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구출 (2)
아겔은 달려드는 가우록의 기척을 느끼며 자세를 잡았다.
짧은 시간 여러 생각이 지나쳐 갔다.
그가 여태껏 상급 죄수를 상대하지 않았던 이유.
그건 다름이 아니라 지금 그의 상태로는 상급 죄수가 위협적인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내면을 파고드는 아겔의 능력은 대개 저항력을 갖춘 상급 죄수들에게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시야를 어둡게 해도 이미 인간을 초월한 상급 죄수들의 신체는 하나의 감각이 무너졌다고 싸우지 못할 이들이 아니었다.
자신의 능력은 충분히 신뢰했지만, 작은 변수 하나에 머리가 으스러질 수도 있는 싸움.
자만하는 순간,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신체 능력으로 상대를 압살하는 자들이니.
그렇기에 아겔은 이들과 전투를 피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반드시 이길 수 있다.’
아겔의 감각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베르미스의 힘이 담긴 이 단검과 함께라면.
후웅…….
느리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은 숏소드로 변한 단검이 휘둘러졌다. 중요한 건 가우록이 달려와 아겔의 머리를 주먹으로 후려치기 전에 휘둘러졌다는 것이다.
그 간결한 동작에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가우록은 아겔의 머리를 부수기 위해 휘두르던 주먹을 급히 회수하고 물러났다.
아니, 뒤로 물러서는 것뿐만이 아니라 옆으로 굴러야 했다.
촤악……!
마치 거대한 날카로운 무언가가 훑고 지나간 것처럼 복도의 벽에 할퀸 자국이 남았다.
가우록은 멍한 얼굴로 그 자국을 바라보다가 다시 아겔을 바라보았다.
“그 검…… 뭐지?”
복도에 자국을 남길 수 있을 만큼 강한 자는 얼마 없다.
자신도 전력을 다해야만 복도에 생채기만 한 자국을 남길 수 있으리라.
그런데 저 노인이 든 이상한 형태의 검은 직접 긁은 것도 아닌데, 멀리 있는 벽을 아예 패듯이 갈라 버렸다.
아겔이 특이한 단검을 들고 다닌다는 정보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렇게 위력적인 물건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럴 만도 했다. 베르미스의 힘이 담긴 이 단검이 선보여지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으니.
단검의 성능에 놀라긴 아겔도 마찬가지였지만, 겉으로 그 놀람을 드러내진 않았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 단검을 들고 가우록을 향해 달릴 준비를 했다.
“좀 특별한 검이지.”
아겔이 땅을 박찼다.
탓……!
.
.
.
달려든 아겔은 가우록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도마뱀 인간은 검에 맞아 줄 생각이 없다는 듯이 사방을 뛰어다니며 아겔에게 반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검을 휘두르던 아겔은 혀를 찼다.
‘쯧, 무기가 좋은 건 맞는데, 맞추질 못하겠구먼.’
적이 상급 죄수쯤 되다 보니 움직임 자체가 아예 눈으로는 좇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어차피 아겔은 눈이 없기에 청각으로 적을 감지하는 편이긴 했으나 늙은 몸이 적에게 맞춰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촤악……!
또다시 달려들던 가우록에게 검이 휘둘러졌다.
몸을 틀어 회피한 녀석은 주먹을 뻗으려 했으나, 역시 짧은 순간 미리 휘두른 검 때문에 물러나야 했다.
공방의 반복.
서로 공격하고 회피하는 것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런 싸움은 실수를 하거나 지쳐 쓰러지는 자가 패배하기 마련.
아겔은 자신의 숨이 아까부터 거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질 터인데.’
상급 죄수인 가우록의 체력은 아겔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알약을 먹어도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이건 상처 회복에 중점을 맞춘 물건이지, 신체 강화가 주가 되진 않으니까. 가쁜 숨을 회복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겔은 가우록을 향해 휘두르는 자신의 검을 느꼈다.
‘검의 힘을 제대로 끌어내야만 한다.’
아직 베르미스가 남겨 준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힘을 일깨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러나 미친 듯이 몰아치는 도마뱀 수인 때문에 잡생각 하나 하기도 어려운 판이었다.
쾅!
복도 벽이 무너져라 착지한 가우록이 아겔을 바라보았다.
공격을 멈춘 그의 노란 파충류 눈깔이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 위력적인 검이 있어도 날 맞추지 못하는군. 이걸로 네 힘은 완전히 파악했다.”
“…….1”
“이젠 제대로 간다. 막지 못하면 죽을 것이다.”
후읍……!
숨 들이켜는 소리와 함께 파괴적인 기의 운용이 느껴졌다.
앞에서 느껴지는 힘은 가우록 본신의 기와 악마의 힘이 결합한 막대한 결과물.
아겔은 그에게서 느껴지는 악마의 기운에 몸서리쳤다.
‘분노의 악마.’
놈은 분노의 악마와 거래했다. 그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가우록이 짧은 비명을 내며 동시에 강력한 일권(一拳)을 내질렀다.
