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손길 (1)
투기장 지하에 있는 사육 시설.
“하핫, 이건 참 골 때리는군요.”
이 시설을 담당하는 책임자, 사육사 타이룽은 난처한 기색으로 누워 있는 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겔의 수하들이라고 볼 수 있는 4명의 죄수.
인듀라스, 이오베, 바를라 하돌라, 쿠라스크.
이들을 치료해 주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고문으로 인한 외상이 조금 심했는데, 이곳 장비들이 전부 의료용은 아니었으나 타이룽의 실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앞에 누워 있는 남자는 그의 실력으로도 치유할 수가 없었다.
몸의 상처는 물론이고, 수명 자체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죽음이 코앞에 있는 상황임에도 줄리안은 궐련을 물고 있었다.
“뭐가 골 때린다는 거지.”
“첫째는 환자라는 양반이 병실에서 흡연하고 있고, 둘째는 제가 아무리 발악해도 당신을 살려 줄 수 없다는 점에서 골 때립니다. 소장님께는 잘 치유하고 있다고 말씀드려 놨거든요.”
타이룽은 폭탄 머리를 긁적였다.
“나머지는 잘 회복 중인데, 문제는 당신입니다. 주술사에게 당한 상처는 회복되겠지만, 거래가 말썽이죠. 시간이 얼마나 남았죠?”
“…….”
줄리안이 잠시 눈을 감았다.
그가 악마와 거래했다는 사실은 타이룽도 알고 있다.
자신의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당사자가 직감적으로 알 수 있기에 저렇게 물은 것이다.
주술사와 싸울 때도 악마의 힘을 남발했고, 과학자 켄드로와 붙을 때로 마찬가지였다.
힘을 남용한 만큼 그 대가는 큰 법. 악마는 힘을 내어 주는 대신 그 값은 확실하게 챙겨 갔다.
뭔가를 느낀 줄리안이 눈을 떴다.
“난 오늘을 넘기기 힘들겠군.”
영혼을 대가로 건 거래.
병에 걸린 사람처럼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게 아니다. 때가 되면 악마가 나타나 단번에 붙잡아 간다.
그건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타이룽이 어깨를 으쓱했다.
“도움이 될까 해서 데려와 봤지만, 역시 영혼에 관한 일은 쉽게 풀리는 법이 없군요.”
급조된 줄리안의 병실에는 두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한쪽에서 뚱뚱한 대머리 거구가 과일을 작살 내고 있었다.
우걱우걱.
탐식의 종, 아피스토.
제 의지와 상관없이 악마의 선택을 받은 이 죄수를 타이룽이 먹을 것으로 유인해 데려왔다.
악마의 선택을 받은 자라면, 줄리안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확실히 아피스토는 탐식의 권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악마의 권능은 사람의 오성으로 이해하기 힘든 것. 그것으로 수많은 기이한 일을 벌이기도 했고, 간수도 잡아먹어 특수 감방에 가두어 놓았었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이라곤 여기에 와서 먹는 것밖에 없었다.
줄리안을 치료하는 데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타이룽이 먹을 것만 축내는 그를 바라보자, 아피스토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배고파? 줘?”
“아닙니다. 난 필요 없으니 많이 드세요.”
“응.”
다시 과일들을 집어 마구 입에 쑤셔 넣는 아피스토였다.
삐리리릭.
타이룽의 단말기로 통화음이 들렸다.
“무슨 일이죠, 톨먼?”
-소장님께서 그쪽으로 가신다. 방금 투기장에 들어오셨다. 아겔도 동행 중이더군.
“환자들을 살피러 오시나 보군요? 전해 줘서 고마워요, 톨먼.”
-별거 아니지. 끊는다.
뚝.
소장님이 오고 있다는 사실만 간단하게 알리고 바로 통화를 끊는 톨먼이었다.
타이룽이 드물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하여튼 줄리안. 내 방에 검은 연기를 더 채우진 말아 주세요. 냄새가 잘 안 빠지거든요.”
“내게 명령하지 마라. 어차피 죽는 거 오늘 가지고 있는 건 다 피우고 죽을 거다.”
줄리안의 손에는 궐련들이 들어 있는 갑이 있었다.
최소한 열 개는 더 있는 것 같았다.
타이룽이 투덜거리며 방에서 나갔다.
그는 환자들이 있는 다른 방으로 향했다.
1인실을 내어 준 줄리안과 달리 이오베를 포함한 4명은 다른 한곳에 모여 있었다.
이들은 영혼에 관한 문제가 있는 줄리안과 달리 외상만 치료해 주면 되니 한 병실에 모아 놓은 상태였다.
쿵쿵.
타이룽이 나오자, 아피스토도 그를 따라 나왔다.
“뭐죠? 왜 따라옵니까?”
“너. 먹을 거. 주는 사람.”
