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166)화 (167/186)

166화 태양을 부수는 검은 손

로드먼이 신성력을 폭발시키며 아겔을 밀어냈다.

화악……!

밀려나는 동시에 아겔이 단검을 휘두르자, 어둠이 거대한 해일처럼 일어나 고독을 공격하는 분열 광선을 막아 냈다.

로드먼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공격해 보려 달려들었지만, 이미 아겔은 어둠 속으로 숨어 버렸다.

점차 정글을 메울 듯이 퍼져 나가는 검은 물결.

아겔은 그 검은 물결 속에 피신한 채로 나락에서 마주했던 아로간티아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나의 모든 것을 넘겨주겠다. 그것이 너와 나의 약속이었으니까. 하지만 질서가 회복될 때까지 혼돈도 완전한 혼돈으로 거듭나지 못한다.

비록 완전하진 않을지라도 괜찮다. 놈을 상대하는 데 이 정도면 차고 넘치니까.

하늘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파지지지직……!

푸르게 빛나는 거대한 창들이 번개처럼 아겔의 검은 반원을 향해 내리꽂혔다.

아겔은 섣부르게 움직이지 않고 로드먼의 공격을 받아 내는 와중에도 고독에 쏟아지는 분열 광선 또한 막아 내었다.

“아겔라스토스……!”

로드먼이 직접 거대한 창을 내리찍으며 지상으로 강림했다.

아겔은 어둠을 적절하게 활용해 쏟아지는 빛의 창들을 막아 내는 한편, 로드먼과 부딪쳤다.

콰릉……!

천둥소리가 지상에서 울려 퍼졌다. 아겔은 로드먼의 창을 단검으로 비껴 쳤다.

창을 버리고 조금 물러난 로드먼이 비웃듯이 말했다.

“처음의 자신감은 어디로 갔느냐, 아겔. 금방이라도 날 죽일 수 있는 것 아니었나?”

아겔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재롱을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지.”

언제든 죽일 수 있다는 뜻이 담긴 말에 로드먼이 인상을 찌푸렸다.

푸확……!

검은 반원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렁이를 닮은 검은 생물체는 함선만큼 컸는데, 표면에 수많은 털이 달려 있었다. 털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은 마치 사람의 팔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로드먼에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콰르르릉……!

빛의 창이 지렁이의 머리를 꿰뚫으며 굉음을 내었다.

그 이후로도 거대한 지렁이들이 모습을 드러내 로드먼을 향해 머리를 들이밀었다.

-아아아… 으아아아아…….

-흐아아아아…….

-으어어어어… 크아아아아아…….

지렁이들의 몸에서 죽은 자들의 곡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로드먼이 소환한 번개의 창이 그 소리를 차단한 채로 지렁이들을 하나씩 분쇄했다.

검은 지렁이들이 로드먼의 발치에서 하나씩 부서졌지만, 검은 반원에서 나오는 지렁이들은 끝을 모르고 나타났다.

아겔은 그 어둠 속에서 지렁이를 상대하는 로드먼을 지켜보았다.

“질서의 힘…….”

로드먼이 지렁이를 상대하면서 사용하는 건 단순한 신성력이 아니었다.

바로 진정한 질서의 힘. 어지러운 혼돈과 어둠을 꿰뚫는 이 세상의 근간을 이루는 힘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진짜라고 보기엔 너무도 미약했다.

그가 휘두르는 질서의 힘은 훔쳐 사용하는 것. 원본의 힘은 아니었기에 편법이나 다름없었다.

검은 반원에서 나타난 지렁이들이 로드먼의 시선을 뺏는 동안, 한편에서 힘을 회복한 베로니카와 아킬란이 합류했다.

“도와주겠소, 아겔.”

두 사람은 아겔의 앞에 섰다.

충성의 사도, 로드먼의 힘을 아는 그들은 아겔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로드먼에게 힘 대결에서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아겔은 두 사람의 어깨를 잡아 뒤로 밀었다.

“엇…….”

“아닐세. 코르브스를 데리고 물러나 분열 광선을 막아 주게.”

아킬란은 밀려나다가 앞으로 걸어가는 아겔에게 소리쳤다.

“혼자선 무리요, 아겔! 충성의 사도는 그녀의 힘을 쓰고 있단 말이오……!”

질서의 힘. 그것은 성좌도 줄 수 없는 특별한 권능이었다.

지배자들의 원탁 소속이 아닌 두 사도는 더욱 그 힘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자신들과 원탁의 사도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생겼는지 직접 부딪쳐 느껴 보았으니.

그럼에도 아겔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도 알고 있네.”

---.

