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119)화 (120/186)

119화 진실 (1)

교도소장 슈리오센은 아겔이 소장실에서 나간 후 몸을 돌렸다.

아직 통화는 끝나지 않았다. 통신 장치를 다시 켠 소장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치직.

“주인님.”

아겔을 보내고 난 후, 다시 고독의 주인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아, 슈리오센. 아겔은 잘 배웅했습니까?

“예. 우선 아겔라스토스는 도움을 거부했습니다. 말하는 것을 보아 특수 감방의 죄수를 풀어 주려는 것 같습니다.”

홀로그램의 남자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은 했습니다. 그래도 조금 아쉽긴 하군요. 절대로 빚을 지는 성격이 아니라, 뭐라도 찔러보고 싶었는데…….

“그가 특수 감방 죄수들을 이용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내버려 두세요. 애초에 특수 감방 죄수들은 투기장에서도 못 쓰고 내다 팔지도 못하는 것들이니.

“특수 감방 죄수들의 도움만으로 아겔이 원탁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후후. 저야 모르죠. 그 노인네 생각을 저라고 다 알지는 못하니까요.

조그맣게 웃은 고독의 주인이었지만, 슈리오센은 조금 불안한 기색이 엿보였다.

홀로그램의 남성이 손짓하자 어디선가 술이 담긴 유리잔이 날아왔다.

-편히 앉으세요, 슈리오센. 이것도 오랜만이니 같이 술이나 한잔하면서 이야기하죠.

기업가인 그가 술을 마시며 소장과 대화하길 원했다.

평범한 시간이리라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는 한시도 그냥 보내지 않고 아끼는 기업가인데, 그가 대화하자고 말하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었다.

“기꺼이.”

술을 가져온 소장은 소파에 앉았다.

먼저 기업가가 입을 열었다.

-소장의 우려가 뭔지는 이해가 갑니다. 아겔이 원탁을 상대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겠죠?

고독에서 수백 년간 살아온 아겔.

그가 죽는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려웠지만, 슈리오센은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죠?

“아시다시피 아겔에겐 심각한 결점이 있습니다. 몸이 너무 늙었습니다.”

소장의 말대로 아겔은 늙은 사람이다.

애초에 수백 년간 인간의 몸으로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건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고독의 주인이 직접 그의 상태를 보살피지 않았다면, 아겔은 진작 사망했을 것이다.

노화로든, 적과 싸우다 전사하든.

천문학적인 가치의 ‘알약’의 지원이 없이는 아겔도 연명할 수가 없으리라.

“내면을 침투하는 능력이 있는 아겔을 상대할 수 있는 이는 드물지만, 그것도 사람에게나 가능한 것. 원탁은 아겔의 약점을 꿰고 있습니다. 그의 능력은 몬스터에겐 통하지 않지 않습니까.”

몬스터에겐 혼 따위는 없다. 영혼은 오직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것.

내면으로 침투하는 아겔의 힘도 몬스터에겐 통하지 않는다.

6급 이하의 몬스터에겐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했을 테지만, 상급 죄수들이 부리는 몬스터들은 차원이 다른 놈들이었다.

-그렇다고 고독의 직원들이 대신 나서 주기도 어렵고요. 그렇죠?

“예. 성좌 교단과 은하 정부가 지켜보고 있으니…… 곧 대대적인 감사가 있지 않습니까.”

-남의 물건에 관심이 많은 자들이죠. 탐욕은 이해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불쾌해요.

그렇게 말하는 남자였지만, 그의 얼굴엔 불쾌함이 떠올라 있지 않았다.

오히려 옅은 미소가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는 조용히 슈리오센의 우려를 들었다.

“간수나 교도관이 한 죄수를 감싸고 도는 건 오히려 놈들에게 덜미가 잡히는 일이 됩니다. 놈들이 거래를 눈치챌 수도 있습니다.”

-거래…… 그렇죠. 그런데 소장은 그게 무슨 거래인지 잘 모르잖아요? 거래는 저와 아겔이 한 것이죠.

소장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주제를 모르고 함부로 지껄였습니다.”

-지적할 의도로 말한 게 아니니 고개를 드세요, 소장.

소장이 맡은 일은 고독이란 행성 교도소의 총책임자로서 아겔의 신변을 암묵적으로 보호하고 보고하는 것.

기업가는 거래에 대한 사항은 소장에게 정확하게 알려 주지 않았다.

그래도 소장이 일을 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까.

-너무 섭섭해하지 마세요. 그래도 어렴풋이는 알고 있잖아요?

