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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152)화 (153/186)

152화 수련 (4)

콰득……!

전에 소환했던 것보다 현저히 작은 지네들이었지만, 머리만 해도 사람 머리통 크기와 비슷했다. 마치 아나콘다처럼 길쭉한 지네 두 마리가 탈라스의 다리와 전신을 감싸고 움직이지 못하게 속박했다.

“크아아악……!”

지네가 큰 턱으로 양쪽 어깨를 물어서 안톤과 쿠라스크가 곁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두 사람이 물러나고 아겔이 천천히 걸어와 탈라스의 턱을 붙잡았다.

“이제야 얼굴을 보여 주는구먼.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인가? 얼마나 비싼 얼굴인가 했더니, 딱히 볼 맛도 없는 얼굴이야.”

“……큭큭큭.”

지네에게 양어깨를 물려 독이 주입되는 상황임에도 탈라스는 입가에서 웃음을 흘렸다.

“아겔…… 이 괴물아. 네가 언제까지 이곳에서 왕 노릇할 수 있을까?”

“딱히 왕처럼 지낸 적은 없다만.”

탈라스의 백색 눈에 붉은색 눈동자가 나타났다.

“네가 왕이지 그럼 누가 왕이야…… 빌어먹을 간수들은 전부 네 편의를 봐주고 있지. 나머지 죄수는 모두 절지에 몰아넣고. 큭큭, 새로 들어온 놈들이 없어도 여기엔 아직 남아 있는 놈들만 수천만 명이다. 그 숫자를 황량하기 짝이 없는 절지에 집어넣었으니, 이제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

죄수에 관한 처리는 아겔이 한 것이 아니었다.

모두 카라이스만의 재산. 상품성이 있는 자들은 모조리 기업가의 영역으로 끌려갔고, 아겔의 주변 사람 혹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죄수들은 절지에 몰아넣었다.

아겔은 죄수들의 처우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건 내 탓이 아닐세. 여기가 내 것도 아니고.”

“큭큭, 고독의 주인과 네가 한통속이란 걸 모를 줄 알아? 수십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고독의 주인이 누군지 안다면, 이리 함부로 입을 벌리고 다니지 않는 게 나을 걸세.”

탈라스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모든 게 들통났다. 난 네가 여기서 뭘 하는지 모르지만, 성좌 교단은 네가 여기에 있단 걸 알지. 보아하니 그쪽과 사이가 별로 안 좋은 모양이야. 그렇지?”

실실 웃는 탈라스였지만, 아겔은 무뚝뚝할 따름이었다.

“내가 정말 5년 동안 아무것도 안 했을 것 같아? 너흰 이제 죽은 목숨이야. 날 풀어 주지 않으면, 이 행성이 통째로 가루가 되어 버릴 거다.”

아겔은 탈라스의 말에서 뭔가 느끼고 그의 턱을 붙잡아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성좌 교단과 거래했나?”

“물론이지. 그들이 온다. 아무리 기업가 놈의 함대라도 성좌 교단의 힘을 막을 수 있겠어?”

“호오.”

아겔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현재 고독은 전파를 차단했기에 이곳에서 외부로 연락할 방법은 소장실의 송수신기밖엔 없다.

그것도 오직 고독의 주인, 카라이스만과 대화할 수 있는 장치.

다른 곳으로 연락을 취할 방법은 없었다. 이곳을 떠나지 않는 이상.

탈라스가 씩 웃었다.

“넌 날 너무 얕봤어. 내가 이곳에 있는 놈들만 세뇌한 줄 알았겠지. 이 빌어먹을 교도소 밖에도 내 수족들이 있다.”

아겔은 어떻게 된 일인지 단박에 이해했다.

탈라스의 세뇌에 당한 자가 밖에도 있다면. 거기에서 더 나아가 아예 성좌 교단 관계자라면, 이런 허세를 부리는 것도 이해가 갔다.

확실히 아무런 준비도, 대책도 없이 갑자기 싸움을 걸어온 건 아닌 것 같았다.

아겔이 말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지?”

