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반정부 연맹 (2)
추기경.
교단의 권력 핵심 중추이자, 실질적으로 교단을 움직이는 장본인들.
교단에서 가장 명망이 높은 단체는 단연 사도들이 소속된 ‘빛의 사도회’이지만, 실제 교단 경영은 모두 ‘성화추기경단’에서 맡고 있다.
투표로 뽑히는 교황은 사도들의 권위와 명성 아래에 꼭두각시로 전락한 지 오래고, 현실적으로 교단 밑바닥부터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위치는 추기경이다.
물론, 그것도 성좌의 선택을 받아 신성력을 다룰 수 있는 자들만 가능한 일이다.
아겔은 100년 전 사건을 일으킨 주범이 추기경단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실제로 힘을 쓴 건 원탁이겠지만, 계획하고 빛과 어둠의 사도들을 끌어모으는 중간 다리 역할은 추기경들이 했지.’
사도 전쟁을 일으킨 원인의 지분을 적게 차지한다고 볼 수 없었다. 물론 100년 전 일은 비단 사람의 욕심으로만 비롯된 건 아니었지만.
추기경 모두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이들이다. 죄를 지은 자들은 단 한 명도 빠뜨리지 않고 고독의 감옥에 처박아 버릴 생각이었다.
아겔이 카라이스만을 보며 말했다.
“그럼 꾸물댈 것 없이 바로 이동하지.”
쟝이 돌아서는 그에게 말했다.
“죄송한 말이지만, 이동하려면 우리 모함에 오르는 게 좋습니다.”
자신의 함선에 타야 한다는 말에 아겔은 의아한 얼굴로 쟝을 바라보았다.
설명은 카라이스만이 했다.
“빠르게 이동해야 하면 그렇다는 말이죠. 물론 저도 저들의 모함에 올라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인가?”
어느 때에도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람이 카라이스만이었다. 그런데 해적과 다름없이 여기는 저들의 배에 오르겠다는 말이었다.
“저도 호위가 있긴 하니 그리 두렵진 않습니다만,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저들이 마커 좌표를 공유해 주지 않을 겁니다.”
“그렇군.”
아겔은 단박에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쟝도 동의하는 표정이었다.
“연맹의 마커 좌표는 함부로 알려 줄 수는 없습니다.”
마커는 어느 곳에 있든 일정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워프’ 기술을 보조하는 기계 장치를 뜻했다.
특정 좌표에 준비된 마커가 아니라면 초광속 이동은 가능해도 워프는 불가능하다. 거리와 상황에 따라 워프가 유리할 때가 있고, 초광속 이동이 유리할 때도 있었다.
자신들의 본거지 좌표를 적이 될 수도 있는 자에게 가르쳐 줄 수는 없었기에 쟝은 자신의 모함에 타야 한다고 말한 것이었다.
아겔이 카라이스만을 보며 말했다.
“그럼, 저들의 모함을 타고 이동하지.”
뭔가를 고심하던 카라이스만이 조금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출발하기 전 확인하고 싶은 게 있군요. 쟝, 혹시 잠깐만 우리끼리 대화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오. 하지만 너무 길지 않았으면 하오. 연맹장께서 기다리고 계시니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입니다. 아겔, 대화 가능합니까?”
“어려울 것도 없지.”
.
.
.
아겔은 카라이스만을 따라 조금 걸었다. 그의 호위, 봉인술사 라반도 카라이스만의 곁에서 걷다가 물러나 자리를 비켜 주었다.
뒤돌아 있는 카라이스만. 아겔은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대충 예상은 했지만, 그가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우리의 계약은 여기서 끝났죠.”
돌아선 카라이스만이 품에서 접혀 있는 종이 하나를 꺼냈다. 그 종이는 아겔과 카라이스만의 지장이 찍혀 있는 계약서였다.
접혀 있는 걸 폈는데도, 마치 새 종이인 것처럼 구김살이 없었다.
