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정리 (1)
과학자, 켄드로.
고독에 붙잡혀 오기 전엔 무수히 많은 인체 실험과 비윤리적이고 가학적인 범죄들로 쾌락을 즐기며 살아온 그는 지금 웃을 수가 없었다.
‘맙소사…….’
이 끔찍하도록 답답할 교도소에서 나가게 해 줄 유일한 열쇠.
어둠의 사도 중 하나인 주술의 사도, 카흘탁.
아무리 분신체라 하여도 켄드로와 그의 사이엔 어마어마한 격차가 있었다.
그런 자에게 머리를 굽히고 들어갔지만, 결과는 지금 보는 그대로.
“주술의 사도가 졌다고……?”
멀리서 아겔과 카흘탁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켄드로의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이 뛰었다.
카흘탁의 멱살이 아겔에게 잡혀 있었고, 카흘탁은 마치 넋이 나간 듯한, 아니 죽어서 축 늘어진 듯한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분명 아겔이 소환한 지네 형상도 전부 무너지고 카흘탁이 다가가 숨통을 끊을 줄 알았는데.
몇 마디 나눈 사이에 전세가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물러난다. 일단은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고독에서 나갈 희망이 사라진 지금, 켄드로는 더욱 냉정해졌다.
어찌 되었든 인질들은 자신이 붙잡고 있었고, 이걸 어떻게 해서든지 활용해야 했다.
인질들을 구속한 괴물들을 이끌고 켄드로는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나.
“어딜 가는가.”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오는 메마른 목소리에 켄드로의 발목이 턱 붙잡혀 버렸다.
그는 쿵쿵 뛰는 심장을 억누르고 천천히 뒤돌아보았다.
“아겔…….”
“자네도 내게 악감정이 있는 친구 중 하나였지. 주술사 밑에 들어가 있는 줄은 몰랐구먼.”
“푸흐흐흐, 이 더러운 곳에서 네게 악감정을 가지지 않는 게 이상한 거지.”
켄드로의 심장이 더욱 미친 듯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심장이 뛰는 건 괴물의 신체를 이식하고 싸우기 위한 전조에 해당했는데, 지금은 단순히 강자를 만났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 아니었다.
앞에 있는 노인은 그리 강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죽음.
그 자체가 자신을 만나러 온 듯한 기분이었다.
어찌할 수 없는 운명 앞에 선 것만 같은 기분. 바꿀 수 없는 거대한 것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공포가 켄드로를 사로잡고 있었다.
“이제 정리할 때가 되었구먼.”
저벅.
아겔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아까 풀었던 눈의 붕대는 어느새 새것이 아겔의 눈을 두르고 있었다.
“내 친구들을 돌려받아야겠네.”
* * *
고독의 동력실.
수십 개의 자상을 입은 페이든이 피를 철철 흘리며 종이 수갑으로 구속되어 있었다.
그를 제압한 베믈리오의 시선은 중앙제어장치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쿵쿵.
창백한 얼굴에 긴 장발을 치렁치렁 늘어뜨린 집행관 멜커가 동력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이미 구속된 페이든을 바라보았다.
놈의 몸엔 폭탄을 심어 두긴 했지만, 아예 동력실로 도망칠 줄은 몰랐다.
원격 기폭 장치의 신호가 닿지 않았는지라 페이든을 막을 수 없었지만, 이제라도 제압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멜커의 얼굴이 베믈리오에게 향했다.
“상황이 어떻습니까, 서기관님. 바로 지원을 가야 합니까?”
아겔은 주술사의 계략대로 절지에 잡혀간 상황.
상급 죄수가 무더기로 따라갔으니, 목숨이 위험한 상태일 수도 있다. 아니면 벌써 죽었을지도.
주업무가 사형을 집행하는 집행관이었지만, 멜커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감돌았다.
베믈리오가 입을 열었다.
“아니야…….”
