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불쌍한 사람 아니라고-4화 (4/78)

〈 4화 〉 저스트 채팅 방송

* * *

아침 햇살이 창문에서 뚫고 들어와 내 눈가에 비친다.

손으로 눈을 가리며 일어나니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몇 시지…”

대충 시간을 확인하니 11시 20분.

원래 저녁에 방송 키는 것을 선호하지만 일찍 켜도 나쁘지 않겠지?

그동안 신원 문제 때문에 캠을 켜지 않았지만 이제 캠이 활약할 때다!

어제 사온 캠이다.

물론 싸구려라서 화질이 좋지 않을 수 밖에 없었지만... 이미 내 얼굴은 잉벤 방송으로 나왔으니까.

밥 먹으면서 방송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클릭을 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직 그 충격을 잊은 건 아니니까.

손이 떨려오고 식은땀이 흘렀다.

잠시 의자에 기대고 호흡을 가다듬으니 한결 나아진 기분이었다.

테일리 Just Chatting

오늘은 잡담 방송

국숫집에 국수를 배달 시키고 방송 화면을 보니 내 생각보다 빠르게 많은 인원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무리 해명했다고 해도 지금은 다들 일하고 있는 시간대 아니야…?

솔직히 방송을 켠 나도 지난번보단 적을 거로 생각했었다.

[테하]

[테하테하]

­테일리 회장님의 100,000원 후원!

미안해 ㅠㅠ 사실 나도 안 믿었어

“와..! 테일리 회장님... 감사합니다! 괜찮아요. 다들 의심할만했죠....”

솔직히 나 같아도 부들부들 무빙 하면서 스킬 다 피하고 맞추는 꼬락서니 보면 의심하고 봤을걸?

방송 때는 나도 짜증 나서 툴툴거리긴 했어도 나름 합리적인 의심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청자들을 미워 해봤자 결국 손해는 내가 보니까.

미운 사람이 보고 있는데 항상 웃고 놀아야 한다면 얼마나 피곤하겠어.

그래서 난 이번 일을 잊기로 했다.

내 유일한 장점이 잘 잊는다는 점이다.

배운 것도 잘 잊고 나쁜 기억도 잘 잊는다.

어라…?

좋은 거 맞아..?

[마음도 착한 테일리 ㅠㅠ]

[솔직히 핵무새 새끼들 아니라고 해도 마녀사냥 하더라]

[요즘 사람들 수준이 그렇죠 뭐]

“에헤이, 다른 사람 비하는 웬만하면 하지 말아요!”

[ㅅㅂ 이런 애를 깐 거냐고 ㅠㅠ]

[눈나 사랑해~]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사과하셨으면 됐죠.”

[오늘 근데 뭐함?]

사실 딱히 생각했던 건 없는데.

자리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레오루 방송을 딱히 하고 싶진 않았다.

마음고생을 심하게 해서 그런지 편하게 앉아서 쉬고 싶었다.

잘 잊는다고 했지만, 그 여파로 지친 나의 정신력은 회복되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말하면 좀 그러니 순화해서 말해야겠지?

“여러분과 제가 좀 더 친해지기 위해 저스트 채팅 방송은 어떨까요...?”

그런데 저스트 채팅이란 뭘까?

물론 뜻이야 알고 있지만, 시청자와 잡담하고 놀면 된다고 다들 말하지만 정말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거야?

한 번도 안 해봐서 그런지 감도 잘 안 잡히고 뭔가 낯설다.

입담이 좋아야 하지 않나?

역시 방송이란 어렵다.

그냥 누가 초짜를 위한 방송 가이드북 이런 책이라도 던져줬으면 하는 심정이야.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사랑해눈나님의 25,000원 후원!

테일리 님 질문 가능?

“후원 감사합니다. 예? 해도 되긴 한 데 무슨 질문이요..?”

­사랑해눈나님의 1000원 후원!

몸이 왜 그렇게 되신 거?

[배려 없네]

[궁금하긴 해..]

[어제 안 좋은 일 있었는데 자중하자]

“괜찮아요! 오늘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궁금한 거 다 물어보세요. 오늘 잡담이나 하고 놀죠.”

음… 어떻게 말해야 할까.

머리가 그리 똑똑한 편이 아니라서 마땅히 생각나는 변명도 없었고.

테일리의 설정이라도 말해줄까?

말해도 괜찮나..

[역시 안 괜찮네 ㅅㅂ]

­사랑해눈나님의 1,000원 후원!

죄송합니다.

“아니, 진짜 괜찮아요! 생각 안 나서 그런 거야...!”

설정이라도 말하자.

무슨 문제라도 생기겠어?

“그냥 절단 사고예요... 신경 쓰지 마세요.”

