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가지치기 (5)
“가라, 나의 아이들아-!”
과학자가 두 팔을 벌리자, 이제껏 안톤을 상대해 왔던 것과는 다르게 과격하게 돌진하는 괴물들.
육중한 몸으로 깔아뭉개려는 듯한 기세 앞에서 마피아킹은 일견 벌레와도 같이 작아 보였다.
그가 권총을 겨누기 전까진.
쓰으으읍. 후우.
입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은 줄리안이 눈을 부릅떴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그 순간, 안톤은 앞으로 벌어질 광경을 볼 생각도 없이 본능적으로 자리를 피했다.
콰아아앙--! 콰아앙--! 콰앙--!!
연달아 터지는 대포 소리.
겨우 인간이 쓸 만한 권총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굉음. 귀에 이명이 생길 정도의 폭음이라 안톤은 신음을 냈다.
“끄으으…….”
한쪽으로 몸을 피해 한동안 감각을 회복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청각이 돌아오기도 전에 하나 남은 눈으로 피범벅이 된 복도를 살폈다.
‘아…….’
총을 쐈다. 그리고 괴물들이 죽었다.
단순한 인과.
괴물들의 몸집에 비해 심하게 조그마한 총알이 발사되었을 텐데, 그런 총알에 맞았다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괴물들의 사지는 육편이 되어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마치 거대한 야수가 발톱으로 적을 찢어발긴 듯한 모습이었다.
방금까지 안톤을 사지로 몰고 갔던 놈들이 아무런 저항도 못 한 채로.
“호오?”
괴물들을 부리던 과학자는 잠시 멍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는 쓰고 있던 실험용 고글을 만지작거렸다.
“푸흐흐, 이거 내가 마피아킹을 너무 얕본 모양이었군. 악마의 힘도 쓰지 않고서 이 정도라니.”
“버러지를 잡는 데 과하게 손쓸 필요는 없지.”
심지어 그가 악마의 힘도 사용하지 않고서 이런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에 안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7급 죄수는 다 이런 것인가.’
줄리안이 특출난 것을 생각하지 못한 안톤은 그의 힘에 괄목할 뿐이었다.
오직 ‘기’를 사용한 결과라는 것.
겨우 한 급수 차이지만, 어마어마한 벽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줄리안은 과학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꺼져라, 곰탱이. 싸움에 방해가 되니까.”
“…….”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놈의 목적은 나와 싸우는 게 아니야.”
“놈의 목적이 뭐지?”
“너를 채 가는 것. 아까도 말했다, 미련한 곰탱아.”
“너도 놈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인가.”
줄리안이 헛웃음을 지었다.
“싸움이 무조건 승리와 패배라는 단순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착각은 버려라. 당연히 전력으로 부딪치면 내가 이기겠지만, 놈이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는 이상, 싸워도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나조차 대응하지 못할 수로 너를 채갈 수도 있다는 말이지. 이건 단순히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야.”
“……그렇군.”
안톤은 새삼 놀라운 감정이 담긴 눈으로 줄리안을 바라보았다.
그와 같은 강자라면 어떤 일에든 자존심이나 강짜를 부릴 수도 있을 텐데.
줄리안은 냉철하게 자신과 상황을 분석하고 싸움의 변수를 배제하고 있었다.
“그러니 어서 네 잘난 주인님에게 고해라. 이 쓰레기들이 판치는 상황에 정작 당사자는 어디에 있는 거냐고.”
“어르신은…….”
뭔가 말하려던 안톤에게 줄리안의 날카로운 시선이 날아왔다.
“이 버러지들을 아무 탈 없이 청소할 수 있는 건 오직 그 노인네밖에 없다.”
“…….”
그의 시선에는 질투, 짜증, 그리고 그와 어울리지 않은 믿음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면,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그런 굳건한 무언가가.
