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163)화 (164/186)

163화 고독 방어전 (1)

아겔을 붙잡고 하늘을 날아오른 코르브스가 중얼거렸다.

“미친 새끼들. 만나면 반갑다고 레이저를 쏘는군요.”

“…….”

거대한 레이저는 그 원통의 반경만 해도 수백 미터는 되어 보였는데, 정글 지표면을 아주 바싹 구워 주며 휩쓸고 있었다.

대기권 근처에 있는 함대가 쏘고 있는 레이저, 포대의 각을 살짝만 틀어도 행성이 둥근 모양이라 엄청난 반경을 쓸어 버린다.

그것이 한 개도 아니고, 여러 개가 쏟아지는 와중이라 코르브스는 빠르게 빛줄기를 피해 아겔을 날랐다.

아겔이 말했다.

“크록투스는 어디에 있지.”

“제가 피신시키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그럼 행성 보호막을 가동해라.”

“알겠습니다, 주인님.”

일전에 기사단의 공격이 있었을 때는 기업가의 함대가 어느 정도 엄호해 주었지만, 지금은 기업가 함대가 퇴각한 상황.

고독에서 홀로 버텨야만 했기에 동력실의 행성 보호막을 가동하기로 했다.

이 정도 포격이라면 비축된 에너지로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이이이잉.

머리 좋은 코르브스는 동력실의 중앙 장치를 거의 완벽하게 컨트롤하는지 레이저 포격이 떨어지는 지점에만 반투명한 벌집형 보호막을 만들어 포격을 막아 내었다. 그저 행성 전체에 보호막을 두르는 게 아닌 적의 공격만을 정확하게 막아 내는 실력.

코르브스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동력실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적절하게 계산했고, 그것은 잘 들어맞는 판단이었다.

콰아아아앙……!

하늘에서 생겨난 보호막들은 정확하게 빛의 기둥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이동하며 포격을 막아 내었다.

숫자가 더 늘어나도 상관없었다. 단 1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보호막이 전개되어 포격을 막아 내었으니.

까마귀의 오성은 평범함을 뛰어넘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아겔이 담담하게 코르브스를 칭찬했다.

“잘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하지만 딱히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세 함대는 포격을 쏘고 있지만, 다른 함대는 침묵 중이거든요. 뭔가를 노리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걱정하지 마라. 큰 꿍꿍이가 아니라, 그저 반응을 보기 위함이었을 테니. 그보단…….”

코르브스의 등에 올라탄 채로 아겔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놈은 우리와 대화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고독을 지켜야지.”

아겔의 고개가 위로 들렸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지 않겠느냐. 받은 인사를 돌려주러 가자꾸나.”

그 말을 듣자마자, 까마귀의 입가에서 깍깍대는 웃음소리가 흩날렸다.

“오랜만에 함께 싸우게 되어 영광입니다, 주인님.”

“안내하거라.”

커다란 검은 날개가 퍼덕여 하늘 높게 솟아올랐다.

.

.

.

대기권 근처까지 날아오른 코르브스는 침투할 함선을 골랐다.

6개의 거대한 기사단 모함. 그중 하나를 고르는 것은 오로지 코르브스의 몫이었다.

숨을 참은 아겔은 그가 모함 하나를 뚫어 낼 때까지 기다렸다.

곧 코르브스의 날개가 요동치더니 모함 중에서도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골라 쇄도했다.

검은 깃털이 허공에 흩날렸고, 깃털 하나하나에 담긴 어둠의 힘이 흑색 광선이 되어 모함의 실드를 뚫어 버렸다.

코르브스는 여유롭게 아겔을 태운 채로 복구되는 실드를 통과해 함선 장갑에 안착했다.

콰직!

커다란 검은 날개로 장갑을 뜯어낸 코르브스는 그대로 함선 내부로 침투했다.

기사단 모함의 전장만 해도 수 킬로미터를 가뿐히 넘는 크기라 마치 개미만 한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였지만, 두 사람이 함선 내부로 침투하기엔 충분했다.

텅.