폭탄 머리를 조금 신경질적으로 긁적인 타이룽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쫓아내고 싶은데, 7급 죄수라 난동을 피우면 사육 시설이 난장판이 될 것이다.
다른 환자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타이룽은 마침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슈리오센과 아겔을 마주쳤다.
“앗, 소장님. 어서 오시죠. 직접 걸음 하셨군요. 사육 시설로 오신 건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소장의 손에는 과일 바구니가 들려 있었고, 들기 싫었던 모양인지 손잡이에는 한 손가락만 걸쳐져 있었다.
“……별로 오고 싶진 않았는데.”
슈리오센은 키 작은 아겔을 가는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아겔은 그가 노려보든 말든 타이룽에게 다가갔다.
“환자들에게 안내해 주게, 타이룽. 병문안 왔네.”
“하핫, 그러죠. 이쪽으로 오세요.”
아겔은 타이룽을 따라가면서 옆을 졸졸 따라오는 아피스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피스토. 여기 있었구먼. 한동안 안 보이더니.”
“먹을 거. 찾아다녔다. 배고파서.”
“한창 먹을 나이지.”
타이룽을 따라가자 방 하나가 나왔다.
불투명한 유리문이 열렸고, 그 안에 있는 4개의 침대를 볼 수 있었다.
소장과 아겔, 타이룽과 아피스토라는 해괴한 조합을 본 환자들은 눈이 커졌다.
바를라가 입을 열었다.
“어르신?”
“다들 잘 지냈나? 몸은 좀 괜찮은지 궁금해서 병문안 왔다네.”
왼쪽부터 차례로 인듀라스, 이오베, 바를라, 쿠라스크가 누워 있었다.
하이애나 수인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 때문에 붙잡혀서 손톱, 발톱 다 뽑혔어. 재수가 없으려니.”
“몸은 괜찮나 보군. 과일이나 까먹게.”
아겔이 소장의 손에 들린 과일 바구니를 잡고 쿠라스크에게 던졌다.
“난 육식인데…….”
“짐승이 아니라면, 주는 대로 처먹게.”
“…….”
긴장된 정적이 흘렀다.
초장부터 쿠라스크가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죄수들이 간수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고, 거기에 고독의 총책임자인 소장이 직접 나타났으니.
신분이 죄수인 이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바를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가 여기에 있는 걸 보니, 어르신께서 주술사를 이기셨나 보군요.”
“그런 셈이지.”
긍정하는 말에 누워 있는 죄수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그 주술사를 처치했다는 말에 조금 놀란 얼굴이 된 인듀라스.
아겔이라면 당연히 이겼으리라 생각했는지 별 반응이 없는 이오베.
성자는 담담하게 받아들였지만, 쿠라스크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늙은이가 주술사를 이겼다고?”
눈을 가늘게 뜬 인듀라스와 이오베가 한마디씩 했다.
“정말 짐승인가. 뇌가 있을 자리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군.”
“주술사에게 졌다면, 영감님이 여기에 찾아올 수 있겠나. 생각이란 걸 하고 살아라, 쿠라스크.”
“아니…… 그냥 도망 온 걸 수도 있잖아. 나한테만 뭐라고 하네.”
쿠라스크가 욕을 처먹어서 그런지 병실의 분위기는 아까보다 조금 나아졌다.
소장은 얼굴을 쓸어내리고 말했다.
“난 나가 있겠다.”
“과일 바구니 배달 고마웠네.”
“…….”
시종 취급하는 장난 섞인 말이었지만, 소장은 자존심 때문에 나가지 않았다.
여기서 나가면 진짜 아겔의 말처럼 과일 배달이나 하러 온 것 같으니까.
그는 한구석에 과일을 한가득 쌓고 먹고 있는 아피스토에게 다가갔다.
과일을 향해 손을 뻗으려니, 아피스토가 주기 싫다는 듯 속도를 올려서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소장은 황당함을 느꼈다.
“늙은이 주위 사람은 정상인이 없군.”
아겔은 그들이 뭘 하든 환자들과 대화했다.
“주술사까지 처리하셨으니, 이제 한시름 놓으셨겠군요. 축하드립니다, 어르신.”
바를라의 말에 아겔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 시작일 뿐일세.”
“원탁이 사라졌는데, 문제가 있습니까?”
“아니. 원탁은 사라지지 않았네.”
원탁은 고독에만 존재하는 집단이 아니다.
어둠의 사도들과 빛의 사도들로 이루어진 곳.
이제는 고독 내부의 적보단 외부의 적을 상대해야 할 때가 왔다.
아겔은 그들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주술사가 어둠의 사도가 직접 보낸 분신체였다는 것부터 이 싸움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잠시 풀렸던 분위기가 다시 경직되고, 처음 듣는 이야기에 그들은 입을 열지 못했다.
쿠라스크의 눈이 흔들렸다.