끼에에에에엑-!
멀리서 내지른 정권은 도마뱀 형태의 악마로 화하여 아겔을 향해 물밀 듯 밀려왔다.
어마어마한 크기와 속도. 피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자, 아겔은 검을 들었다.
그는 입술을 씹으며 어둠의 힘을 끌어내어 일권에 대응했다.
콰아아앙-!
검에 부딪힌 도마뱀의 악마는 그대로 아겔을 벽까지 밀어냈다.
넘실거리는 기운에 아겔은 속이 진탕되는 것을 느꼈지만, 팔을 내리면 죽음밖에 없었기에 손이 덜덜 떨리면서도 끝까지 검을 붙잡고 있었다.
츠으으으…….
가우록이 내뿜은 기운이 사그라들자 주변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기운에 닿은 복도에 널브러진 뼈들은 산성 기운에 전부 녹아 있었고, 아직 녹지 않은 것은 타는 듯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오직 아겔만이 유일하게 산성 독에 당하지 않은 모습.
하나 아겔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악마의 기운에 독의 기를 더한 것인가.’
과연 가우록다운 힘이었다.
아겔은 검을 털어 내고 다시 가우록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는 또다시 정권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몸으로 내 힘을 막아 낸 건 대단하군. 하지만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까?”
다시 악마의 힘과 산성의 기운이 가우록의 주먹에 모여들고 있었다.
아겔은 숨을 고르며 단검을 쥔 손을 의식했다.
베르미스의 힘.
그가 이 검에 남겨 놓은 힘을 끌어내야 할 시간이었다.
‘온화한 힘인가. 아니면 파괴적인 힘인가.’
평소 벌레 임금은 온화하고 지혜롭다고 알려져 있었다.
다만, 그가 벌레 종족의 왕이라는 것에 타인이 혐오의 시선을 가졌을 뿐.
그는 진실로 총명하고 타인에게 관대한 인물이었고,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반대로 적과 싸울 때는 한없이 공포스러운 모습을 보여 준 벌레 임금이기도 했다.
전성기 시절의 그는 행성을 씹어 먹고, 우주를 유영하는 거대한 지네 괴물이었으니.
그의 본체를 본 자들은 신을 영접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도 했다.
두근.
베르미스를 생각하니 검이 박동하듯 요동쳤다.
안에 있는 파괴적인 힘이 밖으로 나오기 위해 안달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아겔은 검을 꾹 잡고 그 힘을 통제했다.
‘이런 힘이었구먼.’
자세를 낮춘 아겔은 검을 휘두르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가우록은 그가 자신의 힘을 보고도 피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정신이 나갔구나, 아겔. 한 번은 요행이었을지 몰라도 두 번째는 막지 못할 것이다.”
아까보다 더 큰 도마뱀 악마 형상이 가우록의 등 뒤로 모습을 드러냈다.
뚝뚝…… 치이이익…….
거대한 도마뱀 형상의 입에서 흘러내린 기운이 바닥에 떨어져 녹아내리는 듯한 소리를 냈다.
산성 기운이 복도의 유골들을 녹여 버려 독가스가 천천히 차올랐다.
“쿨럭, 쿨럭…….!”
줄리안도 급히 코와 입을 막고 가스를 피해 물러날 만큼 강력한 독.
그러나 아겔은 물러서지 않고 검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잠시라도 몰입이 깨지면 베르미스의 힘을 끌어낼 수가 없다.
그는 검의 힘과 자신을 공명하는 중이었다.
아겔이 뭔가 준비하는 것을 깨달은 가우록은 곧바로 주먹을 휘둘렀다.
“죽어라!”
아까보다 2배는 거대한 도마뱀 악마가 아겔을 향해 쇄도했다.
아겔은 이전과 같이 검을 들어 그 무지막지한 기운을 받아 냈다.
콰아앙앙--!!
어둠에 휩싸인 검에 도마뱀 기운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그러나 이전과 다르게 도마뱀 형상은 아겔을 밀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아겔이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화악.
발을 내딛는 동시에 검을 휘두르는 아겔.
허공에서 거대한 무언가의 형상이 커다란 아가리를 벌려 도마뱀의 목을 물었다.
콰득……!
키에에에에엑-!
지네.
그것은 어마어마하게 큰 지네였다.
가우록처럼 힘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아겔은 잠자코 자신이 만들어 낸 힘을 느꼈다.
지네는 산성과 악마의 힘이 결합한 도마뱀 형상을 무참히 찢어발긴 뒤 다시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가우록의 노란 눈이 찢어질 듯 커져 있었다.
“어떻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
갑자기 나타난 저 지네의 형상은 무엇인지.
그리고 저게 무엇이길래 자신의 전력을 담은 기운을 단숨에 찢어발기는지.
그는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몰이해는 곧 분노로 이어졌다.
그는 자신의 송곳니가 부러져라 입을 꽉 다물었다.
