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빛의 사도 (1)
언제나처럼 아겔은 조용히 명상하고 있었다.
내면의 어둠을 걸어가는 과정. 이제는 그 과정도 끝을 바라보는 시기였기에 조급한 마음은 일절도 없었다.
66년의 세월이 한순간처럼 흘러가는 와중, 마음속에 품은 뜻은 한결같았으나 목숨이 위험한 순간도 많았다.
죽음이 두렵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죽음을 맞이한다면 또 이 시간을 홀로 두어야 했지만, 그래도 정해진 결과는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여태껏 걸어온 길이 있는데, 실패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겔의 심정이었다.
멋들어지게 심판의 경고를 보내 놨는데, 놈들이 저승으로 가기 전에는 혼내 줘야 할 테니까.
한차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던 아겔은 뒤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내와 자비.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생각하여 온 겐가?”
“…….”
대답은 쉬이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화려한 광채도, 눈부신 휘광도 없다.
그저 원래 있던 것처럼 그 자리에 나타난 두 남녀는 경직된 모습으로 아겔을 바라보았다.
“딱히 할 말이 없다면, 오랜만에 실력 확인 좀 해야겠군.”
둘 중 하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남자였다.
“오랜만이요, 아겔라스토스. 정말 살아 있을 줄은 몰랐군.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젊은 청년의 목소리였지만, 말투에는 강자만이 낼 수 있는 일종의 느긋함과 아겔이라는 사내 앞에서 느끼는 떨리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거야, 자네들이 날 죽었다고 단정했으니까 그런 것 아니겠나.”
“…….”
“아,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인가?”
아겔이 뒤를 돌아 두 사람 쪽으로 몸을 돌렸다.
백의를 입고 있는 남녀는 조금 불안한 기색으로 아겔을 바라보았다.
여자 쪽이 먼저 꾸밈없는 목소리로 진실하게 말했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죠.”
“왜.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나?“
“예. 얼마 전 온 선전 포고문을 읽고서요.”
“어둠의 사도들과 전쟁 중일 텐데, 어째 내가 보낸 편지를 읽고 가장 먼저 도달했구먼.”
전쟁 이야기가 나오자 두 사람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두 사람은 원래 있어야 할 전선에서 이탈해 지금 고독에 온 것이었다. 전쟁보다 눈앞에 있는 이 노인이 더 중요한 사안이었기에.
나무 한 편에서 졸고 있던 코르브스가 그제야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순식간에 정글의 나무들 사이로 수십 명의 까마귀 수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흰 누구냐?”
아겔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와서 인사나 나누거라.”
코르브스는 주인의 말인지라 거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왔다.
분신체 중 하나를 앞세운 그는 두 남녀를 바라보았다.
감히 그 끝을 알 수도 없는 힘의 소유자들이었다.
여자는 허리에 찬 검을 휘두르면 자신의 몸이 단숨에 쪼개질 것 같았고, 남자는 무기 같은 게 없는 행색이어도 이길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강자들이었고, 아겔이 경계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기에 코르브스가 먼저 예의를 갖추어 자신을 소개했다.
“아겔라스토스 님을 모시고 있는 코르브스라고 합니다다.”
“반갑네. 아킬란 헤가투스라고 하네.”
“베로니카 케일이에요.”
남녀가 순서대로 자신을 소개하고 코르브스와 악수했다.
평범한 인간처럼 보였지만, 먼지 하나 묻지 않은 백의와 경건한 기도가 평범한 이들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었다.
코르브스가 물었다.
“빛의 사도들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부족하게도 저는 인내, 이쪽 아킬란은 자비의 사도입니다.”
간단한 소개였지만, 그 말에 담긴 무게는 그렇지 않았다.
코르브스는 긴장한 기색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겔이 그를 뒤로 물렸다.
“내가 키우는 까마귀일세. 재롱부리는 게 재밌어서 데리고 다니고 있지. 넌 이제 물러나거라.”
“예, 주인님.”
코르브스는 아겔의 명령에 따라 물러났다. 까마귀 수인들도 다시 나무 뒤로 모습을 감추며 조용히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정글의 그림자 곳곳에서 아겔과 두 사람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아겔이 말했다.
“대놓고 내게 오다니, 한 판 하자는 겐가?”
아킬란이 저음으로 답했다.
“……그러려고 온 건 아니요. 그저 경고하러 왔지. 다른 빛의 사도가 이곳에 오고 있소.”
“그놈도 내게 두들겨 맞겠지. 자네들과 똑같이 될 게야.”