“어둠의 사도가 당신을 노린다고……? 도대체 그런 괴물들이 왜…… 할 일이 그렇게 없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인듀라스가 고요히 가라앉은 눈으로 아겔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핵심이 뭐지.”
무얼 말하고 싶느냐고 묻는 인듀라스.
아겔이 말했다.
“이대로 나와 함께 있는다면 죽음뿐이란 게지.”
“…….”
주름진 손이 주먹을 쥐었다.
어둠의 사도들은 끝도 없이 아겔을 노릴 것이다.
고독의 주인이 교도소를 감시하는 교단의 정거장을 없애 버렸다면, 이제 이곳엔 평화 따윈 없다.
오직 전쟁뿐이다.
“이곳 고독은 오로지 나를 위해 지어진 곳이라네. 내가 숨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지. 지금이라도 자네들은 이 전쟁에서 빠질 수 있네.”
교도소 전체가 아겔을 위해 지어졌다는 말.
믿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사실이었다.
성자가 말했다.
“우릴…… 고독 밖으로 내보내 줄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겔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죄수들의 시선이 뒤쪽에 있는 교도소장에게 향했다.
고독을 책임지는 철벽.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소장의 모습에 죄수들은 그게 사실이란 걸 알았다.
교단과 척을 지었는데, 이제 그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마음대로 죄수를 석방할 수 있는 것이다.
쿠라크스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난 내보내 줘! 이 X같은 교도소에서 더 있고 싶지 않다고!”
그러자 2명의 따가운 시선이 바로 달라붙었다.
“넌 아마 내보내 줘도 바로 죽을 거다. 아겔 영감의 적이 교단이라고 방금 말하지 않았나.”
“결국, 이곳에서 나가도 우리는 쫓기는 신세가 된다는 거지. 이곳에서 전쟁하든, 밖에서 쫓기든 목숨이 위험한 건 마찬가지다.”
이오베가 침대에서 일어나 아겔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저는 끝까지 당신을 지킬 겁니다.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도망치지 않을 겁니다. 끔찍한 죄악으로 물든 성좌 교단을 징벌하소서, 나의 신이시여.”
광신도의 눈에는 광기가 흐르고 있었다.
교단을 향한 끝없는 적의. 성좌를 믿는다는 이오베의 이러한 행동에 병실 안에 있는 자들은 소리 없이 기함했다.
한 사람의 결정.
다른 사람들도 결정하기 시작했다.
인듀라스가 말했다.
“난 저 멍청이와 달리, 외계에 숨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내보내 주면 나의 권속들과 함께 어둠의 사도들의 행보를 전해 주지.”
직접 전쟁에 개입하진 않지만, 도움이 되겠다는 말이었다.
아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넨 석방하지.”
소장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슈리오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쿠라스크가 머리를 긁적였다.
“제기럴, 그럼 그냥 난 남을래. 어차피 나가도 쫓기다가 뒤질 수도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아겔의 고개가 바를라에게 향했다.
성자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이내 눈꺼풀이 힘겹게 떠졌다.
“저는…….”
그가 결정을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아겔이 한마디 했다.
“나는 자네 목숨의 주인이지, 영혼의 주인이 아닐세.”
“…….”
“하고 싶은 대로 하게.”
아겔의 말에 바를라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전쟁의 부상자를 돌보고 싶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위험할 수도 있네.”
고독 밖으로 나가면 쫓길 수도 있다. 교단은 아겔과 관련된 모든 이를 잡아들이려 할 테니까.
하지만 바를라의 마음은 확고했다.
“괜찮습니다. 제 목숨의 주인이 그걸 바라시는 것 같거든요.”
맑고 확신에 찬 눈으로 아겔을 바라보는 바를라.
노인의 입가에서 미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부탁하네.”
“예…….”
아겔이 환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걸로 전부 결정되었군. 몸이 나으면 다시 보세.”
그가 이런 이야기를 꺼낸 건 다름이 아니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죽은 자신의 오랜 벗.
그로 인해 생긴 마음속 짐. 이들을 향한 마음도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
모두 제각각 내린 결정이니, 아겔은 존중하기로 했다.
노인의 마음속에서 짐 하나가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삐비비비비빅!
갑자기 울리는 경고음에 타이룽이 반응했다.
“이런…….”
재빨리 병실을 나가는 그의 뒤로 아겔이 따라붙었다.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이 있었기에.
타이룽을 따라 도착한 또 다른 병실에는 누군가 누워 있었다.
“줄리안…….”
“커헉……!”
침대에 누워 힘겹게 숨을 내뱉는 줄리안이 있었다.
악마가 그의 영혼을 가져가려는 것이었다.
타이룽이 말했다.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영감. 악마와 영혼을 두고 거래한 것이라 저도 손쓸 방도가…….”
아겔은 대답하지 않고 줄리안에게 걸어갔다.
호흡이 거칠어지는 게 곧 있으면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아겔은 줄리안의 손을 잡고 곧장 내면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악마를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