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늙은 죄수는 고독에 산다 (183)화 (184/186)

183화 반정부 연맹 (1)

크록투스는 동력실에서 대기하다가, 고독 상공에 함대급 전력이 도달하는 것을 보고 긴장했다.

고독에 주둔해 있는 카라이스만의 함대 규모를 뛰어넘는 상대. 크록투스는 그들이 누군지 함선의 문양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반정부 연맹…… 저 해적 같은 놈들이 여긴 왜…….”

전쟁인가 싶어 카라이스만에게 연락을 취해 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다행히 포격을 쏟아붓는 대신 정글에 내려온 그들은 아겔과 대화하는 듯 보였다.

동력실에서 그는 그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이 본관의 동력실이란 건 꽤 대단한 기능들이 있어서 그 정도는 조작할 지식만 있다면 손쉬운 일이었다.

다만, 대화 내용을 듣던 크록투스는 다시 긴장해야만 했다.

아겔의 무덤덤한 목소리가 들렸다.

-해적. 어디 빼앗을 것 없나 침이나 질질 흘리며 다니는 머저리들이란 말일세. 알겠나? 자기소개하려면 정직하게 해야지, 안 그런가.

반정부 연맹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있긴 했지만, 아겔 말대로 그들은 해적에 가까운 자들이었다.

모종의 이유로 외계에 추방당한 자들, 우주를 지배하는 은하 정부에 반감을 자들이 모여 결성된 집단인 만큼 가끔 내계를 침공하며 해적 같은 짓을 곧잘 저질렀다.

그렇다고 면전에 저렇게 말한다는 건 조금 위험한 일이었다. 해적 같은 놈들이라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물론, 아겔이라서 납득이 가기도 했다.

크록투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괜찮을지 모르겠군.”

정부에 정식으로 대항할 힘이 없어서 해적질이나 일삼는 놈들이지만, 반정부 연맹 사람들은 독한 자들이다.

마물과 악마들을 따르는 종족들이 한가득인 외계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아 그 세력을 유지하는 것만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바퀴벌레 같은 생존력을 지녔는지 알 수 있다.

외계에서 자체적으로 생존하는 데 성공했다는 건 생각보다 굉장한 일이었다. 그것이 모두 악으로 깡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크록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뒷감당을 내가 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

아겔의 폭언에 열댓 가량의 해적들은 입을 다물었다.

대부분 극도로 분노해서 당장이라도 싸움을 일으킬 기세였고, 몇몇만이 차가운 눈빛으로 아겔을 바라보았다.

반정부 연맹 간부, 쟝이 카라이스만을 보며 말했다.

“함부로 입을 놀리는 이 늙은이는 누구요? 왜 이 자리에 있는 것이지?”

아겔의 얼굴을 잠깐 살피던 카라이스만은 짧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절 찾아온 이유를 말씀드려 달라고 제가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 질문에 먼저 답해 주시죠.”

쟝은 완고한 얼굴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저 노인네가 누군지 설명하지 않으면, 나도 말하지 않겠소. 어서 말하시오, 기업가.”

“호오.”

그 말에 아겔이 반응했다.

“드디어 그 머저리 같은 본색을 드러내는구먼. 딱 자네들이 하는 행동이 강도와 똑같다는 걸 혹시 아는가?”

“이 늙은이가……!”

철컥! 철커덕! 찰칵!

해적처럼 생긴 자들이 일순간에 권총을 뽑아 아겔의 머리를 겨누었다.

얼굴이 붉어진 쟝은 눈빛도 살벌해졌다.

“입조심 하는 게 좋을 거요. 우린 말로 안 하거든.”

“나도 입 아프게 말로 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네.”

그 말에 쟝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선은 상대가 먼저 넘었다.

뒤에 있는 수하들이 뜻을 알아듣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푹! 푹! 푸부부부부북!

바닥에서 솟아오른 검은 창이 수하들의 몸을 꼬치처럼 뚫어 버렸다. 몸통이 뚫리고도 행여나 방아쇠를 당기는 놈이 있을까 권총을 든 손도 창에 꿰뚫린 모습.

쟝은 눈을 크게 뜨며 본인을 제외하고 창에 꿰뚫려 피가 흘러내리고 있는 수하들을 바라보았다.

라반은 저질렀군- 하는 표정을 지었고, 카라이스만은 후련하다는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쟝은 수하들이 죽었는데도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오히려 극도로 분노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이런 미친! 정말 끝까지 가 보자는 것이군! 이렇게 나온다면, 우리 반정부 연맹의 힘을 보여 줄 수밖에!”