인공 중력에 의해 바닥에 착지한 코르브스. 그리고 그 등에서 아겔이 내렸다.

비상벨이 시끄럽게 울렸고, 내부의 혼란스러움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아겔이 말했다.

“조종실을 찾거라.”

“예, 주인님.”

아겔을 내려놓은 코르브스의 분신체가 또 갈라지더니, 수십 마리의 분신체가 나타났다.

이것이 코르브스의 능력 중 하나. 수천 마리의 분신체를 다룰 수 있는 권능이었다.

까마귀 수인들은 쏜살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주변을 헤집어 놓았다.

단순히 조종실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코르브스는 함선 내부에 혼란을 불러왔다. 곳곳에서 선원들의 비명이 들리는 듯했다.

아겔은 여유롭게 그 비명 사이를 걸어 걸음이 닿는 대로 움직였다.

-여기다!

-침입자가 여기에 있다!

아겔을 보고 전투 선원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기사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신성력을 갖춘 자들. 중급 죄수들과 비슷한 무력을 지닌 이들이었다.

아겔은 품에서 벌레 단검을 꺼냈다.

복도에 알맞은 크기의 녹색 지네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고, 꼬리에서 독을 뚝뚝 흘려 댔다.

지네들이 앞으로 튀어 나가는 동시에 아겔도 뛰었다.

기사가 아닌 전투 선원들은 애초에 아겔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크기도 다양한 지네들이 선원들의 전신을 찢어발기며 해체했다. 아겔은 그 사이를 오가면서 단검으로 정확하게 그들의 숨을 끊어 주었다.

-끄으으으… 성좌께 영광을…….

죽어 가는 와중 아겔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려 팔을 허우적거리는 선원들도 있었다.

가히 광신도 같은 모습. 하나 이오베처럼 독기를 실현할 능력은 없었다.

아겔이 싸움을 일으키자, 인원이 증원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곧 빽빽하게 몰려오던 전투 선원들 사이에서 점차 정예 병력인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막아라!

기사들이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검기가 작은 지네들을 쳐부쉈고, 조금 덩치가 있는 지네들도 한 차례 막아 내었다.

아겔이 단검을 휘둘렀다, 강철 벽을 찢어 버리며 거대한 지네가 나타나 달려오던 기사들을 휩쓸어 버렸다.

턱에 조각난 자들은 즉사했고, 수천 개의 다리 중 하나에 스치기라도 한 자들은 중독되거나 말도 안 되는 물리력에 큰 타격을 받았다.

옆쪽 벽을 찢고 들어갔던 거대 지네는 다시 나타나더니, 아겔이 걸어갈 길을 청소하듯 복도 중앙으로 뻗어 나갔다.

기사와 선원들의 비명과 핏물이 바닥을 적시며 흘러왔다.

아겔은 찰박찰박 소리를 내며 그 끈적한 복도를 걸어 앞으로 나아갔다. 쇠 비린내가 복도를 한껏 채웠다.

깨끗했던 함선 복도는 어느덧 고독의 복도와 다를 바 없는 공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릴없이 걷던 중 한쪽 코너에서 까마귀가 날아와 아겔의 어깨 위에 앉았다.

“찾았습니다. 앞으로 나오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입니다.”

“그래.”

아겔은 코르브스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어딜 가든지 핏물과 비명은 끊이지 않았다.

살고자 하는 절규 맺힌 비명도 있었고, 죽음을 불사르는 용맹한 함성도 있었다.

전부 부질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바는 단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코르브스의 깃털 아래에서 말라 버렸다.

가끔 조직적으로 기사들이 나타나 아겔의 걸음을 방해하기도 했지만, 거대 지네로 길을 아예 끊어 버려서 접근하지도 못하게 했다.

그때부턴 남겨 놓은 하나의 길로 기사들이 꾸역꾸역 밀려와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마, 막아…….

-조, 조장님… 저놈은 괴물…….

-가서 막으란 말이야, 이 새끼야!

죽음을 종용받은 기사들은 불나방처럼 아겔에게 달려들었지만, 단 한 명도 검은 깃털을 넘어서지 못했다.

