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155)화 (156/186)

155화 습격 (2)

지네들의 공격으로 전멸한 기사단. 아겔은 고요해진 정글에서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죽은 25명의 기사. 교단 휘하 성좌기사단 소속인 이들은 한 명 한 명이 6급 능력자에 준하거나 그 이상의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이들이 최소 천 명 이상 이 고독에 투입되었다. 

원탁이라는 고독의 정점 집단이 소멸한 이상, 이들을 막을 수 있는 자는 많지 않았다.

신성력이라는 까다로운 힘을 활용하는 데다가 이들은 일대일 대결이 아닌, 전쟁에 특화된 자들이니.

전원 기사로 이루어진 기사단은 전쟁 병기나 다름없었다.

그런 단체를 시작부터 투입하는 것을 보면 교단도 이번 사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거론 안 되지.’

잡혀 줄 생각은 없다. 교단은 아겔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지만, 그의 힘까지 아는 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한 건 이쪽이다. 성급하게 행동할 이유는 없었다.

“천천히 정리해야겠구먼.”

아겔은 걸음을 옮겨 습격할 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

.

.

악마숭배자들이 점거했었던 평원. 정글 중앙에 있는 이곳은 죄수로 들끓었다.

아겔의 비호 아래에 고독에서 탈출했던 자들과 달리, 이들은 남아 있는 죄수들이었고 모조리 기사단에 의해 붙잡혀 온 처지였다.

아겔은 나무 위에서 평원에 있는 자들의 기척을 살폈다.

“생각보다 빠르구먼.”

기사들은 휴식 따위는 필요없다는 듯 쉴새 없이 움직여 죄수들을 생포해 왔다. 평원에 밀집해 있던 죄수들의 숫자만 해도 만 단위 이상.

기사들이 더 적은 수임에도 통제할 힘이 있는지, 죄수들은 반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물론 더러는 반항했는지, 사지 중 하나가 잘려 강제로 굴복당한 자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성좌를 믿는 자들이 같은 사람에게 칼을 겨누는 것을 꺼리지 않는 모습.

모순을 느낀 아겔은 한숨을 내쉬며 습격할 때를 기다렸다.

기사단을 습격하는 이유는 붙잡혀 있는 죄수들에게 동정심이 생겨서 그런 건 아니었다.

놈들의 목적은 ‘생포’다. 표면적으론 죄수 전부를 생포하란 임무가 떨어졌겠지만, 교단의 최고위층이 바라는 바는 그게 아닐 터였다.

바로 아겔의 생포. 그들은 아겔을 붙잡길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겔이 그들에게 순순히 붙잡혀 줄 리가 없었다.

‘놈들의 생각이 바뀔 것을 대비해야겠지.’

욕심이 가득한 그들이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을 즈음엔 이미 늦었다는 걸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조용히 나무 위에서 대기하던 아겔은 아래에서 목소리를 들었다.

-이게 전부야? 이제 죄수 숫자도 별로 안 남았네.

-기업가가 고독을 장악하고 남아 있던 죄수들이 10개월 만에 싹 죽었겠지. 밥도 안 나오고 통제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 이 정도 모았으면, 아마 정글에 있는 죄수는 싹 모은 걸 거야.

-그럼, 다음은 절지란 곳으로 이동하는 건가?

-아마도.

25명이 조가 되는 기사들은 백여 명에 달하는 죄수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죄수들은 기사들의 무력을 보았는지 함부로 반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듯 힘겹게 걸음만 옮기고 있었다.

죄수가 얼마든지 도망쳐도 붙잡을 수 있다는 듯이 기사들은 선두에만 몰려 있을 뿐, 후미나 중앙에서 죄수들을 감시하지 않았다.

아겔은 죄수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후미가 도착할 무렵 나무 위에서 뛰어내렸다.

탓.

조용히 땅에 착지한 아겔은 곧바로 죄수 무리 뒤로 따라붙었다.

맨 뒤에 있는 청년 죄수가 아겔이 새로 따라붙은 걸 눈치챘는지, 고개를 돌려 놀란 얼굴을 했다.

아겔은 손가락 하나를 입가에 가져갔다.

쉿.

평범하지 않은 노인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청년은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이고 긴장한 기색으로 다시 후미에 따라붙었다.

아겔도 마치 원래 있었던 죄수인 것처럼 그들을 따라갔다.

악마숭배자의 평원은 아겔이 정글을 점령하고 죄수들이 머물 수 있는 곳으로 탈바꿈되었기에 사람이 머무르기 쾌적한 장소였다.

아겔이 쓰던 평상이나 쉴 수 있는 나무 벤치, 정자가 있었고, 길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심지어 비를 피할 수 있는 오두막의 숫자도 꽤 많았다.

기사단은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삼은 모양이었다.

