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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147)화 (148/186)

147화 손길 (2)

줄리안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와 있었다.

어둠이 가득한 자신의 내면. 완전한 애송이였을 적 아겔을 따라 몇 번 들어와 봤던 내면이었지만, 낯설기 짝이 없었다.

“백 년 만에 처음인가?”

그는 문득 아래를 보려다가 이내 고개를 멈추었다.

평소 공포란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언제인지 까마득할 정도였는데, 밑을 보려는 순간 줄리안조차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몰아쳤다.

“아, 밑은 보지 말라고 했던가.”

내면에 들어왔을 때는 아래를 바라보지 마라. 빌어먹을 괴물 노인이 해 준 말이었다.

그 이외에도 아겔에게 몇 가지 배운 게 있었으나,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너무 오래된 일이었다. 노인이 자신을 살려 주었다는 사실도. 보잘것없는 자신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려던 무심한 그 목소리도.

그 이후로 줄곧 입에 물어 왔던 궐련이 내뿜는 검은 연기처럼 기억은 먹먹해진 상태였다.

줄리안의 내면도 다른 자의 내면처럼 크게 보이는 게 없었다.

그저 본인만이 어디가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인지 알고 있을 뿐.

지나온 길에는 과거의 색채가 현란하게 남아 있었고, 줄리안은 그것에 잠깐 눈을 붙였다가 곧 떼었다.

앞길로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고, 지나온 길은 되돌아갈 수 없었으니.

그래서 줄리안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고개 위로는 별이 많이 떠 있지 않았다. 대신 열 개도 되지 않는 별이 환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우선은 위령.

그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 여자.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 내고 싶었지만, 외려 자신을 구해 주고 저승으로 떠나간 아내.

별 중에서 가장 빛나고 있었다.

그다음이 새로이 생겨난 별, 려홍.

자신이 아버지라고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그녀는 확실히 자신의 딸이었다.

지혜롭고 온화한 성격은 제 엄마의 것이었지만, 냉철한 눈매와 날카로운 코는 자신의 것이었으니.

그는 분명 자신의 딸이었다.

이제껏 해 준 것이 없었고, 앞으로도 해 줄 것이 없으리라는 생각에 문득 미안한 감정이 사무쳤다.

그 이외의 별들은 마피아로 살아오면서 쌓은 인연이었다.

별이 많지 않은 것이 그가 제대로 쌓아온 관계가 적다는 것을 증명했다.

숫자만 해도 일만을 훌쩍 넘기는 마피아 클랜을 이끄는 왕.

그러나 정작 내면의 천장에 박혀 있는 별은 채 열 개도 되지 않았다.

줄리안이 자조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게도 쓰레기처럼 살았군.”

왜 죽을 때가 되면 후회한다고 말하는지 이해가 조금 되었다.

지나온 인생은 그 사람의 전부인데, 거기에 먼지 하나, 상처 하나 없을까.

허탈해진 줄리안은 눈을 감았다.

다시 감정을 잠재우고 천천히 들어 올려진 눈꺼풀에는 마지막 별이 있었다.

“아겔라스토스.”

고독에 들어오기 전, 그의 인생은 볼품없었고 그리 길지도 않았다.

사실상 고독에서 살아온 것이 그의 인생의 전부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 자신을 살려 주고 잠시나마 이끌어 주었던 은인.

그가 없었다면, 마피아들의 왕이라 불리는 일도, 위령을 만나는 일도, 그리고 딸을 갖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참 우습다는 감정이 들었다.

아겔이란 사람이 없으면, 자신의 인생이 성립할 수가 없다니.

헛웃음을 지은 그는 아겔의 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노인장. 누구길래 나의 인생을 하나부터 끝까지 세워 나갔는가.”

고독에서 150년을 살아오면서 가끔 마주치기도 했던 아겔이었지만, 줄리안은 그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저 말도 안 되는 어둠의 권능을 지닌 괴물이란 사실밖엔.

어렸을 땐, 잠시나마 그를 동경하기도 했다.

그가 가진 어둠의 권능. 악마와 계약하여 그런 힘을 휘두르는 줄 알고, 자신도 직접 악마와 계약했다.

그리고 그 힘을 사용해 봤을 때가 되어서야 줄리안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 그건 악마와 거래하는 것 따위로 흉내를 낼 수 있는 게 아니었구나.

수많은 사람이 악마와 계약한다. 힘을 대가로 영혼을 바친다. 그리고 악마의 권능에 취한 채로 힘을 휘두른다.