베로니카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아겔라스토스. 선전 포고를 철회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내가 왜? 그럴 이유가 하등 없는데.”
“……피로 우주를 물들일 생각이십니까?”
“아니지.”
아겔이 손바닥을 폈다. 그러자 검게 물든 손바닥이 드러났다.
“자네들이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렸으니, 혼돈이 찾아올 차례이지.”
“혼돈과 어둠으로 찬 세상이 어떻게 유지되겠습니까. 사람들이 앞을 분간하지도 못할 겁니다. 부디 거두어 주세요.”
“어둠이 무서웠다면, 빛을 지우지 말았어야지.”
“…….”
아겔의 말에 두 사람은 반박을 펼칠 수가 없었다.
그들이 100년 전, 사도 전쟁 때 행한 일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자 앞에서.
이것은 이 드넓은 우주에서 채 100명도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사도 전쟁에서 그들이 승리했는지.
아니. 사실 승패는 관련이 없다.
어떻게 이 드넓은 우주에서 그들이 패권을 공고히 할 수 있었는지.
아킬란이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아겔이 가로막았다.
“장기 말이었다 변명할 생각이라면, 치우게. 차라리 자결했어야지.”
“…….”
“원탁에 들지 않았다 해서 내가 자네들을 용서해 주리라 생각한 겐가?”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소. 죄에 합당한 대가는 치를 생각이었지. 하지만 과도한 심판으로 이 우주가 다시 피바람에 휩싸이는 것은 막고 싶소.”
“참으로 어리석구나. 내가 과도하게 심판하리라 생각하는 자네들도, 이미 엎지른 물을 주워 담겠다는 그 생각도.”
세 사람이 대화하고 있을 무렵, 누군가 나타났다.
크록투스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생시인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문질러 눈곱을 떼었다.
“아킬란 님……? 베로니카 님……?”
크록투스는 빛의 사도 중 한 명의 자식이었기에 다른 빛의 사도들을 알아보았다. 기사단장직을 맡으면서 그들의 얼굴을 직접 보기도 했고.
평소 광채와 휘광이 어린 모습과 달랐기에 살짝 긴가민가했으나 가까이서 보니 두 사람은 확실했다.
이토록 기사단장이란 직책은 빛의 사도를 직접 대면할 수 있을 정도로 낮은 위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왠지 아겔 앞에만 서면 낮아지는 기분이었다.
그가 살아 있는 것을 본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살아 있었구나, 13기사단장.”
“아, 예. 아겔 어르신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자비를 베풀었다는 말에 아킬란의 얼굴이 떨떠름해졌다.
사도의 자식이 많긴 했어도, 어쨌든 죽지 않았다는 말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겔이 말했다.
“왜. 내가 교단에 관련된 인물이라면 모조리 척살하리라 생각했나?“
“사실 그랬습니다.”
“사실 그럴까 고민 중이었다네. 저 친구도 겨우 살려 놨지.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
아킬란과 베로니카는 입을 다물었다.
답을 구하고자 묻는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아겔이 마음을 돌릴 가능성은 전혀 없었으니까.
베로니카가 말했다.
“6개의 기사단을 거느린 충성의 사도가 오고 있습니다. 보아하니 아직 완전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감당할 수 있으십니까?”
조금은 도발적으로 말해 현실을 직시하라는 의미가 담긴 어투로 말하는 그녀였다.
하나 아겔은 현실을 아주 똑바로 보고 있었다.
“내가 키우는 까마귀도 똑같이 말하던데, 감당이 가능하겠냐고.”
“…….”
아겔이 뭐라 말하려는 찰나, 그늘진 숲에서 까마귀 목소리가 들렸다.
“까악-! 사도들이야말로 우리 주인님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
싸늘한 침묵이 장내를 감싸고 돌았다.
아킬란은 자비로움으로 까마귀를 용서했고, 베로니카는 인내했다.
아겔은 끌끌 웃었다.
“재롱부리는 게 귀엽지 않나. 진실만 말하는 것도 아주 볼 만하지.”
“그렇다면…….”
베로니카가 검을 뽑았다.
인내의 사도가 뽑는 검.
일검에 행성을 갈라 낼 위력도 낼 수 있는 그녀의 힘을 알고, 크록투스는 엉거주춤 뒷걸음질 쳤다.
아겔의 목소리가 그의 몸을 굳게 만들었다.
“자넨 여기 가만히 있게.”
베로니카가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우리가 부딪치면, 기사단장은 살아남지 못합니다.”
“내기할까. 과연 살아남지 못할지.”
