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정리 (2)
기업가의 방.
깔끔하게 정리된 서류철들과 업무에 맞게 설계된 흑백이 조화된 방의 내부.
특별히 방을 꾸며 주는 장식품이 없는데도 화려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책상 위 검은색 바탕의 임원 명패에는 황금색으로 카라이스만이라는 이름이 음각되어 있었다.
그곳 책상에서 기업가는 아겔과 홀로그램 화상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골치 아프게 되었네.’
늙어 빠진 노인네가 수염을 다듬는 모습이 보였다.
여태껏 몇 번 문제가 발생하긴 했어도, 이토록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없었다.
아겔과 맺은 거래.
그 거래를 지키기 위해 카라이스만은 65년 동안 공들여 왔다.
그 시기가 거의 끝나가는 와중인데, 하필이면 대형 고객 중 하나인 성좌 교단이 사고를 쳐 버렸다.
놈들이 아겔의 존재를 눈치채고 어둠의 사도들과 손을 잡아 고독 안으로 침투한 것.
솔직히 죄수 중에 어둠의 사도가 직접 만든 분신체가 존재하는 것은 기업가조차 모르는 사실이었다.
어둠의 사도란 으레 비밀이 많고, 신비롭고, 음흉한 족속들이니까.
우주 곳곳의 작은 비밀까지 듣는 카라이스만도 그들에 대해선 제대로 아는 게 몇 가지 없다.
‘한 방 먹었군. 게다가 내 실책이고. 여기서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겔의 신용을 잃을 것이다.’
천금을 주는 대형 고객을 잃는 것보다 아겔의 신용을 잃는 게 더 두려웠다.
그의 신용은 겨우 천금 따위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이니.
한 번 틀어지면 다시 이어붙이기가 어려운 게 믿음이란 거다.
카라이스만은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그 진상 고객들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안심하세요. 그보단 아겔. 자중하는 게 좋겠군요. 눈에 띄는 짓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안전에 위험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문제의 책임 소지를 자신에게로 끌어오고, 거래가 어긋나지 않도록 아겔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하는 말.
어찌 보면 다 내가 알아서 하겠으니 걱정하지 말고 쉬라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리 온기가 담긴 말은 아니었다.
-애초부터 파악했으면 이따위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겠지.
“…….”
-하기야. 고독에서도 180년이나 숨죽이고 있던 놈이 무려 어둠의 사도가 날 죽이기 위해 보낸 분신체였다니, 누가 알았겠는가. 나도 놈이 스스로 말할 때까지는 몰랐으니 말일세. 날 죽이려는 건 알았어도.
괜찮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말하는 듯하지만, 나도 몰랐는데 네가 알았겠냐. 이게 다 네 능력이 부족해서 생긴 게 아니냐는 속뜻이 담긴 말.
감히 은하 정부도 건드리지 못하는 카라이스만령의 주인에게 말이다.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을 뚫고 들어오는 것 같은 기분에 카라이스만은 슬슬 피어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카라이스만의 이마에 미세한 혈관이 솟았다.
“후후, 맞는 말씀입니다. 어둠의 사도들이 음흉한 구석이 있죠.”
심력이 소모되는 걸 느낀 카라이스만은 잠시 눈을 감고 감정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소장, 서기관. 나가 있으세요.”
-예.
홀로그램에서 소장과 서기관이 사라졌다.
아겔과 단둘이 남은 상황. 카라이스만의 눈이 떠졌다.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시죠?”
-후속 조치를 해야지.
“후속 조치라 함은.”
-너무 말이 거창했구먼. 정리하게. 깔끔하게.
“…….”
카라이스만은 잠시 대화를 멈추고 다시 생각에 빠졌다.
고독은 현재 은하 정부와 성좌 교단의 전함이 행성 주변을 돌며 감시·보호 중이었고, 교단 소속 정거장이 있어 전함이 상주할 수 있었다.
고독 안에서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그리고 밖에서 불순한 세력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병력.
카라이스만령 안에 정부와 교단의 전함을 두는 건 그리 달갑지 않았지만, 고독이란 은신처를 만들려면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승인이 필요하긴 했다.
기업가의 눈이 냉철하게 식었다.
‘차라리 잘되었다. 이 기회에 내 구역에서 놈들을 아예 쫓아내자.’
정부와 교단의 전함은 고독을 감시하는 용도였지만, 사실 전쟁을 위한 교두보일 수도 있다.
항상 눈엣가시처럼 거슬렸던 것을 이 기회에 밀어내면 되는 것이다.
‘1년만 기다리면 된다.’
아겔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약 1년. 그때까지만 기다리면 거래는 완성된다.
