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171)화 (172/186)

171화 마물 군대 (1)

음행의 공좌가 이끄는 마물의 군대.

그들은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사방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사도 전쟁 때 전 우주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것이 마물들이었다. 고독에서 실험용으로 키우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배기들.

오직 살육에 특화된 듯한 이 생물들은 문명을 증오하기에 만들어진 존재들이었다.

그들을 이끄는 것은 오직 본능. 힘과 쾌락을 따르고, 살과 피륙을 갈라야만 삶의 의의를 느끼는 것들이었다.

아겔은 숫자도 세기 어려울 정도로 몰려오는 마물의 군대를 둘러보았다.

‘수가 적군.’

전부 나타난 게 아니다.

사도 전쟁 때, 우주를 공포로 몰아넣은 마물의 숫자는 가히 억 단위로도 한계 지을 수 없는 수였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마물의 수는 대충 만 단위 정도. 가볍게 몸을 풀기에도 조금 아쉬운 숫자였다.

[영감.]

아직 마물들과 거리가 좀 남았을 때, 델라무가 말을 걸었다.

달리던 와중에도 두 사람은 호흡과 대화함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

“말하거라.”

[영감은…… 참 대단하군.] 

새삼스러운 말에 아겔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걸 이제 알았느냐.”

[당신이 대단하단 건 진작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더 대단하다는 건 지금 알았다. 어떻게 날 되살린 거지?]

분명 델라무는 저승에 있었다. 그 정도는 스스로 자각하고 있었다.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도 자신이 있는 곳이 저승이란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으니.

긴 인고의 노력을 통해 세 번의 급수 변경을 거쳐 6급으로 성장한 델라무였지만, 원탁이 일으킨 폭동에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원탁 앞에서 델라무는 약자에 불과했다.

아겔이 고개를 저으며 귀어로 대답했다.

[정확히 말하면 살린 게 아니다.]

델라무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지금 자신은 저승에서 이승으로 돌아왔지만, 온몸이 거뭇한 먹물로 둘러싸인 상태.

살아 돌아왔다면,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거다.

그리고 아겔이 죽은 사람도 부활시킬 수 있다는 성좌와 관련된 인물 같지도 않았고.

궁금증이 더욱 생겨났다.

[그럼, 날 어떻게 한 거야?]

아겔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저 저승에 있던 너를 잠깐 이승에 데려다 놓은 것뿐이야.] 

[무슨 체스 말을 옮기는 것처럼 말하네.]

[간단하지만, 누구나 할 수는 없지. 나는 모든 '경계'를 흐리게 만들 수가 있다.]

[경계?]

아겔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 혹은 경계. 삶과 죽음, 빛과 어둠, 존재와 부재, 내면과 외면, 질서와 혼돈. 모두 내 앞에서 쓸데없는 선 긋기에 불과하지.]

델라무가 머리를 긁적였다.

[어려운 말 지껄이지 말라고, 영감. 그런 거 모르니까. 난 몸 쓰는 것밖에 못 해.]

[무식한 게 자랑이구나. 그럼, 그 잘하는 거 한번 보여 봐라.]

싸움꾼의 입가가 씩 올라갔다.

그는 주먹을 부딪치고 몰려오는 마물 군대를 바라보았다.

[바라던 바야.]

쾅!

델라무의 몸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한참을 뛰어오른 그는 그대로 마물 군대 한가운데로 추락했다.

튀어나온 검은 점이 물밀 듯 밀려오는 군대와 충돌하는 순간, 지축이 뒤흔들렸다.

콰가가가강……!

단단한 주먹이 내리찍은 충격을 이기지 못한 땅이 움푹 들어갔고, 사방에서 압력을 견디지 못한 지각이 돌출되었다.

충격의 한가운데에 있던 마물들은 몸이 분쇄되듯이 터져 나갔고, 근방에 있던 마물들은 튀어나온 지각으로 인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델라무는 자신이 해 놓고도 어이가 없어지는 광경을 잠깐 바라보았다.

분명 죽기 전에는 이 정도로 강하지 않았는데, 지금 그가 주먹질 한 방으로 만든 건 직경이 최소 100미터는 넘는 구덩이였다.

아마 아겔이 뭔가 수를 써놓은 게 분명했다.

[어쩐지…… 왠지 자신감이 솟아오르나 했네.]

델라무라도 마물 군대와 마주치는 건 처음이었다.

시스템 : 소환으로 인해 마물을 몇 번 레이드해 본 적이 있지만, 지금처럼 떼거리로 몰려오는 마물들과 싸워 본 적은 없었다.

새로운 형태의 적들과 싸움이라 그런지, 델라무는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흥분과 즐거움을 이기지 못했다.

[큭큭큭…… 다 덤벼, 이 새끼들아!]

근육을 폭발할 듯 꿈틀거리며 델라무가 다시 뛰쳐나갔다.