앞쪽에서 기사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참나, 정자에 나무 벤치에. 살기 딱 좋게 만들어 놨어, 아주. 우주 최악의 교도소가 맞긴 한 거야? 우리 잘못 온 거 아니겠지?

-그래도 시스템이 아주 괴랄했다고 하던데. 우리도 쉽게 버티지 못했을 거라고 하더라고.

-웃기고 앉아 있네. 내가 여기에 갇혔으면 왕 노릇도 했겠다.

아겔은 기사들의 대화를 귀에 담으며 조용히 죄수 무리에 섞여 이동했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 뭔가 알아보려 했지만, 생각보다 기사들이 아는 게 없다고 느껴졌다.

일부러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는 건지, 그들은 아겔에 관한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대화 내용으로 보면, 그들이 고독으로 온 건 그저 죄수 생포라는 목적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수하들만 보낸 건가?’

먼저 평원에 도착해 있던 가장자리의 죄수 무리 사이를 지나, 어느새 평원 가운데 도착할 수 있었다.

죄수들의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이곳에서 5년 동안 자력으로 살아남은 자들이었지만, 아겔과 같은 처지가 아니라면 쉬운 과정은 아니었을 테다.

전부 서로를 살육하거나 먹을 것을 빼앗고 훔쳐며 살아남은 이들. 원래도 고독은 그런 곳이었지만, 본관이 아닌 대륙에만 놔두니 그런 면이 더욱 심화되었을 것이다.

특히 정글은 자원이 풍부한 만큼 욕심으로 인한 싸움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그 와중에 따로 큰 세력이 만들어지지 않은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살아남은 자들은 이제 기사들의 손에 붙잡히게 되니, 두려움과 공포가 죄수들을 지배하는 듯했다.

아겔은 분위기를 살피다가 앞서가던 자가 멈추자, 그도 발걸음을 멈추었다.

앞에서 기사들이 인원을 파악하고 있었다.

“백, 백일, 백이, 백삼, 백사… 백오……?”

숫자를 세던 기사는 의아함을 느끼고 아겔을 바라보았다.

출발하기 전 숫자는 분명 104명이었는데, 어째서인지 한 명이 늘어났다.

“야, 너 뭐야. 언제부터 있었어?”

아겔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처음부터 있었네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분명 숫자 셌을 땐 없었는데, 언제부터…….”

그가 신경질을 부리려고 하자, 옆에서 나타난 동료 기사가 만류했다.

“야야, 그만해. 피곤해서 헷갈린 것 같은데, 괜히 힘 빼지 말라고. 하나 더 는다고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

“그건 그런데…….”

“곧 단장님께서 말씀하신 소집 시간이야. 숫자 다 셌으면 가자. 조장님이 집합이래.”

“……알겠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 기사는 동료 기사에 의해 자리를 떴다.

기사는 걸어가면서도 힐끗힐끗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기에 아겔은 속으로 웃었다.

‘감이 좋은 친구였구먼.’

운이 좋다면, 살 것이다.

아겔은 이곳을 습격하러 오긴 했지만, 전부 죽이러 온 것은 아니니. 전부 죽인다면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가령, 생각을 바꾼 교단이 고독을 통째로 날려 버린다든지.

행성이 폭파되면 당연히 죽음이기에 아겔은 그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오랜 시간 지내 온 이 교도소에 정이 들기도 했고.

행성이 부서지도록 놔두고 싶진 않았다.

아겔은 중앙으로 집합하는 기사단을 유심히 살폈다.

거의 1천 명에 달하는 인원. 그러나 빈자리가 느껴졌다.

그간 아겔이 몇 개의 조를 습격해 제거했기 때문. 그것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의견을 나누는 기사들의 목소리가 점차 격앙되는 것으로 보아 열 좀 받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범인이 바로 옆에 있다는 걸 알긴 어려울 것이다.

‘기사들이 흩어지면 혼란을 줘야겠구먼.’

아마 범인을 찾기 위해 기사들은 더 큰 무리를 지어 정글을 헤집고 다닐 것이다.

평원에 모인 죄수 집단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뜻.

그때, 거기에 조금의 혼란만 주면 아겔을 찾는 일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죄수들은 사방으로 퍼지고, 다시 기사들은 통제를 벗어난 죄수들을 붙잡아 오게 되고.

혼란과 혼돈이 아겔을 숨겨 주게 될 것이었다.

잠자코 기사들의 말을 엿듣던 아겔에게 뒤에서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 노인장.”

“……?”

아겔이 의아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목소리로 보아 아겔이 죄수 무리에 합류할 때 눈치챈 청년인 듯했다.

“왜 부르는가?”

“……아겔 님이십니까?”

“…….”

그는 단번에 노인이 아겔이란 걸 눈치챘다.

아겔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음. 날 어떻게 알아보았나?”

“평소 위명을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위명은 무슨. 악명이겠지.”

청년은 은근슬쩍 아겔 쪽으로 붙더니 주변 죄수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속삭였다.

