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빛의 사도 (2)
크록투스는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로는 방금 지켜본 싸움이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심대한 체력 소모를 일으켰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무려 빛의 사도를 2명이나 상대하고도 멀쩡하게 걸어오는 아겔 때문이었다.
“괜찮은가?”
“…….”
마치 산책이나 다녀왔다는 듯이 다가와 말을 거는 노인.
대답이 없자, 아겔은 크록투스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이마에 손을 얹었다.
크록투스는 덜덜 떨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생각 외로 몸은 차가웠다.
“열이 나진 않는데.”
코르브스가 콧방귀를 뀌며 웃었다.
“무슨 감기라도 걸린 줄 아십니까? 백치가 되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어쩌자고 이놈이 그냥 보게 두셨습니까.”
아겔은 크록투스의 이마에서 손을 떼며 싱긋 웃었다.
“죽진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싸움을 본 것뿐이지만, 지금 크록투스는 본인 내면 안으로 들어가 있을 것이다.
아겔이 가르쳐 주지 않았더라도.
아마 지금쯤 공포와 두려움을 견뎌 내며 저도 모르게 어둠 속을 걷고 있을 것이다.
“잘 봐 주거라. 흔들리면 바로 정신을 깨워 주고.”
“기대되는군요. 잠재력이 꽤 있는 놈 같은데. 과연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네 턱밑까지 쫓아올 수도 있으니 긴장해야 할 게다.”
아겔의 말에 코르브스가 정색했다.
“이딴 놈이 절 따라잡는다고요?”
“글쎄. 모르는 일이지.”
코르브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크록투스를 바라보았다.
아겔은 허튼소리를 일절 하지 않는다. 농담은 가끔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겨우 싸움 한번 지켜본 것만으로도 몸을 떠는 이놈이 자신보다 강해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코르브스는 유심히 크록투스를 살폈다. 지금 죽일까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자라날 새싹을 족족 밟아 버리면 쓰나. 놔두거라.”
“죽이진 않겠습니다.”
“팔다리 꺾지도 말고. 어디 상하게 하지 말아라.”
“…….”
크록투스가 무사한 걸 확인한 아겔은 다시 빛의 사도들이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그가 몸을 돌리는 것을 보고 코르브스는 크록투스를 데리고 날아갔다.
이제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으니까.
아겔은 빛의 사도들과 싸우는 와중에도 크록투스에게서 봤던 빛을 기억하고 있었다.
‘견부호자가 나왔군.’
크록투스를 본 아겔의 감상은 딱 그러했다.
주변이 어둠에 휩싸이는 데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만한 정신력이 필요하다는 뜻.
거기에 사도들의 빛이 동반되면, 실명하거나 백치가 될 수도 있다.
겨우 싸움 하나 지켜보는 것만으로 사람이 죽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것이 빛과 어둠의 싸움. 크록투스는 그냥 서 있기만 한 게 아니었다.
숨을 돌린 빛의 사도들이 아겔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싸울 태세를 잡았다.
베로니카가 물었다.
“왜 크록투스에게 관심을 두는 겁니까, 아겔.”
“뭐가 문제지. 나는 잠재력이 충만한 젊은이를 좋아한다네.”
아겔은 여유롭게 수염을 쓸었다. 그 말에 두 사도는 눈을 부릅떴다.
“설마, 그의 영혼을……?”
노인은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나와 친구 해 준다길래 받아 두었지.”
사도들의 몸과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쩌자고 기사단장이…….”
“그도 동의했단 말이오?”
아겔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강압적으로 취했네. 어쩌겠는가. 어둠 속에서도 자네들보다 밝은 빛을 가진 사내였는데.”
“…….”
“……우리보다 밝다고?”
“반짝이는 것은 항상 보기에 좋은 법이지, 안 그런가?”
베로니카가 검을 들었다. 아킬란도 곧장 달려들 기색을 보였다.
아겔은 담담하게 말했다.
“아직도 덤빌 생각인가?”
“…….”
두 사람은 아겔에게 승리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싸울 생각을 했다.
무모한 생각이었다. 너무 정석적인 일이었고.
사실 사도들이 아겔에게 이기기 위한 방법과 수단이야 직접 싸우는 것 말고도 몇 가지 있다.
고독을 지키는 기업가의 함대를 두 사람이 친다든가. 까마귀 코르브스를 인질로 삼는다든가.
빛의 사도라는 위치에서 선택할 만한 방법은 여러 가지란 뜻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구질구질한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아겔과 맞붙으며 자신들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었다.
