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불쌍한 사람 아니라고-1화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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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롤 인방물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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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회에 살아가는 데 필수 요소가 뭐가 있을까?

의식주? 물론 빠질 수 없는 필수 요소가 의식주이지만 현대 사회에선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는 신원이 아닐까?? 내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다면 여태 벌어온 재산과 직업은 어떻게 되는 걸까?

제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으니 기존의 주민등록증을 변경해주시라고 말해서 해결이 되면 참 좋을 텐데, 당연히 불법 체류자 취급을 받으며 잡혀가지 않겠는가.

이런 고민을 왜 하고 있냐고?

난 여자가 되었고 심지어 어제 내가 했던 모바일 게임 가디언즈에서 가챠로 뽑은 테일리라는 캐릭터가 되었다.

아, 물론 예쁘다. 세상에 이런 미모가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다만 눈 하나를 잃고 오른팔에 의수까지 착용했다는 문제점도 함께 떠안아야 했지만 말이야.

아무리 거울을 들여다봐도 내 모습은 여전히 테일리의 모습이었다.

허리까지 오는 약간 붉은 빛이 감도는 와인색 포니테일, 눈은 루비를 박아 넣은 듯 붉은 눈이었으며 고양이처럼 날카롭게 보이는 눈매 또한 인상 깊었다.

얼굴까진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아니, 오히려 현실감 하나 느껴지지 않는 이 얼굴이면 나야 좋지.

진짜 문제는 오른팔과 왼 눈이다.

왼 눈을 감싸는 멋들어진 안대에 오른팔을 대신하고 있는 의수.

현대에서도 시력을 잃은 사람이 안대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만 의수는 진짜 별개 문제다.

의수를 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의수 자체가 무슨 미래에서 볼법한 디자인의 물건인지 의수의 중심부에는 투명한 파이프가 보였고 그 안에는 파란 액체가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깨 쪽엔 작은 홈이 보이는데 아무리 봐도 어떤 용도인지는 모르겠다.

[에너지 20% 자가 충전 중]

[자가 충전으로 과열 상태. 냉각 시스템 가동]

치이이이익­

이제 알겠네. 어깨의 홈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걸 사람들이 보고 어떻게 반응하겠냐고…

“야.”

내 말에도 반응이 없는 걸 봐선 ai는 아닌 거 같고 이걸 어떻게 해야 좋을까?

오른손의 손가락을 움직여보니, 마치 처음부터 내 손이었던 마냥 위화감 없이 자연스러웠다.

다시 거울을 보니 테일리의 모습은 개쩌는 의수를 착용하고 있는 여전사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어우, 잔 근육들 좀 봐.

변한 게 나쁘진 않을지도..?

병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며 하루하루 죽어가던 나에게 애초에 선택지란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돌아갈 수 있더라도 돌아가지 않았을 거야.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죽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서 흥분했다.

통증이 없는 것을 보면 확실히 날 괴롭히던 병은 완벽히 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 팔이랑 눈이 대수인가?

생각해보니 신원 문제만 해결된다면 예전의 내 신세보단 수백 배 좋은 건데?

하꼬 스트리머에 월세도 간신히 내고 몸에 병들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몸에서 이런 몸으로?

새로운 인생을 만끽하기로 했다.

살아난 기념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해 봤지만, 딱히 무언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럴 돈도 없어서 문제지만…

그냥 평소처럼 살자.

아무래도 그게 좋겠지..?

일단 돈을 벌어야 뭐든 할 수 있지.

고로 방송을 켜기로 했다.

어차피 캠만 안 하면 의수도 안대도 상관없잖아?

사실 마이크밖에 없어서 어차피 못 켜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이디도 새로 만들어서 새로운 닉네임으로 시작하자.

내가 아무리 하꼬였어도 사람들이 알아볼 수도 있으니까.

