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154)화 (155/186)

154화 습격 (1)

아겔이 서둘러 통신 장치를 꺼냈다.

그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통신 장치에서 먼저 불이 들어왔다.

-아겔. 무사한가?

소장의 다급한 목소리. 아겔이 대답했다.

“난 무사하네. 하늘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천둥은 아니겠지?”

-……차라리 천둥이었으면 좋겠군.

쿠웅……!

정글 저 너머에서 새하얀 빛줄기가 땅을 강타하는 것이 보였다.

아마 대기권 근처에서 굴절된 레이저 포가 땅을 향한 것 같은데, 당연히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은 모조리 분쇄되었을 것이다.

아겔이 말했다.

“서둘러 수송선들을 보내게. 더 시간을 끌면 위험하겠구먼.”

-알겠다. 그럼 그쪽은 부탁한다.

뚝.

통신 장치가 꺼졌다.

아겔은 부탁한다는 말을 듣고 헛웃음을 지었다.

전함이 쏴 대는 함포 레이저를 어떻게 미약한 인간 하나가 막아 내겠는가.

물론 평범한 인간은 불가능하겠지만, 9급 능력자라면 어찌 견뎌 볼 순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여긴 내가 맡아야겠군.”

땅을 강타하는 빛줄기가 점점 소낙비처럼 많아지는 중이었다. 근처에서도 하나가 떨어졌으니, 수송선이 맞는 건 시간문제였다.

치르르르르…….

아겔의 부름에 따라 녹색 지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송선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크기에 지네들. 10마리의 지네들은 하늘로 솟구쳤고, 그 선두에는 아겔이 올라타고 있었다.

아겔이 손을 펼치자, 커다란 지네들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거대한 몸집의 지네들은 둥그렇게 몸을 말아 떨어지는 함포 레이저로부터 수송선을 지켰다.

콰앙……!

“끄응…….”

지네 한 마리가 레이저에 맞아 꿈틀거렸다. 하나 소멸되진 않았다.

아겔은 불편한 신음을 내며 갖은 힘을 끌어모았다.

죄수들이 안전하게 고독을 떠날 수 있도록 지켜야만 한다.

그저 피해자에 불과한 이들. 실제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왔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이제 아겔이 맞이할 적들에 비하면, 어린애들 장난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니까.

아겔은 하늘을 노려보았다.

보이지 않는 그에겐 온통 까만 하늘이었지만, 함포 레이저들은 번쩍거리며 소낙비처럼 내리고 있었다.

거대한 지네들은 수송선 위에 쏟아져 내리는 소낙비로부터 우산처럼 펼쳐졌다.

* * *

“함대, 들리는가. 함장님.”

-…….

고독의 정글 어딘가.

마치 순백의 기사처럼 전신 갑주를 찬 남자가 통신 장치에 대고 말하고 있었다.

“들리면 응답하라. 여기는 올가미 1. 반복한다. 내 목소리가 들리면 응답…….”

“소용없어요, 단장님.”

옆에 서 있는 부관이 고개를 저으며 단장을 말리려 했다.

그러나 단장은 고집불통이었다.

“들리면 응답하라. 여기는 올가미 1이다.”

한참이나 통신기와 씨름하던 단장은 그제야 통신 장치를 내려놓았다.

그는 대신 검을 잡고 일어섰다.

단장이 일어서자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기사단 전원이 병장기를 차고 일어섰다.

단장의 푸른 눈동자가 휘하 기사들을 둘러보았다.

“고독의 방해 전파 때문에 함대와 교신이 불가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변함없다.”

임무라는 말에 기사단 전원의 눈이 딱딱해졌다. 결연한 표정을 한 그들은 단장을 바라보았다.

“고독의 모든 죄수를 생포한다. 우리는 지도상으로 대륙의 ‘정글’이란 곳에 있다.”

단장은 품에서 기기 하나를 꺼내 홀로그램 지도를 띄웠다. 그곳에 현재 기사단의 위치가 빨간 점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단장은 그것을 가리켰다.

“여기가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다. 그러니 우린 이 정글을 점령하도록 한다.”

대륙의 거대한 한 부분인 정글을 점령하겠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단장.

홀로그램 지도로 봐도 대륙이 얼마나 넓은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하나 넓은 것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한 그의 태도에도 단원들은 불만을 품은 얼굴이 아니었다. 그들에겐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여유로움이 엿보였다.

현재 여기에 있는 사람은 단장과 부관을 포함한 기사단원 102명.

그들에겐 의기와 충성심이 충만하게 차올라 있었다.

“흉악한 교도소의 죄수일지라도 우리 앞에선 떨거지들이나 다름없다. 모조리 사로잡는다. 각 조장은 단원들을 이끌고 사방으로 출발하라.”

“예!”

“성좌님의 가호가 우리와 함께하길.”