고독엔 CCTV실을 포함해 교도소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곳은 단 두 곳이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곳 동력실. 베믈리오는 중앙제어장치 화면으로 아겔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놈이…… 전부 죽인 것 같군.”
“저, 전부 말입니까……?”
멜커의 창백한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원탁의 죄수들이 누구인가. 고독의 간부들도 이들이 아겔을 죽이기 위해 결성된 집단인 걸 알고 있었다.
긴 시간 표면적으로 활동하지 않았기에 교정관들도 이들에게 압박을 가할 명분은 없었다.
대개 상급 죄수로 이루어져 있는 원탁의 죄수들.
교정관과 맞먹는 무력을 지닌 자들이 수백 명이나 모여 있는 곳이라 간부들도 그들의 움직임에 긴장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노인 한 명에게 몰살당했다.
고독의 거악 중 하나인 주술사 카흘탁까지 아겔의 손에 멱살이 잡힌 채로 축 늘어져 있었다.
믿지 못하겠다는 듯 멜커의 눈이 커졌다.
“이게 무슨…….”
7급 죄수들. 수백 명이라면, 베믈리오조차도 목숨은 걸어야 하는 싸움이다.
봉인술사님의 봉인이 아니었다면, 저 중 열을 감당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멍한 얼굴로 멜커가 베믈리오를 바라보자, 서기관은 고개를 저었다.
“내게 묻지 마라.”
베믈리오도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감싸쥐었다.
이제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저 노인은 도대체 어떤 힘을 숨기고 있는 건지.
고독이 아무리 최악의 교도소일지라도 이곳에서 아겔을 숨겨 주고 보호하는 게 맞는 일인 건지.
과연, 저 노인이 자신의 주인과 어떤 거래를 한 건지.
베믈리오의 손이 땀으로 축축이 젖어 들었다.
“주인님께 보고해야 하니 상황을 정리해라, 집행관. 소장님께서 일어나셨는지도 확인해라.”
“아…… 예, 알겠습니다.”
웬만하면 멍한 표정을 짓지 않던 멜커가 베믈리오의 명령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는 듯 바삐 움직였다.
베믈리오는 기록된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중앙제어장치에 손을 가져갔다.
그때 허탈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큭큭큭…….”
“……?”
기절했던 페이든이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피를 많이 흘려서 그런지 그의 눈은 흐릿했다.
베믈리오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페이든…… 할 말이 있나?”
갈라진 목소리가 돌아왔다.
“너는 저게… 사, 사람으로 보이나……?”
“…….”
“저건 괴물이다…… 이 우주를… 파멸로 몰고 갈 괴물이란 말이다…….”
중앙제어장치에서 손을 뗀 베믈리오는 페이든에게 걸어가 그 앞에 무릎을 굽혔다.
베믈리오의 눈은 페이든의 흐릿한 눈동자를 직시했다.
“그랬군. 성좌 교단은 이미 알고 있었군.”
“…….”
베믈리오는 상황을 이해했다.
애초에 페이든을 억지로 교정관 자리에 앉힌 건 성좌 교단의 입김 때문이었다.
그들은 애초부터 아겔이 고독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를 살해하기 위해 페이든을 보낸 것이었다.
“주인님께서 바빠지시겠군.”
아무리 고독이 은하 정부와 성좌 교단의 감독 아래 있는 교도소라 해도 이건 선을 넘었다.
고독의 실제 소유주는 기업가이기에.
주인의 성정을 잘 아는 베믈리오는 그가 분노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페이든이 핏물을 내뿜으며 말했다.
“쿨럭……!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 다시 전쟁이야… 너희도 그 의미…없는 전쟁터에서 스러질…… 것이다.”
“아직 일어난 일도 아닌데, 예언자처럼 나불거리는군.”
베믈리오의 손짓에 허공에 나타난 종이 하나가 페이든의 입에 달라붙었다.
더는 입을 열 수 없게 된 페이든은 흐릿한 눈을 들어 베믈리오를 노려보았다.