“이곳에서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들이 우릴 죽일 겁니다.”

아겔은 청년의 말에 조금 놀라 오 하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나? 저들이 이곳의 죄수를 모조리 죽일 거란 걸.”

사실 확실하진 않았다.

교단이 기사단에게 무슨 명령을 내렸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저들이 한곳에 죄수들을 모은 이유는 아마 다른 게 아닐 것이다. 한자리에 모아 놓고 몰살하려는 것이다.

그게 교단의 방식이었다.

“저도 교단에 대해 조금은 압니다. 지독한 놈들이죠. 종교의 탈을 쓴 악마, 양 흉내를 내는 늑대, 웃는 낯으로 돈을 섬기는 배교자들.”

“…….”

“고독의 상황이 이전과 달라졌음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단의 기사단이 이곳에 왔다면 표면적으로는 바로잡기 위해서겠죠. 당연히 돈은 안 될 테니, 우릴 싹 다 죽이고 새로운 교도소로 옮겼다고 발표하겠죠.”

“자네 통찰력이 괜찮구먼. 이름이 뭔가?”

청년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전 고독에서 태어났습니다. 한 번도 이곳에서 나가 본 적이 없죠. 부모님은 제 이름을 붙여 주시기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갓난아이가 혼자 살아남았을 리는 없는데. 누가 키워 줬나?”

“투기장 교정관 톨먼 님께서 잡일을 시키시고 먹을 걸 주셨습니다. 제게 이름을 주시진 않으셨습니다.”

“그랬군.”

푸른 상어 톨먼. 교정관 중 하나인 그가 이 청년을 키웠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아기일 때부터 돌봤을 것이다.

사람 목숨이 덧없이 스러져 가는 이곳에서 일하는 자이니, 목숨의 소중함도 알 것이었다.

청년이 속삭였다.

“당장 나가야 합니다, 아겔 님. 놈들은 우리에게 허기를 채울 시간도 허락하지 않고 있어요. 여기 계속 있다간 굶어 죽거나, 살해당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재촉하는 청년이었지만, 아겔은 요지부동이었다.

노인이 턱수염을 가다듬고 말했다.

“머리가 아주 총명한 것 같은데, 다른 경우의 수는 생각해 보지 못했나?”

“예? 다른 경우의 수라니…….”

“예를 들면…….”

척. 척. 척.

대화 중이던 아겔과 청년에게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단단한 쇠 각반이 철그럭거리는 소리. 땅이 푹푹 파이며 기사들이 걸어왔다.

“이봐, 너.”

기사 중 선두에 있던 자가 정확하게 아겔을 가리켰다.

“이름을 대라. 넌 누구냐. 어떻게 이곳에 끼어 들어왔지?”

아겔은 청년을 보고 말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죽지 않는 경우의 수 말일세. 난 살고 싶거든.”

“…….”

청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겔이 뭘 하려는 건지 어느 정도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선두의 기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확인해 봐야겠다. 잡아라.”

기사들이 검을 뽑으며 아겔에게 다가왔고, 아겔도 단검을 꺼내 들며 앞으로 걸어갔다.

근처에 있는 죄수들을 전부 덮는 거대한 지네의 그림자가 허공에서 나타났다.

치르르르르…….

“……!”

지네들의 모습을 본 기사들이 한 걸음 물러섰다. 그것이 형상화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상대할 자신이 없는지, 혹은 훈련이 잘된 건지 기사 중 하나가 빠르게 평원 중앙으로 뛰었다.

아겔은 그가 뛰어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알아서 기사단의 단장을 불러와 줄 테니.

“환영하네, 친구들. 고독에 직접 발을 들이다니, 배짱이 장난 아니군.”

“…….”

아겔이 분위기를 환기하는 말을 해도 기사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앞에 있는 자가 누군지는 몰라도 감히 자신들이 덤빌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아는 듯했다.

“여긴 왜 왔나. 그냥 내버려 두면 될 것인데.”

아겔의 질문에 조장으로 보이는 기사가 답했다.

“죄수들을…… 다른 행성으로 압송해야 하니까.”

“왜? 끔찍한 흉악범만 가득한 교도소인데, 그냥 행성 채로 부숴 버리지 않고. 그게 정의와 효율을 중시하는 자네들의 방식 아니었나?”

“…….”

“자네들은 실수한 거야. 이 고독에 발을 디딘 그 순간부터.”

아겔이 한 걸음 걷자, 지네들이 포악하게 턱을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기색에 기사들은 잔뜩 긴장했다.

아겔이 말했다.

“이제부터 내 포로가 되어 줘야겠네.”

아겔의 손짓에 지네들이 기사들이 있는 곳으로 턱을 벌리고 추락했다.

전투에 들어가는 기사들은 전부 신성력으로 전신을 감쌌다.

반딧불과 같은 빛들을 지네의 아가리 속 어둠이 삼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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