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악마를 믿는 자들 (1)
행성이 움직이고 있다.
행성은 원래 움직인다. 자전이든 공전이든.
원래대로라면 행성은 응당 그런 별을 칭하는 말이지만, 아겔이 이끌고 가는 고독은 조금 달랐다.
고독은 마치 거대한 함선처럼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이곳에 함대를 정박시킨 카라이스만과 함께 말이다.
바위에 나와 앉아 있는 사람은 아겔과 카라이스만밖에 없었다.
슈리오센과 봉인술사 라반은 한쪽에 떨어져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기에.
빛의 사도 두 명은 악마를 잡겠다는 소리에 골머리를 앓는 표정을 하곤 감옥으로 돌아갔다. 머리르 식히고 있을 테니, 혹시 싸울 일이 있다면, 다시 불러 달라면서.
떨떠름한 얼굴의 카라이스만이 말했다.
“……아겔. 다 좋은데 저는 왜 데려가는 거죠?”
“지금 악마를 잡으러 가는 중이니까.”
“지금 당장 말입니까?”
그는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악마를 사로잡는다.
거창한 말을 내뱉긴 했어도 그런 게 쉽사리 할 수 있을 만한 일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겔은 마치 낚시나 하러 가자는 듯한 말투로 악마를 잡으러 간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카라이스만은 어깨를 으쓱하고 아겔이 앉아 있는 바위 곁에 앉았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참 궁금하군요. 악마란 게 그렇게 쉽게 잡을 수 있는 겁니까?”
“원래는 아니지.”
“굳이 지금 잡아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66년을 기다렸는데, 겨우 몇 년 정도를 못 기다리겠습니까?”
“어차피 겸사겸사 가는 것이니 신경 쓰지 말게.”
카라이스만이 은근한 말투로 물었다.
“그렇다면 이제 계획이 뭡니까. 악마를 잡으러 가는 게 덤으로 할 일이라니 궁금해지는군요.”
아겔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하나만 잡을 게 아니기에 겸한다고 말한 게지. 그리고 악마를 잡으려면 밑에 있는 놈들부터 정리해야 하고 말일세.”
딱!
손가락을 튕긴 카라이스만이 급하게 품을 뒤져 무언가를 꺼냈다.
아름다운 초록색 보석 하나.
그의 손바닥 위에서 네 갈래로 갈라진 보석은 홀로그램 영상 하나를 띄웠다.
그것은 외계의 길을 저장해 놓은 우주 지도였다. 고독이 나아가는 방향을 확인한 카라이스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당신은 계획이 있으셨군요. 우리가 향하는 곳은 공좌의 신전입니까?”
“정답일세. 이젠 내가 뭘 할지 알아서 잘 맞추는구먼.”
“과찬입니다. 그럼 지금 향하는 신전은…… 음행, 주술, 시기 중 하나겠군요.”
카라이스만도 100년 전의 사도 전쟁의 내막을 알고 있는 자 중 하나였다. 기실 지금 살아 있는 귀족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우주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사건이었으니.
성좌와 공좌, 사도들의 관계를 이미 다 알고 있는 카라이스만이었다.
“그것도 맞네. 셋 중 누굴 원하는가?”
어떤 악마를 가지고 싶냐는 말.
카라이스만은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그는 성물이나 저주받은 물건, 혹은 가치가 높은 것이라면 뭐든지 구매하는 수집광.
유례없이 악마를 소유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는 극도의 흥분 상태에 돌입했다.
물론 겉으로는 아무런 티도 나지 않았지만.
카라이스만의 눈에 쉽게 읽을 수 없는 광기가 들어찼다.
“음행…… 음행의 공좌를 원합니다.”
잠시 고민하던 아겔은 턱을 긁었다.
‘죄’를 지은 놈들은 어차피 모조리 고독에 잡아 넣을 생각이었다.
공좌든, 성좌든, 그의 사도든, 누구든.
자신들이 하찮게 여기는 사람의 소유품이 된다면 그만한 형벌도 없을 것 같았다.
아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음행의 공좌를 자네에게 선물하지. 그거면 됐나?”
“물론이죠. 내가 악마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내가 당신에게 받을 대가는 그것뿐입니다.”
“항상 주의해야 하네. 악마란 족속은 꼭꼭 잘 가둬 놔야 하거든.”
“그 정도는 내가 알아서 합니다. 당신은 내게 악마를 잡아다 주기만 하면 됩니다.”
“끌끌, 그러지.”
아겔은 헛웃음을 짓고 고개를 돌렸다.
카라이스만이 악마를 잘 간수할 지는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도망치면 또 잡으면 그만이니.