그렇다고 해도 그가 아겔과 기업가의 거래 사항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는 건 무리가 아니었다.

그는 고독의 교도소장.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말하기엔 너무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와 아겔의 거래에 대해 정확하게 말해 주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참 위험한 진실이거든요.

고독의 교도소장조차 모르는 기업가와 아겔의 거래 내용.

슈리오센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10급의 각성자이지만, 기업가의 의도를 어기고 행동할 수는 없는 처지였으니.

“주제넘게 알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하하, 소장이 그렇게 말하니까 제가 너무 꽁꽁 싸 두기만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럼 말해 보세요. 소장은 제가 아겔과 어떤 거래를 했다고 생각합니까?

슈리오센의 몸이 잠깐 움찔했다.

그조차 모르는 아겔의 비밀. 그러나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던 일.

말할 기회가 생겼는데, 던져 보지 않고는 진실을 알 수 없으리라.

“……은하 표준 시간으로 100년 전, 사도 전쟁이 있었습니다.”

뭔가 이야기를 꺼내려는 걸 슈리오센.

기업가는 왜 전쟁 이야기를 꺼내는지 묻지 않고 그때를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꽤 달콤한 시간이었죠. 많은 무기를 팔 수 있었으니.

“아시다시피 빛의 사도가 3명이 전사하고, 어둠의 사도가 1명이 사망하는 접전이 일어났습니다.”

사도.

우주를 주무르는 막강한 힘을 가진 자들.

물론 은하 정부와 성좌 교단의 위세가 우주 끄트머리까지 퍼질 기세였지만,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무력은 사도를 뛰어넘는 자가 없었다.

그들은 사람의 기준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무력을 지녔다. 은하 정부도 사도 전체를 상대하는 건 자멸의 길이라고 판단했을 정도이니.

다행히 그런 사도 중 빛의 사도들은 성좌 교단이라는 또 하나의 거대 세력을 세워 동맹을 제안했지만, 어둠의 사도들은 달랐다.

갈라진 세력은 당연히 전쟁을 불러왔다.

“전사한 빛의 사도 3명의 자리는 다음 사람으로 채워졌습니다.”

-그래요. 빛의 사도는 다시 11명으로 돌아왔죠.

“하지만 7명에서 6명으로 줄어든 어둠의 사도는 그대로 숫자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

“분노의 공좌, 이라(Ira). 그의 사도 자리가 아직도 비었습니다.”

소장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깨달은 기업가가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슈리오센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슈리오센은 그가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로 말을 이었다.

“아겔이 사용하는 내면을 침투하는 힘은 어둠의 권능. 그가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바로…….”

소장이 고개를 들어 기업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젊은 남성의 홀로그램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슈리오센의 입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어둠의 사도가 되기 위한 시험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아닙니까.”

-…….

적막한 침묵이 감돌았다.

고독에서 어둠의 사도가 될 자를 품고 있다는 것.

은하 정부와 성좌 교단이 알았다면, 대경할 일이었다.

하나 소장이 생각하기엔 이것 말고는 아겔이 기업가의 보호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둠의 사도쯤은 되어야 기업가가 고독이란 행성 감옥을 만들어 내고, 숨겨 줄 가치는 있을 테니.

미묘한 얼굴을 하고 있던 기업가가 정리했다.

-괜찮은 짐작이었습니다. 아니, 어떤 면에선 거의 정답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군요. 악마가 내려 준 시험을 받고 교도소에 숨어서 그 대리인이 될 날을 기다리는 죄수…… 맞습니까?

“예.”

슈리오센은 확신했다.

아겔은 악마의 시험을 받고 고독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공석인 어둠의 사도, 그중에서도 가장 무력이 강하기로 소문난 ‘분노의 사도’가 되기 위하여.

사도가 되는 방법은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슈리오센이나 기업가 같은 힘의 최상층에 있는 자들은 알고 있다.

사도는 성좌나 공좌가 내려 준 시험을 통과하여 정해진다는 것을.

아겔이 어떤 시험을 받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슈리오센은 그가 지금 시험을 받고 교도소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슈리오센의 추론을 들은 기업가는 미소를 지었다.

그 웃음의 뜻을 알 수 없는 슈리오센은 잠자코 그의 말을 기다렸다.

-잘 들었습니다, 소장. 영특한 사람답네요. 하지만 내 입으로 답을 말해 줄 수 없다는 건 이해해 주세요.

그가 정답을 말해 주진 않았지만, 슈리오센은 개의치 않았다.

아겔은 기업가와 직접 거래할 만한 위치에 있다는 사람임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소장이 맡은 임무에도 변동은 없을 테고 말이다.

