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격돌 (4)
파아아앗.
특수 감방에서 빛에 휩싸인 원탁의 죄수들은 한쪽 복도로 이송되었다.
복도는 어두웠다.
분명 마법 횃불이 복도를 밝히고 있는데도 어두운 느낌이 나는 건 착각이 아니었다.
복도 주변으로 음산한 기운이 끈적하게 퍼져 있는 것 같았다.
죄수들은 그 기운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
상급 죄수라도 움찔하는 죽음의 기운.
그 음산한 기운 한가운데 보라색 안광을 한 노인 하나가 정좌해 있었다.
눈을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느낄 수 있을 만한 노인이었다.
“크랙슨.”
“예, 주술사님.”
특수 감방 쪽을 맡고 있던 크랙슨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원탁의 죄수들도 똑같이 고개를 조아렸고, 해방된 죄수들은 몸이 굳은 채로 서 있었다.
크랙슨이 날카로운 눈을 하고 그들을 돌아보았다.
“부복하지 않고 뭐하나.”
그의 말에 원탁의 죄수들이 일어나 그들을 붙잡고 무릎을 꿇렸다.
-큭……!
-이거 놔……!
반항하던 몇 재소자들이 있었지만, 곧 잠잠해졌다.
-헉……!
주술사의 보라색 안광이 저항하던 죄수의 혼을 꿰뚫었다.
곧 눈동자가 까뒤집어지고 입을 쩍 벌리는 죄수. 거기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서서히 끌려 올라왔다.
입을 통해 빠져나온 영혼은 주술사에게 끌려가더니, 그의 억센 손아귀에 쥐여졌고 가슴팍에 흡수되었다.
기괴한 광경에 해방된 죄수들은 저항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영혼을 다루는 주술사.
분개하여 지금 이 자리에서 저 괴물에게 달려든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주술사의 보라색 안광이 빛났다.
“어째 가져온 것들이 심심하구나.”
“죄송합니다, 주술사님. 서두른다고 했는데, 쓸 만한 놈들이 아예 없었습니다.”
부복한 죄수들을 돌아본 주술사가 말했다.
“숫자도 좀 적어 보이고.”
“…….”
“변명할 게 있느냐.”
크랙슨은 식은땀을 흘렸다.
갑자기 나타나 일에 훼방을 놓은 코르브스. 그 녀석 때문에 석방한 죄수 다수가 죽었다는 사실을 보고한다면, 주술사는 대노할 것이다.
하나 말하지 않을 수도 없는 법.
크랙슨은 코르브스가 수작을 부렸다는 사실을 고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주술사의 보라색 안광이 번뜩였다.
명백히 분노했다는 뜻. 크랙슨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 왔다.
“날 실망하게 하는구나.”
“죄, 죄송합니다……! 부디 용서를……!”
용서를 구하는 크랙슨이었지만, 주술사의 안광은 풀어질 줄 몰랐다.
가뜩이나 계획을 앞당겨 대계에 필요한 죄수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는데, 아겔의 수하인 까마귀의 농간에 당해 더 잃어버리고 오다니.
주술사의 입이 심판을 담았다.
“나는 용서하지 않는다. 용서하면 괜찮은 줄 알고 또 실수를 저질러 오지.”
“허억……!”
크랙슨이 목을 부여잡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주술사의 눈이 음산하게 빛났다.
“실패의 대가는 오로지 죽음. 받아들여라. 가우록도, 너도 실패하면 죽음뿐이다.”
“커헉……!”
우득!
양 수인의 목이 꺾였고 그의 입에서 영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아아아…….
흘러나온 영혼이 주술사의 가슴팍으로 흡수되었다.
크랙슨이란 죄수가 보여 준 무위에 비하면 허무한 죽음이었다.
그만한 강자를 이토록 쉽게 제압하는 주술사의 모습에 죄수들은 몸을 떨었다.
같은 7이란 낙인이 새겨져 있지만, 저 노인은 차원이 다른 자였다.
만족스럽게 흡수를 마친 주술사가 죄수들을 돌아보았다.
“너희도 마찬가지다. 일에 있어서 실패는 오직 죽음뿐. 유념하도록 하라.”
-예……!
검은 수염을 가다듬은 카흘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쪽으로 나온 그는 수정구를 들었다.
“페이든.”
-…….
원탁에게 협력하는 성좌 교단의 끄나풀.
카흘탁은 그를 불렀다.
아겔을 죽이기로 한 것은 성좌 교단과 이미 합의한 사항이었다.
고독의 직원들은 모르겠지만, 바깥 상황은 참 미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빛과 어둠. 그 대리인들이 명확한 구분 없이 손을 잡고 있다는 것. 이것은 고독의 주인인 기업가도 알지 못하는 내용이다.
애초에 이 교도소에 있는 원탁은 진짜가 아니다.
진정한 [원탁]은 어둠의 사도들로만 이루어지지 않았고 실제로 이 교도소가 본거지인 것도 아니었다.
