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반정부 연맹 (3)
문이 열리고, 쟝은 잘린 팔을 들고 허겁지겁 물러났다. 괴사가 일어나기 전에 치료하러 가는 모양이었다.
라반은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서 대기하게 되었다. 황금 문을 통과한 사람은 아겔과 카라이스만 두 사람뿐이었다.
아겔은 반정부 연맹장이라는 자가 머무는 방을 둘러보았다.
검소함과는 거리가 먼 사치스러운 방 안.
황금 용이 조각된 각종 향로와 금색 실크 천이 휘황찬란하게 매달린 내부. 안쪽에 흐르는 은은한 조명이 아니었다면, 번쩍이는 색 때문에 눈이 아팠을 것만 같다.
그런 방 끝에 작은 체구의 사내가 양옆으로 미인을 끼고 장정 다섯이 넉넉히 앉아도 될 만한 옥좌에 앉아 있었다.
그는 게슴츠레 눈을 뜨고 입을 열었다.
“어서 오게, 카라이스만.”
“오랜만이군요, 연맹장.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여전히 신수가 훤해 보이는군요.”
“보는 대로 그럭저럭 잘 살았지.”
그는 아겔을 몰랐기에 카라이스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고, 카라이스만도 가볍게 목례했다.
아겔은 잠자코 그를 지켜보았다.
‘도요새 수인이군.’
완전한 인간의 모습이었지만, 아겔은 그가 수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수하들이 꼬질꼬질하게 다니는 것과 달리 깔끔하다 못해 화려한 모습이었는데, 머리에 쓴 관부터 황금 관이었다. 누가 보면 이윤을 가장 중요시하는 기업가 카라이스만보다 돈이 더 많은 줄 알 것이다.
여기저기 깃털이 달린 적과 황이 어우러진 도포를 입고 있고, 특이한 건 품에 적황색 두루마기 커다란 두루마리를 안고 있다는 점이었다.
단단하기만 하면 봉으로도 휘두를 수 있을 만한 물건이었다.
연맹장은 아겔에게 눈길을 보냈다.
“반갑소, 노인장. 카라이스만의 일행이라니 신분이 궁금해지는구려. 난 반정부 연맹의 수장, 스니프라고 하오.”
“반갑네. 아겔라스토스라고 하네.”
그는 쟝과 달리 한눈에 아겔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란 것을 눈치챘다.
아겔도 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느꼈다. 작은 체구였지만, 왠지 커 보이는 사내였다.
“앉으시오.”
눈앞에 있는 부드러운 소파에 일행이 자리했다. 곧 미녀들이 음식을 가져왔고, 옥좌 같은 의자에서 내려온 스니프는 상석에 앉았다.
아겔이 말했다.
“그쪽은 얼굴이 좋군. 수하들과 달리.”
스니프는 작은 입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그거야 놈들은 매번 항해해야 하니 꼬질꼬질한 것이오. 난 항해할 일이 많이 없거든. 사실 나도 항해하는 중이었다면, 씻지 않았을 거요.”
“왜 그런지 물어도 되나.”
물어봐 주길 기다렸다는 듯 스니프가 대답했다.
“이미 이 외계는 전부 지도로 그려서 그렇소. 근방엔 내가 항해할 곳이 더 이상 없지. 이미 가 본 곳은 흥미가 없소.”
그는 품에 안고 있는 두루마리를 툭툭 쳤다. 자랑스러운 것을 보니, 아마 그가 항해하면서 그린 지도일 것이다.
외계의 지도를 다 그렸다니, 확실히 대단한 자였다.
“그리고 한번 항해를 시작하면 난 끝을 봐야 하오. 그런데 흥미가 돋는 구역은 죄다 은하 정부가 길목부터 가로막고 있지.”
“그렇군. 친절한 설명 고맙네.”
“별말씀을.”
스니프의 눈이 이번엔 카라이스만을 향했다.
“부름에 응해 줘서 고맙다고 해야겠군. 사실 그쪽은 우리가 그리 탐탁진 않을 텐데.”
“뭐, 그렇긴 하죠.”
카라이스만은 고독을 건설하기 전부터 은하 정부와 꾸준히 거래하고 있던 귀족이었다.
그런 사업 중간에 해적처럼 훼방을 놓은 것이 반정부 연맹이었다. 어찌 되었든 은하 정부에 이익이 되는 일은 눈 뜨고 보질 못하는 자들이었다.
그런 훼방은 카라이스만의 손해로 이어지기도 했으니, 그가 좋아할 이유가 없었다.
“적진이라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있으시오. 내가 부른 이유도 이미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꽤 소식이 빠르시군요.”
“정보통을 넓게 두고 있는 편이지.”