베로니카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가 잘못했다는 건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그래도 우릴 봐서 좀 더 평화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는 없겠습니까?”
“그렇소, 아겔라스토스. 모두가 우리와 같은 생각은 아니지만, 대화로 풀다 보면 방법이 생길 수도 있소.”
아겔은 두 사람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생각이 자네들과 달라서 안 되는 걸세.”
“…….”
“여전히 그들은 내가 죽길 바라겠지. 그럼 모든 것이 끝나겠거니 생각하고 있을 테니 말일세. 그들이 나를 죽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모색하리라 생각되진 않는구먼. 하나.”
촤륵.
아겔의 숏소드가 어둠에 물들었다.
“신을 한번 죽여 본 자네들에게 묻겠네. 정말 신이 죽던가?”
“…….”
“아마 뜻대로 되진 않았을 테지.”
대답이 없자, 아겔은 자세를 낮추었다.
곧장 노인이 두 사람을 향해 발을 박차면서 바람이 일어난 듯한 착각이 들었다. 메마른 목소리도 휘날렸다.
“뭐, 나도 마찬가지일세.”
다시 세상이 어둠에 물들었고, 빛이 발악하듯 터져 나왔다.
.
.
.
어둠 속에서 베로니카는 전력을 다해 저항했다.
사위를 물든 어둠은 전력을 다한 신성력 폭발에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힘을 아껴야 했다.
이 어둠을 만들어 낸 아겔을 직접 꺾으면 어둠은 응당 사라질 테니.
그러나 어둠 속에서 짧은 검을 휘둘러오는 노인을 보면,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성력으로 밝힐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뻗어 오는 검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
검과 검이 부딪치는 데도 쨍 하는 금속성 하나 들리지 않았다.
사도들이 휘두르는 공격 하나하나에 어둠 속에서 빛이 번쩍번쩍 번개처럼 퍼져 나갔다.
검이 부딪치는 순간, 아킬란의 주먹이 어둠을 가르며 아겔의 얼굴로 향했지만, 노인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그의 주먹을 쳐 내고 다시 검을 휘둘렀다.
어둠 속에서도 사도들은 빛의 속도로 움직였다.
그리고 아겔은 그런 그들의 움직임을 거의 같은 속도로 대응했다. 일반적으로 어둠이 빛보다 느리다는 통념을 깬 모습이었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아킬란의 입술이 베로니카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어째서 저렇게 빠른 것이지. 어둠이면서.
나도 모르겠어.
어둠을 뚫고 빛 한가운데로 나타난 노인도 입술을 움직여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내가 빠른 게 아니라 자네들이 느린 걸세.
…….
자신들이 무음의 영역에서도 대화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킨 두 사람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검과 권이 부딪치는 순간에도 아겔은 말하고 있었다.
내가 왜 혼돈이겠는가. 상식과 통념, 질서를 무너뜨리기에 혼돈인 게지.
그렇군.
아킬란의 주먹이 아겔의 가슴을 꿰뚫었다.
하나 처음부터 허상이었다는 듯, 아겔의 모습이 사라지며 어둠 속에서 또다시 노인이 솟구쳤다.
베로니카가 무방비한 아킬란을 보호하듯이 검을 휘둘렀고, 아킬란도 곧바로 합류해 새로운 아겔을 상대했다.
이번엔 양손에 짙은 어둠을 감싼 아겔이 주먹과 손날로 두 사람을 상대했다.
손에는 신성력조차 꿰뚫지 못하는 어둠이 담겨 있었다.
아겔이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기에 사도들은 주기적으로 신성력을 터뜨려 그의 위치를 확인했다.
빛이 우세를 점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두 사람은 아겔의 공격을 모조리 피하는 수고를 들이고 겨우 반격했다.
아킬란이 자신의 복부를 꿰뚫으려는 아겔의 손날을 피해 손목을 잡고, 베로니카가 아겔의 가슴을 검을 꿰뚫었다.
다시 허상이 무너지고 이번엔 아겔이 두 명이나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그렇게 두 명, 세 명, 네 명…….
셀 수 없이 많은 아겔을 상대하던 두 사람은 결국 힘을 소진하고 지쳐 갈 따름이었다.
아직 여력은 남아 있었으나, 이대로 가면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아겔은 최선을 다해 저항하는 빛의 사도들을 바라보았다.
성좌들에게 선택받아 수백 년을 살아온 노괴들. 겉보기엔 젊고 어려 보이지만, 성좌의 힘으로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자들.