진짜 원탁은 고독 밖에 있다.
이 사실을 아는 자는 오직 당사자들뿐.
그렇기에 기업가는 성좌 교단이 교정관 자리 하나를 요구해도 그대로 받아들인 거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것이 자신들이 그렇게 숨겨 왔던 아겔의 심장을 찌를 비수인 줄도 모르고.
잠시 후, 페이든의 목소리가 수정구에서 들려왔다.
-뭐지.
“아겔을 절지로 보냈나.”
-보냈다.
“그래,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
다음 단계. 이제 아겔을 옮겼으니, 그를 죽이기 위한 마지막 차례였다.
주술사의 말에 페이든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윽고 수정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그 노인을 죽일 수 있는 게 맞나.
페이든의 물음에 카흘탁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확실히 죽일 수 있지.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건가.”
-애초부터 악마의 종자인 널 믿진 않았다. 그저 너희와 협력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따랐을 뿐. 하지만 이쯤 되면 나도 궁금해지는군. 나는 목숨을 걸었다. 너도 목숨을 걸고 아겔을 죽일 각오가 되어 있냐는 말이다.
“끌끌.”
페이든의 말에 주술사는 웃음을 흘렸다.
“꼬마야, 나는 네가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이 고독에 있었다. 나는 180년을 기다렸다. 아겔을 죽이기 위해.”
물론 고독에 보낸 이 몸은 분신체나 다름없었지만, 이 분신체를 고독 시간으로 180년을 사용한 건 사실이었다.
밖에선 30년에 불과했지만, 그것도 인고의 시간이었다.
“이제 누가 더 진심인지 알겠느냐?”
-…….
“할 말이 없으면 당장 우릴 절지로 보내라. 이제 아겔의 숨통을 끊어야 하니까.”
-시간이 조금 걸린다. 동력실은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게 아니야.
“최대한 빨리 해라. 안 그럼 아겔이 그곳에서 또 숨어 버릴 수 있으니.”
-늦지 않게 보내 주지.
“이게 마지막 교신이 될 것 같군. 성좌의 가호가 함께하길 바라지.”
악마의 하수인이나 다름없는 자에게 축복하는 말을 들으니 페이든이 꺼림칙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넌 아겔을 죽이고 지옥에나 떨어져라.
뚝.
수정구 연락이 끊겼다.
“끌끌, 고얀 애송이.”
카흘탁이 수정구를 갈무리하자마자, 한쪽 복도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켄드록.”
“푸흐흐흐, 주술사님. 이제 마지막 단계로군요. 고문하던 놈들을 데려왔습니다.”
과학자가 실험용 고글을 쓴 채로 나타났다. 그의 고글에는 핏자국이 잔뜩 남아 있었다.
“왜 벌써 왔지. 난 너를 부른 적이 없는데.”
“푸흐흐, 지금 벌레 새끼들이 본관 전체를 휩쓸고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합류하는 게 이득일 거라 생각했죠.”
과학자가 익살스럽게 팔을 흔들었다.
“거기에 하나 더! 우리 귀하신 분까지 잡아 왔죠.”
스윽.
어둠 속에서 괴물 하나가 누군가를 붙들고 있었다.
줄리안.
그는 엉망진창이 되어 기절한 채 속박당한 모습이었다.
“호오, 줄리안이군.”
“이 녀석이 마피아 클랜을 이끌고 돌아다니길래 잡아왔습니다. 상처가 심하지 않았더라면 저도 힘들었겠지만요.”
일전에도 한 번 붙었던 두 사람이었지만, 모두 쉽게 우위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오랫동안 주술사에게 당한 상처를 내버려 둔 채였고, 상처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거기에 악마의 힘까지 남발했으니, 상태가 좋지 못한 건 당연한 일.
다시 과학자가 습격했을 때, 막아 낼 힘이 거의 없었다.
주술사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과학자 켄드로는 원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놈이었지만, 지금까지 가장 큰 성과를 내고 있었다.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녀석은 아니었지만, 자체적인 판단력이 나쁘지 않았다.
“잘했다. 시간이 조금 남아 있으니, 너는 죄수들을 점검하라.”
“예.”
몸을 돌려 가려던 과학자가 이내 걸음을 멈추고 다시 주술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주술사님. 녀석이 과연 반응할까요?”
“그게 무슨 말이지.”
“그렇잖습니까. 수백 년을 참아 온 놈인데, 겨우 관련된 죄수 몇 명을 인질로 삼는다고 되겠습니까? 그냥 버리고 또 도망칠 수도 있습니다.”
켄드로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아겔은 어둠의 사도가 되기 위하여 오랜 세월 동안 고독에 숨어 있었다.
성좌 교단에도 들키지 아니하고.
시간이 거의 끝에 달하고 있는 이때 아무리 인질을 잡는다고 해도 다시 숨어 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주술사의 생각은 달랐다.
