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해명
* * *
<근데 핵인="" 거="" 확실하냐?=""/>
또 오버와치 깨구리 사건처럼 알고 보니 개잘핵이어서 숲속 친구들 하려고?
ㅇㅇ: 테일리 어서 오고~
ㅇㅇ: 요즘 육수 냄새가 심하네요 ㅋㅋ
ㅇㅇ: 근데 너무 당당해서 핵 아닐 거 같음
ㅇㅇ: 팩트) 당당하게 병신 같은 해명 하면서 해명했다는 새끼들 수두룩
<테일리 핵="" 맞음=""/>
빼박임 ㅋㅋㅋ
프레임 단위로 끊어서 보니까 이신 손에서 음파 날리지도 않았는데 손동작만 보고 움찔움찔 무빙하고 있음.
여기서 결정적인 증거가 핏즈궁 시야 없어서 진 코앞에서야 보이기 시작했는데 바로 피함.
ㅇㅇ: 와 시발 이건 빼박이지ㅋㅋ
ㅇㅇ: 이래도 핵 아니라고? ㅋㅋㅋ 그냥 핵 써도 테일리 씹년 빤다고 해라
ㅇㅇ: 근데 듀라한은 왜 빠는 거야?
갸챵: 목소리가 지리더니만 그것 때문에 그런 듯 ㅋ
ㅇㅇ: 씹ㅋㅋㅋ 안 켜는 이유 뻔하죠?
ㅇㅇ: 근데 맨날 뚫려서 핵쟁이들 벤 웨이브 처맞는 게 일상 아니냐 ㅋㅋ
<잉벤에서 물었더라ㅋㅋㅋ=""/>
테일리 ㅅㄱ
그리고 검색했더니 골딱인데 골딱이가 헬퍼 부들부들 무빙하고 있는 거 보면 아무 생각도 안 드냐?
ㅇㅇ: 거절함ㅅㄱ
ㅇㅇ: ㄹㅇ?
ㅇㅇ: 그걸 믿누..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고 ㅋㅋ
ㅇㅇ: 내 생각에는 테일리 누나는 억울함 ㅇㅇ
ㅇㅇ: 나이 밝혀짐?
ㅇㅇ: 예쁘면 누나다
ㅇㅇ: 예쁜지 안 예쁜지 어떻게 앎? ㅋㅋㅋ
ㅇㅇ: 꿀잼각~
ㅇㅇ: 언제 해명함?
ㅇㅇ: ㅁㄹ
ㅇㅇ: 해명할 때까지 숨 참는다 흡!
ㅇㅇ: 이렇게 갈 줄 몰랐는데….
카에데찡: 골드가 그런 무빙하는 거 하나도 안 이상함
ㅇㅇ: 니 무빙 리플레이로 보면 바로 앎
<근데 테일리가="" 누구임=""/>
외국인임?
난 처음 들음
통통버리 회장 : 방송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하꼬 스트리머래
ㅇㅇ : 데뷔가 화려하누 ㅋㅋ
재밌게 논다.
동사무소에서 신원 확인을 하는 동안 커뮤니티에서 내 이야기를 안 하는 곳이 없었다.
바로 올 것으로 생각했던 잉벤의 초대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악의는 짙어지고 나는 그동안 불안에 떨며 방에 박혀있었다.
스트리머의 초대를 기다렸지만, 초대는커녕 나를 욕하기 바빴다.
유튜보에서도 렉카들이나 레오루 방송인들이 초대한다느니 합방 해서 증명하라고 엄청 시끄러운 상황.
핵쟁이다, 잉벤의 초대를 받지 않았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자기들끼리 말을 만들어내고 헛소문을 퍼트린다.
하기야 다른 사람 입장에선 테일리의 능력은 피지컬을 넘어서서 인간으로선 불가능한 능력들로 보이겠지.
찰나의 순간에 날아오는 탄환도 눈으로 보고 가볍게 피하는 급인데 고작해야 게임 캐릭터들의 스킬은 오죽할까.
근데 잉벤에서 날 초대했다고?