카라이스만이 고독과 함께 사라졌다는 소식을 이미 접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고독과 함께 외계에 나타났다는 정보도 빠르게 얻었으니, 쟝을 보내 불러온 것이다.
스니프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우리 애들 몇 죽인 건 눈감아 주겠소. 그간 우리도 그쪽에게 해 온 일이 있으니. 이 자리를 통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가 되었으면 좋겠군.”
“저도 기대하는 바가 없진 않습니다.”
스니프가 꺽꺽 웃었다.
“이거 참 호재로군, 호재야. 이미 알고 있을 테지만, 그래도 정식으로 제안하겠소. 은하 정부에 대항하는 데 우리 연맹과 손을 잡겠소?”
카라이스만은 대답하기 전에 아겔을 슬쩍 바라보았다.
아겔은 그가 제안을 받아들일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애초부터 새로 맺은 거래 내용에 은하 정부의 전복이 포함되어 있었으니. 물론 특정 인물 암살이 그에겐 더욱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카라이스만이 스니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하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스니프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핫! 이리 쉽게 응할 줄은 몰랐는데, 정말이지 자네도 화끈하군! 우리가 이 자리에서 만난 건 운명이나 다름없소!”
카라이스만 정도 되는 남자가 정부에 대항하겠다는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할 리가 없었다. 별 고민도 없이 승낙한다는 건 이미 마음이 굳어졌다는 뜻이었다.
카라이스만과 스니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나온 음식을 드는 동안 아겔은 잠자코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도요새보다 추기경 쪽에 더 관심이 있었으니.
스니프가 열변을 토했다.
“하여튼, 정부는 자유의 가치를 모르고 숱한 우주 종족을 탄압·속박하는 힘만 센 무지렁이들이지. 자유를 되찾아 가는 것이 옳소.”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말이 통하니 다행이구려. 사실 기업가, 당신만큼 앞뒤가 꽉 막힌 사람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효율과 이익을 따지다 보니, 외부에서 볼 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겠군요. 저도 사실 그쪽은 규율 따윈 없는 약탈자 나부랭이라고 생각해 왔었습니다.”
“크하핫, 오해요, 오해. 그래도 이 자리를 빌어 오해를 풀게 되었으니, 이것 또한 즐거운 일이구려.”
스니프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고, 카라이스만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가볍게 받아쳤다.
열변을 토하던 스니프는 이내 아겔을 보고 말했다.
“은하 정부는 우주를 좀 먹는 거대한 암 덩어리나 다름없소. 그렇지 않소, 노인장?”
“…….”
아겔은 잠시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은하 정부에 관한 이야기는 카라이스만과 나누게. 그보다 나는 추기경을 만나고 싶군.”
“아, 그렇군. 나보단 그쪽에 더 관심이 있었구려.”
스니프는 분노하지 않았다. 애초에 솔직한 성격이라 상대방의 솔직함도 인정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부르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기업가가 내 제안도 흔쾌히 받아 주었으니, 전혀 문제가 없소. 여봐라, 오데이아 경을 모셔오라.”
예.
밖으로 나간 해적 같은 수하는 허겁지겁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황금 문이 열리고 수하와 동행한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겔만큼 늙진 않았어도 충분히 장년을 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남자는 정중하게 예를 표하고 소파 가까이 걸어왔다.
소박하게 사제복을 입고 있는 노인은 어느 시골 성당의 신부님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소탈해 보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부르셨습니까.”
“어서 오시구려. 여기 앉으시오.”
스니프가 아겔의 맞은 편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목을 가다듬었다.
“흠흠, 이쪽을 소개하자면, 탐욕스러운 교단의 권력자들과 달리 은혜와 자비가 넘치는 오데이아 추기경이오.”
“오데이아라고 합니다.”
“우리 연맹에 아주 큰 기부를 해 주셨지. 아직도 감사한 마음이오.”
“아닙니다.”
이어서 스니프가 두 사람을 소개해 줬다.
“이쪽은 기업가 카라이스만, 그리고 그 동행 아겔 노인장이오.”
카라이스만이 씩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한 얼굴은 아니군요, 오데이아 추기경. 에드워드라고 합니다.”
오데이아는 그의 이죽거림에도 전혀 변화가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카라이스만 경.”
오데이아는 카라이스만에게 목례함으로 인사를 하고 아겔을 바라보았다.
“…….”
그는 그 앞에 가까이 다가오더니, 자리에 앉지 않고 갑자기 아겔 앞에서 허물어졌다.
아겔은 갑자기 엎드리는 오데이아를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마까지 땅에 닿을 정도로 숙인 오데이아가 말했다.
