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크록투스
다음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새벽에 정신을 차린 아겔은 조용히 마음을 다스렸다.
곧 시간이 다가온다.
힘을 잃고 한계에 달한 육체였지만, 그때까지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을 듯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일어나 있는 아겔에게 수풀 속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기침하셨습니까?”
“잘 잤네.”
기사단장 크록투스가 나타나 인사를 건넸다.
약 한 달을 넘기는 시간 동안 같이 생활했기에 이젠 스스럼이 없었다.
아겔이 말했다.
“식사 준비해 오게.”
“예.”
크록투스는 불평불만 없이 아겔의 말을 따랐다.
자긍심 넘치는 교단의 기사단장인 그였지만, 그의 말을 따르는 데 불만 따위는 없었다.
거슬리면 붙잡혀 있는 자신의 수하들이 모조리 죽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
그러나 크록투스는 그가 절대로 자신과 다른 기사들을 죽이지 않으리란 확신이 생겼다.
단지 한 달간 함께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도 말이다.
포로라는 명분을 둘째치고, 그는 애초에 살인을 즐기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망설이는 사람도 아니지. 필요하다면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여 버릴 수도 있는 노인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크록투스는 헛웃음을 지었다.
사실 본인도 똑같다. 이단이라 규정한 악마숭배자들을 여태껏 얼마나 베어 왔는가.
악마와 거래한 이들, 거래는 안 했어도 그 밑에서 일해 왔던 자들.
교정·교화의 효율이 떨어진다 하여 얼마나 많은 이들을 살해해 왔는가. 그런 의미에서 크록투스는 자신이 아겔을 비난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건 인식하고 있었다.
‘어쨌든.’
크록투스는 아겔을 자극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기사단장이란 자존심은 내려놓고 그를 존대하며 시키는 일을 했다. 당연히 죽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성좌를 믿는다고 해도 이승에서의 삶을 오래 누리고 싶은 건 사람 본연의 욕구라고 생각했다.
그게 그리 나쁜 것도 아니고.
‘어쩌면 그래서 그런 걸까?’
저 노인이 자신을 곁에 두는 이유.
누가 봐도 거룩한 성좌기사단의 자랑스러운 기사단장이라기보단, 자신은 그저 명령을 따르는 솔직한 군인이라고 보는 게 더 알맞았기에.
곁에 둔다고 딱히 큰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하여튼 아겔은 어려운 일을 시키지 않았다.
다만, 식사를 준비하라는 말만 반복했고, 이상하게도 그는 크록투스를 제외한 다른 사람과는 절대로 함께 식사하지 않았다.
고독에 침투한 기사단 수천 명 중에 오직 크록투스와 식사를 할 뿐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글에 사는 못생긴 몬스터를 잡아 도축하는 크록투스였다.
그냥 먹으면 맛이 없는데, 도축하고 고기를 손질하는 법 전부 아겔에게 간단히 배웠다.
그 본인의 말대로 정말 이 교도소가 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노인은 모르는 게 없었다.
식사를 가져가자, 명상하고 있던 아겔이 바위 위에서 내려와 모닥불 쪽으로 다가왔다.
“이제 쓸 만하게 차리는구먼.”
“예. 많이 드십시오, 어르신.”
아겔은 식사할 때, 그리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게걸스럽게 먹지도 않고, 묵묵히 먹기 좋게 구워진 고기를 하나씩 입에 넣을 뿐이었다.
크록투스는 그가 고독이 정상적인 상황일 때도 이렇게 식사했을 것 같다고 확신했다.
절대로 서두르지 않고 평범하게 식사할 뿐이지만, 왠지 모르는 품격이 있는 식사였다.
아겔은 식사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에야 입을 열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온 크록투스에게 아겔이 말했다.
“앉아 보게. 소화할 겸 수다라도 떨어야겠으니.”
“예.”
밥 먹고 대화하는 건 아겔만의 루틴 중 하나인 것 같았다.
크록투스는 대개 그가 질문하는 걸 답하는 형식으로 말했다.
“자네 형제가 있나?”
“아, 음. 이복형제들이 있습니다. 제 어머니는 저만 낳으셨습니다.”
“아, 그런가. 어머니는 잘 있고?”
“어머니께선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께선 아직 정정하십니다.”
아버지란 단어를 언급하는 순간, 크록투스의 눈에 자긍심과 더불어 숨겨진 열등감, 그리고 알 수 없는 감정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가정 얘기 좀 해 보게. 남의 가정사가 재밌는 법이니.”
“남 가정사를 묻는 게 쉬운 나이시군요…….”
“그런 셈이지. 나도 꽤 오래 살았네.”
숨을 가다듬은 크록투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의 열세 번째 측실이셨죠.”
“열세 번째? 평범한 집안이 아니구먼. 열세 번째라면 아비되는 친구가 굉장히 오래 살았겠군. 그렇다면…….”
크록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 아버지는 빛의 사도이십니다.”
폭탄 같은 발언에도 아겔은 전혀 당황한 기색이 아니었다.
