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157)화 (158/186)

157화 선전 포고 (2)

은하 정부의 영역 아주 깊은 중심.

교단의 총본산이라 일컬을 수 있는 행성 하나가 있었다.

모든 교단의 일이 결정되는 ‘황금 행성’.

영광이 찬란한 성궁 안으로 누군가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붉은 사제복을 입은 노인 한 명은 그 나이와 기품에 걸맞지 않게 서두르는 기색이었다.

성궁의 수비를 맡은 성기사들은 그를 보고 인사를 올렸다.

“위대하신 성좌께 영광을……!”

추기경은 교단의 핵심 인물들. 우주를 아우르는 교단의 모든 일을 보고받고 처리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웬만한 행성의 대통령보다 훨씬 파급력을 갖춘 인물들이었으니, 그들을 대함에 소홀함이 있을 수 없었다.

“위대하신 성좌께 영광을.”

가볍게 대꾸한 노인은 서둘러 성궁 안으로 들어갔다.

깔끔하게 깔린 황금 대리석을 지나, 승강기에 올라선 그의 얼굴엔 미약한 분노와 당황스러움이 서려 있었다.

“어찌… 어찌 이런 일이…….”

띵.

승강기는 순식간에 최상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걸음을 내디딘 그는 서둘러 ‘추기경 회의실’로 향했다.

안내 기사가 노인의 신원을 확인하고 바로 문을 열어 주었다.

문 안쪽에는 ㄷ자 모양의 책상이 있었고, 수석추기경이 앉는 상석을 제외한 모든 자리가 차 있었다.

수십 명의 추기경은 더러는 홀로그램으로, 더러는 현장에서 참여한 듯했다.

노인은 서둘러 제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추기경이 말했다.

“늦으셨소, 오데이아 경.”

“……서둘렀는데, 늦어서 미안하오.”

“탓하려는 게 아니니, 괘념치 마시오.”

숨을 가다듬은 오데이아는 다시 한번 회의실 내부를 훑었다.

모든 추기경이 모였다.

사회를 맡은 것으로 보이는 추기경이 입을 열었다.

“곧 수석추기경께서 오십니다. 오시는 대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잠시 후, 사회자의 말대로 수석추기경의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상석에 나타났다.

직접 참여하지 못하여 원격으로 회의에 참석한 것이다.

상석의 명패에는 ‘마크 바티스타’라고 적혀 있었다.

추기경 전원이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위대하신 성좌께…….”

그러나 손을 저어 만류하는 수석추기경의 모습에 추기경들은 떨떠름한 얼굴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모여 주어서 고맙습니다.

늙은 목소리가 추기경 회의실에 울렸다.

이곳에서 가장 연식이 깊고 높은 지위에 앉았음에도 부드러운 존대가 스스럼없이 흘러나오는 노인이었다.

추기경들은 잠자코 그가 할 말을 기다렸다.

대개는 이미 상황을 전달받은 자들도 있었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못했기에 마크 추기경이 상황을 말했다.

-상황부터 말해 드리겠습니다. 일전에 고독에 보냈던 기사단 함대가 전멸했습니다.

담담한 말투에 추기경들은 침묵했다.

속으로 경악을 금하는 자들도 있었고, 당혹스러움이 얼굴에 드러나는 자들도 있었다.

“어떻게…….”

“바티스타 경, 고독에 보낸 모든 기사단이 전멸했다는 뜻입니까?” 

수석추기경 마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통신이 두절되었습니다. 기업가의 함대와 맞선 기사단 함대는 전부 추락했습니다.

“고독에 떨어져 살아남았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예. 그럼 다행이지요. 하지만 기사단이 얼마나 살아남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충격적인 일이었다. 고독이란 행성 하나를 접수하지도 못했을뿐더러, 기사단은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았다니.

추기경들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마크가 말했다.

-대신 순교한 기사단장 한 명은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기사단장 한 명……?”

“몇 번 기사단장입니까?”

밖에서 안내 기사들이 문을 열었다.

그들은 관 하나를 들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관 안에는 탈의한 기사단장의 모습이 보였다.

오데이아가 짓씹듯 중얼거렸다.

“에브론드 경…….”

“12기사단장이군요.”

순교한 기사단장의 모습을 보고 추기경들은 안타까워했다.

아니,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짓는 건지 오데이아는 알 수 없었다.

마크가 입을 뗐다.

-순교자를 수습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뒤집어 보십시오.