하나 베믈리오의 눈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전쟁이라. 걱정하지 마라. 넌 그전에 죽게 될 테니까. 물론 금방 죽여 주지는 않을 거다. 이곳은 ‘고독’이니까.”
중앙제어장치로 녹화 영상을 확보한 베믈리오는 페이든의 머리채를 잡고 동력실에서 나갔다.
* * *
몇 시간 후, 피 묻은 옷을 갈아입은 베믈리오는 소장실을 향했다.
똑똑똑.
-들어와라.
말끔한 은빛 정장으로 차려입은 베믈리오는 문을 열고 들어가 고개를 숙였다.
“보고 드리러 왔습니다. 상황은…….”
숙였던 고개를 드니, 소장실의 소파에는 슈리오센과 익숙한 노인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아겔.
그는 담담하게 상석에 앉아 김이 솟는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앉게, 베믈리오.”
“…….”
마치 이 자리의 주인이 된 것처럼 아겔이 자연스럽게 앉을 것을 종용했다.
베믈리오는 대꾸하지 않고 소장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가 자리에 앉자, 아겔이 먼저 입을 열었다.
“따로 소장에게 보고할 필요 없네. 내가 다 말해 주었으니.”
이 사건의 당사자인 아겔이 설명해 주었을 테니, 그보다 정확한 정보는 없을 것이다.
“다만, 자네들의 주인에겐 보고해야겠지. 그전에 이야기 좀 나누세.”
“…….”
이야기를 나눈다는 말이 어째 베믈리오게네 너희가 잘못한 점을 되짚어 보자는 뜻으로 들려왔다.
베믈리오가 입을 열기 전에, 소장이 먼저 말했다.
“이번 일에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군.”
“자네가 사과할 필욘 없지만, 받아들이도록 하겠네.”
소장 슈리오센은 이번 사건 당시 술에 취해 뻗어 있었다.
물론 그에게도 그만한 이유가 있긴 했다.
아겔이 질문했다.
“아직도 증세가 심각한가?”
“……술에 취하지 않으면, 통제가 안 될 정도이지.”
고독의 총책임자이자, 대외 업무를 전부 맡고 있는 슈리오센.
그는 이곳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긴 했지만, 그가 나서서 힘을 쓰는 일은 없었다.
희귀병이 그를 지독하게 괴롭히고 있었으니.
그렇기에 실질적인 고독의 전력은 베믈리오를 최고라 보았다.
“갈수록 통증이 심해지고 있다. 내 목숨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지.”
슈리오센은 자조적인 미소를 띠며 술잔을 들어 안에 든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평소에도 독한 술을 매 순간 들이키지 않으면, 거부할 수 없는 통증이 엄습한다.
절대로 고칠 수 없는 병명도 원인도 모르는 병.
그가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던 건 어쩌면 10급이라는 어마어마한 각성 능력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죄수가 아니었지만, 어쩌면 고독의 그 어떤 죄수보다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욕보고 있구먼. 심심한 위로를 전하겠네.”
“고맙군.”
두꺼운 손으로 술잔을 내려놓은 슈리오센은 거구를 소파에 푹 기대었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베믈리오의 몸이 흔들렸다.
아겔의 시선이 베믈리오에게 향했다.
뜨끔한 베믈리오는 주먹을 입가에 가져가 헛기침했다.
“흠흠, 이번 일은 우리의 실수가 있었다는 걸 알고 있다.”
“실수가 아니라 무능이겠지.”
“…….”
담담한 말투였지만, 아겔의 말에는 칼날이 담겨 있는 듯했다.
베믈리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과하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다.”
“뭐, 나야 살긴 살았으니 상관없네. 다만, 자네 주인은 뭐라 할지 궁금하군.”
“…….”
다시 한번 베믈리오의 입이 턱 막혔다.
이후에 자신의 주인에게 이 일을 보고해야 할 텐데, 그가 보일 반응이 조금은 두려워졌다.
“기업가가 화를 내는 모습이라니. 그건 참으로 진귀한 장면인데, 오랜만에 보겠구먼. 후룩.”
