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격돌 (7)
벌레 군단은 복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아겔의 지인들의 구출을 우선하는 것에서 원탁 죄수들의 말살로 초점을 바꾼 그들은 무서운 기세로 복도를 점령했다.
후삭은 그 군단의 선두에서 벌레들을 지휘했다.
‘아겔의 수하 중에 능력이 꽤 괜찮은 친구가 있었군.’
처음 만났을 땐 깜짝 놀라 검을 휘둘렀지만, 괜히 아겔의 수하가 아니라는 듯 코르브스는 손쉽게 피해 냈다.
거기에 더불어 후삭을 설득, 교정관들과 협력해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수를 찾아내었다.
‘그 까마귀란 자가 중간 다리 역할을 해 주지 않았더라면, 이런 협력은 결코 있을 수 없었겠지.’
코르브스란 7급 죄수는 후삭에 뒤지지 않는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고독의 간수들과 죄수들의 연결점을 찾아내었다.
오직 아겔이라는 그 공통점을 연결 고리로 꿰맨 것이다.
후삭의 벌레 군단이 맡은 임무는 원탁의 죄수들로부터 교정관들을 보호하고, 빠른 정보 전달 속도를 이용해 복도 곳곳으로 도망치는 동력실을 찾아내는 것.
거기에 가장 속도가 빠른 코르브스가 각 분신체로 교정관들을 태워 하나라도 동력실 안으로 골인하면 게임 셋.
후삭의 벌레 군단, 코르브스의 분신체들, 그리고 동력실을 쫓는 교정관들.
3세력이 따로 놀았으면, 언제 동력실을 찾을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현 상황에서 단숨에 해결책을 놓은 코르브스였다.
“(이런 자들과 함께하는 전장이라니, 명예롭군.)”
무력으로만 하는 전쟁이 아니다.
싸움이란 건 정보도, 무력도, 지략도, 그리고 그 의도도 중요하다는 걸 이번 기회에 새로이 배우게 된 후삭이었다.
앞서 나가던 후삭은 또 한 무리의 원탁 죄수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상급 죄수들이 거의 없는 중급 죄수들로만 이루어진 병력. 그러나 충분히 교정관들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는 놈들이었다.
후삭은 자신의 임무를 상기했다.
믿을 수 있을지 없는지 솔직하게는 알 수 없는 집단의 연합이지만.
왠지 아겔이라는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신뢰는 고리로 이어졌다.
가장 앞서 있던 후삭이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아겔을 위하여!!)”
그에 호응하는 듯 벌레들이 소름 끼치는 비명을 내지르며 원탁의 죄수들 위로 사정없이 덮쳐들었다.
.
.
.
후삭의 벌레 군단이 복도 곳곳을 청소해 버리자 교정관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거기에 코르브스의 분신체에 올라타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니, 정말로 동력실에 도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서기관 베믈리오는 코르브스의 분신체 중 하나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털이 푹신푹신한 등 위로 정보를 전달해 주는 후삭 측의 장군 벌레 하나와 동승하고 있었다.
“(상급 복도 1963에 동력실 출현!)”
벌레의 언어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어차피 코르브스가 알아듣고 알아서 그쪽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베믈리오는 잠자코 등 위에서 스쳐 가는 바람을 느낄 뿐이었다.
“이건 정말…… 큰 신세를 지는군.”
저도 모르게 나온 혼잣말에 코르브스가 대답했다.
[까악. 죄수들의 역량을 얕보지 마. 나만 해도 봉인만 아니었으면, 너와 같은 급수이니까.]
“하기야, 그렇군.”
코르브스의 낙인은 7급. 원래는 9급 각성자였을 테다.
그런 괴물들이 이 고독에 득실거리다 보니, 익숙해진 서기관은 그 가치를 잠시 잊곤 했었다.
짧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장군 벌레의 정보가 계속 들려왔다.
“(동력실이 중급 복도 5693으로 이동!)”
그에 코르브스가 반응했다.
[근처다! 속도를 낼 테니 꽉 잡아!]
다시 찾아온 기회.
두 사람을 태운 커다란 까마귀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개를 퍼덕이며 목적지를 향해 돌진했다.
복도의 어둠을 뚫고 저 멀리 문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동력실의 입구, 철문.
서기관 베믈리오는 긴장한 얼굴로 철문에 손을 가져갈 준비를 했다.
권한이 있으니 손을 대면 문이 열릴 터였다.
타악!
잘 날고 있던 코르브스는 갑자기 자세를 바꿔 날개 속에서 커다란 손을 꺼냈다.
그대로 베믈리오를 붙잡고 동력실 문을 향해 냅다 던져 버렸고, 서기관은 빠른 속도로 철문에 착지했다.
터엉-!
그 동시에 손이 동력실 문에 닿았다.
철컹!
‘됐다……!’
동력실의 문이 열리면서 거대한 내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방에 각종 빛을 내는 기기로 가득 찬 동력실.
베믈리오는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 들어가 중앙 제어실에 있을 페이든을 찾아 헤맸다.
“페이든 로자리오! 나와라!”