아겔이 담담한 얼굴로 일관하자, 오히려 크록투스가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안…… 놀라십니까?”
“빛의 사도고 뭐고, 그게 어쨌단 말인가. 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가정사를 듣고 있을 뿐인데.”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예상치 못한 답변에 크록투스는 서둘러 표정 관리를 하고 말을 이었다.
“아…… 예. 계속 말씀드리자면, 저는 형제 중에서도 못난 놈이었습니다.”
측실을 여럿 두고 있는 빛의 사도. 자식들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빛의 사도라는 어마어마한 뒷배경. 당연히 특출난 이들이 속속들이 탄생했다.
그러나 크록투스는 아니었다. 그중에서 어떻게든 기사단장의 자리까지 올라섰지만, 형제들이 이뤄 낸 성취에 비해선 다소 손색이 있는 느낌이었다.
아버지에게 주목을 받지도 못하고 있었고.
크록투스가 자조적인 어투로 말했다.
“곧 추기경의 직위에 오르는 형제도 있고, 성좌기사단 수석 기사단장도 있습니다. 그 두 명에 비하면 전 아무것도 아니죠.”
“성좌기사단의 한 수장이라면, 그리 낮은 지위가 아닐 텐데.”
“상대적으로 말입니다.”
“뭐, 그렇군.”
더는 말하기 힘들었는지, 크록투스는 이야기를 멈추었다.
아겔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는 잠시 침묵을 즐기다가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자넨 왜 내가 자네와만 식사하는지 궁금하지 않나?”
크록투스는 당연히 궁금했다.
가정사 이야기 때문에 침울했던 기색이 사라진 그는 아겔에게 질문했다.
“물론 궁금합니다. 저도 제 수하 놈들과 떨어져 계속 어르신과만 식사해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지경입니다.”
“끌끌, 역시 솔직해서 좋구먼.”
가끔 진심으로 말할 때마다 뭔가를 긁는 듯한 음색으로 웃는데, 크록투스는 항상 소름이 돋았다.
아겔이 말했다.
“난 원래 겸상을 잘 안 한다네. 왜 그런지 아는가?”
“식사는 아주 중요한 일이죠. 생존에 관해서는.”
“정답일세. 내가 밥 먹고 있을 때, 같이 먹던 놈이 갑자기 내 눈을 찌를지 어떻게 알겠는가?”
“……이미 눈이 없는 거 아니었습니까?”
“예끼. 말이 그렇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난 오직 친구와 겸상하는 편일세. 내가 식사하는 동안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과만 겸상한다 이 말일세.”
크록투스의 눈이 커졌다.
“그럼…… 저를 친구로 생각하신단 말씀이십니까?”
아겔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
“…….”
“이제 본 지 겨우 일주일 조금 지난 사이에 무슨 친구인가, 친구가. 자네가 내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럼, 도대체 왜…….”
“하지만 친구가 될 수도 있겠지. 죄수와 기사단장 친구라. 멋있지 않은가.”
“…….”
크록투스는 당황했다.
도대체 이 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가끔 의미 없는 선문답 같은 말을 할 때도 있지만, 그가 해 주는 말이 가슴에 와닿을 때도 있어서 경청해 왔는데, 지금은 특히나 당황스러웠다.
“자넨 나와 친구 하고 싶지 않나?”
하기 싫다고 하면 맞아 죽을 것 같아서, 크록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의 실책을 인지했는지, 곧 ‘아’ 하며 급하게 말했다.
아겔은 맹인이었으니까.
“다, 당연히 하고 싶습니다. 친구.”
“감히 나와 친구를 하겠다는 건가? 자네 몇 살인가. 새파랗게 어린놈이.”
“…….”
“하지만 친구 사이는 나이를 초월하지.”
크록투스는 미칠 지경이었다. 도대체 노인이 뭘 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눈을 질끈 감은 그는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 하시죠.”
·…….
잠시간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기에 눈을 꼭 감았던 크록투스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아겔은 잔잔한 미소를 띠며 그를 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크록투스였다.
물론 그렇게 화난 모습은 아직 본 적이 없긴 했지만.
아겔이 입을 열었다.
“좋네. 자네 나와 친구 하지.”
“……그, 그럼 된 겁니까?”
“아니. 친구가 되기 위해선 아주 중요한 절차가 필요하다네.”
아겔이 일어서서 크록투스 곁으로 걸어왔다.
크록투스는 본능적으로 움찔했지만, 가까스로 몸을 통제해 그를 피하진 않았다.
여기서 피하게 되면 무안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침을 꼴딱 삼킨 그는 아겔을 바라보았다.
“무슨 절차가 필요합니까……? 깍지 끼고 약속 같은 거 합니까?”
“그런 정도의 절차이긴 하지.”
“뭡니까, 그게.”
아겔이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나에게 영혼을 바치게.”
“…….”
크록투스는 할 말을 잃었다. 갑자기 영혼을 바치라니.
잔잔한 말투만 아니었으면, 악마가 했을 법한 제안이었다.