그 과정에서 죽는다면 건 오로지 카라이스만 본인의 불찰일 뿐이다.
카라이스만이 떠오른 외계 우주 지도 몇 군데를 가리켰다.
“신전으로 향하곤 있지만, 바로 그곳에 도달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까?”
“방해물 같은 게 있나?”
“그런 셈이죠.”
흠흠 목을 가다듬은 카라이스만이 말했다.
“그럼 첫 타겟은 지금 가고 있는 음행의 신전으로 잡는다면…… 다른 신전들도 똑같습니다만, 우선은 관문이 되는 곳을 지나가야 합니다. 신전을 중심으로 해서 넓은 범위로 그 신도들이 퍼져 지키고 있는 데…….”
아겔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니. 그런 건 지날 필요 없네. 난 바로 신전으로 직행할 것이야.”
카라이스만은 갸우뚱한 얼굴이 되었다.
“워프 마커가 없는 이상 관문을 무시하고 안쪽으로 진입할 순 없을 텐데요?”
아겔이 말했다.
“내가 외계까지 어떻게 단숨에 왔겠나?”
“…….”
카라이스만은 머리를 긁적였다.
함선으로만 움직였던 자신의 편견 박힌 생각이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아겔에겐 워프 마커도, 워프 게이트도 필요없다. 그딴 것 없이도, 원래 고독이 있었던 카라이스만령에서 순식간에 외계까지 날아왔으니.
단순히 거리만 계산해도 수천 광년은 되었다.
아겔이 바위에서 일어섰다.
“싸울 준비나 하게.”
.
.
.
카라이스만에게 전투를 고한 아겔은 동력실에 방문했다.
지금은 크록투스가 지키고 있는 동력실. 그곳엔 크록투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오셨습니까?”
아겔이 오자 크록투스는 중앙제어장치를 보다가 일어섰다.
그도 아겔에게 영혼을 바쳤기에 내면에서 아겔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겔이 동력실로 간다고 하여 그를 이곳으로 옮겼다.
“좀 다룰 만한가?”
“어렵습니다. 그나마 이렇게 이동시키는 게 전부인 것 같습니다.”
동력실의 제어장치를 조작하면, 고독에 있는 자들을 마치 체스판의 말처럼 어디든 이동시킬 수 있다.
그것 말고도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너무 복잡해 크록투스로선 전부 다루기 어려웠다.
아겔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코르브스는 괜찮은가?”
로드먼에게 심장이 꿰뚫린 코르브스.
그는 지금 동력실 한쪽에 누워 크록투스에게 치료받고 있었다.
“우선 고비는 넘긴 듯합니다. 심장도 회복되었고, 호흡도 안정되어 가고 있습니다. 의식을 찾으려면 조금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신경 써 줘서 고맙군.”
“무얼요.”
머리를 긁적이던 크록투스는 제어장치 앞에 앉았다.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르신.”
“말하게.”
그는 잠시 생각하는 얼굴을 하다가 말했다.
“왜 아버지를 죽이지 않으셨습니까.”
“…….”
로드먼 프레이야. 크록투스의 아버지이자, 충성의 사도.
아겔은 그를 죽이지 않고 살려 두었다. 다른 사도들도 죽일 생각은 없었다.
“벌을 주기 위해서이지.”
“…….”
“자네 아버지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는가?”
“모릅니다. 아버지는 제게 통 이야기 같은 걸 해 주지 않으셨죠.”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네. 명예로운 빛의 사도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록투스는 한순간 말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굳었다.
아겔이 말을 이었다.
“자네 때문에 죽이지 않은 건 아닐세. 그래도 그런 생각은 하고 있지. 난 자네가 로드먼보다 더 뛰어난 전사가 되리라 굳게 믿고 있네. 언젠가 두 사람을 비교해 보면 흥미롭겠다고 생각하고 있네.”
“제가… 아버지보다 더 뛰어나게 될 것이라고요……?”
크록투스의 눈이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아겔의 표정은 확고했다.
“물론.”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겔의 검은 눈이 크록투스를 꿰뚫어 보았다.
“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니까.”
생각했던 대답이 아니라서 그런지 크록투스는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겔은 그런 그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왜… 제게 이런 은혜를 베푸시는 겁니까…….”
“그전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아겔은 대화를 마무리하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장래가 유망한 젊은이에게 아주 관심이 많다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오른손으로 크록투스의 왼쪽 목을 짚었다.
치이이익…….
살이 타는 소리가 들렸지만, 크록투스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지 의아한 얼굴로 주름진 손의 감각을 느꼈다.
이내, 그의 목에 빨간색 8이란 글자가 새겨졌다.
