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164)화 (165/186)

164화 고독 방어전 (2)

아겔은 코르브스의 도움으로 무사히 고독에 착지했다.

하늘에서 울리는 미약한 굉음이 아겔의 귓가에 들려왔다.

공격을 받은 7함대의 부서진 잔해가 고독의 대기권 내로 진입한 소음이었다.

아군에게 무자비하게 당한 선원들은 아마 땅에 닿지도 못한 채 모두 타 버릴 것이다.

코르브스가 중얼거렸다.

“미친놈이 따로 없습니다. 빛의 사도란 자가 저런 식으로 나오는 건 처음 봤습니다. 아군을 전멸시켜 버리다니…….”

“…….”

아겔이 코르브스와 함께 모함으로 침투한 것은 타 함대의 공격을 받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래도 신을 믿는다는 작자들이 아군에게 포격을 퍼붓진 않을 거란 판단이 들어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예상과 달랐다.

“놈이 예전보다 더 독해졌구나.”

백 년 전, 사도 전쟁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로드먼은 확실히 이전과 달라졌다.

힘이 강해진 건 아직 붙어 보지 않아서 정확히 모르겠지만, 충성의 사도답게 묵묵했던 성격이 시간을 지나오며 냉담하게 변하게 된 것 같았다.

코르브스가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하죠, 주인님. 다시 모함에 침투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녀석들이 경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녀석들이 뭘 할지를 알아야 대처할 텐데…… 다시 이곳에 포격을 가할까요?”

“아니다. 내 생각엔 행성 분열기를 쓸 확률이 높구나.”

“행성 분열기를요……?”

코르브스의 부리가 쩍 벌어졌다.

평범한 레이저 포대와 행성 분열기는 비슷한 재료와 구동 방식으로 설계된 무기였지만, 출력과 메커니즘 자체가 달랐다.

행성 표면을 휩쓰는 것이 주가 되는 포대와 달리 행성 분열기는 한 점에 포격을 집중하는 데 그 의의가 있었다.

땅과 맨틀을 뚫어 버리고, 행성의 핵에 충격을 가해 폭발시켜 버리는 무자비한 공격용 무기.

행성 자체를 파괴해, 생명을 전부 죽여 버린다는 참혹성 때문에 사용되는 것이 제한된 무기였다.

하나 코르브스가 놀란 것은 그 부분이 아니었다.

아겔을 죽이기 위해서야 제한된 비대칭 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용해야만 확실하게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으리라.

하나 지금 상황이 그랬다.

“우리가 빛의 사도를 2명이나 붙잡아 둔 걸 모르는 걸까요?”

“아마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친구들은 원탁 소속이 아니지. 날 죽인다는 명분으로 똑같이 순교하라는 생각일 게다.”

“미친……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고독의 방어막으로도 행성 분열기는 막기 어려울 겁니다.”

코르브스의 판단은 옳았다.

최악의 교도소인 만큼 튼튼한 행성 보호 시스템을 동력실을 통해 가동할 수 있는 건 사실이다.

하나 그것도 행성 분열기 앞에선 무용지물. 그 어떤 강력한 보호 체계도 행성 분열기를 감당할 수는 없다.

아겔의 답은 간단했다.

“사도들을 데려와라.”

코르브스의 얼굴이 어벙해졌다.

“예……?”

“동료가 순교를 강요한다는 걸 알려 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구나.”

“……”

코르브스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마치 처음부터 계획한 것처럼 상황은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는 사실 위기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듯했으나 아겔은 간단한 명령으로 상황을 가볍게 뒤바꾸었고, 지금도 다를 바 없었다.

아겔에게 일부러 구속당한 2명의 사도. 지금 그는 그들을 이용하자고 말하는 것이었다.

코르브스는 당장 고개를 끄덕였다.

“불러오겠습니다.”

그가 대답하자마자, 아겔 앞에 자그마한 빛이 어렸다.

이윽고 빛은 마법진이 되고, 그 위로 두 사람의 형상이 서서히 나타났다.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베로니카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아킬란이었다.

“아겔라스토스?”

왜 갑자기 자신들을 불렀냐는 듯 묻는 베로니카의 부름에도 아겔은 먼저 아킬란에게 다가갔다.