아겔의 몸에서 검은 반원을 이루었던 짙은 어둠이 또다시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삽시간에 주변을 물들이는 검은 물결에 두 사도는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것에 휩쓸리면,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에.

베로니카가 아킬란을 바라보았다.

“그, 그때와 달라… 어둠 자체가…….”

그녀가 말한 그때란 걸 아킬란은 모를 수가 없었다. 고독에 왔을 때, 아겔과 부딪쳤던 그 시점.

그때, 아킬란은 아겔의 어둠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신성력을 뿜어내면 잠시라도 주변을 밝힐 수 있었던 어둠. 그러나 지금은 잠시조차 밝히지 못할 만큼 짙은 어둠이었다.

아킬란도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러나야겠어. 끼어들면 죽을 수도 있겠군.”

사도들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싸움에서 물러섰다.

.

.

.

아겔은 번개의 창을 내뿜는 로드먼을 바라보았다.

충성의 사도, 로드먼 프레이야.

교단이 내린 명령은 반드시 수행하며, 인간 같지 않다는 평을 받는 사내.

사도의 권능으로 수백 년을 살아온 실력자였다. 그리고 그녀의 힘을 훔쳐 쓰는 도둑놈이었고.

로드먼이 아겔에게 번개의 창들을 날렸다.

짙은 푸른빛을 내는 창들이 스파크를 튀기며 아겔에게 내리꽂혔다. 주위로 커다란 검은 반원들이 생겨나며, 그 충격을 흡수해 냈다.

거대한 창들이 검은 반원들에 흡수되자, 로드먼은 더욱 많은 창을 소환했다.

[폴링 글림(Falliing Gleam)]

비처럼 쏟아지는 번개의 창들은 정글 곳곳에 박혀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는 와중에도 검은 반원이 있는 곳은 그 피해를 모조리 흡수했다.

아겔이 검은 반원 중 하나를 밟고 위로 솟구쳤다.

[흑완연(黑蜿蜒)]

반원에서 예의 거대한 지렁이가 솟구치면서 아겔의 몸을 위로 끌어 올렸다.

검은 지렁이의 몸에서 또 다른 지렁이들이 촉수처럼 튀어나와 로드먼에게 쇄도했다.

직접 번개의 창을 쥔 로드먼은 자신을 향해 솟구치는 지렁이들을 손수 꿰뚫었다.

그 짧은 시간을 이용해 아겔은 허공에 무수히 많은 검은 구체를 띄웠다.

로드먼은 구체들이 공간을 점유하지 못하도록 신성력을 폭발시켜 밀어내려 했지만, 검은 구체들은 손쉽게 소멸하지 않았다.

오히려 로드먼의 숨통을 조이듯이 천천히 밀집하기 시작했다.

운신의 폭이 좁아짐을 느낀 로드먼은 아겔을 향해 전력으로 창을 내질렀다.

아겔이 검은 구체 사이로 몸을 숨기자, 꿰뚫린 길로 로드먼이 쇄도했다. 그러나 나가려는 그의 길목을 다시 나타난 지렁이들이 차단하고 있었다.

“큭……!”

“길 찾는 재주는 없는 모양이구먼.”

구체들 사이에서 나온 지렁이들이 입을 쩍 벌렸다. 날카로운 검은 이빨을 가진 지렁이들은 로드먼의 사지를 물어뜯기 위해서 몰려들었다.

로드먼의 푸른 눈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라이트닝 레이지(Lightning Rage)]

몸에서 튀기는 스파크의 줄기들이 점점 그 굵기가 사람 두께만 해지면서 몰려들던 지렁이들을 박살 냈다.

빛에 찢겨 나간 지렁이들은 다시 어둠으로 화해 검은 구체에 흡수되었다.

그 이후로도 싸움의 과정은 비슷했다.

허공에 떠오른 검은 구체들에서 거대한 지렁이들이 나타났고, 마치 로드먼을 괴롭히듯이 물고 늘어지려 했다.

로드먼은 악을 쓰는 사람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지렁이들을 물리쳤지만, 점점 지쳐 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느려졌다.

아겔은 구체 중 하나 위에 서서 로드먼이 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가 처음부터 사용했던 질서의 힘은 이제 옅어지고 있었다. 아겔의 검은 구체들은 질서의 힘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으니, 주도권을 잡으려 힘을 과도히 소모한 것이었다.

“남아 있는 질서의 힘은 그게 끝인가?”

숨을 가다듬은 로드먼이 이를 갈며 말했다.

“으득…… 그럴 리가. 널 죽이기 위한 마지막은 아껴 두고 있었지. 숨어 있다가 이제야 직접 나서는 거냐…….”