“저는 당신을 고독에 66년 6개월 6일 6시간 6분 6초간 숨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제게 ‘악마’를 사로잡아 주었죠.”
“그렇지.”
“그럼, 우리의 계약은 여기서 끝이 났군요. 동의합니까?”
“동의하네.”
카라이스만이 돌아서서 아겔을 마주 보았다.
“계약 종료.”
그의 손에 있는 계약서에 확 불이 붙더니, 이내 재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아겔은 카라이스만이 겨우 계약 종료나 하자고 자신을 이 자리에 부른 게 아니란 것을 알았다.
카라이스만의 얼굴은 계약이 종료되어 후련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의 눈빛엔 아직도 탐욕이 담겨 있었다.
“더 할 말이 있나 보구먼.”
“역시 눈치가 빠르시군요. 새로 당신과 거래하고 싶습니다.”
“거래는 언제든 환영이네만, 왜 새로운 거래를 원하는지 물어도 되겠나?”
카라이스만은 잠시 고민하던 표정을 하더니 솔직하게 말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주신 선물을 잘 굴려 보았습니다.”
선물이란 당연히 음행의 공좌다. 영혼이 인간의 몸에 갇혀 버린 악마.
아겔이 휴식을 취하는 하루 동안 새로 받은 선물을 이리저리 굴려 본 모양이다.
“좋은 선물인 건 확실합니다. 값어치 자체가 평범한 재화와는 다르죠. 하지만 이 선물이 제가 진정 원하던 것을 이뤄 주진 못할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저 장난감이 필요해서 악마를 사로잡아 달라 한 것이 아니었군?”
“하하, 악마를 장난감으로 달라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자네라면 그럴 줄 알았네.”
“아닙니다. 제가 진정 원하는 건 따로 있죠.”
카라이스만의 눈에서 불이 튀는 듯한 감정이 일렁였다.
아겔이 묻지 않아도 카라이스만이 말했다.
“은하 정부의 전복. 그리고 특정 인물의 암살. 제가 원하는 건 이겁니다.”
그가 오른손을 들자 허공에서 종이가 나타났고, 불이 그을리며 글씨가 새겨졌다.
아겔은 왜 그가 악마를 원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악마의 힘을 이용해 은하 정부를 무너뜨릴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지 않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마침 아겔이라는 악마를 잡아 줄 수 있는 유일한 자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하지만 그의 악마란 존재는 그의 생각대로 손쉽게 다룰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거래하는 데 문제는 없다. 그가 왜 은하 정부의 전복, 그리고 특정 인물의 암살을 원하는지 굳이 당장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
아겔이 말했다.
“자넨 내게 뭘 해 줄 수 있지?”
“원하는 것을 말씀해 보시죠.”
카라이스만의 말에 아겔은 고민했다.
그가 가진 재화, 수많은 수집품, 성물과 저주받은 물건. 모두 아겔에겐 그리 의미가 없는 것들이었다.
아겔은 생각하던 걸 말했다.
“그 정도라면 영혼은 받아 가야겠군.”
카라이스만은 바라던 바였는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예 이걸 노리고 새로운 거래를 요청해 왔을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계약서 종이에 불로 글자가 새겨졌다.
[에드워드 카라이스만의 영혼]이라고 적혔다.
아겔은 문득 궁금한 게 생겨서 질문했다.
“특정 인물의 암살이라고 했는데, 누굴 말하는 게지?”
“아, 그걸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꽤 싫어하는 놈인지 카라이스만의 표정이 짧은 순간 일그러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알데란 카라이스만이란 자입니다.”
“그렇군.”
아겔은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서에 나머지 사항이 화륵거리면서 새겨졌고, 지장을 찍어 완성한 계약서는 카라이스만의 품속으로 사라졌다.
아겔은 필요치 않았기에 굳이 2부로 나누지 않았다.
카라이스만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럼, 가실까요?”