갑자기 죽은 자를 뒤집으란 말에 추기경들은 당황했지만, 기사들은 능숙하게 죽은 자를 붙잡아 돌렸다.

그러자.

……!

“세상에…….”

“이런 끔찍한……!”

웬만한 일은 전부 겪어 본 노인들도 경악할 만한 모습이 드러났다.

죽은 12기사단장의 등에 날카롭게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아주 정교하게.

그의 등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심판의 날은 다가온다.]

고대 경전의 언어로 적힌 글자.

여기서 그것을 못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누구를 향해 쓴 건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추기경들은 침묵했다.

지금 상황을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머릿속으로 빠르게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침묵에 빠진 추기경들의 모습에 오데이아는 절로 턱에 힘이 들어갔다.

욕심에 사로잡힌 늙은이들.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는 현 상황이었다.

결국, 분을 참지 못한 오데이아가 입을 열었다.

“그러게, 대화를 시도하자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겔라스토스가 고독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대화를 시도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기사단 파병을 주창했던 추기경들이 그 말에 헛웃음을 보냈다.

“대화요? 그자가 우리와 대화하겠습니까? 이렇게 대놓고 선전 포고를 하는데 말입니다.”

그간 아겔라스토스를 찾아 헤맸던 교단이었다.

최근에서야 탈라스라는 고독의 죄수로 인해 그가 여태 고독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사단을 파병한 것이었다.

강경 측 추기경이 입을 열었다.

“고독은 교단의 관리·감독을 받아 왔습니다. 아겔라스토스는 기업가와 손을 잡고 수십 년 동안 그곳에 숨어 있었어요. 우리의 눈을 속인 채로. 복수를 위해 칼을 갈아 왔다고 보는 게 맞겠지요. 그런 그가 우리와 대화를 하리라 생각하십니까?”

오데이아는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루시우스 그레고리 대주교는 10개월 전 기업가의 공격에 사망했다.

그가 죽었던 10개월 전에는 고려하지 않았던 파병이었는데, 아겔라스토스란 인물 하나만으로 기사단 4대를 파견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 또한 쓰레기 같은 일이었고.

오데이아가 말했다.

“시도조차 해 보지도 않고, 그쪽에서 어떻게 나올지 우리가 어찌 안단 말입니까?”

“결과가 눈에 뻔히 보이지 않소. 대화를 요청하러 보낸 자들도 결국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마치 미래를 전부 아시는 듯 말씀하시는군요, 크로스 경.”

“이보시오, 그레고리 경. 지금 날 비꼬는 겁니까?”

수석추기경 마크가 손을 들었다.

-진정하십시다. 이런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수석추기경의 말이었기에 추기경들은 자리에 앉았다.

이후로 회의는 앞으로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 나갈지에 대한 방향으로 잡혔다.

결국, 또 다른 병력을 파병하는 것으로 결정이 나는 듯했기에 오데이아는 입을 다물었다.

저 욕심으로 가득 찬 추악한 늙은이들과 한 마디도 섞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회의가 끝나고, 오데이아는 성큼성큼 걸어 성궁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으로 서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수석추기경님……?”

놀란 눈을 한 오데이아 앞에 마크가 다가왔다.

“화가 많이 났구먼. 얘기 좀 하세.”

입을 꾹 다문 오데이아는 마지못해 그와 함께 걸었다.

회의 때는 홀로그램으로 참석하고 왜 지금은 직접 나온 것일까.

의문이 해소되기도 전에 마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생의 죽음을 애도하네.”

“……10개월 전에도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애도하네. 아직 자네가 놓아주지 못한 것 같아서 애도하고 있다네.”

“…….”

“이제 루시우스를 놔주게. 내세에서 우릴 안타깝게 볼 걸세.”

오데이아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루시우스 그레고리. 오데이아의 친동생이 기업가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당연 강경 측에 나서야 할 오데이아는 반대로 아겔과 대화를 주창해 왔다. 그와 대립하는 건 필연적인 절멸의 길이었으니.

“수석추기경님. 이제 이를 어찌해야 합니까?”

마크도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모른다네. 추기경들은 걷잡을 수 없는 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어. 아마 빛의 사도회까지 움직일 것 같네.”

“사도들까지……!”

“우리가 그들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요청한다면 반드시 움직일 테지. 이 모든 일의 당사자들은 바로 그들이니까. 우리는 그들의 욕심에 편승한 죄를 지었고…….”

“…….”

“항거할 수 없는 심판이 다가오는데,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반드시…… 이 어긋난 욕심을 태워야 합니다. 심판이 오기 전까지요.”