그러나 안톤이 그 감정들을 다 알아채기에 줄리안이 보낸 눈빛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니까, 가. 두 번 말하지 않아.”
고개를 돌린 줄리안이 과학자에게 걸어갔다.
“푸흐흐, 작전 회의는 다 끝났나?”
“기다리게 했군.”
“지루하고 심심했지. 그쪽도 사람 말을 하는 곰에게 관심이 있나? 미안한데, 내가 먼저 찜했다.”
“흥.”
줄리안이 권총을 들어 과학자의 머리를 겨누었다.
“내가 어디 소속이었는지 잊었나.”
“약탈자…… 과연 빼앗는 자로군.”
“이제부터 네 모든 것을 빼앗아 주마.”
“악마의 힘을 쓰지 않고는 불가능할 거야.”
쿠득…… 쿠드득! 쿠드드드득!
과학자의 기형적인 괴물 팔로부터 변화는 시작되었다.
그는 사람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 버린 형태로 변해 갔다.
[분열! 너는 분열의 공좌와 거래했지! 느껴진다! 네게서 악마의 힘이!]
목소리도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괴물의 형태로 변하는 것과 동시에 전신에서 어두운 기운이 감돌았다.
더 이상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괴물이 외쳤다.
[나 또한 악마와 거래했다! 스투프룸! 나의 신! 끝없는 방탕함으로 너를 타락시켜 주마!]
콰아아앙--!!
악마의 힘을 담은 총알이 발사되는 동시에.
순식간에 두 괴물이 맞부딪친 복도는 죽음의 장이 되어 버렸다.
안톤은 전력으로 그 어둠에서 벗어났다.
* * *
아겔은 복도를 걷고 또 걸었다.
뛰었으면 뛰었지, 그는 절대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특수 감방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더 걸어야만 했다.
‘흠, 너무 멀군.’
길은 알지만, 거리가 멀다.
이런 경우에는 아겔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저 걷는 수밖에.
뚱보 보부상에게 받았던 고기를 마저 해치운 아겔은 손에 묻은 기름기를 벽에 닦아 냈다.
냄새를 맡고 복도의 괴물들이 몰려오면 귀찮으니까.
물론 지금 복도엔 괴물 말고도 더 위험한 것들이 득실거리긴 했지만.
‘상급 죄수가 이토록 복도를 점령하다시피 한 것은 오랜만이구먼.’
그들은 그동안 절지의 삼파전 구도 때문에 본관에 있을 때 대체로 감방 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상급 죄수들이라도 달마다 변하는 복도의 길은 알 수 없고, 적에게 어떤 허점이나 빌미를 줄지 모르니까.
‘미지’라는 두려움이 그들을 감방 안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인지하는 것에 비해 오히려 아는 것이 없는 중급 죄수들이 복도를 돌아다닐 뿐이었다.
물론 말 그대로 대체로일 뿐이지, 3개의 세력에 몸담고 있지 않은 상급 죄수는 간간이 복도를 돌아다니곤 했다.
아겔은 될 수 있으면, 상급 죄수를 피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고 있었다.
특수 감방에 도착하기만 하면, 그를 대신해서 싸워 줄 사람이 적지 않다.
굳이 아깝게 알약을 낭비해 가며 직접 부딪칠 이유가 없다. 상급 죄수와의 싸움은 아겔조차 쉽게 승부를 장담 못 하는 것이니.
기왕이면 안전하게 가자는 생각이었다.
“너무 안전을 챙기는 것 같기도 하지만…… 또 그렇다고 목숨을 내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작은 변수 하나라도 목숨을 위협해선 안 된다.
죽기 아니면 살기. 생사를 가르는 문제 앞에서 허투루 판단하고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지금까지 그가 직접 움직였던 모든 상황은 그의 목숨이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판단될 때뿐이었다.
[어르신.]
묵묵히 걷던 아겔에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톤의 목소리.
그 즉시 아겔의 눈앞에 수많은 별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면 세계.