“아, 그전에.”
카라이스만은 어느새 자신의 심장에 얹힌 주름진 손을 볼 수 있었다.
아겔이 말했다.
“선불일세.”
* * *
아겔은 일행과 함께 쟝의 모함에 올라탔다.
역시 해적이라 불리는 자들답게 내부는 청소 상태가 쓰레기 같았고,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선원들이 아겔과 카라이스만을 대놓고 주시하며 지나다녔다.
카라이스만은 향수를 묻힌 손수건으로 코를 가리고 있었고, 라반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오직 아겔만이 익숙하다는 듯 쟝을 따라갔다.
자동문이 열리자, 그래도 쓸 만한 곳이 나타났다.
“조종실이오. 워프를 시작할 테니, 귀빈석에 착석해 주시오.”
쟝이 소개한 조종실이란 곳도 다른 곳과 비슷하게 악취가 나긴 했지만, 첨단 장치들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도 구형이 아닌 신형 장치들처럼 보였는데, 정부 기술에 비해 그리 뒤처진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워프는 초광속 이동과 달랐기에 아겔과 카라이스만, 라반은 귀빈석에 앉아 더러운 안전벨트로 자신을 묶었다.
더러운 것을 견디지 못하는 카라이스만은 품에서 티슈를 가득 꺼내 안전벨트 전체를 감싼 다음, 앉을 자리도 깨끗이 닦아 내고 앉았다.
아겔은 편하게 귀빈석에 앉아 워프를 기다렸다.
곧 쟝의 목소리가 조종실에 울렸다.
[089-221ABBK 마커. 연동 장치 활성화.]
-신호 송신!
-신호 수신! 활성화 완료!
쟝의 명령에 따라 크게 대답하는 선원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워프 모드 가동.]
-웜홀 생성기 작동 준비 완료!
-선체 특수 보호막 가동 완료!
-엔진 점화 완료!
모든 것이 준비되자, 쟝이 짧게 읊조렸다.
[워프 인.]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앞으로 한껏 전진하던 함선이 순식간에 멈춰 섰다.
마치 급발진했다가 급정거한 듯한 느낌. 그러나 몸이 앞쪽으로 쏠린다든지 하는 관성 작용 같은 건 없었다.
그 짧은 전진만으로 그들이 떠 있는 우주 공간 자체가 변화되었다.
연맹의 본거지에 도착한 것이었다.
아겔은 먼저 안전벨트를 풀고 밖을 비치는 스크린에 다가갔다.
“아름답군.”
오랜만에 보는 건데도 그 눈부신 자태는 달라진 게 없었다.
이곳은 내계에서는 보기 힘든 알록달록한 자원 행성, 크리스탈 행성, 얼음 소행성 무리, 화산 행성 등 각종 색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거대하거나 작은 우주 생물들이 허공을 유영하고 있었는데, 자연스러움이 극대화되는 모습이었다.
그와 동시에 그곳은 발전한 곳이었다.
마치 해파리를 연상하게 하는 모양의 거대한 반정부 연맹 우주정거장을 중심으로 행성들을 돌아다니는 수많은 함선이 눈에 들어왔고, 몇몇은 항해 활주로에서 초광속 이동을 하는 게 보였다.
규모가 어마어마했는데, 정부와 전면전을 벌여도 족히 수년은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규모인데도 약탈자처럼 국지전만 일으키는 게 의아할 정도다.
자연과 사람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곳. 악마의 손길이나 인간의 탐욕이 닿지 않은 낙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곳을 보고 아겔이 처음 느낀 감정은 활발함이었다.
과연 해적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이긴 했어도 이만한 기반을 갖추었다면, 반정부 연맹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질 법도 했다.
아름답다고 평한 아겔의 말에 동의하듯 카라이스만이 곁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외계의 매력이죠.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데, 왜 함선 내부는 청소 상태가 쓰레기 같은지 이해가 안 됩니다.”