“사람 목숨을 내기로 걸 순 없습니다.”
전혀 물러서는 기색이 아니었기에 아겔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했다.
“나와 싸우는 걸 꺼리는 게 아니었나?“
검을 든 베로니카가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당연히 꺼려집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위해서라면.”
아킬란도 싸울 생각인지, 자세를 낮추었다.
“무자비가 중생들을 살육하진 못하게 해야겠소.”
“좋군. 해보세.”
크록투스는 뭔가 변화했다는 것을 감지했다.
이곳에 서 있던 자들이 조금씩 긴장을 푸는 듯한 기색은 눈치챌 수 있었다.
마치 거인이 잘 꾸며진 대로를 조심스럽게 걷는 듯한 기색에서 이젠 당당하게 걸음을 내디딜 것 같은 기분.
아겔은 언제든 오라는 듯 편한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쉽사리 아겔에게 덤벼들지 못했다. 그들은 힐끔 크록투스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긴장되는 싸움 직전에 사도들이 자신을 바라보자, 크록투스는 당황했다.
코르브스가 나타나 커다란 날개로 크록투스의 시야를 가렸다.
“아직은 볼 때가 아니야.”
그 순간, 크록투스가 인지할 수 있는 건 주위가 어두워졌다는 사실 뿐이었다.
마치 방 안에 스위치를 내린 것처럼 어두워졌고, 깃털 사이로 간간이 빛이 어둠을 터뜨리고 빠져나오는 게 보였다.
코르브스가 깍깍거리며 조그맣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조금씩 훔쳐보는 게 제맛이지.”
커다란 날개의 깃털 사이가 조금 벌어졌고, 크록투스는 저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엿볼 수 있었다.
그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거대한 지네 같은 건 나타나지 않았다.
.
.
.
땅이 흔들리는 굉음이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진 않았다.
그저 사위가 아무것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어둠에 휩싸였고, 눈이 멀 듯 한 광채가 그 어둠 속에서 터져 나왔다.
크록투스는 하나도 빠짐없이 그 빛과 어둠 속에서 격돌하는 세 사람을 눈에 담았다.
눈이 멀 것 같아도 이건 꼭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사도들의 싸움……!’
사실 사도들과 안면이 있다곤 하지만, 그들이 싸우는 모습은 직접 본 적이 없던 크록투스였다.
워낙 말석의 기사단장이라, 사도들과 전장을 나설 기회조차 없었다. 기사단장의 자리에 오른 것도 얼마 되지 않았고.
지금에서야 직접 보는 사도들의 싸움이 감히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그였다.
빛이 어둠을 가를 때마다 세 사람의 모습이 잠깐씩 드러났다.
이를 악물고 있는 베로니카와 식은땀을 흘리며 아겔에게 주먹을 날리는 아킬란.
빛의 사도들마저 고전한다면, 아겔은 분명 어둠의 사도가 분명한데 그는 자신이 어둠의 사도라 밝힌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일부러 숨기려 한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동안 크록투스가 보아 온 아겔이라면, 자신이 어둠의 사도라고 그냥 솔직히 밝혔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대화 내용으로 보면, 어둠의 사도가 아니고서야 설명이 안 될 것 같은데…….’
크록투스의 복잡한 생각을 눈치챘는지, 코르브스가 말했다.
“잡념을 머릿속에 가득 채우고 볼 만한 싸움이 아니야.”
“…….”
“넌 축복받았다. 이 싸움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으니까. 그러니 잡생각은 버리고, 싸움만 봐.”
“예…….”
코르브스도 그보다 두 단계는 앞선 강자였기에 크록투스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깃털 사이로 보이는 빛과 어둠의 격돌은 묘했다.
빛이 사방의 어둠을 밝히는가 하면, 어떨 때는 어둠 한구석을 밝히지 못할 때도 있었고.
어둠이 몰아쳐 촛불처럼 작아진 빛이 기세를 바꾸어 다시 태양처럼 빛날 때도 있었다.
감히 어느 쪽의 우세를 말하기 어려운 정도의 싸움이란 것만 알 수 있었다.
이런 싸움은 쉬이 볼 수 없었기에 크록투스의 눈은 그들의 흔적을 좇기에 바빴다.
“……잡생각이 너무 많이 듭니다. 설명 좀 해 주십시오.”
코르브스가 말했다.
“평범한 싸움과는 아예 궤를 달리하지. 애초에 싸움이 시작되면서 다른 공간에 돌입했다고 보는 게 맞을 거야.”
“아, 그렇군…….”