어떤 닉네임으로 시작하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테일리로 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그 게임은 완벽하게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당연한 소리겠지만 방송을 켜자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이제 만들고 방송을 켰는데 누가 들어와서 보고 소문을 내줄 거로 생각하면 너무 세상 쉽게 살려는 거지.

그치만… 날먹이 좋은걸?

평소처럼 레오루를 켜서 랭크 게임을 한판 돌리려고 했지만 큰 문제가 생겼다.

내 아이디가 삭제됐는지 없어졌던 것..!

급하게 아이디를 만들어 봤지만, 다시 30레벨을 올릴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의자에 기대었다.

문의를 해야 하나… 근데 영정을 먹어도 아이디는 삭제되지 않는데 갑자기 내 아이디가 왜 사라진 것일까?

눈을 떠보니 새로 만든 아이디는 1레벨에서 어느새 30레벨이 되어 있었고 파랑 수정도 엄청나게 많아져 있었다.

아무리 봐도 비정상적인 일.

일단 한동안 가만히 내버려 두고 지켜봤지만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뭐였던 걸까.

이거 파랑 수정 써도 되는 거지..?

파랑 수정으로 챔피언을 조심스럽게 사봤지만, 그냥 그 챔피언이 구매 되었을 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아무래도 버그가 생긴 듯한데… 어차피 방금 만든 아이디인데 그냥 해도 상관없겠지?

문의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해보기로 했다.

일단 랭크 게임을 돌려보자.

제재 당하는 건 아니겠지?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한결 편해지며 잡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게임하고 있으면 누가 와서 봐주지 않을까?

안일하게 생각하는 나는 어쩔 수 없는 하꼬일까.

사실 방송을 시작했던 계기도 아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고요하게 죽기에는 너무 싫었으니까.

유일하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하꼬였던 스트리머 한 명이랑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다가 연락을 내가 끊었었지.

알아주는 사람 없이 죽기는 싫다고 했지만 친해진 사람이 내 죽음에 슬퍼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뭐 어쩌자는 건지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카톡으로만 서로 연락하고 지냈으니까 말은 친구처럼 친하게 지냈다고 말해도… 실제로는 아무런 관계가 아닐 수도 있었다.

그쪽에서 더 친해지고 싶어 했지만 내가 항상 만남을 거절했으니까.

사실 진짜 친한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내 성별도 얼굴도 심지어 이름까지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서로 방송 닉네임으로 불렀지.

만남을 피한 이유는 그저 날 보고 실망할까 두려웠을 뿐이었다.

내가 의도적으로 연락을 피한 이후 그 사람도 연락을 포기하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었다.

1년이나 지났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아직도 방송하고 있을까?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잡았지만 포기하고 내려놓았다.

연락을 끊은 내가 다시 연락하기에는 염치가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방송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시청자 수가 어느 정도 모여서 무려 100명이 되었다.

조금씩 들어온 유입들이 다시 보러 와주고 반복하다 보니 채팅창이 제법 시끌벅적해졌다.

다들 내 실력에 감탄해주고… 사실 대부분은 목소리 때문에 본다.

자꾸 퇴물 게임 하지 말라며 다른 것 좀 해주라고 채팅이 올라오긴 했는데… 장난이겠지?

시청자들과 대화를 하며 랭크 게임을 돌렸다.

진행을 잘하고 있는지 그것도 모르겠다.

내가 워낙 말을 더듬어서…

[(팀) 마스터 인 : 상대 카정 올 듯? 미드 부쉬에 와드 좀요]

마인이 카정이 걱정됐는지 와드를 박아 달라고 하지만 빅도르는 미드 포탑에 옆에 굳건히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핑핑핑­

[(팀) 마스터 인 : 박아달라고]

[(팀) 다리오스 : 제가 박아드림 ㅎㅎ]

[(팀) 다리오스 : 마인님 라인 밀고 바위게 타이밍 때 바로 내려갈게요. 파이팅!]