[?]

[질문 멈춰!]

[도대체 뭔 사고길래 절단과 동시에 눈이 뽑힘?]

­허언증환자님의 30,000원 후원!

말 안 해도 돼..

설정이 어떻게 되더라..?

기억이 안 나서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조금씩 살아나는 기억을 최대한 되살려본다.

테일리의 동체 시력은 엄청난 무기였지만 그렇다고 그게 그녀를 무적으로 만들어주진 않았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대충 기억나는 내용으론 테일리 소속인 아일리 연방국에서 아주 위험한 임무를 줬는데 그건 바로 적국인 크로아제국의 명장 아프로 장군을 암살하는 임무였다.

테일리는 암살에 성공하고 약속된 탈출 지점으로 갔지만, 그곳에 탈출용 헬기는 없었다.

애초에 임무에 실패할 것이라 보고 버림 패로 쓰인 것인데 그 이유가 가관이었다.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고 고위직인 자신들의 지위에 위협이 되었기에 버렸던 것.

어느 정도의 기밀 노출을 감수하고 저질렀고 그 추악한 욕망에 테일리는 희생되었다.

테일리는 고군분투했지만 인간인 이상 지칠 수밖에 없는 그녀는 결국엔 어깨를 내리치는 마체테를 피하지 못했고 결국엔 사로잡히고 만다.

눈은 고문 과정에서 뽑혀버렸지.

외신 기자의 눈치를 보느라 팔을 다시 붙여주긴 했지만 결국에는 심문 때 다시 떨어졌지.

탈출에 성공했지만, 신분을 숨긴 채 이곳저곳을 방랑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 테일리 사이드 스토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할 수 있는 스토리가 아닌데?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다음 질문 받습니다...”

[ㅠㅠ]

[제가 쓰레깁니다 죄송합니다..]

[어라..쓰레기 냄새가…내 냄새야? 어라..쓰레기 냄새가…내 냄새야? 어라..쓰레기 냄새가…내 냄새야? 어라..쓰레기 냄새가…내 냄새야? 어라..쓰레기 냄새가…내 냄새야?]

“도배는 하지 말아주세요.”

­테일리결사대님의 500,000원 후원!

질문 왜 하필 레오루임? VR 게임 안 함?

[ㄹㅇ 헤드 기어 딱 끼고 VR 게임을 하면 쉬면서 게임까지 할 수 있음]

[마! 가상현실 모르나!]

“헉! 50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VR 게임이요..? 그거 머리에 뭐 쓰고 컨트롤러 들고 손 이리저리 휘젓는... 그거 아닌가요? 그게 어떻게 쉬는 거지...?”

영상을 눈앞에서 보면서 컨트롤러 들고 하는 게임 아니었나?

아무리 잘 만들어도 pc 게임들은 못 이기지 않나?

[?]

[?]

[머리에 뭐 쓰는 것만 맞췄네 ㅋㅋㅋㅋㅋㅋ]

[갈고리 수집가 ㅋㅋㅋ]

[이분 어디서 10년 쯤 감금되었다가 나온 거 아니죠?]

[도대체 언제 이야기임?]

[컨..셉이지..?]

­무지성후원님의 1,000원 후원!

[영상]

영상을 눌러보니 영화로 추측되는 무언가가 재생되었다.

암살! 저작권 영상 틀어서 날 정지 시킬 속셈이야!

“이거 영화잖아...! 저작권 있는 건 안돼...!”

화들짝 놀라 영상을 정지하니 채팅창 분위기가 이상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영화 아니야 ㅅㅂ]

[백치미…]

[헤드기어 쓰고 하는 VR 게임임 저거 포함 둘 뿐임]

[그 두 개가 역사에 남을 명작이라서 pc 게임 유저 확 줄음 ㅋㅋㅋ]

“어…그럼 재생해도 되는 거지..? 믿는다?”

[ㅡㅡ]

[틀기나 해]

영상을 재생하니 방탄복과 헬멧을 낀 특수부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벽에 엄폐 하며 총을 쏘고 있었다.

그리고 농사를 하거나 많은 사람이 모여 건물을 짓는 모습이 보인다.

“와! 트레일러... 잘 만들었네요...!”

[그냥 말을 놓던지 높이던지 하나만 하셈 ㅋㅋㅋ]

그 채팅을 기점으로 대부분 말을 놓으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대부분 그게 어울린다는 의견.

나야 좋지.

“그럼, 말 놓겠습니다...”

[인 게임 영상임]

[스캐빈저 콜 재미있는데 난 맨날 털리더라 ㅋㅋㅋ]

[그런 당신에게 크라이!]

