 이끄는 거두 중 하나.
줄리안은 3개의 세력이 합쳐져 있는 약탈자 무리에서 마피아들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애새끼 같던 게 엊그제 같건만.’
줄리안은 고독에 처음 수감되었을 때 15살 소년이었다.
그때, 아겔은 줄리안과 처음 만났다.
이곳에 갇히기 전에도 길거리를 전전하며 살쾡이처럼 살아온 놈이었지만, 고독은 살쾡이 한 마리가 살아남기엔 턱도 없는 지옥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참 우스웠다.
우연히 같은 감방에 배정되고 뭔가를 알아보았다는 듯이 아겔에게 접근한 줄리안.
아겔이 먼저 다가간 것도 아닌데, 그는 늙은 죄수에게 뭔가 있다는 걸 눈치챘다.
고독엔 아겔처럼 겉늙어 보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고, 만나기도 어려웠기에.
예나 지금이나 눈썰미가 꽤 좋은 놈이다.
‘예전보다 날카로워졌다고 했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으니.
“가는 길 심심한데, 어떻게 지냈는지나 들어 보자꾸나.”
아겔이 말문을 열었지만, 줄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걸을 뿐이었다.
“아직도 매일 환약을 먹느냐.”
“……당연하지.”
별로 말하고 싶은 기색은 아니었지만, 그는 짧게나마 대답했다.
줄리안이 환약을 복용하는 건 중독성 때문이 아니었다.
환약은 힘을 키워 주는 매개체. 그가 직접 제조하는 환약은 웬만한 영약보다 효능이 좋을 정도였다.
약 제조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마피아킹이니까.
그러나 환약은 그만큼 수명을 앗아 가기도 했다.
“도대체 환약을 얼마나 복용한 게냐.”
“신경 꺼. 환약은 예전부터도 매일 먹었다.”
“예전을 말하는 게 아니다. 네 입에서 씁쓰름한 냄새가 다 느껴질 정도구나. 복용량을 한 세 배는 늘린 것 같은데.”
“…….”
잠시 침묵하던 줄리안은 조그맣게 읊조렸다.
“귀신 같은 노인네.”
“그리 복용량을 늘리면, 감당할 수 없을 텐데 어쩌려고 그러느냐.”
“신경 끄라고 했다.”
아겔이 느끼는 바로 줄리안은 지금 폭탄과 같은 기세. 건드리면 터질 것만 같은 그런 기운이었다.
아마 위령을 죽인 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런 것이리라.
10년 동안 환약을 제조·복용해 오면서 힘을 모아 온 것 같았다.
‘쯧쯧, 어리석은 것.’
제 수명을 갉아먹는 것까지 아겔이 뭐라고 할 순 없었다. 본인의 선택이니까.
그리 친근한 사이도 아니고.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결정이란 걸, 아겔은 알고 있었다.
아겔이 걸음을 멈추었다.
줄리안은 갑자기 멈춰 선 아겔을 바라보았다.
“악마가 곧 네 영혼을 가져가겠구나.”
수명을 갉아먹는 환약을 매일 같이 복용했음에도 줄리안이 살아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평범한 인간은 고독에서 150년이나 살지 못한다.
줄리안은 악마와 거래했다. 수명을 두고.
아겔은 줄리안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꼈다.
서서히 다가오는 악마의 손길을 곁에 있는 아겔이 느낄 정도이니, 그의 혼은 경각에 달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줄리안에게서 무시할 수 없는 기운이 흘러나왔다.
“어차피 바꿀 수 없는 일이다. 악마와 거래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스무 살이 되기 전, 악마에게 자신이 죽는 순간 영혼을 바치는 것으로 거래한 줄리안.
그 대가로 그는 적지 않은 수명을 얻어 냈다. 빌린 수명으로는 환약을 먹어 가며 힘으로 치환했고, 그 결과 무려 상급 죄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수명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악마와 거래하지 않았다면, 이 지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나.”
“……쉽지는 않겠지.”
“거래하고 나서도 끔찍하게 힘들었다. 이 고독엔 악마와 거래하지 않고도 괴물 같은 힘을 내는 놈들이 수두룩했으니.”
“네 욕심 때문이지 않으냐.”
줄리안이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짓밟고 올라서는 건 강자의 본능이다.”
“스스로 죽음으로 몰고 가는 본능이라. 그만한 결실은 있고? 불나방은 제가 타 죽을 것도 모르고 불에 달려들지.”