깃털에서 방사되는 흑빛 광선을 한 번이라도 막아 내는 자는 없었다.

아무리 성좌기사단의 단장이라 할지라도 열 개를 막을 수 있을까 할 만한 위력이었다.

복도에 휘날리는 깃털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이러다가 대머리 되겠네, 깍깍깍.”

까마귀 수인이 킥킥거리며 웃는 것과 다르게 앞쪽 길을 막는 자들의 상황은 처참했다.

다양한 감정이 엿보이는 듯했다.

두려움, 불안, 절망, 좌절, 체념, 공포, 경악.

조종실 입구를 가로막은 기사들과 전투 선원들의 감정은 그야말로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

그들을 향해 아겔이 말했다.

“뚫어라.”

“예, 주인님.”

아겔의 어깨에서 내려선 까마귀. 수인의 형태로 커지며 2미터가 된 코르브스의 뒤로 똑같은 까마귀들이 줄지어 섰다.

신성력이 담긴 검기가 칼날 폭풍처럼 밀려오고 있었지만, 코르브스가 흩뿌린 검은 깃털들이 앞에서 막아 주고 있었다.

선두에 선 까마귀 수인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부리를 쩍 벌렸다. 벌린 부리 앞에 어둠이 한껏 모였다.

“광선은 입으로 쏘는 게 제맛이지.”

---!

한 차례 굉음이 지나가고 조종실 앞을 가로막은 생명들이 소멸했다. 나중에 봤으면, 아예 그곳에 무언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그들은 처참히 흑색 광선 앞에 지워졌다.

거기에 더해 흑색 광선은 조종실을 보호하던 실드마저 무참히 뚫고는 단단한 특수 합금으로 이루어진 철문까지 녹여 버렸다.

아겔이 뜨거운 것을 밟지 않도록 깃털을 주위에 뿌린 코르브스가 앞으로 나섰다.

“들어가시죠, 주인님.”

아겔은 천천히 걸어 조종실 안쪽으로 걸어갔다.

거대한 모함인 만큼 조종실엔 선원이 한가득 있었다. 그 가운데 함대를 지휘하는 기사단장이 검을 들고 서 있었다.

그의 눈에도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분위기를 살핀 아겔이 말했다.

“반항하지 말게. 그럼 살려 주겠네.”

“…….”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기사단장도 두려움이 깃든 눈으로 아겔을 바라볼 뿐이었다.

“기사단을 이끌고 온 사도에게 연결하게.”

-이미 연결되어 있다, 아겔라스토스.

한쪽에 달린 스피커에서 칼날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로드먼. 오랜만에 보는 것인데, 인사가 거칠군.”

-우리가 정겹게 인사할 사이는 아니지. 안 그런가.

“그렇긴 하지. 그런데 자넨 오랜만에 만난 어른에게 버릇이 없구먼. 내가 살아 있을 줄은 몰랐나?”

-…….

로드먼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하기야 원탁은 아겔이 확실하게 죽었으리라 생각했을 테니.

“주술사는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알고 계속 암살을 시도했는데. 자네들은 모르고 있었던 걸 보니, 아무래도 원탁의 일원들끼리 정보 공유가 안 되고 있던 모양이야. 그새 사이가 틀어졌나?”

-멍청한…….

짓씹는 듯한 로드먼의 반응이 돌아왔다.

주술의 사도, 카흘탁. 그와 마찬가지로 충성의 사도 또한 원탁 소속이었다.

지배자들의 원탁.

빛의 사도와 어둠의 사도를 가리지 않고 100년 전에 사건을 일으킨 주동자들이었다.

아겔의 복수 대상이기도 했고.

“추기경단도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겠지? 내가 보낸 선물은 잘 받았는지 궁금하군.”

-……네 무도한 선전 포고는 잘 받았다. 그런데 전쟁을 일으킬 만한 병력은 있나? 딱히 없다면, 여기서 전쟁을 끝내도록 하지.

“끌끌, 벌써 끝나면 좀 아쉽지 않겠는가.”