“날 석방해라. 이 교도소 밖으로 나가고 싶다. 그다음 교단이랑 너희의 문제는 알아서 해결해. 난 그 문제와 아무런 상관없다.”

“그렇게 안 해 주면?”

탈라스가 씩 웃었다.

“넌 산 채로 교단에 잡혀갈 거야. 모르고 있겠지만, 놈들이 이곳을 서서히 포위하고 있다. 이딴 감옥 행성 따위 가루로 만드는 것쯤은 그들에겐 식은 죽 먹기란 걸 알고는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하진 않을 거다. 놈들이 널 잡으러 올 테니까.”

“고독의 주인이 허락하지 않을 텐데?”

“큭큭, 과연 그럴까?”

기업가의 함대를 말하는 것을 눈치챈 탈라스가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침묵하던 아겔이 품속에서 통신 장치 하나를 꺼냈다.

“소장.”

잠시 후, 아겔의 부름에 교도소장이 응답했다.

-무슨 일이지.

“혹시 고독을 지키는 함대에 이상이 생겼나?”

-그런 일은 전달받지 못했는데. 한번 확인해 보겠다.

통신이 끊겼고, 탈라스는 여전히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확인하나 마나 내 말이 사실일 거다. 기업가의 함대는 지금 좀 곤란한 상태일 거야. 교단이 쳐들어오면 단번에 무너질 만큼.”

수신기를 집어넣은 아겔이 말했다.

“함대에 무슨 짓거리를 한 거지? 거기에도 네가 세뇌한 녀석들이 타고 있나?”

계속되는 질문에 불쾌해진 탈라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주도권이 너에게 있다고 착각하는 거야? 웃기는군. 그걸 내가 왜 말해야 하지?”

아겔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지 않으면…….”

콰득……! 콰드드득! 

어깨를 물고 있는 지네의 턱이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끄아아아악……!”

“아마 양팔이 온전하지 못한 채로 나갈 수도 있겠구먼. 아, 상관없나? 자네에겐 수족이 꽤 많을 테니, 팔 없는 것 정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게야. 그럼 다리를 잘라야 하나.”

탈라스가 비명을 지르듯이 말했다.

“그, 그만……! 더 선을 넘으면 혀, 협상은 결렬이야!”

“꼬마야…….”

턱을 붙잡은 아겔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평범한 노인이라고 보기 힘든 완력. 탈라스는 자신의 턱이 부서지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협상이 결렬되면, 너는 죽는 게야. 두 팔이 없어도 숨이 붙어 있는 게 낫지 않겠느냐.”

“끄으으윽…….”

이 자리에 고문을 보기 힘들어하는 자들은 없었지만, 쿠라스크는 끈질긴 탈라스의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그놈, 참 질기네. 씹어도 안 잘릴 것 같아. 내가 속했던 약탈자의 수장이 이런 놈이었다니.”

어느새 백색의 눈에서 다시 원래 눈동자로 돌아온 죄수들.

탈라스의 세뇌 능력이 한 차례 그들을 무너뜨렸지만, 그래 봤자 한순간뿐이었다.

아겔에게 영혼을 바친 이들은 내면이 연결되어 있었기에 정신 능력에는 거의 완벽한 저항력을 지니게 되었다.

아겔이 말했다.

“용기 내서 직접 내 앞에 등장했나 본데, 이런 식으로는 나도 원하는 바를 들어줄 수가 없지. 하루 주겠다. 교단이 언제 고독을 습격할지와 함대에 이상이 생긴 걸 원래대로 돌려놓으면, 소원대로 고독 밖으로 보내 주마.”

탈라스는 탈진했는지 대답이 없었다.

숙였던 허리를 든 아겔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밥 먹자. 준비해 놓았다.”

그 말에 죄수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아겔을 따라 자리를 떴다. 탈라스만이 지네에게 속박된 채로 숲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았다.

.

.

.

.

절지와 달리 정글은 자원이 풍부한 곳이었다.

물론 함정이나 독 같은 것도 수두룩하게 남아 있었지만, 여기 남은 자 중에 그런 것이 당할 만큼 약한 자는 없었다.