“……대신 몸이 전부 타기 전까지는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자유를 향한 갈망.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줄리안은 타는 듯한 갈증 속에서 살았다. 단 한 번도 진정한 자유를 얻어 본 적이 없었기에.
약 제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져, 약물 제조에 착취당하며 살아왔던 어린 시절.
그리고 고독에 갇혀 살아온 시간.
그는 끔찍하게 자유를 갈망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고독에서 나갈 수 없다.
“그래서 대륙으로 내려온 것이냐.”
줄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여인의 모습이 그의 눈에 아직도 아른거렸다.
지독히 답답하고 우울한 이 교도소에서 잠시라도 숨통을 트게 해 준 유일한 사람.
“오직 그녀만이 나의 유일한 자유.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얻어 낸 찬란한 천국이다.”
“이미 죽었는데도?”
“죽었든 살았든 상관없다. 다시 한번 만날 수만 있다면…….”
“…….”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큰 상처를 입은 채 죽을 위험까지 감수하고.
그는 대륙으로 내려왔다.
단 한 사람을 보기 위해서.
아겔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철부지 꼬맹이가 이제는 조금 쓸 만한 놈으로 자라난 것 같았다.
“환약이나 끊어라. 바다에 도착하기 전에 죽고 싶지 않으면.”
“당신이 빨리 걸으면 될 일이다.”
잠시 멈춰 섰던 아겔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걸음걸이는 여전히 느긋했다.
* * *
바다로 가던 아겔과 줄리안은 잠시 정글의 그늘에 멈춰 선 상태였다.
찌는 듯한 더위 때문에 멈춘 건 아니었고, 줄리안이 더 걸음을 옮길 수 없었기에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줄리안은 털썩 주저앉아,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빌어먹을 햇빛…….”
“그러게 누가 악마와 거래하라고 하더냐.”
악마와 거래를 통해 영혼을 바치기로 하고 수명을 얻었지만, 햇빛에 몸이 약해지는 부작용이 생겨 버렸다.
대륙과 달리 ‘절지’에는 햇빛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에선 움직이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지만, 대륙에는 햇빛이 비쳤다.
줄리안은 이 빌어먹을 교도소가 정말 잘 지어졌다고 생각했다.
외부의 평범한 행성과 비슷하게 설계되었지만, 끔찍한 교도소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죄수들에게 심적 고통을 주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아겔이 걸음을 옮겼다.
“잠시 기다리거라. 먹을 게 있는지 찾아보고 올 테니.”
“필요 없어. 난 환약이면 충분하다.”
“누가 너 먹을 걸 찾는다고 했냐. 난 배고파 죽을 지경이다.”
“…….”
“말썽 부리지 말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있거라.”
“어차피 움직일 생각 없으니 빨리 꺼져.”
“어른에게 말버릇하곤. 고얀 놈. 일이 끝나면 예절 교육부터 시켜 주마.”
아겔이 정글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예나 지금이나 귀신 같은 움직임이었다. 그의 힘이나 민첩함은 줄리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힘과 전체적인 신체 능력은 아겔을 압도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저 늙은 죄수는 근접전에서도 쉽사리 넘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악마 같은 노인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당장 꺼지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는 듯이 위협하던 아겔은 우습게도 강제로 줄리안을 내치지 않았다.
줄리안은 그 당시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아겔에게 달라붙었다.
눈 없는 맹인이었지만, 그는 아는 게 많았고 그것은 곧 힘이었으니.
고독에 갇혀, 이곳 시간으로 10년은 아겔을 따라다녔다. 그 시간이 지금까지 고독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다.
줄리안은 아겔과 거래하진 않았다.
몇몇 죄수는 아겔에게 영혼을 바치고 강해졌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확실히 악마 같긴 해도…….’
줄리안이 알기로 아겔은 악마가 아니라 인간이었다.
조금 특별한 과정을 겪고 있는 인간.
그게 끝나면, 고독 따위가 그를 가둬 둘 수는 없을 것이다.
문득 줄리안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왜 노인네 따위를 생각하고 있지.”
머릿속에서 늙은 죄수의 얼굴을 지우고, 궐련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는 손가락에서 기를 뽑아내 불을 붙이려 했다.
그러나 곧 뽑아낸 기를 다시금 감추었다. 근처에서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람의 것이 아닌 거대한 무언가의 기척을.
“버러지 같은 것도 날 노리는 건가.”
쿵…….
크르르르…….
정글의 나뭇잎 사이로 자신을 지켜보는 거대한 괴물.