정부와 교단, 두 거대 세력과 척을 지면 곧장 어마어마한 손실로 돌아오겠지만, 이해득실에 빠른 기업가는 이 셈이 무의미하단 걸 알았다.
그 어떤 것도 아겔보다 비쌀 수 없다.
“좋습니다. 정리하도록 하죠. 남은 1년의 시간을 벌어 드리겠습니다.”
교단과 척을 지겠다는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아겔이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 보겠네. 이번엔 꼼꼼하게 하는 게 좋을 게야.
“……알아서 하죠.”
속으로 한숨을 내쉰 카라이스만은 그대로 통화를 끊으려고 했다.
-잠깐.
그러나 아겔의 목소리 때문에 버튼을 누르려던 그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메마르고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거래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발설한 건 아니겠지.
“…….”
카라이스만의 몸이 굳었다.
전혀 발설한 적이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고양이 앞의 쥐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그런 적은 없습니다만?”
-그런가. 괜한 소릴 했나 보군. 왠지 모르게 소장이 날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 달라졌기에 하는 말이었네. 별일 아니면 이만 끊도록 하지.
파앗.
자기 할 말만 마치고 통화를 끊어 버리는 아겔.
기업가는 심장이 찌릿찌릿한 느낌을 받았다.
최근 소장과 아겔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기에. 물론 그의 정체를 말해 주진 않았지만.
“후후, 긴장을 놓을 수가 없는 늙은이란 말이지. 진짜 귀신 같군.”
곧바로 다음 일정이 있었지만, 기업가는 의자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항상 그래 왔지만, 악마와의 대화는 심력 소모가 심한 편인 것 같았다.
하아.
한숨을 내쉰 카라이스만은 눈을 떴다.
차가워진 눈이 수하들에게 연결된 송수신기의 버튼으로 향했다.
달칵.
-예, 주인님.
“익센, 내 영역에 있는 정거장. 밀어 버리세요.”
-……알겠습니다.
뚝.
3초도 걸리지 않은 통화였지만, 카라이스만은 머리에서 열이 나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계산하느라 그의 뇌는 거의 타는 지경이 되는 것 같았다.
그와 반대로 감정이 솟아야 할 가슴은 더욱 차갑게 식고 있었다.
“어차피 때가 되면 이렇게 될 거였다. 1년을 앞당겼을 뿐이야, 1년. 겨우 1년…….”
생각보다 1년이란 시간은 굉장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자신은 1년이겠지만, 아겔에겐 6년일 테다.
이내 마음을 굳힌 카라이스만의 머리도 서서히 식어 갔다.
똑똑똑.
일정한 노크 소리.
카라이스만이 들어오라는 듯 책상을 두드리자, 문이 열렸다.
“라반.”
“근심이 많아 보이시는군요, 주인님. 방금 정거장을 치라는 명령을 확인했습니다.”
고독의 봉인술사, 라반.
셀 수 없이 많은 죄수의 힘을 모조리 구속하는 능력자.
그가 들어왔다.
“내가 내린 명령이 맞다.”
“……때가 된 것입니까?”
“1년이나 앞당겨지긴 했지만.”
두 손을 깍지 낀 카라이스만의 눈에 분노가 깃들었다.
“이제 전쟁이지.”
* * *
우주 정거장.
전함과 우주선이 머무를 수 있도록 설계된 거대한 시설.
행성엔 비행기들이 머물 수 있는 공항이 있듯이 우주엔 정거장이 있었다.
현재 정부 소속 정거장은 정비를 위해 잠시 퇴거한 상태.
고독을 감시하는 정거장은 오직 교단 소속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하나뿐이라곤 해도 정거장 안에 상주하는 인원은 백만 명이 넘어간다.
어마어마한 규모이긴 하지만, 매일 수천 만의 죄수가 쏟아져 들어가는 고독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그 수많은 죄수가 고독에 들어갈 수 있도록 호송하는 것도 정거장의 임무 중 하나였다.
교단 소속 정거장에는 성좌를 상징하는 별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정거장 가장 깊숙한 곳.
이 거대 규모의 병력을 통솔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루시우스 그레고리 대주교.
이 정거장, ‘비질’을 대교구로 하여 책임지고 있는 남자였다.
늙었지만, 목 위로는 털 하나 없이 단정하게 다듬은 그는 자신의 골방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다.
“인내의 성좌, 페센시아여. 나의 친구, 페이든의 헌신을 잊지 마시옵고, 부디 가호를 내려 그가 시험을 이기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얼마 전, 새로운 교정관으로 고독에 부임한 페이든 로자리오.