이미 당한 자들은 전부 죽었기에.

정글에 남아 있는 자들은 예전보다 현격히 줄어들었다.

아겔이 차려진 상으로 먼저 걸음을 옮겼다.

“홍아에게 받아 온 해산물이다.”

“크으으…….”

쿠라스크의 눈이 돌아갔다.

바다의 진미들이 깔린 상이었다. 허접하긴 하지만, 그래도 모양새는 있도록 깎아 만든 나무 상 위에 어패류와 각종 바다에서 나는 것들이 올라가 있었다.

척 보아도 신선한 것이 군침을 돌게 만들 정도였다.

혓바닥으로 입가를 핥은 쿠라스크가 자리에 앉았다.

“난 초원 출신인데도 이상하게 바다에서 나는 게 맛있더라. 육지 피비린내랑 다른 느낌이라 아주 말이 필요 없어.”

쿠라스크가 상 위로 손을 뻗으려 할 때.

딱!

아리세이아가 휘두른 딱밤에 쿠라스크는 바닥에 대가리를 처박았다.

“캬앗……! 왜 때려!”

“영감님이 손대지도 않으셨는데, 버르장머리 없이 굴지 마.”

아겔은 슬쩍 미소를 짓고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줄리안, 안톤, 아리세이아, 이오베가 따라서 앉았다.

“들자꾸나. 홍아에게 고마운 마음은 잊지 말고.”

“예, 어르신.”

아겔이 먼저 회를 집자, 나머지 사람들도 재빨리 입에 먹을 걸 가져갔다.

깨작거리는 소리가 들려, 아겔이 입을 열었다.

“줄리안. 입맛이 없나?”

“아니다.”

줄리안은 해산물이 익숙지 않은지 통 먹지를 않았다.

“딸이 갖다 준 건데, 잘 먹어야지.”

“……그렇지.”

“딸 생각이 나면, 한번 들리거라. 수련이란 멍청한 핑계로 정글에만 머물지 말고.”

“…….”

잠시 침묵했던 줄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딸인 줄 알면서도 아직 보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천천히 음식 몇 개를 젓가락으로 집는 줄리안의 모습에 아겔은 이번에도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려홍은 아직도 '바다'의 항구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쪽에서 나온 식량을 정글에 보내주고, 정글에서 나오는 육류와 과일도 보내며 교류하고 있었다.

때가 되면 고독 밖으로 보내 줄 생각이었는데, 아직은 나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나가서도 바다 근처에서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궁금해진 게 생긴 아겔이 입을 열었다.

“너흰 나가면 어디에서 살 생각이냐?”

“…….”

갑작스러운 질문에 모두 움직임을 멈추고 아겔을 바라보았다.

“엥?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먼저 다시 움직인 쿠라스크가 마구 회를 주둥이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나가도 평범하게 살 순 없는 거 아니었어? 교단이 우릴 추적할 수도 있다면서.”

“만약 평범하게 살 수 있다면 말이야.”

“우물우물…… 그럼 난 당연히 초원이지! 어디 잘 나가는 행성 하나 잡은 다음에 초원에서 살 거야. 이런 답답한 곳은 당장 떠나고 싶다고. 정글이랑 숲은 내 스타일이 아니야.”

아리세이아가 대답했고, 다음은 안톤과 이오베가 차례로 말했다.

“저는 도시요. 동생이나 저나 편한 게 좋아서요.”

“어르신이 가시는 곳은 어디든…… 이라고 말하고 싶긴 하지만, 굳이 생각해 보면 역시 산이 좋습니다.”

“조용한 산이라면 저도 그렇습니다, 영감님. 인적이 드문 곳에 오두막 하나 짓고 여생을 보내고 싶군요.”

확실히 수인들은 자연을 좋아했고, 아리세이아는 인간들이 밀집한 도시를, 이오베는 사람이 없는 산골을 좋아했다.

마지막 남은 대답을 기다리자, 줄리안이 뻘쭘하게 말했다.