정글의 시스템에 의해 소환된 괴물이었다.
“대적자 시스템이었던가.”
6급 죄수의 대적자로 소환된 괴물인 것 같았다.
덩치 자체는 성체 오우거만큼 작았으나, 느껴지는 기운은 그를 훌쩍 뛰어넘었다.
줄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억누르는 햇빛에 한 단계 더 강해진 봉인, 거기에 아직도 남아 있는 ‘상처’까지.
괴물을 상대하기엔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줄리안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콰득……!
환약을 씹어 먹은 줄리안이 권총을 꺼냈다.
총알을 넣을 필요는 없었다. ‘고독의 대장장이’가 만든 이 권총은 기를 담아 쓸 수 있는 물건이었다.
우웅…….
검은 기운이 권총으로 스며들었다.
줄리안 여태까지 아겔에게서 배운 기 활용법을 단 한 번도 잊지 않았다.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그에게 죽을 각오로 배운 이 능력을 녹슬지 않도록 갈고닦은 덕분.
“크르르르…….”
불길한 검은 기운을 보고 괴물은 쉽사리 달려들지 않았다.
그러나 줄리안은 저 녀석이 물러서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왼팔을 들어 놈의 미간에 권총을 겨누었다.
‘한 발이면 충분하다.’
쿠와아아아악!
괴물이 달려들었고, 줄리안은 방아쇠를 당겼다.
숲이 흔들릴 만한 진동이 퍼져 나갔다.
콰아아아아앙ㅡㅡㅡ!!
.
.
.
늦은 저녁. 정글의 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흑암에 가까웠다.
아겔은 줄리안이 잡은 괴물의 고기를 익혀 먹고 있었다.
“사고 치지 말랬더니, 동네방네 네가 여기에 있다고 소문내는 꼴이구나.”
줄리안은 탈진하여 밤에도 걸을 수가 없게 되었다.
자신을 습격한 괴물을 상대하느라 꽤 큰 힘을 소모한 상태.
억지로 무리하면 계속 걸을 순 있겠으나, 아겔이 바다로 데려가 주길 거부했기에 줄리안은 쉴 수밖에 없었다.
“네놈이 여기에 있다는 걸 안다면, 절지에 있는 놈들이 꽤 좋아하겠구먼.”
“그 겁쟁이 자식들. 올 테면 오라고 해라.”
“직접 오진 않고, 수하를 부려 널 사냥할 테지. 마피아킹을 죽일 절호의 기회를 놓치진 않을 게다.”
“내가 대륙으로 내려온 걸 아는 녀석은 없어.”
고기를 씹다 만 아겔이 되물었다.
“정말로?”
“…….”
줄리안은 입술을 씰룩였다.
“없다면 없는 거야.”
“뭐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뭔가 걸리는 게 있긴 한 것 같지만, 아겔은 더 묻지 않았다.
“그나저나 기를 다루는 솜씨가 꽤 좋아졌구나.”
줄리안이 권총으로 발사한 기의 탄환은 완벽하게 괴물의 미간을 꿰뚫었다.
아겔이 확인하기로 이 괴물은 6급 죄수의 대적자.
6급 죄수가 최소한 10명 이상은 모여야 사냥할 수 있는 녀석을 줄리안은 권총 단 한 발에 쓰러뜨렸다.
힘이 더 봉인된 상태로도 줄리안의 실력은 퇴색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기의 총량만이 제한을 받을 뿐, 줄리안의 기 활용력은 그대로였다.
“예전보단 봐 줄 만해졌어.”
“허세는. 아무리 당신이라도 내 총알은 받아 낼 수 없을 거다.”
“어떤 멍청이가 날아오는 총알을 받아 내느냐. 그냥 피하면 될 것이지.”
고기를 내려놓은 아겔이 줄리안 쪽으로 고개를 향했다.
“이제 말해 보거라. 우리 단둘이 남았으니. 위령을 죽인 자가 누구냐.”
“…….”
줄리안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그는 천천히 품에서 궐련을 꺼내 입에 물었다.
손가락에서 뽑아낸 기로 불을 붙인 그는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쓰읍…… 후…….
아내를 죽이고, 팔을 빼앗겼으며, 큰 ‘상처’를 준 범인.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났을 무렵, 줄리안이 입을 열었다.
“주술사.”
“…….”
차가운 분노로 가득 찬 주황색 눈은 어둠 속에 그려지는 주술사의 형상을 바라보았다.
“주술사, 카흘탁. 그 새끼가 내 아내를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