“하찮은 미물이 어둠의 신을 배알 할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를 올립니다.”
교단의 추기경이 성좌가 아닌 사람에게 무릎을 꿇는 진귀한 광경에 스니프는 연맹장이란 지위도 잊고 입을 벌렸다.
카라이스만은 코웃음 쳤고, 아겔은 담담하게 그의 인사를 받았다.
“자리에 앉게.”
“예.”
노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아겔의 맞은 편에 앉았다.
“다시 소개드리자면, 저는 소망의 성좌, 스페스 님을 따르는 오데이아 그레고리라고 합니다.”
카라이스만이 손뼉을 텁 부딪치며 말했다.
“그레고리? 아하, 교단 정거장 관리자의 형제셨군요.”
“그렇습니다.”
은하 정부의 정거장은 퇴거하고 교단의 감시 정거장만 남아 있던 고독. 그곳을 감독하고 있던 자가 바로 루시우스 그레고리 대주교, 오데이아의 동생이었다.
그리고 그는 기업가의 함대가 습격함으로 정거장과 함께 산화되었다.
카라이스만이 짓궂은 얼굴로 말했다.
“내게 사과를 바랍니까?”
오데이아는 그가 일부러 동생을 언급했다는 걸 알았다. 그저 안타까운 얼굴을 할 뿐이었다.
“그러면 좋겠지만, 아마 사과할 생각은 없으신 것 같군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언제든 벌어질 일이었으니…….”
회한이 가득한 얼굴을 한 오데이아가 아겔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겔의 시선은 따가운 정도가 아니라, 숨 막혀 죽을 것 같은 압박감을 선사했다.
조금 떨어져 있는 연맹장 스니프조차 그 적막함에 치를 떠는 게 보일 정도였다.
아겔이 메마른 목소리를 냈다.
“내게 용서를 바라서 온 건가.”
100년 전 사도 전쟁을 계획한 성화추기경단이었다.
물론 당시는 오데이아가 태어나기도 전이었지만, 현재 소속된 곳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거기에 그에게도 미약하게 느껴지는 질서의 힘까지. 그도 놈들이 지은 죄악을 똑같이 저지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데이아는 고개를 저었다.
“용서를 바랄 정도로 염치가 없진 않습니다. 다만,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유언이라면 얼마든지 들어 주겠네.”
아겔의 말에도 오데이아는 흔들리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예. 유언으로 생각해 주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입을 열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오데이아가 눈을 뜨며 말했다.
“‘그분’은 현재 교단이 아니라, 은하 정부의 특수 시설에 감금되어 있습니다.”
“…….”
잠시 스쳐 지나가는 침묵.
아겔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더니,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컥……!”
마치 염동력을 펼친 것처럼 오데이아는 목이 졸려 허공으로 떠올랐다.
오데이아는 침음성을 흘리긴 했지만, 두 손을 목에 가져간다든지 발을 허둥거리는 추태를 보이진 않았다.
아겔의 검은 눈이 무섭게 그를 바라보았다.
“감히 네가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끄으으윽…….”
쾅!
이번엔 화가 나긴 했는지, 스니프가 소파 팔걸이를 박살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무슨 무례한……! 내 방에서 무슨 짓이오!”
“연맹장님.”
카라이스만이 낮은 어조로 그를 부르며 입에 검지를 가져갔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휘말리고 싶지 않다면, 앉으세요.”
“뭐라……?”
스니프는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지만, 오데이아가 괜찮다는 듯이 팔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아겔은 잠시 그를 붙잡고 있다가 소파에 툭 떨궜다. 철퍼덕 쓰러진 오데이아가 거칠게 숨을 가다듬었다.
“헉헉…….”
“자세히 말해 보아라.”
아겔은 다시 소파에 앉아 오데이아를 바라보았다.
오데이아는 숨이 다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했다.
“그분은…… 교단에 억류되어 계시다가, 정부 시설로 옮겨졌습니다. 당신의 분노를 꺼린 추기경단이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정부는 좋아했지요. 아마 교단으로 향해도 찾지 못할 겁니다.”
아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야기를 내게 하는 이유는?”
“못난 중생의 속죄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교단이 아직도 걱정되는가.”
“…….”
오데이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겔이 두 손에 깍지를 꼈다.
“나의 심판이 어디로 예고되었느냐.”
“……교단입니다.”
“알고 있다면 걱정은 버려라. 네 염려로 심판이 사라지진 않는다.”
“알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아겔이 소파에 몸을 기댔다. 편하게 기댄 자세와 다르게 그의 목소리는 어떤 격정으로 싸여 있었다.
“너흰 짓지 말아야 할 죄를 지었어.”
아겔의 말에 오데이아는 한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