아겔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봤자, 해적이지. 안 그런가?”

카라이스만이 동의하듯 미소를 지었다.

“동의합니다.”

쟝이 고함을 내질렀다.

“카라이스만……! 당신이 이토록 오만방자한 인물인 줄은 몰랐소! 감히 호의로 다가온 우리 반정부 연맹에 칼을 들이밀다니. 내 오늘 일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카라이스만은 어깨를 으쓱할 따름이었다.

“총을 잔뜩 들고 온 주제에 호의라니.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말이군요.”

쟝은 그 말을 듣고 씩씩거리더니, 손목에 차고 있는 첨단 기기를 조작하듯 손가락을 놀렸다.

그러나 그가 다 조작하기도 전에 기계가 퍽 소리가 나며 스파크가 튀었다.

“누가 그냥 보내 준다고 하던가.”

깜짝 놀란 그는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쳐다보았다. 아겔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감히 내 집에 멋대로 쳐들어온 대가는 치르고 가야지.”

쟝이 이를 악물고 발을 박찼으나, 멀리 도망가기도 전에 따라붙는 아겔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아겔은 쟝의 몸 근처에 생겨난 동그란 구체들을 볼 수 있었다.

알록달록한 구체들은 다음 순간, 광선이 되어 아겔을 향해 쏟아졌다.

광선은 당연히 빛의 속도이기에 웬만한 자들은 피하기 어려울 테지만, 아겔은 아니었다.

까맣게 물든 그의 전신은 광선을 빨아들였다. 아무리 많은 빛줄기가 아겔에게 쏟아져도 그의 몸 하나 뚫지 못했다.

쟝은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음을 보고 놀라면서도 다음 수를 준비했다. 일부러 광선을 바닥으로 향하게 해 흙먼지를 일으킨 것.

시야를 차단하려는 듯했다.

콰가아아앙-!

아겔은 흙먼지 너머에 도망치려는 쟝을 보고 어둠을 타고 이동했다. 마치 공간이동을 한 것처럼 어둑한 나무 뒤에서 나타난 아겔이 달아나는 쟝의 팔을 억세게 붙잡았다.

“우선 팔 하나는 가져가겠네.”

푸확!

그의 손에 들린 벌레 단검이 쟝의 어깨 아랫부분을 가르고 지나갔다. 깔끔하게 절단된 팔을 아겔에게 빼앗기는 걸 보며 쟝이 울부짖었다.

“크하아아아아아악……!”

그는 고통을 참으면서 여전히 발을 놀렸다. 그러나 얼굴은 아직도 패색이 짙은 표정이 아니었다.

광선으로 땅을 타격한 건 도망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함대에 자신의 위험을 알리기 위한 신호이기도 했다.

함대가 이곳을 주시하고 있을 테니, 이제 이 행성에 포격이 내리꽂힐 것이다.

쟝이 사납게 외쳤다.

“……대가를 치러야 할 건 너희다! 감히 반정부 연맹을 건드린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지 지금 보여 주……!”

쿠르르릉……!

때마침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카라이스만의 함대와 반정부 연맹 함대가 서로를 향해 포격을 쏟아붓고 있었다.

“보아라! 이제 너흰 끝이야!”

의기양양한 얼굴을 한 쟝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어……?”

팔이 잘려 나갔어도 의기양양하게 외치던 쟝은 이내 하늘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자 표정이 차츰 변해 갔다.

카라이스만의 함대와 자신이 끌고 온 함선들이 격렬한 전투에 들어간 건 맞았다.

그러나 왜 그런지 몰라도 포격이 터지는 족족 폭발하는 건 반정부 연맹의 함선이었다.

쟝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째서…….”

나무 뒤에서 조용히 나타난 카라이스만이 쿡쿡 웃음소리를 냈다.

“이 행성이 ‘고독’이란 걸 알고 찾아왔는데도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는 겁니까? 참 우스운 친구로군요. 우주 최악의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곳인데, 이만한 방비도 없을 것 같습니까?”

“…….”

카라이스만의 말대로 행성 고독의 대기권에서 이루어지는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행성 차원의 방어막이 카라이스만의 함선들에 각각 적용되어 차원이 다른 방어력을 갖추었고, 그에 반면 일반적인 실드만 갖추고 있던 반정부 함선들은 포격을 견디지 못하고 터지고 있었다.

거기다 행성에서도 자체적인 포격이 솟아올랐다.