코르브스와 자신이 서 있는 곳은 분명히 고독의 땅이었다.
그러나 자신과 저들의 거리는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다. 그게 아예 공간 자체가 뒤틀리면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무려 이 우주의 모순인 빛과 어둠의 싸움이야. 상식으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느낌만 받아들여. 주인님께서 널 물리지 않으신 이유는 네가 이 싸움을 보고도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셨던 거고, 이 싸움을 보고 뭔가 깨달으라는 의도일 테니까.”
코르브스의 말대로 크록투스는 그제야 잡념을 비우고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것만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발악하듯 두 개의 빛이 어둠을 터뜨렸고, 세 사람이 다시 현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아겔은 사도들과 싸움이 붙자마자, 주변을 어둠으로 물들였다.
손과 발이 어두운 색깔로 물든다. 시간이 다 채워지지도 않았건만, 육신을 가득 채운 어둠이 밖으로 무자비하게 흘러나오려 한다.
넘치는 힘이었지만, 이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결국 육신은 죽게 될 것이고, 다시 66년을 채워야 한다.
아겔은 어둠을 통제하며 달려드는 두 빛을 향해 마주 달려갔다.
신성력을 담은 한 자루의 검과 주먹이 아겔에게 쏟아졌다.
‘검과 권은 그저 표현 방식일 뿐.’
이들의 진정한 힘은 성좌에게 직접 받은 신성력.
어둠을 밝히는 근원인 빛을 근간으로 하는 힘이다.
어둠 자체가 힘인 아겔에게는 그리 어려울 것 없는 힘이었지만, 지금은 채 시간이 부족해 압도할 수는 없었다.
---.
검과 주먹을 쳐 내는 과정엔 소리 따윈 들리지 않았다.
빛과 어둠이 부딪치면서 소리가 전달되는 영역은 초월했기에.
사도들은 두 사람은 서로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빠르게 입술을 움직였다.
말 못 하는 이들이 입술의 움직임만으로 서로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도록.
특히나 앞을 못 보는 아겔에겐 닿지 않는 효과적인 의사소통 같았으나, 전신이 빛에 둘러싸여 감지가 가능한 상태였기에 아겔은 그들의 입술이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었다.
빛도 다양한 종류가 있긴 하지만, 기나긴 고독한 어둠 속에서 아겔이 볼 수 있었던 오직 빛 하나뿐이었다.
빛의 사도들답게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무엇이든 일정한 빛이 가진 힘을 겨우 혼란스러운 어둠으로 격하시키고,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만, 신성력과 어둠의 대결이라 그런지 우세는 점점 아겔에게 다가왔다.
권과 검이 압박하지 못하도록 전신을 짙은 어둠으로 두르고 달려들었다.
아킬란이 전면에서 아겔을 상대하려 했고, 베로니카라는 날카로운 검이 아겔의 빈틈을 주시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 싸워 합이 정교했다.
아겔도 쉽사리 틈을 찾지 못할 만큼.
그러나 결국 신성력이 어둠에 밀리기 시작했다.
큭.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아킬란의 침음이 들리는 듯했다.
신성력이 우위였다면 주변에 어둠 따윈 없었을 텐데, 사위는 완전한 어둠이었으니 누가 우위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지 않았다.
이토록 빛과 어둠의 싸움은 우위를 판단하기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물론 힘을 감춰 놓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흡.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신성력을 내뿜어 어둠을 몰아내려 했다.
그때마다 아겔은 그들이 주도권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더욱 어둠으로 주변을 감쌌다.
아겔은 그들이 어둠을 몰아내려 용을 쓸 때, 일검을 준비했다.
손에 들린 단검은 숏쇼드로 바뀌고, 곧 빛이 간섭할 수 없는 어둠이 단검의 모습을 가렸다.
---.
단검이 아킬란의 흉부를 가르고, 날카롭게 찔러 들어오는 검을 쳐 내며 검을 든 여린 백색 손목까지 베었다.
두 사람은 기합을 내지르는 듯이 다시 빛을 터뜨렸고, 주변의 어둠이 완전히 사라졌다.
파아아앗…….
1차전이 마무리되었다.
아킬란의 흉부는 피만 남기고 베인 자국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베로니카의 손목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상처가 회복된 것이다.
하나 핏자국과 베인 옷, 떨리는 손목, 흐르는 식은땀과 지친 기색까진 감출 수 없었다.
아겔이 여유롭게 말했다.
“다시 하기 전에 좀 쉬지.”
그들에게 등을 보인 아겔은 크록투스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