“딱히 숨진 않았네만.”

이제껏 푸른 번개의 창을 만들어 낸 신성력과 달리 다른 빛이 로드먼의 손아귀에서 떠올랐다.

그것은 전력을 다한 수였다. 아직 로드먼은 더 싸울 수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여기서 승부를 보지 않으면 끝장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아겔은 검은 구체에 손을 가져갔다. 주름진 손이 구체에서 흘러나온 질척한 어둠으로 인해 검게 물들었다.

로드먼의 손아귀에는 태양처럼 빛나는 구체 하나가 들려 있었다. 척 보아도 어마어마한 신성력과 질서의 힘이 농축된 집합체.

그의 전력이었다.

로드먼은 구체를 들고 아겔에게 달려들었다.

아겔도 검게 물든 손으로 로드먼에게 마주 달려들었다.

[플레어링 디바인(Flaring Divine)]

[암수(暗手)]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앞으로 내질렀다.

ㅡㅡㅡㅡㅡ!!! 

순간적으로 공기가 밀려나며 소리가 사라졌다. 어마어마한 빛과 어둠이 근처의 색조를 완전히 지워 버렸고, 몇 초간 눈을 떠도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바람에 떠밀려 나가는 아겔의 뒤에 검은 반구가 나타나 충격을 흡수해 주었다.

안전하게 바닥에 착지한 아겔은 엉망이 된 죄수복을 가다듬고 무릎을 꿇은 로드먼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로드먼은 정글에 생겨난 거대한 크레이터 안쪽에 있었다.

그의 복부는 깔끔하게 꿰뚫려 피를 철철 쏟아 내고 있었고, 표정은 믿을 수 없다는 걸 봤다는 듯이 멍한 얼굴이었다.

“어떻…게…….”

장기가 손상되는 중상을 입었음에도 로드먼은 질긴 생명력을 가졌는지 쉽게 죽지는 않았다.

심지어 관통당한 복부가 회복하는 듯도 하였다. 그곳을 물들인 검은 어둠이 아니었더라면, 회복 속도는 훨씬 빨랐을 것이다.

아겔이 수염을 가다듬었다.

“어떻게 질서의 힘을 이길 수 있었느냐고 묻는 겐가. 하기야. 자네들은 그 힘이야말로 모든 권능의 정점이라고 생각했을 테지.”

질서의 힘.

이젠 그 어떤 성좌도 줄 수 없는 이 힘은 세상의 근간을 이루는 힘이다. 지금껏 이 힘을 활용해 굉장한 권능을 펼쳐 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힘도 아겔에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했다.

“차라리 순수한 자네의 힘만을 사용했다면, 내게 생채기 하나쯤은 입힐 수 있었겠지. 이것이 남의 것을 탐낸 대가라네.”

“그게 무슨…….”

“어둠 속에서 빛을 낼 수 있는 건 오직 스스로의 영혼뿐. 걸맞지 않은 힘을 사용해 봤자, 어둠을 몰아낼 수는 없는 법이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아겔을 보고 로드먼의 눈은 부들부들 떨려 왔다.

아겔은 로드먼을 닮은 아이를 떠올렸다.

크록투스 프레이야.

비록 지금은 눈을 멀게 할 만큼 빛나는 로드먼에 비해 반딧불과도 같은 존재이지만, 어둠 속에서 길을 밝혀 주는 건 작은 반딧불의 온기 있는 불빛이다.

“자네 아들은 내가 거두겠네. 어차피 자넨 아비 노릇도 제대로 못 할 테니.”

“큭큭… 내 아들… 교단의 기사단장까지…… 넌 타락시키는구나.”

“타락인지 아닌지는 후대가 판명해야 할 일이지, 자네가 판단할 일이 아닐세.”

허탈한 웃음소리를 낸 로드먼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땅을 짚었다.

더 이상 낼 수 있는 힘이 없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눈빛만큼은 절대로 쉽게 죽지 않았다.

“끝이 아니다, 아겔… 나 하나 죽인다고 될 성 싶으냐…….”

아겔은 고개를 들었다.

기사단의 함대가 머물고 있는 대기권 근처. 함선 사이에서 반짝이는 빛이 4개가 보였다.

로드먼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큭큭. 선발대일 뿐이다. 빛의 사도 전부를 너 혼자서 막아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아겔은 이제 막 고독에 도착한 빛의 사도들의 수를 확인하고 고개를 저었다.

“전부는 아니지. 지배자들의 원탁에 속한 사도들이겠지.”