다리오스의 중재에 마인은 불만을 멈추지만 그래도 속에 앙금이 남아있다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판은 시작부터 불안한데…

대충 진의 4타까지 블루 리쉬를 해주고 잔냐와 함께 봇 라인으로 내려갔다.

마인이 좀 더 리쉬 해주지 라며 투덜투덜 두꺼비를 치지만 어딜 백정 놈이 불평한단 말인가.

선 2렙을 찍기 위해 진으로 라인에 스킬을 계속 쓰니 잔냐도 대충 눈치채고 미니언에 평타를 툭툭 치기 시작했다.

상대 이즈리알도 2렙을 찍기 위해미니언을 부지런히 치지만 상대 요미는 이즈리알의 몸속에 기생충처럼 박혀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역시 골딱 구간이라 그런지 수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선 2렙이 찍히기 직전 잔냐는 바로 이즈리알에게 다가가 슬로우와 에어본을 걸며 평타를 쳤고 나 또한 속박을 걸고 이즈리알 뒤통수를 치고 있었다.

드디어 요미가 이즈리알의 몸속에서 기어 나와 평타를 치고 이즈리알의 몸에 들어가 실드를 걸어주지만 어림도 없지.

결국 이즈리알은 점멸과 힐을 쓰며 뒤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즈리알은 요미와 채팅으로 싸우는지 가만히 서 있었고 봇 라인전의 분위기는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었다.

[(팀) 잔냐 : ㄲㅂ]

바로 위에서 이 소리가 울려 퍼지기 전까진 말이다.

[퍼스트 블러드!]

[아군(마스터 인)가 적(이 신)에게 처치 당했습니다.]

[(팀) 마스터 인 : 아 빅도르야 좀 오라고]

빅도르 머리 위에 갈고리가 박히지만 빅도르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원거리 미니언을 친다.

바텀 분위기 좋은데 참아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넘어가려는 순간….

[(팀) 빅도르 : ㅋ]

좆됐다.

[(팀) 마스터 인 : ㅋㅋㅋㅋㅋㅋㅋ 미드 때문에 못 이김 그냥 서렌 ㄱ]

에라, 모르겠다.

그냥 바텀 터트려 놓으면 알아서 멘탈 수습하겠지.

다행히 터진 마인의 멘탈과는 반대로 게임의 흐름은 무난하게 흘러갔다.

상대 이신이 다리오스를 갱으로 잡아냈지만, 본인도 출혈로 죽었기에 나쁘지 않은 상황이기도 했고 빅도르가 상성임에도 불구하고 이렐리야를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까 싸우지 말고 서로 다독이면서 해줬으면 참 좋았을 텐데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지.

[여긴 뭐 하는 방임?]

[테일리 : 안녕하세요!]

[민속놀이 방이요 ㅋㅋ]

[오랜만에 보기는 하네 ㅋㅋㅋㅋ]

[ㄹㅇㅋㅋ]

“근데 왜 자꾸 민속놀이라고 해요..?”

허스키 하면서 고운 미성이 울린다.

내가 들어도 듣기 참 좋다.

그런데 민속놀이가 무슨 소리야?

어디서 생긴 밈이야.

내가 워낙 아파서 최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긴 했는데, 그동안 생긴 밈일까.

[민속놀이니까…]

[이 게임이 운영을 몇 년이나 했는데 그 정도면 민속놀이지]

[이 방은 진짜 목소리 하나는 끝내줘]

[ㅓㅜㅑ목소리 지린다]

[눈나 목소리 겁나 멋지네 ㄷㄷ]

­테일리회장님의 10,000원 후원!

오늘도 난 후원한다.

“테일리 회장님..! 만원 후원 감사드립니다...!”

[올 ㅋㅋ]

[ㅋㅋㅋ]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니 역시 예상 대로였다.

아직 신원이 확실하지 않아서 캠은 좀 더 생각해봐야 하지만 난 충분히 뜰 수 있다.

내가 들어도 내 목소리는 끝내주니까.

“마인이 없어도 아직은... 할만하네요.”