그 청년은 같이 교단에 투신한 친구의 아들이었고, 자신이 가르친 제자이기도 했다.
이례적인 교단 출신 교정관이란 임무를 맡고 떠난 페이든.
루시우스조차 교단에서 페이든에게 내려진 은밀한 임무를 알지 못하지만, 그가 바라는 건 페이든이 무사히 돌아오는 것뿐이었다.
고독이란 감옥.
루시우스도 몇 번 방문한 곳이었지만, 그곳을 볼 때마다 사람이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기에.
이런 갑작스러운 일은 고독을 감시하는 정거장의 책임자인 루시우스에게도 처음 있는 일인지라,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페이든의 연락을 기다리거나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다.
며칠 전부터 페이든의 안부 전화가 끊겼기에 루시우스가 기도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기도를 마친 루시우스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불길한 생각을 하면, 그것은 현실이 된다.
생각에 힘이 있다는 걸 자각한 루시우스는 가득 차 있던 근심과 염려를 마음속에서 비웠다.
몇 분간, 평안을 위한 기도문을 중얼거린 루시우스는 밖에서 발소리를 들었다.
골방으로 다가오는 누군가.
똑똑똑.
“들어오게.”
노크는 정중했지만, 문을 여는 건 성급한 기색이 느껴졌다.
“대, 대주교님.”
“무슨 일이 있나?”
사제의 목소리가 떨림으로 가득한 걸 느끼고 무릎을 꿇고 있던 루시우스가 의아한 얼굴로 뒤돌아보았다.
중년 사제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
“워프 반응입니다. 카라이스만의 함대입니다.”
“…….”
웬만한 일은 전언으로 해결하는 카라이스만일 텐데.
갑자기 전함들을 이끌고 나타날 이유가 없었다.
루시우스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하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가겠네.”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루시우스는 커다란 진동을 느끼고 휘청거렸다.
쿠궁……!
밖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충격이 내부를 뒤흔들었다.
사제와 눈이 마주친 루시우스는 빠른 속도로 통제실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 * *
고독의 소장실.
아겔은 여전히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뭐라던가?”
곁에선 소장은 전언을 읽어 주었다.
“주인님께서 정거장을 없애 버리셨다는군.”
“호오.”
아겔은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고독을 감시하는 교단의 정거장을 파괴했다는 말.
이건 카라이스만이 교단에게 선전포고를 했다는 뜻이었다.
거기에 정부까지 더해서. 교단과 정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니.
“제대로 한 방 먹였구먼. 그런데 후폭풍을 감당할 순 있을는지.”
“주인님을 걱정하는 건가, 아겔.”
“그럴 리가.”
상석에 앉은 아겔 때문에 소장은 조금 불편한 얼굴로 소파에 앉았다.
술을 들이킨 그는 아겔을 보고 말했다.
“그런데…… 감방으로 안 돌아가나?”
“며칠 있어 보니 여기가 편하구먼.”
“…….”
“내가 짐처럼 느껴지는가?”
“……그건 아니지만.”
죄수가 감방에 있지 않고 자신의 집무실에 머무르는 것에 슈리오센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아겔이 이렇게 행동해도 소장으로선 막을 수가 없었다.
원체 그가 소장실에 머물렀던 적이 많이 없었기에 이번 경우가 생소했을 뿐.
사실 그가 자신의 주인 행세를 한다고 해도 대놓고 항의할 수도 없는 존재였다.
아겔이 말했다.
“치료는 잘되어 간다고 하던가?”
자신을 말함이 아님을 안 슈리오센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육사가 책임지고 있다. 확실하게 치료 중이지.”
과학자 켄드로에게 붙잡혔던 아겔의 친구들.
그들은 고독의 사육 시설에서 치료받고 있었다.
딱히 병원은 아니었지만, 그곳만큼 의료 기술이 좋은 곳도 없었기에.
아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문안이라도 가야겠구먼.”
일어나 놓고 움직이지 않는 아겔의 모습에 소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나도……?”
“얼른 오게. 술은 내려놓고. 병문안 가는 사람이 술이나 퍼마시고 가면 되겠는가?”
“…….”
슈리오센은 한숨을 내쉬며 아겔을 따라나섰다.
팔자에도 없을 흉악범들의 병문안을 저 노인 때문에 가게 되었다고 중얼거렸다.
물론 속으로.
메마른 목소리가 날아왔다.
“먹을 것도 챙기게. 푸짐하게.”
“……알겠다.”
앞으로는 속으로도 중얼거리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소장이었다.
아무래도 저 노인은 생각을 읽는 게 틀림없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