나한테 쪽지나 메일에 날아온 것도 없는데?
내 메일 주소도 모를 테니 당연한 건가.
그렇다면 어디로 초대한 걸까?
방송 계정이나 게임 아이디에 쪽지라도 보냈나.
잉벤에서 나에게 접촉할 수 있는 곳은 기껏해야 토위치의 방송 계정이나 레오루일텐데…
토위치에 접속해서 확인해보니 쪽지가 수두룩하게 쌓여있었고 대충 살펴보니 확실히 잉벤으로 추정되는 쪽지가 하나 보이기는 했었다.
[안녕하세요. 잉벤입니다.]
최근 이슈로 떠들썩한 스트리머인 테일리 님을 모시고 싶어 연락을 드렸습니다.
혹시 참석하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이쪽에서 테일리 님의 일정에 맞춰서 초대하겠습니다.
다만 방송 세팅이나 일정 조정을 위해 오시기 하루 전에 메일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변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외모에 대한 품평이 아닐까?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해명을 이렇게 도와주려고 하시다니 감사합니다.
혹시 내일 가능할까요?
순수하게 날 돕고자 하는 게 아니라 시청률과 화제성이 보장된 콘텐츠로 초대하는 거겠지만 서로 상부상조하는 셈으로 보는 게 맞지 않겠나.
그래도 일주일 동안 마음고생 해서 그런지 희소식에 기꺼웠다.
마음이 어느 정도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내 번호를 부르는 소리에 의자에서 일어나 걸어갔다.
내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흔들리는 상담원의 눈동자.
“h..hi?”
“한국어 가능해요...”
“유..유창하시네요.”
“당연하죠...”
말을 모호하게 끝냄으로써 이 주제에 대해 끝을 내자 상담원은 처음의 당황한 모습과는 다르게 꽤 능숙한 태도로 나에게 질문을 했다.
“어떤 일로 오셨나요?”
“주민등록증 재발급하려고 왔는데요...”
“성함이?”
“서예지요....”
지갑을 열었을 때 알게 된 사실 그것은 바로 주민등록증에 이름과 사진이 전부 바뀌었다는 것이다. 물론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확실한 확인을 위해 재발급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집에서 고민 끝에 결정한 일이지만 아직도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내 원래 이름이 뭐였더라?
“여기 앞에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지문 좀 찍어주시겠어요?”
어…
오른팔 없는데용…
팔을 슬쩍 들어서 보여주니 지진처럼 흔들리는 눈이 보였다.
****
아, 실수했다.
그동안 상담을 해오면서 이런 일은 없었는데…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딱 그 생각뿐이었다.
왜 몰랐을까 대놓고 보이잖아. 조금만 살펴도 알 수 있었잖아.
사실 들어올 때부터 그녀는 이곳 직원들과 주민들의 시선을 한 몸에 차지했었다.
누굴 데려와도 가볍게 꿀릴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인인 것도 있고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이유는 그녀의 안대와 오른팔의 의수로 짐작되는 물건 때문이었다.
코스프레로 짐작했었는데 그게 진짜일 줄…근데 요새 의수는 저런 식으로 나오는 건가?
난 그녀에 대해 모르지만 힘든 과거를 보냈다는 걸 짐작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실례라는 것을 알면서도 동정의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아…어.. 왼..왼손을 대주시겠어요?”
“네.”
다행히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는지 넘어가 줘서 금방 처리할 수 있었다.
저 외모로 한국인이었을 줄 몰랐는데…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질 정도의 미인은 처음이네.
이번 일은 기억 속에 오래 남을 듯했다.
****
어휴, 오래간만에 사람이랑 대화하기 힘드네.
역시 나 같은 백수는 집에 박혀있는 게 최고야.
가뜩이나 사람들 시선이 신경 쓰였는데 집에 돌아오니 너무 편안한 느낌이었다.
잉벤의 연락이 와서 그런지 마음이 아주 편해지기도 했다.
“집이 최고야!”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명언도 있지 않은가?
그나저나 서예지는 누구야.
난 누굴까?
여긴 내가 알던 내 세계가 맞을까?