“말도 안 된다……!”
소리를 지르며 양손으로 주먹을 내지르는 가우록.
두 마리의 도마뱀이 나타나 아겔을 향해 쇄도했지만, 불안정한 자세로 내지르는 힘이 강할 리가 없었다.
휘릭.
아겔이 검을 휘두르자 다시 어둠 속에서 나타나 도마뱀 두 마리를 물어뜯는 거대 지네의 형상.
지네 형상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 곧장 쇄도해 가우록의 왼팔을 물어뜯었다.
콰득……!
“끄아아아악……!”
강렬한 고통에 몸서리치는 가우록.
그는 한참이나 물러나 팔이 회복될 때까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겔은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검을 한번 쓸었다.
두 번째로 사용해 보고 나서야 아겔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래. 이것이 베르미스가 남겨 준 힘.’
모든 권능을 남겨 준 것은 아닐지라도, 그는 자신의 힘의 정수라고 할 만한 것을 남겨 주었다.
그 힘이 이 검에 담겨 있었다.
아겔이 원하는 대로 그 힘을 휘두를 수 있었다.
“끝을 내야겠구먼.”
이전과 비할 바 없이 몸의 중심이 앞으로 쏠린 자세를 잡는 아겔.
패도적인 공격성이 담긴 자세였다.
가우록이 입을 악물었다.
수비적인 자세에서 공격적으로 바뀐 그를 보니 치가 떨렸다.
“감히……! 네가 감히!”
어느새 지네 형상에 물어뜯긴 팔을 회복시킨 그는 아겔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겔은 침착하게 검을 내리그었다.
등 뒤에서 나타난 지네 형상이 가우록을 향해 쇄도했다.
키아아아아악!
달려들던 도마뱀 인간은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그 거친 기운에 쓸려 버렸다.
.
.
“맙소사. 일 났군.”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아겔이야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 사람이었으니.
그러나 감탄사가 나오는 자신의 입을 막을 순 없었다.
지네 형상이 가우록을 완전히 쓸어 버리는 것을 보고 줄리안은 헛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저런 힘은 어디에서 난 거지.’
여태껏 아겔은 어둠과 관련된 권능만을 사용해 왔다.
하나 그것도 만능이 아니다. 자신만 해도 아겔의 내면을 침투하는 권능과 시야를 가리는 권능엔 대항할 수 있으니.
하지만 지금 그가 보여 준 괴물 같은 기운은 아무리 줄리안이라도 도저히 상대해 볼 만한 것이 아니었다.
저것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갈기갈기 찢겨 나갈 테니까.
‘나처럼 분열의 악마와 거래라도 한 게 아니라면, 도대체…….’
줄리안은 곧 이해를 그만두고 고개를 저었다.
아겔은 이해한다고 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기에.
궐련을 입에 문 그는 한쪽 벽에 기대어 권총으로 불을 붙이려 했다.
홱.
입에 물린 궐련을 주름진 손이 채 갔다.
줄리안은 멍하니 도둑을 바라보았다.
“돗대다, 그거.”
“닥쳐라, 줄리안. 내 앞에서 한 번만 더 버르장머리 없이 이딴 걸 피우면 머리에 구멍날 줄 알아라. 제 몸도 스스로 못 지키는 머저리 같은 놈.”
“…….”
왠지 이전보다 과격해진 아겔의 말투에 줄리안은 뭐라 할 생각도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아겔이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간당간당하구나. 네 영혼이.”
“…….”
아겔의 눈에는 보였다.
줄리안의 영혼을 거의 붙잡은 악마의 손길이.
“악마의 힘을 조금 더 끌어 쓰면, 네 영혼이 놈에게 끌려갈 거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일찍 죽으나 몸을 사리나 내 영혼이 끌려가는 건 똑같다.”
악마의 힘을 끌어 쓴 대가.
그것은 자신의 영혼. 악마는 다른 제물은 받지 않는다.
오직 사람의 영혼. 그것만을 거래 대상으로 삼았다.
“하여튼 악마의 힘을 쓰는 건 자중해라. 이 냄새 나는 것도 작작 피우고.”
아겔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궐련을 돌려주었다.
줄리안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궐련을 받아 품에 넣었다.
“……잔소리는.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원탁 놈들이 몰려올 거다.”
아겔은 몸을 돌리면서 말했다.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나는 특수 감방으로 향할 테니 놈들의 이목을 끌어라.”
“혼자서 특수 감방으로 가겠다고?”
“그래.”
“혼자 가면 개죽음이다. 차라리 나와 함께 복도에서 하나씩 처리하는 게…….”
“아니.”
숨어 있던 거대 개미에 올라탄 아겔이 줄리안을 내려다보았다.
눈이 없는 아겔이었지만, 줄리안은 그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감은 잡았다.”
손에 쥔 단검에서 베르미스의 힘이 느껴졌다.
거대 개미가 아겔의 통제에 따라 목적지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니 전부 죽이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