“이제 이건 비단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야. 알고 있잖은가?”

“…….”

의미심장한 말에 오데이아는 고개를 숙였다.

“그저 기다리세.”

하늘을 바라보는 마크의 눈빛은 초연했다.

“심판대에 설 자는 우리뿐만이 아닐 테니, 외롭진 않겠구먼.”

* * *

교단의 공격이 시작되고 일주일이 지났다.

고독의 시간으론 42일, 밖의 시간으론 일주일.

단 일주일 만에 도착했던 세 기사단은 전부 파멸되었다.

밖의 시간으로 3주하고 이틀이 남았다. 기다리던 시간이 끝나기까지.

아겔은 근처에서 잡은 들짐승 고기를 모닥불에 굽고 있었다.

기사단장 크록투스는 갑옷도 벗어 던지고, 대검으로 고기를 먹기 좋게 자르고 있었다.

“금방 익을 테니, 적당히 자르고 자네도 먹게.”

“예, 어르신.”

42일 동안 크록투스는 아겔과 함께했다.

그 자신의 말대로 아겔은 살인마 같은 게 아니었다. 그저 이 고독을 집 삼아 살아가는 한 명의 평범한 노인처럼 보였다.

적어도 크록투스가 보기에는.

그는 크록투스가 싸가지 없다고 말한 12성좌기사단장 외에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다.

전함들은 전부 부서졌지만, 지원군으로 왔던 기사단은 전부 멀쩡하게 정글에 정착(?)했고, 기사단장들도 멀쩡히 사로잡혔다.

물론 그들은 크록투스만큼 대화할 준비가 되진 않아서 지네들에게 구속당한 처지였다.

크록투스는 고기 자르는 일을 멈추고 모닥불 쪽으로 다가와 아겔을 힐끗거렸다.

죄수 압송이란 임무를 받고 온 크록투스는 애초에 그것이 불가능한 임무란 걸 깨달았다.

이 고독을 집 삼은 주인인 아겔이 불허하고 있으니.

그는 딱히 어디로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먹게.”

꼬치 하나를 받아 쥔 크록투스는 후후 입바람을 불다가 아차 싶은 얼굴로 기도했다.

짧게 기도한 그는 눈을 뜨고 말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그래. 잘 먹어야지.”

아겔과 크록투스는 사이좋게 고기를 뜯었다.

한동안 말없이 배를 채우던 그들은 고기를 다 먹고 나무에 등을 기대었다.

조심히 트름을 한 크록투스는 아겔을 바라보았다.

눈에 붕대를 감은 노인. 그러면서도 앞이 보이는 것처럼 행동하는 감당할 수 없는 형상화 실력을 갖춘 자.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 어르신. 그런데 저흰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합니까?”

“포로는 많을수록 좋네. 그래야 놈들이 행성 분열기 같은 것으로 고독을 부숴 버리지 못할 게 아닌가.”

“그렇긴 한데…….”

아겔이 살려 준 기사단은 전부 포로였다.

기사단장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자유로웠다. 손발을 묶지도 않았지만, 어차피 이들은 여기서 나갈 수가 없다.

이들의 역할은 교단이 최후의 수단을 선택하는 것을 방지함에 있었다.

문득 아겔이 입을 열었다.

“자넨 내가 누군지 모르겠지.”

“예. 모릅니다.”

크록투스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는 아겔을 모른다.

임무 사항에도 나와 있지 않았고, 눈에 붕대를 감은 노인에 대해선 들은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고독의 죄수 압송 임무를 맡은 건 반드시 이 노인 때문이란 것을.

아겔이 질문했다.

“항상 궁금했던 게 있네. 나와 친한 이들은 제대로 답해 주질 않아서 말이야.”

“말씀하시죠.”

“혹시 자네 눈엔 내가 악마처럼 보이나?”

크록투스는 당황했지만, 애써 침착을 유지했다.

42일간 지켜본 바로는 확실히 아겔에게선 어둠의 기운이 느껴졌다.

짙은 어둠. 악마와 거래하거나 수하로 들어가지 않은 이상 이런 기운을 가질 순 없었다.

크록투스는 역시 솔직하게 말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악마와 거래하셨겠지요. 악마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그런가. 근데 내가 밉진 않나? 난 자네 기사단원을 죽였는데.”

“……본의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게 목적이었다면, 그건 살인마가 분명했다.

그러나 짧은 시간 아겔을 지켜봐 온 크록투스는 생각했다.

그는 그저 집에 들어온 벌레 몇 마리를 잡은 것뿐이라고.