고르게 호흡하고 있는 아킬란. 아겔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나?”

“음…? 아겔? 하아아아아암…….”

감옥에서 양반다리를 한 채로 자고 있던 모양이었다.

아킬란은 기지개를 켜더니, 주변이 정글이란 것을 깨닫고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일어섰다.

“무슨 일이오, 아겔. 우리가 풀려날 때가 되었나?”

“내게 잡혀 있는 동안 자려고 했는가…… 그런 게 아닐세. 지금 누가 왔는지 보게.”

“…….”

그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쳐다본다고 대기권에 있는 기사단 함대가 보일 리 없지만, 두 사람은 달랐다.

충성의 사도가 이끌고 온 병력을 확인한 두 사도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었다.

“로드먼…….”

“그가 왔군.”

두 사도는 긴장한 기색을 했다. 충성의 사도는 두 사람이 힘을 합쳐도 이기지 못하는 강자.

본관에 있었기에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두 사람에게 아겔이 간단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베로니카의 눈이 커졌고, 아킬란은 눈과 입을 꾹 닫았다.

“……로드먼이 선을 넘었군요.”

“자네 둘은 원탁 소속이 아니지. 그리고 앞으로도 이곳에 갇혀 있을 테고.”

“…….”

“공교롭다고 생각하는데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아겔이 하는 말을 이해한 두 사도였다.

충성의 사도와 달리 두 사람은 지배자들의 원탁에 속해 있지 않았다.

아겔에게 속죄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는데, 고독을 파괴하려 한다는 말도 들었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그가 뭘 바라는지 두 사람은 이해했다.

베로니카가 우려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아겔라스토스. 우린 아군을 해칠 수 없어요. 그러고 싶지도 않고요.”

“누가 함대를 전멸시키라고 했나. 분열기만 막아 주게.”

아킬란의 감겨 있던 눈이 떠지고, 녹색 눈동자가 아겔을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막아 주면 되겠소, 아겔.”

아겔은 수염을 가다듬고 말했다.

“하루.”

“하루……? 그 정도면 충분… 아…….”

되묻던 아킬란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베로니카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마자, 아킬란의 걸음이 멈추었다.

아겔이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남은 시간일세. 그럼 무운을 빌지.”

“…….”

아겔의 몸이 마법진에 휩싸여 어디론가 사라졌다. 곁에 있던 코르브스도 마찬가지였다.

정글에 홀로 남은 베로니카와 아킬란은 잠시 정적을 지켰다. 아겔이 말한 남은 시간이 뭘 의미하는지 유추하기 어렵지 않았다.

상공에서 서서히 무슨 조짐이 느껴질 때가 되어서야 아킬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곳에 온 건…… 올바른 선택이었다, 베니.”

“……내 생각도 그래요.”

곧 하늘에서 파괴적인 빛이 구름을 가르고 땅을 향해 직격하는 게 보였다.

당연히 빛의 속도였지만, 두 사람의 눈에는 다가오는 그 빛이 정확하게 보였다.

분열기의 광선이 땅을 강타하려는 그 기나긴 순간,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보다 밝은 것이 두 사람이 맞잡은 손에서 터져 나왔다.

* * *

나락.

고독의 가장 깊은 감옥.

폐쇄 구역 중 하나인 이곳은 오직 한 명의 죄수만을 가둬 놓기 위한 장소였다.

요람의 요괴들도, 고치의 벌레들도, 무덤의 언데드도.

이곳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주의하란 경고 문구도 없고, 누가 갇혀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공간이었지만, 애초부터 발걸음이 끊긴 곳이었다.

그곳에 아겔이 서 있었다.

“좀 괜찮으십니까, 주인님.”

코르브스가 우려하는 얼굴로 끝도 없이 깊은 구덩이를 바라보았다.

절벽 끝에 선 아겔을 보는 그는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실패하면, 다시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지 알 수 없었기에.

나락의 끝에 선 아겔이 오히려 코르브스를 다독였다.

“걱정하지 말거라. 이때를 위해서 66년을 기다리지 않았느냐.”

아겔은 눈에 두르고 있던 붕대를 천천히 풀었다.