아겔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마물들의 수를 점차 줄여 나갔다.

아무리 델라무가 저승에서 돌아와 생전보다 강해졌을지라도 이 많은 수의 마물을 혼자 처리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지원군을 조금 더 부르기로 했다.

[탈라스].

그가 주변에 내뿜은 먹물에서 사람이 솟아났다.

델라무와 비슷하게 어두운 빛깔을 띤 모습. 조끼를 입고 안쪽 전신에 붕대를 감은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소환되자마자, 깜짝 놀라서 자신의 손과 발을 살폈다.

[뭐, 뭐야……?! 나, 나는 분명 뒈졌는데……? 여긴 이승이잖아…….] 

탈라스는 조끼 안에서 낫 두 개를 꺼내 돌려 보고는 이내 고개를 홱 돌려 아겔을 쳐다보았다.

[너……!]

“저승에서의 삶은 좀 적응이 되었는가, 탈라스.”

[젠장……!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강탈의 탈라스. 약탈자들의 수장인 그가 지금 저승에서 돌아와 마물들을 학살하는 현장에 뛰어들었다.

제 몸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는지 그는 작은 몸집으로 잘도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이 미친 노인네야! 도대체 날 어떻게 한 거야! 날 풀어라!]

“능력 좋은 친구는 죽어도 편히 못 쉬는 법이지. 죽음은 탈출구가 아닐세.”

[이런 우라지이이이일---!] 

탈라스는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아겔의 뜻에 휘둘려 미친 듯이 마물들을 살육했다.

거대한 마물의 입이 탈라스를 삼키려 할 때, 신체가 멋대로 우뚝 멈추는가 하면, 마물들이 제 동료들에게 달려들어 씹어먹기 시작하고, 탈라스의 신체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쇠사슬이 마물들을 후리고 찢고 관통했다.

역시 생전에 걸출한 능력자였던 만큼 되살아나서 더욱 강력한 면모를 보여 주는 탈라스였다. 

아겔은 점점 말이 없어지며 마물들과 싸우는 데 집중하는 탈라스를 보다가 마지막으로 읊조렸다.

“위령.”

검은 먹물 속에서 한 여인이 떠올랐다.

단아한 옷차림에 머리를 틀어 올린 줄리안의 아내, 위령. 그녀도 저승에서 돌아왔다.

온화하고 아름다운 눈이 아겔을 보고 조금 커졌다.

[영감님……? 여긴 대체…….]

“설명할 시간이 많이 없구나. 대화는 나중에 하자꾸나. 묻고 싶은 건 딱 하나만 묻거라.”

위령은 많은 것을 물어보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아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줄리안과 홍아는 어떻게…….]

아겔이 빙긋 웃음을 지었다. 이 여인은 저승에 가서도 제 남편과 딸만을 떠올렸을 사람이었기에.

“고독에서 내보냈다. 한적한 곳으로 몸을 숨기고 있을 게야.”

위령은 가슴을 쓸어내리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감사해요, 영감님. 정말…… 감사해요.]

감정을 다스리던 그녀는 이내 총기가 가득한 또렷한 눈동자를 했다.

[제가 뭘 하면 될지 알겠어요.]

위령의 눈은 아직도 물밀 듯 쏟아져 오는 마물 군대에 향해 있었다.

그녀는 아겔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는 듯 마물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시작은 당연히 월야곡(月夜哭)이었다.

[아아… 아아아아…….]

위령의 한이 담긴 소리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소리를 들은 마물들이 미쳐 날뛰었고, 마구잡이로 아군을 공격했다.

이번에도 역시 생전보다 더욱 강한 위력이 발휘되었다. 강도가 더욱 강한지, 마물들이 미쳐 발광하는 것이 이전보다 훨씬 심했다.

아겔은 세 사람이 마물 군대를 상대하도록 두고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이 마물의 군대를 부리고 있을 자.

사도 아래에서 충성하는 악마의 종복. 그의 새빨간 눈빛이 마물 군대 중앙에서 빛나는 것을 아겔은 놓치지 않았다.

* * *

아겔이 세크레툼 행성에 내려가 싸우는 시각, 기업가 카라이스만도 고독의 상공에서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갑자기 곁에 나타난 고독 때문에 마물들이 몰려왔으니.

그러나 사실 전투라고 말하기엔 어폐가 있었다. 고독의 동력실에서 펼쳐진 방어막 위로 몰려온 마물들을 쏴 죽이는 게 전부였다.

골치 아프게 방어막을 뚫고 마물들이 고독으로 들어오면 대처하기가 귀찮아지니까. 아겔이 지키라고 했는데, 실패하면 그것도 꼴사나운 일이 될 것이다.

“호오, 저건…….”

하지만 지금 카라이스만의 관심을 끄는 건 고독으로 몰려오는 마물들 따위가 아니었다.

행성에 내려가 싸우고 있는 아겔.