난 나지 누구겠어.
내일 입을 옷이나 정해야징.
옷장을 열어보니 내가 입고 있는 흰 티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여성용 속옷 몇 벌 걸려있는 거 말곤 다른 게 보이진 않았다.
그동안 미루다가 어제 급하게 속옷 입는 법을 검색해서 낑낑거리며 입었던 부끄러운 기억은 잠시 밀어두고 손을 휘적휘적 저어 다른 옷을 찾아보지만 별다른 건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내일 패션은 동네 백수..이제 백조인가?
동네 백조의 편의점 산책 패션이다.
해명하러 가는 자리에 멋 부릴 필요는 없을 테고 대충 평소에 입던 옷이나 입고 가면 되겠지.
내일 입을 흰 티셔츠와 청바지를 미리 꺼내 놓고 의자에 앉아서 여태 일들을 생각해봤다.
내가 알고 있던 세계랑 약간 다른 느낌이 드는 건 과연 내 착각이었을까?
이상하게 내가 알던 커뮤니티와 레오루의 인기가 좀 다른 느낌이었다.
인기 게임은 맞지만 뭔가 자주 언급되는 게임이 하나 있었는데 신작 게임이었을까?
내가 팔로우 했던 스트리머들도 레오루가 아닌 다른 게임을 하고 있었고 전체적으로 레오루 방송인이 반절은 줄어 있었다. 커뮤니티에서도 약간 민속놀이 취급 받는 느낌이었지.
아무리 큰 사건이 터질지라도 그 규모의 게임이 단번에 몰락할 리는 없었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네.
지이이잉
[내일 7시까지 와주시면 됩니다.]
혹시 개인적으로 쓰시는 마우스나 키보드 있으시면 가지고 오셔도 됩니다.
반드시 늦지 않도록 해주세요.
대충 알겠다고 답변하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이렇게 고민해봐야 바뀌는 건 없고 딱히 고민할 필요성도 못 느끼겠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보니 카톡 프사가 밋밋한 게 눈에 거슬렸다.
왜 그럴까?
과거의 흔적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이왕 새 출발 하게 된 거 셀카를 찍어 프로필 사진에 올리기로 했다.
찰칵
사진 속의 내 얼굴을 무표정하다 못해 음울한 표정으로 보였는데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웃어야지 바보야.
입꼬리를 강제로 끌어올려 사진을 찍어봤지만 우스꽝스러울 뿐이었다.
왜 이런 표정이 나오는 걸까?
결국 아까의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등록하고 이름을 테일리에서 지금의 이름인 서예지로 바꾸었다.
예전의 나는 워낙 테일리 덕후여서 카톡 이름을 테일리로 지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웃긴 노릇이다.
친구도 없는 놈이 카톡 프사를 자꾸 바꿔봐야 어디다 쓸까?
게임 친구가 몇 있기는 했지만 실친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참게비령이 진짜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었지.
물론 거절했었지만…
생각하니 울적해져서 그냥 하던 일이나 마저 하기로 했다.
상태 메시지는 뭐라고 적어야 할지 잠시 고민을 해봤지만, 딱히 적을게 생각나지 않았기에 아무렇게나 적었다.
모르겠어.
누가 봐도 대충 적은 것 같긴 하네.
이런 의미 없는 행동은 왜 하는 걸까.
누가 봐준다고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스스로가 한심해져서 휴대폰을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눈을 감았다.
내일 출연료는 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
“아아, 안녕하십니까. 잉벤 방송국 게임 캐스터 김현이입니다. 흠흠…”
레오루 전문 캐스터로 활동하던 나에게 희소식이 들려왔다.
죽어있던 레오루 판이 최근 다시 활력이 생기기 시작했으니까.
물론 좋은 일은 아니지만 레오루의 인기가 워낙 떨어졌던 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방송을 준비하던 중에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왔나?
“테일리 님 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어… 코스프레는.. 아니겠지?
테일리는 자신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엄청난 미인이었다.
“아이고! 테일리 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모델이신가요?”
“아뇨, 백조요...”