혼란스러운 정신을 간신히 붙잡은 크록투스가 말했다.
“그, 그게 친구가 되기 위한 절차가 맞습니까?”
“상식적이진 않지. 하지만 나와 친구 한 걸 후회하지는 않을 걸세. 고독의 직원들조차 나와 진정한 의미의 친구가 되진 못했지.”
“그런…….”
아겔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아무에게나 하는 권유가 아닐세. 코르브스.”
아겔이 손가락을 튕기자, 어디서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렸다.
평범한 까마귀 하나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날아와 아겔의 어깨에 앉았다.
크록투스는 의아한 얼굴로 까마귀를 바라보았다.
“그건…….”
까마귀가 바로 입을 열었다.
“그거? 너 지금 나한테 그거라고 했냐?”
땅에 가볍게 내려선 까마귀가 갑자기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아무런 소음이나 위화감도 없이 2미터 크기의 까마귀가 된 코르브스였다.
크록투스는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곁에 둔 대검을 잡고 일어섰다.
'무슨 기운이……!'
사악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어두운 기운.
까마귀 가면을 쓴 2미터 키의 남자에게서 흘러나오는 힘이었다.
“내 친구, 코르브스일세. 인사하게. 나와 친구가 되면, 코르브스와도 친구가 되어야 할 테니. 이쪽은 크록투스다.”
“주인님. 이런 덜떨어진 놈을 받아 주시는 겁니까?”
“네 오성이 뛰어나다고 함부로 타인을 깎아내리면 안 된단다.”
“죄송합니다.”
걷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빠른 속도로 다가온 코르브스가 손을 내밀었다.
크록투스는 긴장한 기색으로 그를 살폈다.
목에 쓰여 있는 ‘9’라는 낙인.
그건 코르브스가 9급 죄수라는 뜻이었다.
행성도 부술 수 있다는 능력자 중 하나라는 뜻.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이런 괴물 같은 자와 친구라고……?’
까마귀 수인은 아겔을 주인님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아겔이 더 강하다는 말인데.
망설이는 순간, 코르브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민망하게 할 거야?”
“아…….”
얼떨결의 그와 날개 같은 손을 맞잡은 크록투스는 그가 흔드는 대로 팔이 덜렁덜렁 흔들렸다.
코르브스는 그의 손을 놓더니 다시 아겔의 뒤로 물러갔다.
“영…… 쓰레기 같은 놈은 아니군요. 쓸데없이 밝습니다.”
“그런 편이지.”
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크록투스는 그저 침만 삼킬 뿐이었다.
아겔이 손짓을 하자, 코르브스는 다시 조그마한 까마귀가 되어 정글로 날아갔다.
“분신체일세. 본체는 고독 본관에 있지만, 부르면 오는 편이지.”
“아, 예. 그렇군요.”
평범함과 거리가 먼 노인과 평생 한 번 보기도 어려운 까마귀 수인과의 대화에 크록투스는 진땀을 흘렸다.
마음을 진정시킨 크록투스가 본론으로 돌아왔다.
“그럼…… 영혼은 어떻게 드리는 겁니까?”
“됐네.”
“예……?”
“이미 가져갔다고. 그러니까 가 보게. 이제 혼자 있고 싶으니.”
“아, 예…….”
더 이상 대화하면 정신이 나갈 것 같았기에 크록투스는 속으로 충성의 성좌 이름을 부르며 물러났다.
아겔은 조용히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스스슥.
아까 사라진 줄 알았던 코르브스의 분신체가 숨어 있던 수풀 속에서 수십 명이나 나타났다.
“이제 보니 꽤 쓸 만한 놈이군요.”
“알겠느냐. 사람을 볼 땐, 항상 주의 깊게 시간을 들여 봐야 한단다.”
“그래서 영혼을 취하신 겁니까?”
“길잡이는 한 명 필요할 게야. 이제는 우리가 움직여야 할 테니.”
코르브스가 고개를 끄덕이고 손뼉을 쳤다.
“역시 탁월한 혜안이십니다, 주인님.”
크록투스가 이미 보이지 않았지만, 아겔은 한동안 그가 사라진 곳을 보고 있었다.
어둠뿐인 그의 시야 사이로 감추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게 빛나는 빛이 옅어지고 있었다.
아겔은 그의 빛을 손에 두고 이리저리 굴려 보았다.
“뭐, 나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지만.”
“그거야, 주인님이라서 그런 거겠죠.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빛의 사도들이 직접 올 겁니다. 아들이 여기에 있는데, 두고 보기만 하진 않겠죠.”
“글쎄다.”
아겔은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요샌 아비 같지도 않은 것들이 아비 노릇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놈들이 오면, 감당할 수 있을까요?”
코르브스의 질문에 고개를 다시 내린 아겔이 수풀 쪽으로 걸어갔다.
“감당해야 할 건 그쪽이 될 게다. 좀 걷자꾸나.”
노인이 걷는 방향으로 수십 명의 까마귀 수인이 천천히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