[원래 마인들은 알피지 해서 그럼ㅋ]

[조합 차이 나서 마인 커도 뭐 없음]

[님 근데 헬퍼임? 스킬 한 번도 안 맞네?]

[또 뚫림?]

[뭔 헬퍼야 시발들아 그냥 꺼져 ㅋㅋ 핵무새들 자꾸 오네.]

­헬퍼시발년님의 1000원 후원!

게임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도 안 맞고 무빙 부들부들 떨리는 거 실화냐?

생각해보니 여태 이즈리알, 요미 그리고 이신의 스킬까지 단 한 번도 맞지 않았다.

서버 렉 때문에 그런가? 스킬 날아올 때마다 묘하게 느려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하단 말이지.

처음부터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나흘 전부터 조금씩 심해지더니 이제는 캐릭터가 완전히 멈춘 것처럼 보일 정도로 심해졌다.

요새 서버 개판이구나 싶었는데…

내가 잠깐 입을 다물자 채팅창은 평소와는 다르게 엉망이 되어버렸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진짜임?]

[생각해보니 ㅈㄴ 이상하긴 하네 ㅋㅋ]

[요새 혜지는 오빠만으로 부족해서 헬퍼까지 ㅠㅠ]

[데미시야 뚫렸네]

[갤에 내가 글 올림 ㅅㄱ ㅋㅋ]

[나]

[락]

[나]

[오늘의 날씨는 맑음으로 비가 오고 있으며]

[우욱 듀라한 빠는 새끼들은 왜 빠는 거임? ㅋㅋㅋㅋㅋ]

[ㄹㅇ 육수 흘리면서 쿰척 거리는 년일 듯 예쁘면 캠 해서 수금했지 ㅋㅋㅋㅋ]

갑자기 왁자지껄 해지는 채팅창.

눈으로 흘깃 시청 인원을 보니 250명을 넘기고도 계속 늘고 있었다.

누가 링크라도 열었나?

“일단 이번 판 끝나고 해명할게요... 잠시만요...”

[난 해장]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됨?]

[이 판 끝나면 님도 끝날 듯 ㅋ]

[즐기시게 놔둬~]

[나]

[우리 테일리 까지 마라 테일리님 목소리 너무 좋아요 ㅠㅠ 파이팅!]

[ㄹㅇ 우리 테일리 잘하는 거 질투하는 거 보소 ㅋㅋ 저 매니저 주셈 다 벤 해드림]

[락]

[듀라한 시발]

“아니, 뭔 육수 타령이에요...저 방송 시작한 지 이제 일주일인데... 그리고 해명한다고 게임 끄면 나중에 탈주 했다고 뭐라 하잖아요...”

수백 명이 욕을 하니 순식간에 정신이 없어졌다.

너무 무섭고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착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철천지원수처럼 나를 물어 뜯기 시작했으니까.

나를 믿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극소수에 불과했다.

일단 게임을 끝내고 상대하기로 하고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마인이 본격적인 알피지를 시작하자 어쩔 수 없이 오브젝트를 전부 내준 상황.

상대는 3용을 먹고도 탐욕스럽게 바론까지 건드리기 시작했다.

[(팀) 다리오스 : 님 이거 귓말 뭐임?]

[(팀) 진 : 무시하셈 일단 넷이서 바론 막죠.]

[(팀) 잔냐 : 님 헬퍼임? 아까 라인전 보니 좀 이상하긴 하던데]

아군(진)님이 가고 있음.

아군(진)님이 가고 있음.

아군(진)님이 가고 있음.

바론에 핑을 찍으며 걸어가니 팀도 어쩔 수 없이 채팅을 치다 말고 뚜벅뚜벅 따라오고 있었다.

바론 근처에서 무빙을 치며 포지션을 잡으니 잔냐와 다리오스가 눈치를 보며 와드 쪽으로 와드를 박으니 바론의 피는 반이나 남아있었다.