이들의 마음엔 어느새 젊음과 힘을 넘기고 싶지 않은 욕망이 점차 자라났을 것이다.
아겔이 보는 이 두 사람은 그런 욕망이 남들보다 좀 덜하긴 했어도, 다른 선택을 하진 않았기에 결국 똑같았다.
어찌하여 그런 어리석은 생각에 동참한 겐가.
…….
초월적인 힘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지. 세상이 그렇게 지어졌으니 말일세. 그게 올바르지 않은 일에 사용되었다면, 바르게 할 인과가 뒤따라온다는 걸 정녕 알지 못했는가.
사도 두 사람은 동시에 움직이는 아겔들의 입을 보며 질끈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으니. 어쩌면 두 사람이 제일 먼저 아겔에게 찾아온 것은 죄책감 혹은 속죄하기 위함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무리 사도라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항상 낯설기 마련이었으니.
마음을 뒤흔드는 아겔의 말과 실질적인 전력 차이로 두 사도는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베로니카는 마치 회피 동작인 것처럼 팔을 들어 자신의 입술을 가리고 움직였다.
전력으로?
아킬란도 비슷하게 입술을 숨기고 베로니카에게 의사를 전했다.
탈출이 우선.
짧게 의사를 전한 그는 곧바로 전신의 신성력을 폭발시켰다.
그가 힘을 소진하여 어둠을 탈출한다면, 그 뒤는 베로니카에게 맡기겠다는 뜻이었다.
베로니카는 동의를 표현할 만한 행동은 일절 하지 않았다. 아겔에게 들킬 수 있었으니.
곧 사방을 물들인 어둠이 신성력에 의해 밝혀졌고, 베로니카는 다시 고독의 정글을 볼 수 있었다.
“큭……!”
현기증이 온 것처럼 아킬란이 땅에 허물어졌다. 생각보다 힘을 많이 소모한 것 같았다.
베로니카는 그를 돌볼 새도 없이 아겔에게 돌진했다.
어둠으로 이루어진 전장이 깨지자, 아겔은 뒤로 물러났고 베로니카는 바로 그것을 노렸다.
신성력이 빛나는 검이 거의 빛살과 같은 속도로 나아갔다.
푸우욱……!
검이 아겔의 복부를 꿰뚫었다.
그러나 베로니카의 얼굴은 밝아지지 않았다. 복부를 꿰뚫린 아겔의 모습이 또 사라졌으니.
마치 허상이었다는 듯이, 정글이 흐려지고 다시 모든 것이 어둠에 휩싸였다.
베로니카가 입술을 씹었다. 아킬란의 신성력으로 어둠을 몰아냈다고 생각한 것부터 착각이었다.
메마른 목소리가 들렸다.
“좀 쉬게.”
퍽……!
어둠 속에서 뒤통수를 강타당한 베로니카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 * *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깨어났을 때는 싸움이 끝난 뒤 그리 긴 시간이 흐르진 않았다는 걸 알 순 있었다.
“…….”
베로니카와 아킬란은 천천히 일어나 옷매무시를 다듬었다.
아겔은 웬 나무로 만든 평상에 앉아 있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하며, 두 사람은 아겔 곁에 걸어와 섰다.
아킬란이 먼저 입을 열었다.
“후…… 두 명이 덤볐는데도 못 이기다니.”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걸 아네. 내 집을 망가뜨리지 않아 줘서 고맙군.”
뜻밖에 감사에 사도들의 눈이 조금 커졌다. 아겔이 덧붙였다.
“그리고 자진해서 내 포로가 되어 준 것도.”
아킬란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정말 당신의 고집은 꺾을 만한 것이 아니군.”
“내가 아니라 자네의 신부터 회유할 생각을 했어야지. 그들보다 내가 못한 것 같았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제 어떻게 하시겠소?”
“뭘 어떻게 하겠는가. 자네들이 사도가 더 온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는 우리 둘보다 강하오. 그래서 그와 싸움은 피하도록 하려 했건만.”
빛의 사도들이 가진 무력도 천차만별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하늘에 닿은 자들이라 여기고 있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달랐다.
사도들이 모두 상식을 벗어나는 강자들은 맞았지만, 또 그들 사이로 세세히 보면 판이한 전투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내답지 못한 말을 하는구먼. 대장부가 어찌 싸움을 피한단 말인가.”
“……마치 사람처럼 말하는군.”
“지금은 사람일세.”