쉬이이익……!
제어실 안쪽을 두리번거리는 베믈리오에게 사각에서 대응하기 어려울 만큼 빠른 속도로 검이 날아왔지만.
촤르르르륵!
종이 하나가 나와 페이든의 검을 가볍게 막아 버렸다.
“크윽……!”
기습이 실패하자 페이든은 낭패한 얼굴이 되었다.
이윽고 그는 얼음보다 차게 식은 베믈리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베믈리오는 그의 기습을 간단히 막아 낸 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냉철하게 해냈다.
“지금부터 페이든 로자리오의 교정관 권한을 박탈하고 여러 죄목으로 체포하도록 하겠다.”
페이든의 얼굴이 굳었다.
“웃기는 소리…… 죄는 너희가 저지르고 있지 않나! 흉악무도한 범죄자들!”
“체포 과정에서 매우 과격한 충돌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도록.”
베믈리오의 전신이 종잇장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9급 각성자의 전력이 담긴 권능.
베믈리오의 손이 수십 개의 날카로운 종잇장으로 변해 가기 시작했고.
하나하나가 살의를 담은 종이들이 페이든을 향해 내리꽂혔다.
* * *
솨아아아아…… 쿠르릉……!
비가 넘쳐 광야가 거의 진흙탕으로 변해 가는 절지.
아겔의 봉두난발도 다 젖어 눈을 가리고 있었다. 해진 붕대는 거의 풀려 갔지만, 젖은 머리카락이 붙어서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헉… 헉…….
숨을 몰아쉬는 아겔.
거칠게 움직였기에 잠깐 숨을 쉬는 이 순간도 소중했다.
아직 수백 명이나 남은 상급 죄수들이 아겔의 목숨을 노리고 사방에서 달려드는 중이었다.
7마리의 지네 형상으로 막아 보곤 있지만, 마치 새는 빗물처럼 그들은 허점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중에 아겔에게 피해를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자기 목숨은 버려도 아겔의 체력을 한 줌이라도 소모시킨다는 생각으로 달려드는 불나방 같았다.
이 우주 어느 영역에서도 패왕이라 자처할 수 있는 자들이 아겔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쿨럭……!”
입에서 철 냄새가 지독하게 풍겼다
과하게 몸을 혹사해 각혈하는 아겔이었지만, 전투엔 휴식 같은 게 없었다.
달려들던 상급 죄수 또 하나가 지네의 아가리에 물려 온몸이 으스러졌다.
-크아아아악!
콰직!
이제 100여 명가량 남은 상급 죄수.
지네 형상이 내뿜은 독에 전장을 진탕으로 만들었음에도 살아남은 알짜배기들이었다.
하지만 아겔의 신경은 그들보단 저 뒤에서 지켜보는 주술사에게 가 있었다.
아직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는 주술사.
그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몰라도 아겔은 당장 놈을 저지할 수가 없었다.
상급 죄수들에게 발이 묶여 있었으니.
콰아앙!
상급 죄수들이 힘을 모아 거대 지네들을 압박했다.
주술사가 보여 줬던 것처럼 각색의 능력을 써서 지네들을 속박하는 죄수들.
해치우기 힘드니 지네들을 묶어 아겔을 처리할 요량이었다.
처음보다 훨씬 숫자가 줄어든 상급 죄수들이었으나, 오히려 지금이 더욱 상대하기가 버거웠다.
소모되는 체력은 물론이요, 죄수들의 합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견고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죄수들이 아겔에게 손가락 하나 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7마리의 거대한 지네들을 묶어 두는 것조차 버거워했으니.
아겔과 죄수들의 힘 싸움이 여기서 시작되었다.
그의 체력이 다할 때까지 죄수들이 지네들을 잡고 버티느냐, 아니면 아겔이 먼저 그들을 몰살시키느냐의 싸움.
점점 체력이 떨어져 가는 아겔은 이제 팔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었다.
낡은 근육이 덜덜 떨려 왔고, 머리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그의 칼춤이 더뎌짐에 따라 지네 형상들이 쓰는 힘도 점점 무력해지게 되었다.
-됐다! 놈이 지쳤어!
-지금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주술사가 소리 질렀다.
“이런 멍청한! 함정이다!”
죄수들이 지네들을 놓고 달려드는 순간, 무력하게 늘어져 있던 지네들의 몸이 갑자기 힘차게 요동쳤다.
아겔에게 가까이 달려든 죄수들부터 지네의 꼬리에 휩쓸려 나갔다.
촤아아아악……!
죄수들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육중한 물리력에 온몸이 으스러지는 경험을 맛보아야 했다.
아쉽게도 이 경험은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한번 겪으면 그것으로 끝이었으니.
주술사의 외침을 듣고 물러났던 죄수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도대체 체력이 언제 떨어지는 거야!
-끝이 없어!
그들의 억울한 외침과 달리 아겔은 한계의 봉착한 상태였다.
품에서 꺼낸 알약을 억지로 입에 털어 넣는 동작조차 부들부들 떨려 왔다.