그만한 격차가 자신과 저 노인 사이에 존재하는 듯했다.

“자네 단원을 죽인 건 미안하게 됐네. 저승에선 편히 지낼 게야.”

“사과를 받아들이겠습니다. 단원들은 순교하여 성좌님의 가호를 받을 테니 걱정하지 않습니다.”

아겔은 소리 내지 않고 웃었다.

기사단장이라길래 꽉 막힌 사람인 줄 알았더니, 어느 정도 유들유들한 면이 있는 남자였다.

아겔의 눈치를 본 크록투스가 긴장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노인장을 잘 모르지만, 그래도 알고 싶습니다. 노인장은 누구십니까?”

크록투스는 아겔이 12기사단장의 등에 글을 쓰는 것을 바로 옆에서 보았다. 경악스러운 행태이긴 했어도 끝까지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고대 경전에 나와 있는 언어로 쓰인 선전 포고문.

기사단장인 크록투스는 그 글자를 얼핏 알아보았고, 아겔의 정체가 혹시 교단과 관련이 있진 않나 생각하게 되었다.

“추측해 보게. 그냥 말해 주는 건 재미가 없지 않은가.”

“……혹시 파면당하신 추기경이십니까?” 

크록투스의 상상력으론 그게 전부였다.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어 추기경직을 박탈당하고 고독에 갇힌다.

교도소에 틀어박혀 복수를 꿈꾸어 악마와 거래했다는 것까지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은근 자신의 예상이 맞으리라 생각했지만, 아겔은 고개를 저었다.

“난 교단 소속이었던 적이 없었네. 평범한 청년이었지.”

“……전혀 평범해 보이지 않으십니다.”

아겔도 자신의 말이 우스웠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거대 지네를 다루고 눈을 붕대로 감고 다니는 노인. 평범하다고 끝까지 밀어붙이려다가 포기했다.

“하여튼 아닐세. 다른 추측은 없나?”

“없습니다. 거의 확신하고 있었습니다만…… 정말 아닙니까?”

“내가 추기경이었으면, 기록에 남았겠지. 안 그런가? 파면 좀 당했다고 교단이 기록을 말살할 리는 없었을 테니.”

“그렇긴 하군요…….”

크록투스는 교단 기록실에서 아겔에 관한 자료를 본 적은 없었다.

기록실에 이 노인에 대한 자료가 있으면, 그것도 이상한 일일 터였다.

문득 뭔가 떠오른 크록투스는 침을 삼키고 질문했다.

“그럼…… 빛의 사도셨습니까?”

“……상식적으로 어둠의 사도냐고 묻는 게 먼저 아닌가? 왜 자꾸 내가 교단에 복수를 꿈꿔야 하는 처지가 되는 건지 궁금하구먼.”

“아, 그런 뜻이 아니라.”

당황한 크록투스를 보고 아겔이 미소를 지었다.

크록투스는 더욱 당황했다. 그의 미소는 어딘가 무서운 느낌이 들었기에. 잘 안 웃던 사람이 갑자기 웃으면, 이상한 기분이 드는 법이었다.

“사실 맞네. 복수라고 말해도 이상하진 않지. 하지만 심판에 가깝네.”

감히 교단을 심판한다는 말에 크록투스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불가능하다.

교단은 어마어마한 권세를 가졌고, 그 꼭대기에 있는 빛의 사도들은 거의 신의 자식들이라고 볼 만한 위세를 가졌기에.

겨우 노인 하나가 형상화 실력 하나 가지고 덤벼들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네. 하지만 능보단 사실이 우선이야. 교단은 죄를 지었네.”

“교단이 죄를 지었다 말씀하셨습니까……?”

“그래.”

“무슨 죄입니까?”

“내 심장을 가져갔지.”

갑자기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 듯 크록투스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드러났다.

그러나 아겔은 진지했다.

“자네. 결혼했나?”

“……예.”

“아이를 두었나?”

“아직은…….”

“그럼, 보살필 가족은 아내만 있는 것이구먼.”

“친인척이 있긴 하지만, 예. 그런 셈이죠…….”

질문을 멈춘 아겔이 고개를 돌리고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죽음 같은 침묵에 크록투스는 진땀을 흘리며 그가 무슨 말이라도 하길 기다렸다.

이제 그냥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아겔의 허락 없인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침만 삼키고 있던 크록투스에게 메마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내를 잘 지켜 주게.”

“예……?”

그 말 이후로, 아겔은 더 이상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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