로드먼이 고개를 들어 사나운 눈매로 아겔을 노려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하늘에서 빛이 쏟아졌다.

고독이란 행성을 당장 부수려는 위협적인 빛은 아니었지만, 행성 전체를 두를 만한 광대한 신성력이었다.

“아겔라스토스!”

싸움을 지켜보던 아킬란과 베로니카가 아겔 곁으로 달려왔다.

그 둘은 쓰러진 로드먼을 보고 침을 꼴깍 삼켰다.

“정말로…… 충성의 사도를 이겼군.”

“믿기지 않아요…….”

아겔이 단신으로 로드먼을 이겼다는 사실이 두 사람에게는 충격적이었던 모양이었다.

싸움의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는데도 쉽사리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이었다.

아겔이 사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죽진 않았으니, 감옥에 집어넣을 생각일세. 그나저나 지금 저들이 뭘 하고 있는 겐가.”

주름진 손이 가리키는 곳에 누가 있는지 두 사도는 알고 있었다.

지배자들의 원탁. 그곳에 소속된 빛의 사도들. 그들이 나타나 고독을 신성력으로 덮어 버린 것이다.

아킬란이 낭패감 어린 얼굴로 말했다.

“큰일이오, 아겔. 놈들이 신성력으로 우릴 이 행성에 가뒀소. 그리고 이 행성을 끌어당기고 있지.”

“어디로 끌어당기고 있다는 말인가?”

“바로 저기.”

아킬란이 손을 들어 이 행성을 밝혀 주는 광명체를 가리켰다.

항성 라비스.

고독을 밝혀 주는 태양인 라비스를 향해 고독은 끌어 당겨지고 있었다.

“빛의 사도들이 이 행성을 불바다로 만들려고 하고 있소. 라비스가 작은 항성이긴 하나, 이 고독을 태울 만한 온도는 차고 넘치오.”

“그렇군.”

아겔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빛의 사도들이 힘을 합쳐 행성을 끌어당긴다는 것 자체는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주먹질 한 번으로 행성을 부수는 작자들이니. 문제는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었다.

항성 라비스와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지 온도가 변화하는 것을 피부로 시시각각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당장 수를 강구해서 이곳에서 빠져나가야만 하오. 여기에 계속 있다간 이 행성과 함께 잿더미가 되고, 전부 녹아 버릴 것이오.”

베로니카도 거들 듯이 말했다.

“일단 이곳에서 피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야 다음도 있지 않겠어요, 아겔.”

“이 행성을 포기하란 말인가?”

아겔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66년, 아니 이곳의 시간으로 400년 가까이 지내 온 곳이라고 정이 들어 버린 모양이었다.

고독을 떠나기가 싫었다.

이 끔찍하고 잔인한 교도소에도 아겔이 추억할 만한 공간은 아직도 무수히 많이 남아 있었기에.

그리고 이 행성 교도소를 만든 진정한 의의도 아직 전부 펼치지 못했다.

“떠나지 않겠네. 이 행성을 포기할 순 없다네.”

베로니카가 허탈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할 거죠…… 지금 저희 둘은 로드먼과 싸울 때 전력을 다해서 남아 있는 힘이 없어요. 빛의 사도를 4명이나 상대하기엔…….”

“빛의 사도들을 상대할 필요는 없네. 일단 지금은. 나도 좀 쉬고 싶거든.”

“네……?”

아겔이 눈을 감고 있던 붕대를 풀었다.

두 사도는 그가 천천히 눈을 뜨는 광경을 보고 심장 박동이 느려지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검은 눈. 눈동자 따위는 없는 밤하늘과 같은 색채.

그의 눈은 처음 보는 것이기에 두 사도는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다.

붕대를 풀고 빛을 되찾은 아겔의 눈이 점점 커져 가는 항성 라비스를 응시했다.

두 사도는 말없이 아겔이 하는 일을 지켜보았다.

노인의 몸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가 그의 몸을 감싸고, 마치 다른 존재처럼 남아 있던 색이 지워지는 듯했다.

아킬란은 서둘러 베로니카를 데리고 물러섰다.

위험하다. 본능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저것에 가까이 서 있기만 해도 검게 물들 것 같은 기분.

착각 따위가 아닐 것이다.

아겔이 팔을 들었다.

그 간단한 행위가 두 사람에겐 너무나도 과격하게만 보였다. 아킬란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었다.

“아…….”

저 멀리에 검은 손이 나타났다.

빛이 투과하지 않는 검은 손. 항성 라비스 옆에 나타난 그 손은 천천히 손가락을 폈다.

[암수(暗手)]

태양의 빛은 검은 손의 어둠에 잡아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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