쟝이 나타나 설명했다.
“그건 연맹의 전통이오. 내부가 깨끗한 함선은 항해를 시작하고 돌아오지 못한다는 미신이 있기 때문이지.”
“그것참 미개한 전통이군요.”
“기본적으로 우린 항해자들이오. 자유를 속박하는 저 극악무도한 은하 정부에 맞서는 우리이니, 정체성은 지켜야 하지 않겠소.”
틀린 말은 아니었는지 카라이스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항해자라.
아겔도 왠지 그 말엔 동의하고 싶었다.
자유롭게 우주를 항해한다는 것. 그도 그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고 있었다.
사건이 있기 전까진 아겔도 아내와 같이 우주를 떠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그 즐거운 시간은 인간의 몸으로 느끼기엔 너무도 먼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다.
몸을 돌린 아겔이 쟝에게 말했다.
“안내하게. 감상도 좋지만, 해결해야 할 일이 있으니.”
추기경을 만나는 게 뭘 해결하는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쟝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아겔 일행은 쟝을 따라 순간이동 패드 위로 올라섰다. 빛이 네 사람을 휘감더니, 이내 모함에 있던 그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순간이동을 마치고 눈을 뜬 아겔은 이곳이 우주정거장 내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간부들만이 사용하는 순간이동 패드가 가득한 장소.
쟝은 그곳에서 나와 아겔 일행을 간부 전용 승강기로 안내했다. 승강기 앞에는 덩치 큰 해적 두 명이 떡하니 지키고 서 있었지만, 쟝의 얼굴을 보는 순간 옆으로 비켜 주었다.
아겔 일행과 함께 승강기에 올라탄 쟝은 신신당부하듯이 말했다.
“연맹장께 가는 길이오. 부디 무례는 삼가…….”
그 순간, 그의 어깨에 있는 앵무새가 미친 듯이 날개를 퍼덕였다.
“입 다물어~! 입 다물어~!”
갑작스러운 날갯짓에 얼굴을 몇 대 맞은 쟝은 허둥지둥거리며 앵무새를 진정시켰다.
“이, 이놈이……!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깝치지 마~! 깝치지 마~!”
앵무새는 한참이나 쟝을 괴롭혔다.
아겔이 곤혹스러워하는 쟝에게 질문했다.
“추기경은 연맹장과 함께 있나?”
“아, 그렇습니다. 오셔서 기부를 많이 해 주셨기에 연맹장께서 총애하고 계십니다.”
“호오, 추기경이 반정부 연맹에 기부를?”
“네. 적은 금액도 아니었습니다.”
아겔은 수염을 문질렀다.
일반적으로 성좌 교단은 은하 정부와 동맹 관계다.
교단의 핵심 권력자인 추기경이 정부가 아니라 반정부 연맹에 찾아와서 기부까지 했다니, 일이 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아겔은 일단 직접 만나고 판단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뭐가 되었든지 놈들이 죄를 지었단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지만.
띵!
최상층에 도착하고 나서야 승강기가 멈추었다.
쟝이 먼저 내렸고, 아겔은 최상층의 풍경을 둘러보며 걸음을 옮겼다.
붉은색 고급 벽지에 황금 용이 복도 양쪽 벽을 길게 가로지르며 조각된 통로. 끝에는 역시나 용이 양각된 거대한 황금 문이 있었는데, 두께만 해도 사람 머리통보다 두꺼웠다.
쟝은 그 앞에 서서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흠흠, 연맹장님! 쟝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안쪽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라.
쿠궁…….
황금 문이 천천히 열리며 그 안쪽을 드러냈다.
아겔은 열리는 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저곳에 자칭 우주에서 가장 자유로움을 사랑한다 자부하는 사내가 있을 것이다. 사실 그에게 큰 관심은 없다.
아겔의 관심은 오직 추기경.
100년 전 사도 전쟁을 일으키는 데 협조한 자들에게 쏠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