“이번만큼은 달라. 그 아겔이, 꽁무늬도 보여 주지 않던 놈이 직접 나섰다. 가우록도 놈의 손에 죽은 거야.”
“가우록이……?”
“거기에 벌레놈들도 움직인다고 했지. 베르미스는 아겔의 친구다. 녀석이 벌레 임금에게 도움을 청한 게 틀림없다.”
보라색 안광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이번만큼은 다르다. 아겔의 생각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몰라도, 놈의 주변인들을 건드리면 움직일 것이다.
월야곡 위령의 혼령을 취하기 위해 보로를 보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술사 카흘탁은 그 일을 아겔이 처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놈은 반드시 온다. 우리가 찾아 나설 필요도 없지. 우린 제 발로 걸어온 놈을 죽이기만 하면 되는 거야.”
“푸흐흐흐, 주술사님의 말씀이니 믿겠습니다. 그럼 이 일이 끝나면, 저도 고독에서 꺼내 주시는 거 맞죠?”
카흘탁은 켄드로를 힐끔 바라보았다.
본체가 이끄는 군세에 비하면 이놈은 버러지나 다름없다.
놈은 고독 밖으로 나가는 황홀한 기대만 하고 있겠지만, 주술사는 이 녀석을 구원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쓸모가 있긴 했다.
“꺼내 주지. 그러니 기다려라. 아겔만 죽이면 모든 게 이뤄질 테니.”
실제로 고독을 공격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기업가의 눈이 있다.
카라이스만 령에서 날뛰다간 놈과 전면전이 일어날 것이다. 괜히 은하 정부 영역 밖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놈이 아니었다.
만만하게 보다간 큰코다칠 것이다.
“죄수들을 정비하라. 아겔을 죽이러 간다.”
“푸흐흐흐, 예.”
주술사의 장포가 펄럭였고 그는 아겔을 죽이기 위한 마지막 준비를 하러 돌아갔다.
* * *
절지에 홀로 남은 아겔.
이곳엔 아무도 없다. 오직 아겔 한 사람뿐.
개방 기간이 아닌데도, 아겔은 페이든에 의해 강제로 절지에 와 있었다.
절지는 광야 같은 곳이었다.
풀 한 포기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황량한 곳. 절지의 변화무쌍한 날씨에 적응할 수 있는 생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쿠르릉……!
먹구름 사이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곧 비가 올 징조.
아겔은 비를 피할 곳을 찾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그냥 맞기로 작정했다.
비 맞으면서 이동하는 것보단 그 자리에 있는 게 체력을 비축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이제 곧 싸워야 하니.’
움직이는 대신, 아겔은 바위 하나를 찾아 그 위에 올라가 앉았다.
아겔은 곧 다가올 싸움을 기다렸다.
원탁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대계. 아겔을 죽이기 위한 숨죽임.
제대로 준비해 왔을 게 틀림없다.
‘아마 인질이 있겠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자들은 모조리 사로잡았을 것이다.
상급 죄수들로 이루어진 원탁의 눈을 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고, 주술사가 작정하고 찾으면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하니.
거기에 이곳은 도망치는 데도 한계가 있는 교도소다.
어디로 도망갈 수 있단 말인가.
‘다시 숨느냐. 아니면 싸우느냐.’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비겁할지라도 숨어서 목숨을 보존하는 선택지가 있었다.
때가 도래하면 지금까지 아겔을 노려 왔던 놈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 테니까.
대신 아겔을 잡지 못해 분노한 원탁은 인질로 사로잡은 자들을 모조리 죽일 것이다.
가슴 한구석에선 숨으라고 말한다.
여기서 죽으면 모든 게 끝.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300년이 넘은 기다림이 모조리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죽음이 두려운 건 아니었다.
하나 간단히 죽어 버리기엔 아겔은 너무 큰 대의를 짊어지고 있었다.
이 어그러진 우주를 다시 바로잡을 책임을 말이다.
‘숨지 않는다.’
그렇기에 결론을 내렸다.
일전에 내린 결심에서 돌아서지 않았다.
무도한 이들을 심판하는 건 힘이 있을 때 가능한 일.
그걸 위해서 200년을 함께해 온 벗도 자신에게 힘을 더해 주고 숨을 다하지 않았는가.
여기서 다시 숨는다면, 벗을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겔은 스스로 겁쟁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남들이 겁쟁이라 말한다면 증명해 보여야 할 필요가 생긴다.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힌 아겔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갔다.
끝없이 펼쳐진 어둠이 드러났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기점으로 위에선 무수히 많은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거기에 손에 들린 단검은 무엇보다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둠을 걷는 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한다.
그러나 아겔에겐 두려움이 없었다.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갈 뿐.
손에 들린 친구가 전해 준 빛이 길을 밝혀 주고 있었고, 수많은 별도 함께하고 있으니.
아겔은 걷고 또 걸었다.
더 깊은 어둠으로 걸어갈수록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