“정진하게. 코르브스도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부탁함세.”
아겔은 그대로 동력실에서 나갔다.
크록투스는 그가 나간 문에서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 * *
드넓은 외계였지만, 아겔이 마음먹자 ‘신전’에 도달하는 건 몇 초도 걸리지 않는 일이었다.
갑자기 허공에 등장한 블랙홀 안에서 고독이 천천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고독을 밖으로 밀어낸 검은 손은 물리법칙을 무시하며 다시 블랙홀 안으로 들어갔고, 블랙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아겔은 고개를 들어 보이는 행성 하나를 바라보았다.
“도착했군. 저기에 음행의 신전이 있는 것 같은데.”
카라이스만이 대답했다.
“행성의 학명은 세크레툼 텐타티오니스입니다. 참으로 웃기는 이름이죠.”
단숨에 적진 한복판으로 이동했음에도 두 사람은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겔. 이곳엔 마물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가 눈 깜짝할 새에 도착해서 그렇지, 곧 우리의 등장을 눈치챈 마물들이 밀려올 겁니다.”
“알아서 막게. 우리에겐 빛의 사도가 있다네.”
카라이스만이 머리를 긁적였다.
도대체 아겔은 틀린 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마물이 아무리 많으면 어떤가.
어차피 빛의 사도가 2명이나 있는데.
“요즘 자꾸 머리를 긁게 되는군요. 알겠습니다, 아겔. 저는 이곳에 있죠. 혼자 다녀오실 겁니까?”
“그럴 생각이네. 같이 가면 거추장스러울 것 같아서.”
푸확……!
아겔의 등 뒤로 검은 연기로 이루어진 날개가 활짝 펴졌다.
“그럼 갔다 오지.”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악마. 기대하겠습니다.”
카라이스만이 음흉한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
아겔은 고개를 끄덕였고, 거대한 날개가 펄럭였다.
노인은 순식간에 하늘 위에 있는 행성을 향해 솟구쳤다.
.
.
고독에서 볼 때는 하늘 위에 있었지만, 도착할 때는 내려앉아야 했다.
행성의 하늘은 마물이 뒤덮고 있길래 전부 갈기갈기 찢어 주고 왔다.
날갯짓하는 정도로도 마물은 아겔 곁으로 도달하지도 못하고 사지가 분해되었다.
아겔이 내려앉은 땅은 검게 죽은 땅이었다.
신전에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행성의 땅을 죽음으로 물든 것이다.
바로 신전에 가기보단 근처에 내려앉은 아겔은 주변을 조금 둘러보았다.
이 행성엔 마물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지성을 가진 생명체들도 살아간다.
당연히 타의로 사는 것이다. 어둠의 사도에게 붙잡혀 온 그들은 억지로 공좌를 찬양하는 일생을 살아간다.
탈출은 불가능하다.
그저 목이 터질 때까지 악마를 찬송하며, 사도의 장난감이 되는 것이 붙잡혀 온 포로의 운명이 되는 것이다.
-저기 있다!
한쪽 언덕에 이제 막 올라온 마물을 닮은 무언가가 소리쳤다.
마물은 지성이 없다. 언어도 없다. 오직 파괴와 살육의 본능만 있을 뿐. 그렇기에 말을 하지 못한다.
언어를 주고받는 건 오직 사람뿐이다.
그렇다면 저놈은 억지로 악마를 숭배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악마를 따르게 된 것이다.
-죽여라! 감히 성지에 침범한 놈이다! 잘게 잘라서 공좌께 제물로 바치자!
사람이었지만, 마물의 형태를 갖추게 된 놈들이 꽤 많이 보였다. 신전을 지키는 놈들이었다.
아겔은 달려오는 그들을 향해 마주 걸어갔다.
기사단과 맞먹는 무력을 가진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알지 못했다.
날개를 접은 아겔은 살짝 수그려 땅에 손을 짚었다.
그리고.
콰아앙……!
앞쪽에서 땅을 부수고 올라온 거대한 지렁이들이 신전 수호자들을 분쇄해 버렸다.
흑완연(黑蜿蜒). 검은 지렁이들은 잔혹하게 그들을 씹어서 조각내거나, 들이받아 짓눌렀다.
몸에 털처럼 난 팔들이 사지를 붙잡아 찢어 버리기도 했다.
수천 명의 생명이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일부러 맨 앞에서 달리며 소리 질렀던 놈은 살려 두었다. 그래도 이곳을 지키는 자들의 대장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 아아…….
아겔은 그에게 걸어갔다.
“신전으로 안내해 주겠나?”
그의 검은 눈에 대장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