“성좌님의 가호가 우리와 함께하길!!”

25명씩 짜인 조에서 조장들이 소리 높여 대답했다.

곧 100명으로 이루어진 기사단은 겁도 없이 정글 사방으로 헤쳐 나갔다.

모두가 사라지자 그 자리에는 단장과 부관만이 남았다.

부관이 말했다.

“후우…… 크록투스. 어떻게든 고독에 침투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번 임무.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런가.”

기사단장, 크록투스는 친구인 부관을 앉히고 품에서 육포를 꺼냈다.

한입 크게 육포를 뜯은 그가 정글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생각하기에 쉽지 않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뭐지.”

부관 다일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

“첫째로 우린 여기에 있는 죄수들의 명단을 몰라. 어떤 강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채 그저 명령만 받고 왔어. 둘째로 사살 명령이 아니라 생포 명령이야. 행성을 아예 부수면 모르겠는데, 이렇게 인력을 써가면서 죄수들을 생포할 이유를 모르겠다. 생포가 더 어려운 법인데. 마지막으로 귀환 가능성. 기업가의 함대를 상대로 100% 승리를 장담하긴 어려워.”

부관의 걱정과 염려를 들은 단장이 피식 웃었다.

“쓸데없는 걱정이야. 교단은 언제나 승리한다. 아무리 기업가나 여타 귀족들의 함대라도 교단의 함대를 막아설 수는 없다. 시간문제일 뿐이지. 생포하란 명령은 복종하면 그만이다. 마지막으로 죄수들에 대해선…….”

“이렇게 기사단을 흩어 놓는 것도 위험할 수 있어. 어떤 녀석이 있는지 전혀 모르잖아.”

확실히 크록투스도 이곳에 어떤 죄수가 있을지는 모른다. 어떤 강자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임무를 수행한다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는 추기경단에서 내려온 명령. 위험하다고 거스를 순 없다.

부관의 염려에도 크록투스는 고개를 저었다.

“13성좌 기사단이 겨우 죄수 따위에게 패배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하겠군. 오히려…….”

“오히려?”

크록투스가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가슴을 엄지로 가리켰다.

“강한 죄수가 있었으면 좋겠군. 사로잡는 맛이 있을 것 같은데.”

부관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미친 싸움광아. 넌 기사단이 아니라 깡패가 어울려. 어려서 골목대장 노릇을 할 때부터 알아봤다.”

“하하, 어렸을 때야 아무 생각이 없었지. 하지만 이제 난 폭력만 내세우는 깡패와 달라.”

크록투스의 푸른 눈이 빛났다.

“우리는 성좌를 따른다. 그거면 된 거야.”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대한 대검을 어깨에 걸친 크록투스는 정글을 향해 나아갔다.

“그럼, 전부 사로잡아 보실까.”

* * *

“끄응…….”

삭신이 쑤시는 느낌이 들었다. 허리를 두들긴 아겔은 아무 바위나 골라서 털썩 주저앉았다.

대기권 근처에서 함대끼리 교전하며 굴절되는 함포 레이저.

그것을 홀로 막아 내기란 여간 삭신이 쑤시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그가 부리던 지네 몇 마리는 함포의 파괴력을 견디지 못해 소멸하기도 했다.

다시 부르려면 몸을 좀 회복해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내상은 없었다.

“처음부터 과격하게 나오는구먼.”

드디어 시작된 교단의 공세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제는 더 어려운 상황에 부딪힐 테니 각오 정도는 해야 할 듯했다.

아겔은 통신 장치를 들어 소장에게 연락했다. 상황을 알기 위함이었다.

“소장.”

-아겔. 마침 잘 불렀다.

“그래. 상황 좀 알아보려고 하네. 말 좀 해 주게.”

목을 가다듬은 소장이 침착하게 상황을 전달했다.

-우선, 교단의 함대가 이곳을 습격했다. 13성좌 기사단이다. 장기전으로 가리라 예상된다고 하더군. 우리 쪽 함대에 실드와 워프 장치가 손상되어 퇴각이 불가능하다. 우리 함대는 고독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천천히 멀어지려 유도하곤 있지만, 기사단 함대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는군.

“장기전으로 간다라…… 양쪽에서 지원군이 올 시간이 충분하겠구먼.”

-그래. 그러면 함대전은 더 길어지겠지. 남은 시간은 놈들에게 좀 시달려야 할 수도 있다.

소장도 아겔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아겔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미 각오했네. 그 시간만 버텨 주면 될 게야.”

-우리 쪽에서도 당연히 최선을 다할 거다. 하지만 모든 걸 도와줄 수 없다. 기사단 인원이 고독으로 침투했다. 아마 죄수들을 생포할 목적인 것 같더군. 서기관과 집행관을 포함한 나는 함대전 지원을 나가야 하니, 알아서 살아남아라.