“아! 너무 미인이셔서 모델이신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평가해주시니 감사하네요...”
“혹시..코스프레 하신 겁니까?”
내 질문에 쓴 웃음을 지으며 입을 다무는 그녀를 보고 자신이 실수했음을 느꼈다.
코스프레가 아니라고?
안대와 의수에 대한 과거 이야기도 풀 수 있으면 동정표를 얻으면서 방송도 크게 흥할 수 있는 걸 알면서도, 양심의 가책 때문에 그러고 싶지 않아졌다.
지금도 잔뜩 주눅이 들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데 굳이 건들고 싶은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반응을 봐선 아직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상태에서 내가 괜히 들쑤시는 건 아닐까.
음울한 그녀의 표정에 내가 한몫 보탠 느낌이었다.
가뜩이나 악플에 시달릴 그녀인데 내가 배려가 부족했었다.
“아, 죄송합니다.”
“아뇨. 그럴 수 있죠...”
사실 앉아만 있어 줘도 흥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반드시 흥한다.
이번 방송은 여러 의미로 대박 날 것이다.
이건 내 캐스터로서의 감이다.
****
나는 오늘 일어나자마자 바로 잉벤 본사로 출발했다.
도착한 잉벤 회사는 내 생각보다 훨씬 몇 배는 커 보였다.
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잉벤 회사가 되게 크구나.
아무 생각 없이 왔지만, 다시 긴장하게 되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이제 곧 시작할 건데 평소처럼 플레이하시면 됩니다.”
“네.”
“자, 10초 뒤에 시작합니다.”
개인 방송으로 할 때는 몰랐는데 여러 사람이 다 같이 모여서 방송을 하니까 평소와는 느낌이 달랐다.
좀 더 신경 쓰인다고 해야 할까.
“안녕하십니까. 잉벤 방송국 게임 캐스터 김현이입니다. 오늘 스트리머 테일리 님과 함께 인사드리게 됐는데요. 테일리 님 시청자들께 인사 한번 하시죠.”
“안녕하세요... 테일리라고 합니다.”
“네, 아무래도 이번 논란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오기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시다면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라….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물의를 빚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저는 억울하고 오해라고?
왜 다들 날 물고 늘어지는 걸까?
나도 힘들다.
병들고 평범했던 내가 건강하고 예쁜 몸이 된 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혼란스러웠다.
나는 이 바뀐 세상에 대한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고, 바뀐 몸을 알아갈 시간도 부족했으며, 갑작스러운 관심도 부담스러웠다.
왜 다들 서로를 미워하지 못해서 안달이 난 걸까.
해명이야 게임 몇 판 하면 끝나겠지.
그런데 내가 그동안 잔인한 사람들에게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가며 욕먹었던 일들은?
핵 아녔다고 넘기겠지.
어차피 내가 아니어도 이런 일은 끊임없이 반복할 거고 마녀사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혐오의 시대라고 불리겠나.
일주일 동안 속으로 인터뷰 때 욕을 실컷 해주겠다고 생각했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긴 쉽지 않았다.
그만큼 두려웠으니까.
“잘해보겠습니다..“
나를 살짝 당황한 눈으로 바라보던 캐스터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눈에 팔 없는 사회 부적응자? 어쩌면 밥상을 차려줘도 못 먹는 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오늘따라 생각이 안 좋은 쪽으로 기운다.
이건 위기가 아니라 기회임을 알면서도.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터진 걸까.
“아..하하!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죠! 그동안의 논란은 플레이로 보여주세요. 본인의 플레이를 시청자 여러분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나온 거니까, 시청자분들도 같이 보시고 판단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부스로 이동해 달라는 말에 안내에 따라 부스로 들어가 앉았다.
우리 집 컴퓨터보다 훨씬 좋아 보이네.
자리에 앉아 레오루에 로그인하니 복잡했던 생각과 답답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풀린다.
그래, 앞으로는 잘될 일만 남았는데 화낼 이유는 없지.
이제 증명해볼까...?
오늘 해명 방송이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나는 꿈에도 몰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