베로니카가 품에서 천을 꺼내 검을 닦았다.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것처럼 깨끗한 날을 손수건이 지나갔다.
“부디 하시는 일이 세상을 파멸로 이끌고 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내 다른 별명이 파멸인데, 무슨 소릴 하는 겐가.”
“…….”
검을 닦던 베로니카의 손이 멈추었다.
그녀의 반응을 본 아겔이 슬며시 웃었다.
“농일세. 내가 진정 세상의 파멸을 바라겠는가.”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얼추 정답일세. 자네들의 세상은 파멸을 맞이해야 하지.”
우주를 끝장내 버리겠다는 말은 아니었기에 베로니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킬란이 말했다.
“어떻게 완전하지도 않은 힘으로 우릴 이겼는지 몰라도 자존심을 부릴 순 없군. 우린 졌소. 이게 어떻게 할 거요.”
아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연히 벌을 줄 거라네. 그래서 내가 감옥을 가져오지 않았는가.”
“감옥……?”
두 사람의 눈이 커졌다.
그제야 두 사람은 깨달았다. 자신들이 디디고 서 있는 이 행성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는지.
아겔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딱.
“코르브스.”
마법진의 빛이 세 사람을 삼키자 주변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정글에 있던 세 사람은 어두운 장소로 끌려왔다.
특히 두 사도는 다시 아겔과 싸우던 어둠에 끌려온 줄만 알았다.
아킬란의 눈에 광채가 서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고독의 본관일세. 감옥이지. 자네들을 가둬 둘.”
어두운 감방은 철창 밖에 있는 마법 횃불이 아니면 빛이라곤 일절 없었다.
3-448 감방이었다.
“여기엔 구속구도 없고, 철창문조차 잠겨 있지 않네. 복도를 돌아다니는 건 자유일세. 하지만 본관을 부수고 밖으로 나오지 말게.”
“…….”
아겔은 슥슥 걸어가 철창문을 열었다.
그가 떠나려는 기색을 보이자, 아킬란이 성급하게 말했다.
“아, 아겔. 이게 정말 우리에게 주는 벌이오.”
“왜.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까 두려운가?”
“……그게 아니라. 너무 가벼운 것 같아서.”
“그 안에 있다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못할 텐데. 알아서 해석하게나.”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소.”
철창문을 잡은 아겔이 잠시 몸을 멈추었다.
“말하게.”
“어둠의 사도 3명이 전선을 밀고 있소. 우리가 없으면 학살이 일어날 것이오. 그쪽을 어떻게든…….”
철컹.
아겔이 감방 밖으로 나왔고, 잠기지 않는 철창문이 닫혔다.
“고려해 보지.”
노인은 복도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고, 두 사도는 그 모습을 보며 침묵했다.
그 누구보다 찬란한 빛의 사도가 되어 가장 밑바닥의 죄수처럼 고독에 갇힌 신세라니. 허탈한 감정과 당혹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일반 죄수들처럼 힘을 봉인을 당한 것도 아니라 아직 여력이 남아 있었다. 심지어 봉인을 당했다 하더라도 사도들은 이곳을 파괴하고 탈출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러나 이들은 딱히 이곳을 나갈 생각이 없었다. 마음에 떠오른 죄책감이란 수갑이 이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으니.
이미 가장 강력한 구속이 이들을 속박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참의 침묵을 뚫고 베로니카가 말했다.
“어쩌면…… 아겔라스토스는 100년 전 그때부터 이렇게 할 계획이었을까?”
“왜 아니겠어. 그는 사람이 아니야.”
아킬란은 할 만큼 했다는 얼굴로 바닥에 털썩 누웠다.
전기 충격이 올라왔지만, 아무런 타격도 없었다.
체통을 챙길 생각도 없어 보이는 모습에 베로니카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항상 우주의 주목을 받아 와 몸과 마음의 태도 하나하나 신경 써야 했었는데.
이곳에선 그러지 않아도 되었기에 후련하고 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우리가 가둔 것처럼. 우리도 이제 갇혔네.”
“응. 나머지도 그렇게 될 거야.”
대화를 마친 두 사도는 그 이후로 말이 없었다.
젊었던 그들의 육신이 순식간에 늙어 갔다. 일부러 육신의 노화를 막지 않은 것이다. 잠시만이라도 속죄할 생각이었다.
그들은 사도가 되어 감옥에 갇힌 것은 처음이었기에 색다른 감정들이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자신들이 가둔 신도 이런 감정이 들었을까 공감해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