“그건…….”
베믈리오가 식은땀을 흘렸다.
그 반응에 아겔은 슬며시 입가에 미소 지었다.
“알겠네. 이 얘긴 이제 그만하지.”
지나간 일을 탓해서 무엇하겠는가. 이제 닥쳐올 일을 준비하는 게 우선이다.
다 마신 찻잔을 내려놓는 아겔.
베믈리오는 알아서 자리에서 일어나 아겔의 앞에 새로운 차를 내왔다.
슈리오센이 입을 열었다.
“더 할 말이 없으면, 주인님께 보고드리도록 하지.”
“그전에 보고할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소장님.”
“뭐지.”
목과 표정을 가다듬은 베믈리오가 진지하게 말했다.
“이번 일은 고의입니다. 성좌 교단은 아겔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슈리오센도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첫 성좌 교단 출신 교정관이 하필이면 아겔을 살해하려는 원탁의 일을 도왔다.
마치 잘 짜인 판처럼 페이든이 부임하자마자, 원탁은 긴 침묵을 깨고 일어섰다.
계획되지 않았다고 보기엔 우연일 가능성은 한없이 낮았다.
슈리오센이 말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나. 교단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건 오직 주인님뿐이시다.”
“하지만…….”
“우린 주인님께서 명령하시는 대로만 하면 되는 거야. 괜히 나서서 주인님의 얼굴에 먹칠할 생각하지 마라.”
“…….”
교단에 정식으로 항의할 생각이었던 베믈리오는 슈리오센의 말에 입을 닫았다.
하기야, 주인인 그가 이런 부분을 놓칠 리가 없다.
오히려 실수가 나오는 쪽은 베믈리오가 될 확률이 높았다.
“보고부터 한다. 조치가 우선되면 안 돼.”
“알겠습니다, 소장님.”
베믈리오가 수긍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몸집으로 보면 서기관보다 다혈질인 것 같은 소장이 오히려 냉철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소장도 성격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놈들이 더 수작을 부린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지.”
“동의합니다.”
달칵.
다시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에 두 사람의 시선이 아겔에게 향했다.
아겔은 수염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연결하게. 나도 할 말은 해야겠으니.”
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가 기기 하나를 만지자 홀로그램 장치가 작동되었다.
파츳.
잠시 시간이 흐른 뒤, 홀로그램 영상은 누군가의 모습을 비추었다.
신사 모자를 쓰고 있는 젊은 남성.
기업가와 통화가 연결되었다.
소장과 서기관이 빠르게 무릎을 꿇었다.
“반갑네.”
-아겔. 오랜만이군요. 요즘 연락이 잦은 것 같습니다.
“그럴 만한 일들이 좀 있어서 말일세.”
가벼운 인사가 끝나고 슈리오센이 말했다.
“보고 차 연락드렸습니다, 주인님.”
-그래요, 소장.
푹신한 의자에 등을 기댄 기업가가 손짓했다. 말해 보라는 단순한 제스처.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는 허례허식 따위는 가볍게 건너뛰는 기업가였다.
슈리오센이 입을 열려는 찰나, 아겔이 먼저 말했다.
“내가 설명해 주지. 아무래도 내가 좀 더 정확하지 않겠나.”
“…….”
아겔이 슬쩍 슈리오센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 눈을 감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기업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아겔, 당신이 설명하겠다고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무덤덤했던 기업가의 얼굴이 순식간에 진중해졌다.
…….
아겔은 여태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고, 이야기가 끝을 향해 갈수록 기업가의 얼굴은 점점 더 삭막하고 딱딱해졌다.
왠지 분노도 함께 느껴졌는데, 의자의 팔걸이를 쥔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 보였다.
팔걸이가 부서지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된 걸세.”
-그런 일이…….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는 기업가.
아겔은 담담히 차를 음미하며 그의 반응을 기대했다.
그리고.
-진상 고객이군요.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기업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동자는 분노로 물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