적도 대충 눈치채고 치는 속도를 늦추었고 우린 빙 돌아 상대의 측면으로 접근했다.

마인은 아직도 삐졌는지 바텀 라인 미니언에 생각의 속도! 이 지랄 하면서 cs나 처먹고 있으니 결국엔 넷이서 한타를 이겨야 했다.

가뜩이나 상대가 이신에 핏즈 그리고 아트룩스라서 진으로는 살기 힘든데…

지금 한타 승리보단 해명에 대한 걱정이 더 크긴 한데…근데 골딱이가 한판 잘 풀렸다고 헬퍼 타령은 좀 심한 거 아니냐? 생각해보니 억울하네.

자꾸만 잡생각이 든다.

그렇게 잠깐 생각에 빠진 그 순간.

아트룩스가 갑자기 궁을 키며 나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w로 속박을 걸고 빠지지만 이신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가 없지.

이신이 아트룩스에게 w를 쓰며 나와의 거리를 확 좁혀오며 동시에 q를 나에게 날려온다.

이신의 q는 맞은 상대에게 돌진할 수 있는 사기적인 스킬이지만 맞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스킬.

오늘따라 더 느려 보이는 q를 맞을 이유는 없었기에 왼쪽으로 살짝 움직여 회피한 이후 바닥에 진의 e 강제 관람을 깔아 놨다.

요미가 아트룩스나 이신에 붙어있었다면 요미의 r 대단원으로 날 속박 했겠지만 라인전에서 괜히 멍청한 플레이를 했겠는가? 이제야 허겁지겁 리신에게 달라붙어 대단원을 쓰지만 나와 우리 팀은 이미 거리를 어느 정도 벌린 뒤였기에 아트룩스와 요미의 궁은 허무하게 날아갈 뿐이었다.

렉이 걸려서도 있지만 적들의 스킬샷이 영 좋지 않았다.

“여러분 핵이 아니라... 진짜 얘네들 스킬이 너무 뻔해서 그런 거예요… 그리고 렉 때문에 그런데…”

[ㅈㄹㄴ]

[???: 움직임이 다~ 보입니다~]

[지가 피하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이 대신 피해 주니까 뻔하겠지 ㅋㅋ]

다리오스가 e 포획으로 적 이신과 아트룩스를 끌고 잔냐가 q 울부짖는 회오리로 호응했다.

이신이 다리오스를 궁극기로 뻥 차버리지만 이미 빅도르가 중력장을 설치하고 나와 빅도르의 프리 딜로 이신은 죽고 아트룩스가 요미의 힐을 받으며 흡혈로 버티고 있었다.

이즈리알은…. 나름 딜을 열심히 넣고 있었지만 처참하게 망해서 그런지 잔냐의 방어막이나 겨우 부수고 있었다.

그때 벽 너머로 나에게 날아오는 희미한 무언가가 보였다.

물고기?

시야가 없어 근처까지 날아올 동안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굼벵이처럼 느리게 날아오는 핏즈의 r 미끼 뿌리기는 조금의 무빙 만으로 손쉽게 피할 수 있었다.

핏즈가 점멸로 벽을 넘어 나에게 창을 찔러오며 돌진하지만 풀피인 진의 피통을 찌르기 만으로 잡아낼 순 없었다.

가볍게 잔냐와 내가 핏즈를 잡아내고 상황을 살펴보니 이미 게임은 거의 끝난 상태였다.

그런데 방금 핏즈의 궁극기가 왜 그렇게 보였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동안 렉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이상한 일이었다.

한 명쯤은 렉이 걸린다고 욕을 할만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잠시 고민하는 동안 문득 무언가가 생각났다.

바로 테일리의 설정이었다.

동체 시력

설정상 테일리의 동체 시력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서 탄환을 눈으로 보고 피할 정도였기에 매일같이 전투를 치렀지만, 매번 무사히 기지에 복귀할 수 있었다.