아겔은 앞으로 걸어가 자연스럽게 함장의 자리에 앉았다.

“대가는 치러야지.”

-대가? 죽고 죽는 건 이 우주의 섭리다. 우린 잘못한 게 없다.

“이 우주를 지탱하는 질서를 박살 내놓고 그런 말이 나오는가. 그 여파가 이미 시작된 지 오래되었지. 요새 블랙홀이 아주 많아지지 않았나?”

-…….

현 우주의 상태에 대해 언급하자, 로드먼이 다시 침묵을 지켰다.

사실이니까. 질서가 무너지고, 우주는 다시 억겁의 시간 전으로 회귀하려 하고 있다.

태초의 점으로.

수많은 블랙홀이 우주 곳곳에서 부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게 증거였다.

“부정할 수 없는 죄일세. 그 심판은 내가 내려 주도록 하지.”

-감히 누가 빛의 사도를 심판할 수 있다는 말이지. 오만하다. 성좌께서도 우릴 정죄하지 않으셨거늘.

“그거야. 원래 그 녀석들이 계획한 일이었으니까.”

성좌를 함부로 칭하는 아겔의 말에 자리해 있던 기사들은 모욕감을 느꼈지만, 섣부르게 움직일 수 없었다.

하늘하늘 허공을 떠다니는 검은 깃털이 언제 폭발할지 아무도 알 수 없었기에.

로드먼이 말했다.

-쓸데없는 대화는 그만하지. 널 처리하고도 해야 할 일이 많다. 주술사와 기업가도 이 기회에 처리해야겠군. 뭘 하려는지 모르지만, 이제 넌 끝이다, 아겔라스토스. 마지막까지 발악하다가 사라져라.

통신이 끊어지려는 순간 아겔이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아들. 많이 컸더구먼.”

-…….

“크록투스 프레이야. 아주 될성부른 젊은이야. 아들이 셋밖에 안 남았는데, 그중에서 내가 보기엔 제일 나아 보이더군.”

-네가 죽였나?

“아직 살아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불바다로 만들려던 저 고독에 내가 데리고 있다네.”

아겔은 일부러 인질로 사로잡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말했다.

실은 인질로 쓰려던 건 아니었지만, 로드먼의 반응을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잠시간 정적이 흐르고, 로드먼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음대로 해라. 아들이야 또 낳으면 그만이다. 이미 두 놈이 자리를 잡았으니, 하나가 없어져도 상관은 없다.

조종실이 경악으로 휩싸였다.

아들의 죽음을 별 감흥 없이 말하는 충성의 사도. 이 자리에서 우러러본 존재의 민낯이 이토록 칼날 같은지 아는 자는 기사단장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차가운 목소리가 기사단장을 지목했다.

-7기사단장.

“예, 예……! 사도시여.

빛의 사도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기사단장은 허겁지겁 대답했다.

이어진 사도의 말은 청천벽력 같은 명령이었다.

-순교해라. 성좌께서 널 기억하실 것이다.

“예……?”

로드먼의 성정을 알고 있는 기사단장이었지만, 이번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통신이 뚝 하고 끊겼다.

쾅!

아겔이 타고 있는 모함이 크게 흔들렸다. 밖에서 공격을 받은 것 같았다.

“이게 무슨……!”

기사단장은 서둘러 조종 장치를 조작했고, 조종실 전면에 상황을 볼 수 있는 외부 화면이 나타났다.

“아…….”

옆에 있는 함대가 7모함을 공격 중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포격이 모함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맙소사…….”

누구의 지시인지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도 없는 상황.

상황을 확인한 조종실 인원들은 혼비백산이 되었다. 기사단장은 똑같이 창백한 얼굴이긴 했어도 서둘러 선원들을 지휘했다.

“시, 실드를 펴라! 어서!”

그러나 상황이 좋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함대도 합류해서 공격을 퍼붓는지 무언가를 잡지 않으면 넘어질 정도로 충격은 심해지고 있었다.

코르브스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빛의 사도라더니…… 미친놈이 따로 없네.”