모두 수단으로서 그 힘을 휘두르지만, 줄리안은 아니었다.

동경했던 아겔과 같아지는 것만이 목적이었기에, 그 힘 자체가 목표였다.

그래도 마냥 쓸데없는 짓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악마와 거래하고 나서야 그의 발자취마저도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은 배웠으니.

만약 거래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줄리안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나를 끝장내는군.’

점점 확실하게 느껴졌다.

이 순간에도 악마는 자신의 영혼을 거두기 위해 저 알 수 없이 깊은 심연으로부터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쿵…….

아주 작은 소음이 들렸다. 그러나 그 소음은 줄리안의 내면 전체를 흔들고 있었다.

쿵…….

식은땀이 흐른다. 줄리안은 아래를 바라보고 싶었지만, 또 마음 한구석에서는 절대로 아래를 봐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쿵…….

결국, 그는 고개를 숙여서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확인할 수 있었다.

거대한 악마의 실체를. 세상을 아우르는 악(惡)의 형상을.

“…….”

직접 악마를 보는 건 줄리안도 처음이었다.

마치 인간이 지금의 형태를 갖추기 전, 고대에는 이런 모습이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비정상적으로 마르고 긴 사지에 사람의 것이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두꺼운 갈색 피부.

듬성듬성 난 털은 마치 독약에 담가졌다가 빠진 것처럼 제멋대로였다.

커다란 눈은 인간의 것과 똑같았으나, 색깔이 붉어서 더욱 공포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줄리안은 확신했다.

저 아래에서 기어 올라오는 이놈이 자신에게 힘을 준 ‘분열의 공좌’다.

[줄리안… 아아, 줄리안…….]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공좌.

줄리안은 발길이 움직이지 않아 입술을 꽉 다물었다.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네 보잘것없는 영혼이 얼마나 탐스러웠는지.]

쿵……! 

악마의 거대한 얼굴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커다란 눈이 줄리안의 눈을 직시했다.

[아느냐.]

“…….”

줄리안의 야수와 같은 눈빛이 떨려왔다.

이런 초월적인 존재를 만나고서도 흔들리지 않을 사람은 없다.

적어도 사람이라면, 이런 괴물 앞에서 절망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스플릿…….”

[…….]

줄리안은 악마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그게 그가 내뱉을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악마는 잠시 눈을 감고 줄리안의 목소리를 음미하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가 내게 준 이름이지. 비정하도다. 어찌 난 내 이름조차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가. 너는 내게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을 상기하게 만드는구나. 할 말은 그게 끝이냐.]

줄리안은 소리치고 싶었다.

어서 썩 꺼지라고.

내 영혼은 포기하고 다시 저 끔찍한 심연으로 돌아가라고.

그러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줄리안이 침묵을 지키자, 악마의 기괴한 입이 쭉 찢어졌다.

거대한 손이 줄리안에게 천천히 감겨 들어왔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줄리안보다 컸기에 마치 조그마한 벌레를 쥐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 옳지. 너는 나의 것이다. 이제 이 세상 가장 어두운 곳에서 영생을 누리자꾸나.]

악마와 함께하는 영생.

당연히 좋을 리가 없었다.

줄리안은 발버둥 치고 싶었지만, 악마의 손아귀 힘은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억셌다.

악마가 천천히 타고 올라왔던 어둠을 기둥 삼아,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줄리안은 악을 쓰면서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서 있던 곳이 벌써 저 멀리에 있는 곳이 되어 버렸다.

돌아갈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그의 심장을 통해 절망이란 것이 분출되어 사지 곳곳으로 퍼져 나가는 듯했다.

점점 하늘에서 빛나는 별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는 포기하고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악마의 힘을 사용한 대가.

아무리 고독을 호령하는 강자였다 하더라도, 그 권능을 빌려 쓴 대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이제 와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다.

‘끝났구나.’

줄리안은 흐려져 가는 별빛이라도 눈에 담기 위해 끝까지 고개를 들고 있었다.

별빛은 생각보다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위령과 려홍, 그리고 아겔. 전부 줄리안의 인생에 사라질 수 없는 빛을 꽂아 넣은 사람들이었으니.

그 낌새를 눈치챈 악마가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네게 빛은 없다. 상상으로도 빛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리지 못하리라. 영원한 어둠이 너를 집어삼킬 것이다.]