얼어붙어 있는 쟝에게 카라이스만이 다가갔다.

“초면부터 이런 사이가 된 것에 참 유감입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죠.”

“늦지 않았다고……?”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쟝은 순간 카라이스만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일이 이 지경까지 흘러왔는데, 늦지 않았다니.

“당신의 함대를 향한 공격을 중지하겠단 말입니다. 내 말만 잘 따르면 말이죠, 큭큭.”

쟝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것이 함정이었다고 해도 비겁하다고 욕할 수 없다. 무릇 함정이란 것은 걸려든 사람의 잘못이었으니.

그는 곧 체념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뭘 하면 되겠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걸 어려워하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죠.”

카라이스만이 입꼬리를 올리며 속삭였다.

“당장 저기에 있는 노인장께 가서 사과하세요.”

쟝의 눈이 커졌다.

갑자기 노인에게 사과하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사과……? 저 늙은이에게…….”

“그렇습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노인네, 늙은이라는 호칭은 삼가는 게 신상에 이로울 겁니다. 노인장, 혹은 노공이라 부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수하들처럼 꼬치가 되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

카라이스만의 말을 듣고 나서야 쟝은 자신의 수하들을 순식간에 죽여 버린 게 카라이스만이 아니라, 아겔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기야 대귀족 카라이스만과 함께 있는 노인인데, 그 정체가 평범할 리는 없었다.

이는 미리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실책이었다.

아겔은 해적질이나 하는 놈들의 우두머리인 저놈이 과연 자신에게 사과할지 지켜보았다.

저들은 엄연히 고독이란 그의 행성을 침입한 강도 무리나 다름없었다. 사과를 받는 건 당연한 일. 더 이상 몰상식하게 행동하면 죽여 버리고 행성의 거름으로 쓸 생각이었다.

쟝은 터벅터벅 걸어서 아겔 앞으로 갔다. 그러더니 무릎을 꿇고 한 쪽만 남은 팔로 땅을 짚으며 허리를 숙였다.

“노인장. 내 사과하오. 무례하게 굴었던 것을 용서해 주시오.”

아겔은 소리는 내지는 않았지만, 입 모양으로 미세하게 놀라움을 표현했다. 해적질하는 놈이 그래도 용서를 구하는 자세는 나쁘지 않았기에.

자존심은 한순간이지만, 뻗대다간 목숨이 날아가는 것도 한순간이다.

아마 해적질을 하며 살아왔을 테니, 그게 어떤 건지는 아는 모양이었다.

아겔이 손을 들자, 카라이스만은 함대에 포격 중지 신호를 보냈다.

늙은 죄수는 땅에 닿을 듯 구부러진 쟝에게 말했다.

“사과를 받아들이겠네.”

“가, 감사합니다.”

아겔은 자른 쟝의 팔을 땅바닥에 툭 던져 주었다.

“하지만 다음 기회는 없네. 알겠는가.”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왜 우릴 찾아왔는지 들어 보면 좋겠군. 내가 바쁜 사람이라 말일세. 짧게 요약해서 말해 주면 고맙겠구먼.”

“예…….”

쟝은 소중히 잘려 나간 팔을 붙들고 일어섰다. 그가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고독을 탈취한 기업가에게 같이 정부에 대항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하려 했습니다.”

아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이미 유추하고 있었던 내용이었기에.

반정부 연맹은 해적 놈들과 다를 게 없지만, 소식만큼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수집하는 자들이다.

카라이스만이 고독을 탈취하고 도망쳤다는 걸 이들도 안 것이다.

아겔이 말했다.

“그게 용건의 끝인가?”

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사실 방금 말한 건 부차적인 일이고, 진짜 용건은 따로 있습니다.”

“그게 뭔가?”

“교단의 추기경이 당신들을 만나기 원합니다.”

추기경이란 말에 아겔의 호흡이 잠깐 멈추었다. 그 순간 곁에 있는 자들은 잠깐 주변이 더 어두워진 것 같다는 착각을 느꼈다.

‘추기경…….’

100년 전 사도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나 다름없는 자들. 실질적인 무력은 사도들이 담당했지만, 추기경들은 뒤에 숨어 계획하고 조력하는 역할을 했었다.

아겔에겐 원수와도 같은 자들이었다.

아겔의 검은 눈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마주 선 쟝의 잘려 나간 어깨가 덜덜 떨렸다.

감정을 떨쳐 낸 아겔은 쟝에게 걸어와 멀쩡한 반대편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안내하게. 어떤 놈인지, 내가 직접 확인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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