카라이스만의 시선은 화면에 떠 있는 전투 장면에 꽂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곁엔 고독의 봉인술사, 라반도 있었다.

“……주인님. 저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카라이스만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세 사람은 아마 고독의 죄수였을 겁니다. 그것도 이미 죽어 버린.”

“그렇다면…… 아겔라스토스는 죽은 자를 살릴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라반은 들고 있는 수첩에 뭔가를 끄적였다. 카라이스만이 말했다.

“아니요. 죽은 자를 살린 게 아닙니다. 아마 그냥 불러낸 것 같아요. 저승에서.”

“……똑같은 것 아닙니까?”

“완벽한 부활은 아니라는 것에서 다른 점이 있죠. 게다가 생전보다 더욱 강해진 것 같군요. 그렇게 기록하세요.”

“예.”

카라이스만은 마물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사도 전쟁 때 끝없는 공포를 불러온 존재들일지라도.

그의 관심은 오직 아겔. 그가 가진 힘에 대해서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아겔이 행성으로 내려간 이후,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는 카라이스만이었다.

아마 그도 자신이 이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테지만, 딱히 거부하지 않았으니 괜찮을 것이다.

그가 아겔의 힘에 관심이 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이 우주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꿀 자의 힘을 미리 견식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기에.

라반이 정리하듯 말했다.

“아겔라스토스. 행성 간 함선 없이 홀로 이동 가능, 환혹 마법의 허상을 찢어 버림, 죽은 자를 이승으로 불러옴, 커다란 지네의 형상화, 그리고…… 항성을 부수는 거대한 검은 손.”

수첩을 닫은 그는 깔끔한 정장 안에 펜을 집어넣었다.

“웃기지도 않는 능력들이군요.”

카라이스만이 웃으며 라반을 돌아보았다.

“라반도 독특한 것으로 따지면 저 노인에 못지않으니 자신감을 가지세요.”

“……그럴 리가요.”

물론, 라반의 능력은 뛰어나다.

봉인술사. 고독의 모든 죄수의 능력을 2단계나 하락시킬 수 있는 권능을 가진 자.

셀 수도 없이 많은 자에게 낙인을 찍을 수 있는 그도 어디 가서 허접하다고 들을 만한 능력자는 아니었다.

비교 대상이 조금 잘못되었을 뿐.

“저는 태양을 부수는 건 못합니다.”

“제가 라반에게 그런 걸 바라지는 않으니 상관없어요. 태양을 부수는 사람은 저 노인 하나로 충분합니다. 라반은 사도라도 되고 싶은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주인님 곁을 보좌하는 거면 충분합니다.”

“소박한 욕심이군요. 무릇 제 수하들은 욕심이 많아야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주인님.”

파아아앗…….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마법진 하나가 나타나 누군가의 형상을 빚었다.

크록투스. 동력실에 있던 그가 직접 고독 상공에 있는 카라이스만의 모함에 나타났다.

“당신은……?”

크록투스는 겸연쩍은 얼굴을 하고 말했다.

“연습 중입니다. 동력실을 더 잘 다루려면 이동하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아서…….”

카라이스만은 그가 갑자기 나타난 것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게 눈에 보였다.

“호오, 당신…… 이전보다 비싸졌군요.”

“예?”

아겔이란 구심점이 아니었다면, 별 관심도 두지 않았을 성좌기사단장 나부랭이였을 테지만.

지금은 달랐다. 대상의 가치를 보는 카라이스만의 눈은 그가 이전보다 좀 더 비싸졌다는 걸 직감했다.

카라이스만이 씩 웃었다.

'아마 아겔라스토스 때문이겠지. 내가 이래서 그 노인과 함께 다니는 거야. 그가 손대는 것마다 어마어마하게 비싸지니까.'

어리둥절한 크록투스를 살펴보던 카라이스만이 무언갈 발견하고 그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이건…… 낙인?”

크록투스의 왼쪽 목에 새겨진 '8'이란 낙인. 크록투스는 어설프게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이 새겨 주셨습니다. 이걸 보고 더 정진하라고 하시던데…….”

그 말에 라반이 무섭게 걸음을 옮겨 크록투스의 목을 살폈다.

똑같았다. 자신의 낙인이랑.

비록 크록투스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게 자신의 능력을 따라 한 것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허망한 표정으로 손을 뗀 라반은 카라이스만을 보며 말했다.

“이제 제 능력은 딱히 독특한 것 같지도 않군요…….”

“…….”

카라이스만도 한순간 대꾸할 말을 잊은 듯했다. 라반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노인은 도대체 뭡니까?”

그 대답에 크록투스가 조금 해맑게 대답했다.

“아겔 어르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좋으신 분이죠.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십니다. 교단의 교리에선 배울 수 없던 진짜 좋은 말씀들이죠.”

“…….”

“…….”

두 사람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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