그걸 보고 있는 상급 죄수들이었지만, 함부로 달려들진 못했다.
또 함정일 수 있으니.
아겔은 안전하게 알약 몇 개를 입에 털어 넣고 그 기운을 느꼈다.
“…….”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아 냈다.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으니.
하나 아무리 고통에 익숙한 아겔이라도 알약 때문에 뜨겁게 달아오르는 전신의 고통을 참아 내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빗물이 쏟아지는데, 그의 몸에서 열기와 수증기가 피어 오르는 게 보일 정도.
아겔은 고통을 참아 낸 후, 고개를 들었다.
“사내라는 놈들이 치졸하게 싸우는구먼. 이런 식으로 과연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하찮기 짝이 없구먼.”
그의 도발에 상급 죄수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물론 마음속으로 분노는 고양되었지만, 지금은 아겔이 하는 행동, 말 하나하나가 전투에 쓰이는 자원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확실하게 그를 죽일 수 있도록 지네를 붙잡을 뿐이었다.
‘통하지 않는가.’
도발에 걸리지 않는 상급 죄수들을 보며, 아겔은 혀를 찼다.
검을 붙잡은 주름진 손이 하늘 위로 들렸다.
약의 기운으로 지금 끝을 봐야 했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위험했기에.
“그쪽에서 안 오면 내가 가겠네.”
쾅! 쾅! 쾅!
땅속에서 지네 3마리가 추가로 튀어나왔다.
총 10마리의 지네는 전장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만큼 그 위용이 압도적이었다.
[키에에에에엑-!]
땅에 묶여 있던 지네들은 상급 죄수들의 속박을 풀고 따라서 하늘로 솟구쳤다.
가장 큰 지네의 머리 위에 아겔이 서 있었다.
그리고 지네 형상들이 땅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지네들을 속박하기 위해 모여 있던 상급 죄수들이 흩어지기도 전에 육중한 지네의 몸이 땅과 충돌했다.
어마어마한 파괴력에 땅이 헤집어지며, 상급 죄수들이 갈가리 찢겨 나갔다.
한 차례 떨어진 운석과도 같은 충돌.
총 아홉 개의 구멍이 새로 만들어지며 초토화된 전장이 눈에 들어왔다.
전멸.
상급 죄수 1천여 명이 한 사람도 살지 못하고 전부 사망했다.
단 한 사람, 아겔의 손에 의해서.
아겔은 지네 위에 올라탄 채로 주술사를 향해 다가갔다.
주술사는 작은 언덕이 있는 곳에서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솨아아아…….
한없이 비가 내리는 전장.
한기에 젖은 아겔이 창백한 입술을 열었다.
“카흘탁.”
“…….”
보라색 안광은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스산함을 잃지 않았다.
침묵하던 주술사, 카흘탁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정도로 끝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
카흘탁의 손이 한 번 휘저어졌다.
파아아앗……!
그리고 전장이 되었던 절지의 땅에 거대한 주술진이 보라색 빛을 뿜어냈다.
각종 기이한 문양과 문자들이 빼곡히 들어찬 주술진.
카흘탁의 입이 벌어지며 썩은 이빨들이 드러났다.
“이때만을 기다려 왔지.”
1천여 명의 강렬한 사혼(死魂)들.
아직 저승으로 인도되지 못한 이 혼령들을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이대로 끝나면, 주술사란 이름이 아깝지 않겠나.”
화아아아악-!
주술진의 빛이 강해지며, 전장에 있는 시체들을 집어삼켰다.
거대한 주술진의 인도에 따라 수없이 많은 영혼이 카흘탁의 몸을 향해 끌려왔다.
-끄어아아아악!
-으아아악!
-카아아아악!
영혼들이 내지르는 비명도 카흘탁의 비정한 눈에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다.
……!
전장의 귀신으로 변한 상급 죄수들의 영혼이 카흘탁에게 흡수되었다.
아겔은 그 장면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카흘탁의 주술이 너무 완벽해서 도중에 건드리기 어려웠고, 그가 뭘 하려는지 지켜보기 위해서.
아겔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끄으으으… 큭큭큭큭…….”
1천의 영혼을 순식간에 빨아들인 카흘탁이 웃음 소리을 내며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한없이 적은 양이지만, 널 죽이기엔 충분하구나.”
……!
살벌하게 빛나는 보라색 안광.
아겔은 본능적으로 지네 형상을 이끌어 뒤로 회피했다.
카흘탁의 손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촤아아아악!
공간이 갈라지며, 그 자리에 있던 지네 형상 3마리가 손톱에 할퀸 듯 쪼개졌다.
[키에에에에…….]
지네 형상은 힘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그의 힘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하늘의 구름에도 커다란 자국을 낼 정도였다.
어마어마한 충격파에 지네의 외피 부분을 잡고 버틴 아겔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카흘탁…….”
상급 죄수 1천 명의 혼령을 흡수한 카흘탁.
대지마저 그의 움직임에 흔들리는 듯했다.
카흘탁의 입이 열렸다.
“유언이 있다면 말해라. 내가 들어주마.”
주술사의 손이 보라색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