아겔의 얼굴이 안톤의 별을 향했다.
“안톤. 무슨 일이냐.”
[……면목 없습니다. 방금 원탁에게 붙잡힐 뻔하다가 간신히 도망쳤습니다.]
“붙잡힐 뻔해?”
[예…… 마피아킹이 돕지 않았더라면, 붙잡혔을 겁니다.]
다행이었다.
아무리 안톤이라도 상급 죄수를 단신으로 상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겔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다.
“놈들이 널 사로잡으려 했다고.”
[마피아킹의 말에 따르면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랬구먼.”
아겔은 원탁의 의도를 이해했다.
그들은 바로 아겔을 칠 생각이 없었다. 철저히 그의 주변 인물들을 하나씩 찾아낼 생각인 것 같았다.
이른바 가지치기.
거목의 가지를 모두 걷어 내고 마지막에 드러난 허리를 잘라 버린다.
과연 원탁이란 이름을 가진 놈들이 할 만한 끔찍한 처형식이었다.
주먹을 쥔 아겔의 손이 조금 떨려왔다.
‘감히.’
일견 끔찍한 교도소에서 살아남으려면 단연코 혼자가 되는 것이 가장 생존 면에서 우수하다.
아겔도 그동안 혼자인 것처럼 지내 왔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살다 보니, 어떻게든 타인과 엮이게 되고 감정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덤덤한 모습이었어도 그는 주변인을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로의, 델라무의, 안톤의, 코르브스의, 그리고 많은 사람의 영혼을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아겔의 힘이고, 아겔은 그들의 힘이다.
영혼을 바치는 자들이 아니었다면, 아겔은 홀로 이곳에서 생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저뿐만 아니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겐 모조리 찾아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안톤의 말을 들은 아겔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몸조심하고 있거라.”
[예…… 어르신도 몸조심하십시오.]
“오냐.”
대화가 끝났다.
안톤은 아겔에게 어떻게 할 건지 묻지 않았다.
그를 신뢰하기에.
아겔은 곧장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도 별 하나가 빛나고 있었다.
“코르브스.”
까마귀 코르브스.
7급 죄수이며, 원탁이 아겔에게 뻗치는 마수를 저지하는 역할을 맡았던 자.
아겔은 그를 불렀다.
곧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안 그래도 찾아뵐 참이었습니다. 언제나 한 수 빠르십니다.]
부드럽게 말문을 튼 코르브스가 이내 조금 진중한 목소리가 되었다.
[놈들이. 결국, 움직였습니다.]
“그래. 상황이 이렇게 되었구나.”
[마음 같아서는 전부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저 혼자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그게 왜 네 탓이겠느냐.”
원탁은 갖은 방법으로 아겔을 붙잡기 위해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절지에서의 전쟁에 부담이 가지 않는 선까지만이었다.
코르브스 혼자서 어찌어찌 막아 왔지만, 이제는 아니다.
원탁 전체가 들고일어났기에 아무리 코르브스라도 혼자서 저지할 수는 없었다.
[놈들이 특수 감방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사흘이면 도착할 것입니다.]
아겔이 향하는 특수 감방. 원탁의 죄수들도 그곳으로 가고 있었다.
사흘이면 아겔보다 놈들이 먼저 도착하리라.
“수가 어떻게 되지?”
[특수 감방에 가는 원탁의 인원만 해도 전체의 절반입니다. 아무래도 적이 될 수 있는 자들은 원천 차단하려는 모양입니다. 뚫기 힘들 것 같습니다.]
“흐음…….”
원탁은 아겔의 수를 차단하고 있었다.
특수 감방에 가서 죄수들을 석방하려 했지만, 원탁이 한 수 빨랐다.
그들은 죄수들이 아겔의 편에서 싸우지 못하게 하려 먼저 그곳을 점령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확실히 치밀하군.”