전투 능력도 전투 능력이지만 이 동체 시력이 그녀의 아이덴티티였으며 가지고 있던 능력 중 제일로 손꼽았었는데 얼마나 뛰어난지 총알이 진짜 보이냐는 동료의 물음에 이런 대답을 했을 정도였으니까.

“보였기에 피했다... 그뿐이다....”

[??????]

[ㄴㄷㅆ]

[ㄴㄷㅆ]

[“느려”]

[우욱 루리앱 여러분 제발 그만둬 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앗!

“드..들었어요..?”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오다니…이런 씹덕 전개는 처음인데…

[킹였기에 보했다.]

[이거 완전히 얼빠진 련이네 이거]

­승리

게임은 상대의 서렌으로 끝이 났다.

결과 창에서 마인을 채팅으로 다굴치는 팀을 무시하며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고민해볼 시간이다.

한숨을 푹 쉬며 의자를 뒤로 젖혀 기대었다.

[할 말 없죠? 역겹죠?]

[자 드가자~ 자 드가자~]

[한숨 나올만하지~]

[누나 캠 켜고 아무 말이나 해줘 ㅠㅠ 그것만으로 난 믿어!]

“어떻게 해야... 제가 헬퍼가 아니라고 믿어줄래요...?”

일단 해명을 해도 대다수가 이해하지 못하면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나 다름없다.

해명은 빠르게 그리고 분명하게 해야 한다. 사실 나에겐 이건 위기도 아니지.

오히려 확실한 해명을 한다는 조건으로 이건 분명 기회다.

그 사실을 알지만 수많은 사람의 악의가 손톱처럼 내 속을 긁어낸다.

어쨌든 욕 자체가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으니까.

근데 한 가지 꺼림칙한 점이 거슬렸다.

아무리 핵 의심을 받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플레이를 보였지만 이 정도로 빠르게 소문이 퍼지고 사람들이 모이는 게 가능할까?

자연스럽게 소문이 퍼지고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닌 누가 악의적으로 소문을 퍼트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고작해야 100명 정도가 보고 있던 나에게 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

[손캠?]

[ㅈㄹㅋㅋㅋ 여태 손 캠으로 해명된 적이 없는데 잉벤 ㄱ]

[뭘 해명해 핵쟁이년아]

[얘들아 깨구리 사건 기억하면 중립 기어 밟아.]

[ㄹㅇㅋㅋㅋ 숲속 친구들 또 하려고 이러냐]

[솔직하게 말해 썅년아]

“나 좀 초대해줄 사람 있으면 초대 좀 해줘요... 잉벤? 일단 오라는 곳이 있으면 바로 갈게요...”

[해줘]

[응애 나 아가 하꼬 초대해조]

[어질어질하네요.]

“일단 오늘 방송 봐주셔서 감사하고요.... 일단 나 핵 아니니까 중립 기어 좀 밟아주세요.. 난 피해자라니까..?”

­원주율의법칙님의 1,000원 후원!

??? : 피해자면 닥치세요.

[ㅋㅋㅋ 갑자기 애플파이가 땡기누]

[테바~]

[ㅅㅂㅋㅋㅋ 방송 뭐 얼마나 했다고 테바 소리가 나오냐 ㅋㅋ]

[돔황챠~]

내가 기대했던 건 이런 인기가 아니었는데…

후…

화나기는 하지만 해명만 한다면 바로 내 방송이 떡상 할 수 있는 기회니까...

그걸 알면서도 수많은 사람의 악의가 창처럼 콕콕 찔러오며 아까의 채팅이 계속 생각났다.

내 신원 문제는 이제 뒤로 미룰 수 없는 문제가 되어버렸다.

워낙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 침대에 몸을 던져 누워있으니 잠이 솔솔 왔다.

아니, 충격을 받으면 잠이 오지 않아야 정상인가?

잘 모르겠다.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보니 시간은 10시 정도.

사실 게임 한판하고 끈 셈이라 예상보다 너무 일찍 끝나긴 했는데, 일찍 자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이런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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