“난 려홍……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다.”

“아주 쓰레기 같은 곳이라도?”

아겔의 물음에 줄리안이 씁쓸하게 웃었다. 

“내가 빈민가 출신이란 걸 잊었나. 어려울 것 하나 없다.”

아리세이아와 이오베가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도시 출신이 아니었나요?”

“나도 그런 줄만 알고 있었는데. 워낙 뭐랄까. 촌티가 아니라 귀티가 흐른다고 해야 하나.”

줄리안은 피식 웃었다.

“그저 도시에 더 익숙할 뿐이야. 살아온 건 도시에서의 시간이 더욱 길었으니.”

그 말대로 절지에는 줄리안이 세운 도시가 있긴 했다. 지금은 사람이 없어서 거의 멸망한 수준이나 다름없겠지만.

고독에 도시를 세운 사람은 려홍뿐만 아니라, 줄리안도 있었다.

부전여전인지, 참.

“그냥 도시가 아니라 아주 음흉한 지하 도시쯤 되겠지, 캬핫핫, 켁켁.”

자기가 한 말에 웃던 쿠라스크는 목에 가시가 걸려 기침을 토했다. 이오베가 한숨을 쉬고 그의 목덜미를 질질 끌고 나갔다.

기침이 가라앉은 쿠라스크와 이오베가 돌아오자, 대화가 재개되었다.

숨을 진정한 쿠라스크가 아겔을 바라보았다.

“근데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거야, 갑자기?”

“그게 너희들을 수련시키는 이유이니까.”

아겔은 앞으로 다가올 전쟁에선 이들이 손을 떼었으면 했다.

그렇기에 더욱 이들이 강해져야만 한다. 성좌 교단은 주술사가 했던 것과 똑같이 아겔과 관련이 있는 자들이라면 누구든지 추적해 올 테니.

힘을 길러서 그들의 추적을 뿌리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물론 빛의 사도나 교단의 추기경급은 물리칠 수 없겠지만, 그들은 아겔에게 온 집중이 쏠려 있을 것이다.

교단의 웬만한 강자를 이길 정도라면, 충분히 한 몸 지키고 사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내가 너희를 수련시키는 이유는 이제 올 전쟁에 데려가기 위해서가 아니다.”

“…….”

예상했던 바와 달랐기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저 너희가 나 없이도 잘 살았으면 했기에 그랬던 것이지. 앞으로는 혼세가 도래할 것이야. 제 한 몸 지키려면 충분한 준비가 필요할 게다.” 

아리세이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또 혼자 하시려는 거군요, 영감님.”

“…….”

“이제는 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가 있잖아요.”

“너흰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 다시는…….”

아겔은 말하다 말고 친우를 떠올렸다. 왠지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다시는 잃고 싶지 않구나.”

“…….”

고독 생활을 하며 긴밀히 지냈던 관계를 잃은 적이 이번뿐만은 아니었다.

이전에도 아겔과 알고 지냈던 자들은 죽어 나갔다. 오직 아겔만 살아남는 그런 과정.

그런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대의를 위해선 감정을 죽이고 살아왔지만, 베르미스가 죽고 나서는 왠지 감정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쿠라스크가 코를 후비며 말했다.

“거 어차피, 저승 가면 다 만날 텐데 뭘 그리 심각하쇼? 저승이 있는 건 다 아는 사실이잖아?”

분위기를 깨는 말에 아겔은 그저 미소를 머금었고, 이오베와 아리세이아가 양옆에서 주먹으로 대가리를 내리쳤다.

곧 불룩한 혹이 두 개 올라온 쿠라스크는 주둥이를 다물었다.

아겔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냥 그렇다는 의미야. 전쟁엔 관여하지 말아라. 난 배부르니, 더 먹다가 치우거라.”

“어르신……!”

안톤도 벌떡 일어섰지만, 줄리안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따라가지 마라.”

“…….”

“어차피 우린 영감과 연결된 몸.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거다.”