“말씀해 주시지 않으셔도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야죠. 좋은 태도입니다. 세상엔 아는 것보단 모르는 게 나은 것들도 있으니.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 기업가는 술을 홀짝였다.

-하지만 모르는 걸 알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죠.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그런 심리. 마치 악마와의 거래가 그런 것 같습니다. 금단의 영역이지만, 한 번쯤 손을 뻗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죠. 충고 하나 하죠, 소장.

“말씀하십시오.”

기업가가 씩 웃었다.

-악마와 거래하지 마세요.

“예……?”

악마는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늪으로 유혹하니까요.

뒷말을 속으로 삼킨 남자는 씩 미소를 지었다.

한동안 침묵이 감돌던 소장실에선 곧 통신 장치가 꺼졌다.

* * *

근신 처분을 받은 페이든.

그는 갇혀 있다시피 한 자신의 방에서 조용히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곳은 전 교정관 쉬카가 쓰던 곳이었다.

“맙소사…….”

방의 책상과 침대에는 여러 서류 자료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모두 단 한 사람, 아겔에 관한 자료뿐이었다.

교정관의 권한으로 아겔의 자료를 있는 대로 긁어모은 것들.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자료와 교단의 지시만으로 페이든은 진실에 접근할 수 있었다.

달칵.

성좌 교단의 본단과 통신할 수 있는 장치가 꺼졌다.

모든 진실을 듣고 나서야 그는 자신이 왜 고독에 파견된 건지 알 수 있었다.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51번 죄수, 아겔라스토스.

아니나 다를까, 꿈에도 상상치 못했던 비밀이 그 죄수에겐 있었다.

어둠의 사도.

우주를 악몽으로 이끌고 갈 존재가 이 교도소에서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반드시 막아야만 한다.

또 하나의 어둠의 사도가 나타나 비어 있는 공석을 채우면, 세계는 감당하지 못할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떨어지게 되리라.

“아니야.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다.”

여섯만이 남은 어둠의 사도들.

그들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다시 전쟁을 일으켰다.

마물의 숫자는 세계를 덮을 만큼 많이 남아 있었고 어둠의 사도는 빛의 사도에 비하면 적은 수이지만, 힘만큼은 오히려 앞서고 있는 존재들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어둠의 사도가 탄생한다면 파멸밖에 남지 않게 된다.

“그런데 왜 교단은…….”

이제야 하달된 교단의 임무.

그런데 페이든에겐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아겔을 죽이려 하는 고독의 집단, 원탁.

성좌를 따르는 이들이 아닌 전부 악마의 추종자들이나 다름없는 자들.

교단은 그들과 협력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어째서 교단이 악마의 추종자들과 손을 잡게 되었는가…….”

단순히 선과 악의 문제로 나눌 수 없는 문제였다.

우주민들에게 절대적 선이라고 평판이 자자한 교단이 어둠의 사도를 잡기 위해 악의 세력과 손을 잡고 있다니.

페이든의 생각으로는 절대로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결국, 악의 세력과 손을 잡으면 그 대가는 돌아오게 마련일 테니까.

근신 기간 내내 페이든은 그 모순 가운데서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고독 가운데서 그는 결심했다.

어찌 되었든 그는 성좌를 따르는 종이고 악의 세력은 처단해야 마땅하니.

거악을 막기 위해 차악과 손을 잡는 것. 억지로나마 수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인내의 성좌시여. 부디 인세를 굽어보소서.”

페이든은 고개를 들었다.

마음을 굳힌 이상, 거리낄 것이 없었다. 곧바로 행동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지금은 아마넬이 맡았던 기관을 담당하는 페이든.

대륙의 죄수들을 랜덤으로 떨어뜨리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오히려 그 경험을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개방이 시작될 때, 페이든에게 그 기회가 주어지리라.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페이든은 고요한 얼굴로 문 쪽을 바라보았다.

“안에 있습니다.”

문이 열리고, 조그마한 어린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을 열고 나타난 이는 소류아였다.

“잘 지냈어?”

노크하긴 했어도 어차피 문은 안쪽에서 열 수 없게 잠겨 있었다. 근신 기간인 페이든이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말이다.

“근신 기간 끝이야, 페이든. 일해야지.”

페이든은 고개를 끄덕이고 걸터앉아 있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물론입니다, 선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오, 그래? 좀 큰 실수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다시 일할 의욕이 조금 생겼나?”

“예. 더 이상 실수는 없을 겁니다.”

소류아를 바라보는 페이든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절대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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