[백수십 년을 계획하고 기다려온 자들입니다. 이 정도까지 안 하면 주인님을 죽이는 건 꿈도 못 꾸긴 하겠죠.]
그들이 하나의 수를 봉쇄하긴 했지만, 아겔은 개의치 않았다.
그를 도와줄 자는 특수 감방에만 있지 않으니.
‘오히려 더 가까운 곳에 있다.’
[주인님. 감방으로 돌아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복도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아겔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도망치는 꼴만 보인다면, 그거야말로 놈들이 원하는 일이 될 게다. 감방 안에 있다고 안전한 것도 아니야.”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겔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방향을 가늠했다.
그리고 다시 코르브스에게 말했다.
“우선 너는 나와 관련이 있는 자들을 원탁에게서 보호해라. 놈들이 내 주변인을 말살하려 한다.”
[그런…… 알겠습니다. 절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너는 그거면 되었다.”
[주인님은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아겔은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폐쇄 구역으로 간다.”
코르브스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 폐쇄 구역…….]
고독의 폐쇄 구역.
교도소 본관에 있는 이곳은 직원들 심지어 교정관조차 가까이하지 않는 위험한 곳이었다.
그곳에 자리를 잡은 어떠한 죄수들 때문에.
고독의 죄수들 정점에 있다고 일컬어지는 상급 죄수들도 폐쇄 구역이 있는 곳으론 가지 않는다.
코르브스는 아겔이 종종 그곳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 그곳에…… 확실히 특수 감방에 있는 놈들보단 그들이 더 낫겠습니다. 하지만 폐쇄 구역에 있는 자들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자들이 아닙니까. 언제 해가 될지 모르는 자들 아닙니까.]
“지금도 난 멀쩡하지 않으냐.”
[……그래도 항상 말씀드리지만, 저는 걱정됩니다.]
실수라도 폐쇄 구역에 들어가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그런 곳을 아겔은 마치 제집 드나들 듯이 들리곤 했다. 코르브스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나는 무사할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달래 주는 말에도 걱정의 마음이 전달되었다. 이어진 어둠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진심.
아겔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래서 혼자보다는 함께가 나은 것이다.
[그럼…… 무사히 돌아오시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래.”
코르브스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떠나갔다. 아겔이 맡겨 준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아겔도 대화가 끝나자마자 움직였다.
그는 품에서 친우가 전해 준 단검을 꺼냈다.
영롱한 녹빛과 적빛이 섞여 화려함이 담긴 말뚝 같은 단검.
그는 손잡이 아래쪽을 꾹 눌렀다.
…….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곧 복도의 어둠 속에서 걷는 소리가 들려왔으니.
척. 척.
천천히 걸어온 존재들은 인간처럼 두 팔과 다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도저히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벌레의 외껍질을 두른 그들은 아겔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부르셨습니까.)”
인간의 언어가 아닌 벌레의 언어로 말하며 고개를 숙인다.
아겔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희 왕에게 인도해라.”
파스스스슷.
아겔의 말을 듣자, 벌레 인간의 더듬이가 빠르게 진동했다.
“(잠시.)”
아겔에게 양해를 구한 벌레 인간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자신의 동료들과 빠르게 더듬이를 진동시켰다.
마치 누군가와 대화하는 듯한 모습.
이내 지엄한 명령을 들었다는 듯이 벌레 인간이 돌아와 허리를 숙였다.
“(공교롭습니다. 마침 왕께서도 아겔 님을 모셔 오라 하셨습니다.)”
“그런가.”
키아아아아아…….
사람 열 명은 가볍게 태우고도 남을 커다란 개미 한 마리가 나타나 아겔 앞에 머리를 숙였다.
아겔은 익숙하게 머리를 밟고 올라가 등에 앉았다.
“출발하지.”
“(예.)”
아겔과 벌레 인간들을 태운 개미가 빠르게 복도를 가로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