아겔을 죽이기 위해 모함에 탄 셀 수 없이 많은 아군을 희생하려는 것이다. 그것을 순교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그러나 아무리 겉을 화려하게 포장해도 그 안에 담긴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저 개죽음일 뿐이었다.

아겔이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쓰레기 같은 놈이군. 탈출하자꾸나.”

“예, 주인님.”

코르브스가 아겔의 몸을 낚아채 순식간에 길을 뚫어 모함을 빠져나왔다.

까마귀 등에 올라탄 아겔이 고독의 대기권 안으로 진입하자마자, 그들이 침투했던 모함은 폭발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 * *

3성좌기사단의 모함. 함장 역할을 해야 할 기사단장의 자리엔 다른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백색의 머리칼을 한 사내는 얼음처럼 푸른 눈동자로 폭발하는 7모함을 바라보았다.

로드먼 프레이야. 빛의 사도이자, 지배자들의 원탁에 소속된 거물.

그는 조종실 전면에 나와 있는 화면으로 공격받는 7함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함을 포함한 함선들이 다른 함대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로드먼이 내린 명령 때문에.

공격을 받고 있긴 해도 7모함은 다른 함선과 다르게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전장만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함선의 폭발은 마치 불꽃놀이를 연상케 했다. 그러나 진짜 불꽃놀이를 보는 것처럼 즐거운 상황은 아니었다.

-사도시여.

로드먼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에서 나온 목소리는 파병을 주장한 강경파 늙은 추기경의 것이었다.

“가서스 경. 말하라.”

-아겔은 제대로 처리하셨습니까.

“놈이 모함에서 탈출해 다시 고독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추격해야 할 것 같군.”

추기경들이 모여 상황을 전부 보고 듣고 있었기에 더 세세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런…… 우리 쪽 피해가 크군요.

“할 말이 있으면 빨리해라.”

그가 괜히 대화를 걸어온 게 아니란 걸 눈치챈 로드먼은 용건만 물었다.

가서스가 말했다.

-추기경들과 아겔의 행적에 관해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불길한 점을 확인했습니다. 100% 신뢰하긴 어려우나…….

“말하라. 자그마한 것이라도 좋다.”

-예. 추기경들과 회의해 본 결과,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습니다. 그는 사건 직후 왜 곧바로 복수하지 않고 고독에 숨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병력을 모으기 위함이 아니었나?”

-그랬다면, 한참 전에 전쟁을 벌였어야 했습니다. 기업가의 도움을 받았다면, 분명 시간이 충분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는 무려 66년 동안 고독에 있었습니다. 6은 아주 불경한 숫자이지요.

“육이라.”

그 숫자가 로드먼의 머릿속에서 다른 것들을 찾아 연관 지었다.

“설마.”

-예. 생각하시는 게 맞을 겁니다. 알다시피 어둠의 사도들은 빛의 사도들과 달리 시험을 견디고 얻는 자리입니다.

지배자들의 원탁에도 어둠의 사도들이 3명이나 있다.

음행의 사도. 주술의 사도. 시기의 사도.

그들에게 들은 바를 로드먼은 기억하고 있었다.

음행의 사도가 되려면 666명과 66개의 자세로 6일 동안 성관계를 해야 한다.

주술의 사도는 66번의 주술을 사용해 공좌를 ‘만족’시켜야 했고.

시기의 사도는 6,666명을 저주해 66일 동안 고통받으며 생존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나 같이 끔찍하고 역겹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시험.

그런 시험을 통과하고 지금의 어둠의 사도들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놈은 어둠의 사도 따위가 아니다. 그렇다면.”

-예. 시간이 다 차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죠. 확실히 해야 합니다.

로드먼의 턱 근육이 경직되었다.

비행선들을 내보는 추격 명령을 내리던 기사단장에게 차가운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3기사단장, 추격을 멈춘다.”

“예……?”

기사단장이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로드먼의 푸른 눈동자가 눈앞에 있는 행성 교도소 ‘고독’을 직시했다.

“행성 분열기를 준비해라.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반드시 아겔을 죽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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