66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이 붕대를 갈아야 했다. 낡아서 쓸 수 없게 된 것은 버리고 새것을 썼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도 얼마 쓰지 않았는데, 어느새 낡고 헤지게 되었다.

코르브스는 아겔의 붕대를 소중히 건네받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을 덮고 있는 눈꺼풀. 그러나 그것은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아겔은 여전히 눈을 감은 상태였지만, 이번엔 새 붕대로 눈을 두르지 않았다.

“내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먼저 떠난 줄리안과 아이들을 따라가라. 거기서 몸을 숨기고 있거라.”

코르브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주인님은 반드시 성공하실 테니까요.”

굳건한 신뢰가 느껴지는 듯했기에 아겔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가라.”

코르브스는 작은 까마귀가 되어 붕대를 물고 어둠으로 날아갔다.

그를 보낸 아겔은 다시 나락 앞으로 몸을 돌렸다.

거대한 구덩이 아래로 아겔은 한 걸음 내디뎠다.

그리고, 끝도 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

.

.

째깍.

구덩이 안쪽은 당연히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차피 아겔은 66년간 앞을 보지 못하고 살았기에 보이지 않는 건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나락으로 떨어지고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몸이 붕 뜬 느낌이 사라졌다.

아겔은 어느새 자신 내면에 들어와 있었다.

째깍.

여전한 어둠과 고개 위로 밝게 빛나는 별들.

아겔은 그 별들을 하나하나 구경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걸어가다가도 잠깐 발을 멈추어 지나 온 길을 바라보기도 했다.

까마득히 멀지만, 집중만 한다면 아주 먼 과거까지도 손쉽게 그 색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의 한이 담긴 형형색색의 기억들.

사랑했던 아내의 얼굴.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아겔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400년에 가까운 찰나의 기다림. 이제는 그것을 실현해야 할 때가 왔기에, 아겔은 잠시 감정을 접어 두고 다시 어둠의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쿵.

한동안 걸음을 옮기던 아겔은 이내 발을 멈추었다.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었다. 시간이 다했다.

어둠의 절벽 끝에 선 아겔은 고개를 들었다. 언제나 자신을 노려보던 어둠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아겔이 메마른 목소리를 냈다.

“아로간티아.”

[아겔. 내가 보낸 나의 사도여. 또 다른 나여.]

어둠은 인격이 있는 것처럼 말을 걸어왔다.

그는 마치 시험하듯 아겔의 주위를 돌며 노인을 살폈다.

“아로간티아. 돌아와라.”

한없이 짙은 어둠이 곧 형상을 이루더니, 아겔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눈을 감고 있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

그가 아겔 앞에 서자 마치 아겔과 아로간티아 사이에 거울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그보다 우선은 네 심정을 듣고 싶다. 66년 6개월 6일 6시간 6분 6초 동안 빛없이 어둠을 걸어온 감상이 어떤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구먼.”

다른 어둠의 사도들처럼 아겔도 시험을 견뎌 냈다.

어둠 속에서 앞선 시간을 살아남는 것.

고독이란 편법을 사용한 듯 보이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우주 최악의 교도소였기에 이곳에서 눈 없이 살아남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해내었다.

이제는 그 시험의 보상을 받을 차례였다.

아겔이 말했다.

“두려웠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니.”

[그랬구나.]

아로간티아가 씩 웃더니, 아겔의 주름진 손을 붙잡았다.

[그럼, 이제 죄인들에게 심판을 내릴 시간인가.]

“그런 셈이지.”

아겔도 그를 따라서 웃었다.

“이젠 놈들이 두려워할 차례이다.”

* * *

아겔의 부탁(?)대로 두 빛의 사도는 행성 분열기의 공세를 막아 내고 있었다.

두 사람이 내뿜는 찬란한 신성력. 그것 때문에 대기권에서 수직으로 꽂히는 분열 광선은 고독을 분쇄하지 못했다.

두 사도가 기사단의 모함을 공격하는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생길지 알 수 없다.

거기에 충성의 사도가 그걸 가만 보고 있지만도 않을 것이고.

그래도 그들의 공격을 막아 내는 것쯤은 할 수 있었다.

베로니카와 아킬란의 이마에는 땀이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5개의 모함에서 퍼붓는 행성 분열 광선.

사도의 능력이라면 며칠 밤낮을 세며 막아 낼 수도 있었지만.