절망을 주기 위한 악의적인 어조라는 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줄리안은 별빛을 바라보는 눈만큼은 절대로 감지 않았다.

쿵……!

그러다가 별안간 밑으로 내려가던 거대한 악마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누군가 주름진 손으로 줄리안의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메마른 목소리가 들렸다.

“줄리안.”

어느새 나타난 눈에 붕대를 감은 노인이 그를 붙잡고 있었다.

* * *

아겔은 줄리안의 내면에 들어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이나 가만히 서서 고개를 들어 별을 살펴보는 줄리안.

그는 아겔이 근처에 있는데도 보지 못하고 그저 별빛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대개 최후를 맞이하는 인간들이 줄리안과 비슷한 행동을 한다.

악마에게 영혼이 붙잡혀 가는 최악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내면에 들어와 있지 않더라도.

그들은 자신의 마음에 빛을 새긴 이들을 돌아본다.

쿵……!

그렇게 비슷한 형태로 스러져간 영혼들을 떠올리던 아겔은 악마가 올라오는 소리를 들었다.

저 깊은 곳에서 서서히 기어 나와 직접 영혼을 거두러 오는 수확자.

세간에선 일곱 악마라 불리는 자.

이간질과 분열의 왕, 스플릿.

줄리안에게 힘을 주었던 악마가 긴 손가락으로 줄리안의 전신을 붙잡았다.

아겔은 줄리안을 붙잡고 다시 내려가는 악마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제껏 그는 악마들에게 간섭한 적이 없었다.

악마도 그에게 간섭한 적이 없었고.

마치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이인 것처럼 말이다. 분명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도.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겔은 손을 뻗었다.

저 멀리 깊은 어둠 속의 줄리안을 향해 아겔이 한 것이라곤 단순히 손을 뻗는 행위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줄리안의 손목이 붙잡혔다.

[……!]

악마의 몸이 멈추었고, 손목을 붙잡힌 줄리안도 눈을 크게 떴다.

아겔이 말했다.

“줄리안. 왜 악마와 거래했느냐?”

“…….”

한동안 침묵하던 줄리안이 입을 열었다.

무엇을 숨기겠느냐는 표정이었다.

“당신을 닮고 싶어서. 이렇게 하면 당신처럼 될 줄 알았다. 그렇게 올라가면 될 줄…….”

그의 말을 끊고 아겔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정상을 밟은 자처럼 느껴졌나 보구나. 잘못 보았다. 나는 한없이 낮은 곳에 있거늘. 너는 위로 오르려 했으나, 이젠 나처럼 밑바닥으로 가라앉는구나. 이제는 만족하느냐?”

“……전혀. 이젠 내 인생이 허망하게 느껴지는군.”

“사람이 다 그렇다.”

문득 줄리안이 아겔을 쳐다보았다.

“당신은 사람인가?”

“이런 상황에선 실로 어려운 질문이구나. 나는 사람들이 서 있는 곳에 서 있다. 하지만 사람이 없는 곳에도 있었지.”

마치 생각하는 것처럼 줄리안의 눈꺼풀이 닫혔다.

“이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겠느냐?”

눈을 감았던 줄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이제 어디에 계신 분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아겔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가장 아래에 있기에 너를 구원해 줄 수 없다. 위에 있는 자가 끌어 주는 게 구원인데, 나는 가장 아래에 있으니.”

“그럼 내 손을 놔주십시오.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제야 무뚝뚝했던 아겔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가 줄리안의 전신을 붙잡고 있던 절망을 흩어 버렸다.

“또 보자꾸나.”

아겔이 붙잡고 있던 줄리안의 모습이 서서히 흐려졌다.

.

.

.

.

.

줄리안의 내면.

거기에는 두 존재만이 남아 아직 대화를 나누었다.

한쪽은 잔뜩 화가 난 듯 보였지만, 태도에 감정이 드러나진 않았다.

[어째서…… 어째서 그랬지.]

“내 마음이다.”

[…….]

그는 분노로 온몸이 움찔거렸다. 장난감 하나를 놓쳐 버렸으니.

하지만 상대를 해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거역하진 않겠다는 듯 그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다만, 방금 벌어진 일보단 궁금한 것이 있다는 듯 질문했다.

[우리에게 벌을 줄 텐가.]

상대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모든 놈이 가담한 건 아니지만, 방관죄라는 게 있다.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뜻.

[물론이지.]

상대가 붕대를 풀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누가 가담했는지 말해라.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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