“그거야 언제나 내 전문이었지. 가서 우주 미아나 되지 말게.”

-……그래. 놈들에게 붙잡히지 마라.

뚝.

소장과 연결이 끊어졌다.

아겔은 통신 장치를 갈무리하고 움직일 준비를 했다.

기사단이 죄수들을 생포한다면, 당연히 목표는 아겔일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고독을 강제 점거한 기업가의 손으로부터 죄수들을 빼낸다는 명목일 것이다.

이 사건을 우주민들도 지켜보고 있을 것이기에.

그러나 교단의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자들은 겨우 죄수들을 잡으려고 기사단을 이곳에 보낸 것이 아닐 것이다.

목표는 오직 아겔.

자신을 붙잡는 것일 테다.

“쉽게 잡혀 줄 생각은 없지.”

하나 숨는 것은 이제 질렸다. 가소로운 것들이 누굴 붙잡겠다고 하는 건지, 똑똑히 알려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아겔은 정글 안쪽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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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 함대가 도착하고 일주일.

13기사단은 정글에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정글을 점령하자는 단장의 포부와 함께 시작된 임무. 첫 시작은 승승장구나 다름없었다.

이곳에 남아 있는 죄수들은 그리 강하지 않았고, 손가락 하나로도 굴복시킬 수 있을 정도였으니.

기사단의 수는 2천 명. 100명씩 점을 찍어 떨어진 기사단이 또 4개의 조로 나뉘어 나아가니 조끼리 마주칠 때마다 일국을 점령하는 것과 같은 기세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호기롭게 정글을 들쑤시고 다니던 기사단이었지만, 지금은 당혹스러운 상태에 빠졌다.

기사단이 한 조씩 괴멸하고 있었기 떄문이다.

“젠장, 마지막 시신 찾았습니다……!”

무거운 얼굴을 한 조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쪽으로 운반해라.”

“예!”

고독의 방해 전파 때문인지 각 조마다도 통신이 불가능했다. 단 5미터만 멀어져도 통신이 안 되어서 조끼리 마주칠 때도 긴장해야만 했다.

그건 괜찮았다. 조심하면 아군을 공격하는 일은 없을 테니. 그러나 지금처럼 조 하나가 괴멸하는 사건이 발생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이곳에 강자가 있다.’

조를 이끄는 조장은 확신했다.

흔적으로 보아서 절대로 많은 무리가 아니다. 대규모 교전의 흔적이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소수의 강자, 혹은 단 한 명의 적이 기사 25명을 몰살했다는 말인데, 그런 자가 약할 리가 없었다.

전우들의 시체를 화장해 주고 온 부조장이 조장에게 말했다.

“조장. 이제 어떻게 합니까? 이대로 가면 저희도 당할 수 있습니다.”

“단장에게 보고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쉽지 않겠군.”

누군가 한 명을 전령으로 쓰면, 그 전령이 습격당할 우려가 있다. 전력의 손실로 이어지는 일.

함부로 결정하면, 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라 조장은 더욱 신중해졌다.

“하나가 안 되면 우리 전부가 전령이 되면 된다. 우선순위를 바꾼다. 이제부터 죄수 생포가 제1 목표가 아니라, 각 기사단을 찾는 것을 제1 목표로 삼겠다.”

“예!”

기사단원들의 우렁찬 대답에 조장은 조금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그가 불안감을 지우기도 전에 정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쉽지만, 그렇게 둘 순 없네.”

깜짝 놀란 기사단원 전원이 검을 뽑았다.

발소리도 기척도, 적의 등장을 파악할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했기에 그들은 경계심을 느꼈다.

금속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메마른 목소리도 들려왔다.

“왜 애꿎은 노인네를 괴롭히는가.”

“멈춰라! 더 이상 움직이면, 적으로 간주하겠다!”

“이미 적일세. 모르겠는가? 자네들의 전우들은 내가 손수 재워 주었네.”

백색 봉두난발 노인의 말에 기사단원들은 분노를 느꼈다. 전우들을 살해했다고 본인이 주장하고 있었으니.

그러나 누구 하나 함부로 나서는 이들이 없었다.

감정을 절제하고 상대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기에.

조장이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누구지. 누군데 기사단을 죽이고 다니는 거냐. 순순히 포박당하면 목숨은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

아겔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네 뭔가 착각하고 있구먼.”

츠르르르르…….

정글 사방에서 사람 머리통 두께를 가진 지네들이 기어 왔다.

“생각을 반대로 돌려보게.”

수십 마리의 지네들을 본 기사단원들은 빠르게 전투 태세를 갖추었지만, 척 보아도 평범하지 않은 지네들의 숫자에 겁을 집어먹거나 패배를 수긍하는 표정이 드러났다.

“이제 누가 누굴 습격하는 건지 알겠는가?”

아겔이 눈앞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지네들이 기사단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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