그들을 괴롭히는 건 저 공격을 퍼붓는 기사단의 존재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충성의 사도가 내린 명령에 따라 고독을 공격하는 성좌의 신도들.

그들만 생각하면, 두 사도는 마음이 어지러워졌기에 점점 공격을 막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실제로 힘에 부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토록 걱정과 근심이 주는 힘은 파멸적이었다.

아킬란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하루가…… 지나지 않았나?”

“다 되었을 거예요…… 우리 조금만 더 버텨봐요…….”

베로니카도 어느새 입술을 꽉 깨물고 신성력을 발하고 있었다.

찌직.

코르브스는 작은 까마귀의 형태로 곁에 다가와 어디서 가져왔는지도 모를 생고기를 뜯고 있었다.

“힘내십시오, 사도님들. 제가 응원합니다.”

“…….”

두 사람의 눈이 코르브스를 노려보았다.

어제 아겔과 함께 사라지더니, 다시 나타나 계속 두 사람 옆에서 죽치고 앉아 있는 코르브스였다.

아킬란이 말했다.

“자비를 베풀 테니, 조금 꺼져라, 까마귀야. 아무리 나라도 자비가 무한하진 않다.”

“응원하는 까마귀에게 말이 심하십니다.”

“내 인내도 한계에 도달했어요.”

“축하드립니다. 이제 한계를 넘으시면 더 강해지시겠군요. 조금만 더 힘내 봅시다.”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코르브스는 계속해서 종알거렸다. 불길하게 깍깍거리는 목소리로.

아킬란이 중얼거렸다.

“끄응…… 아겔에게 붙잡히지 말 걸 그랬다.”

그 말에 코르브스가 부리를 열어 딱딱 부딪쳤다.

“깍깍,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두 사도님은 주인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제가 알기로 원래 주인님은 모든 사도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

“아주 잔혹하고 참혹하게 말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자비가 끝이 없고, 인내가 하해와 비할 수도 없는 분이죠. 그리고 장담하는데…….”

한순간, 코르브스의 눈이 진중해졌다.

“두 분은 주인님께 자진해서 잡히신 걸 후회하지 않게 되실 겁니다. 심판을 피하려면 그늘로 숨어야 하는 법이죠.”

알쏭달쏭한 말이지만, 두 사람은 코르브스의 말을 알아들었다.

번쩍!

그 순간, 하늘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찰나의 순간, 신성력을 내뿜던 아킬란이 앞으로 뛰쳐나가고, 베로니카는 코르브스를 붙잡고 뒤로 물러났다.

콰아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땅이 움푹 팼다. 큰 충격이 주변을 휩쓸었지만, 앞으로 튀어 나갔던 아킬란 덕분인지 파괴적인 여파가 상쇄된 느낌이었다.

먼지가 가라앉자, 거의 크레이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은 구덩이가 형성되어 있었고, 누군가 그 안에서 떠올랐다.

베로니카와 아킬란은 긴장한 기색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로드먼.”

백색의 머리를 쓸어넘긴 그는 원래도 날카로운 인상이 한껏 시퍼런 기색을 내고 있었다.

그의 차가운 푸른 눈동자가 아킬란과 베로니카를 쓸었다.

“멍청한 것들. 내가 하루 동안 움직이지 않은 것은 너희에게 도망갈 기회를 준 것이었다. 내가 준 기회도 제 발로 차 버리다니.”

서슬 퍼런 목소리에 아킬란은 주먹을 풀었고, 베로니카는 검을 뽑았다.

“무례한 언사군. 도망갈 것이었다면, 애초에 고독에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오.”

“로드먼 프레이야. 정녕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지 못했나 보군요.”

“죄인?”

로드먼의 손에서 빛의 창이 만들어졌다.

거대한 창은 길이만 해도 5미터는 넘어 보였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허공에 수없이 많은 빛의 창이 나타났다.

“그 누구도 날 죄 있다 말하지 못한다.”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는지, 이후 고요한 침묵이 잠깐 찾아왔었다.

꼴깍.

마치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침을 삼키는 코르브스의 목울대가 움직이자마자, 세 명의 사도가 눈이 멀 만큼 찬란한 빛을 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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