그 말에 안톤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줄리안이 상 주변에 앉은 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도 웬만하면 전쟁엔 끼고 싶지 않다. 전쟁은 끔찍한 것이지. 게다가 난 딸도 있는 상황이야.”

“…….”

이곳에서 가장 강한 줄리안의 말인지라 누구도 허투루 듣는 이가 없었다. 게다가 줄리안은 아겔을 제외하고 고독에서 가장 오래 있었던 죄수였으니.

그런 줄리안이 씩 웃었다. 

“하지만 저 노인을 그냥 두고 가면, 그것만큼 패륜이 없겠지. 그렇지 않나. 은혜도 모르는 원숭이 새끼가 되고 싶진 않다.”

모두가 조금씩 놀란 눈으로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아겔 영감과 비교하면 우린 햇병아리, 벌레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힘을 기른다면, 반드시 그를 도울 수 있을 테지. 난 받기만 하는 이 시간은 이제 질렸다.”

동의하듯이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도, 힘도, 그리고 사람다운 삶도. 받은 게 천지인데, 염치도 없이 외면할 생각 없다. 이곳에서 나가면, 인듀라스를 통해 항상 연락할 수 있도록 유지해라.”

줄리안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줄리안은 이들의 리더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마저 먹자. 밤 수련 늦으면, 늙은이가 잠도 안 재울 거다.”

다시 입에 회를 처넣은 쿠라스크가 중얼거렸다.

“쓰벌, 오늘 밤도 졸라 힘들겠네.”

아겔이 없는 상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

.

.

밝은 달이 떠올랐다.

한적한 동산 위에서 바람을 느끼고 있던 아겔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할 말이라도 있느냐. 수련 시간은 지났는데.”

“청승맞기는 당신보다 더한 사람이 없어서 왔지.”

“끌끌, 날 동정하는 게냐?”

옆자리에 앉은 줄리안이 궐련을 꺼냈다.

“우린 언제 내보낼 거야?”

잠시 생각하던 아겔이 입을 열었다.

“가능하면 곧 여기서 내보내야겠지. 사실 이만큼 여기에 있을 수 있었던 것도 기적이나 다름없다. 교단이 공격해 오질 않았으니.”

아겔은 아직 고독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이곳보다 안전한 곳은 없으니까.

하지만 줄리안을 포함한 죄수들은 달랐다. 언제든 나갈 마음이 있으면 아겔이 내보내 줄 수 있었다.

수련을 위해서 남아 있었을 뿐.

줄리안이 궐련 연기를 흡입하고 내뿜었다.

“전쟁을 돕겠다고 하면 어쩔 거지.”

“끌끌, 날 쫓아올 수 있긴 하겠느냐?”

“물론이지. 당신이 늙은이라 모르나 본데. 초광속 비행선은 얼마든지 있다.”

“타고 도망이나 가지, 사지로 가는 늙은이 뒤꽁무니는 왜 쫓는단 말이냐.”

“그게 당신이 가르쳐준 사람다운 삶이라서?”

줄리안이 별거 아닌 것처럼 말했다.

“아니면, 왜 제자처럼 우릴 거둬서 가르친 거지.”

“아까 말했잖으냐.”

“그게 사람처럼 사는 거라면, 사람은 은혜를 아는 개새끼보다도 못한 것이겠군.”

“…….”

아겔이 정색하자, 줄리안이 손을 들었다.

“진지하게 정색하지 마. 그냥 해 본 소리니까. 우리도 교단이 얼마나 지독한지 안다. 나가면 흩어져서 조용히 살 생각이다.”

“그래. 그렇게 하는 게 맞다. 웬만하면 교단 앞에 나타나지 마라.”

스승은 그걸 바라고 있었으나, 줄리안은 씩 웃었다.

마음은 완전 딴판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럴 땐 그냥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고집불통 늙은이의 생각을 꺾을 순 없을 것 같았으니까.

궐련을 다 피운 줄리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 자, 영감. 오늘은 달이 밝다.”

“그래.”

마음 한구석에서는 서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얼추 알고 있었다. 스승과 제자는 그렇게 각자 마음에 품은 것을 지닌 채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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