[그거 진입장벽 지림 ㅋㅋㅋ pc 격겜도 어려워 죽겠는데 그걸 직접?]

“그게 뭔데 씹덕들아...!”

시청자들의 설명을 들어보니 내가 어느 정도 짐작했던 대로 내가 살던 지구가 아니었다.

지구와 대부분 흡사하지만, 뇌파를 읽어 반수면 상태에서 누워서 하는 VR 게임이 존재했었다.

이거 게이머의 꿈의 게임 아니냐?

오죽하면 웹 소설 장르에 게임 판타지가 있었을까.

물론 지금은 거의 죽었지만…

“이거 그럼 기기 얼마야...? 나 갑자기 해보고... 싶어졌어.”

[기기값 500만 원 + 게임 가격 크라이는 10만, 스캐빈저 콜은 18만 원]

[게임은 월정액으로 구독하면 월 12,000원에 가능 혜택도 있고 ㅇㅇ]

“너무 비싸! 이거 어떻게 하라는 거야?”

지금 내 통장에 40만 원도 없어서 허덕이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기기 값에 절로 입이 떡 벌어진다.

[오늘 수금 만으로도 살 듯ㅋㅋ]

[이제 겨우 1시간 지났는데 후원은 거의 400 정도 받지 않았나]

[ㄹㅇㅋㅋ 솔직히 민속 놀이는 가끔 보기에나 좋지…스캐빈저 콜이나 크라이 ㄱㄱ]

[추억 보정도 하루 이틀이면 질린단 말이야!]

문을 두드리며 배달 왔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1시간이나 걸리다니 오늘 주문이 많이 밀렸었나 보다.

“국수 배달 왔다.... 가지고 올게.”

[ㅇㅇ]

[아직도 밥 안 먹음?]

[ㄹㅇ 백수 그 자체인 것인데요]

[이 시간에 보는 너희는…]

[사장님 미안해요~]

[핵쟁이 시발년~]

[저 새끼 뭐임?]

[?]

[ㅋㅋㅋㅋ 저런 애 왜 안 나오나 했다]

“국수 가져왔어... 엥? 분위기 뭐야...?”

채팅 창을 끌어보니 어그로 끌면서 분탕 치는 애가 보인다.

이래서 방송이 어렵긴 해.

해명을 완벽하게 했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지만 이건 선을 넘은 행동이었기에 벤 해줬다.

예전이었으면... 아니, 불과 몇 일 전만 해도 이런 채팅에 상처 받았을 텐데 몸이 바뀌어서 그런가 아니면 내 멘탈이 성장한 걸까.

­파이팅님의 50,000원 후원!

힘내!

­… 후원!

어쩌면 금융치료 때문일지도 모르지!

욕을 먹는데 돈이 복사 된다고!

[ㅠㅠ]

[잉벤에 가서 몸소 해명했는데 못 믿으면 어떻게 해줘야 함?]

[의수에 핵 넣었다던가 잉벤도 한패라던가 개소리하는 애들도 좀 있음ㅋㅋㅋ]

[의수에 어떻게 그딴 짓을 함ㅋㅋㅋ 한 기업을 포섭하는 테일리좌 ㄷㄷ]

“생각이 다른 거지... 자, 얘들아 이 국수 봐봐 맛있어 보이지...?”

[그냥 국수인데요]

[요새 국숫집은 어딜 시켜도 다 똑같이 생겼더라]

호로록­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국수를 면으로 집어 먹는다.

국수 위에 예쁘게 올려놓은 고명들과 함께 집어 먹으니 뜨겁지만 약간 짭조름 하면서도 촉촉한 면발의 느낌이 꽤 괜찮았다.

너무 오래 걸려서 불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뭐… 결국에는 그냥 그럭저럭 평범한 느낌.

[미인은 뭘 해도 미인이라더니]

[캠 좀 좋은 거 사 ㅡㅡ]

[화질 봐 ㅅㅂ]

[눈 아파!!!!!!!!!!!]

“돈 없다고…!”

[승질 내는 것 봐;;]

[슬슬 원래 성격 나온다!]

아니, 내가 언제 성질 냈다고..

그냥 돈 없다고 말했는데..

“성질 안 냈어…그리고 진짜 돈 없어..”

[테성질 ㄷㄷ]

[오늘 번 돈 다 어디다 쓸 건데 ㅅㅂㅋㅋ]

[뒀다가 국 끓여 먹음?]

“이거 바로 정산 안돼…”

[오늘 계약 신청해 지금 신청해도 승인까지 일주일 정도 걸릴 수도 있음]

[님 왤캐 잘 앎?]

[ㅋㅋㅋ 방송해 보려고 한 애들이 한둘이겠냐]

[검색해보니까 계약이 완료되었다면, 정산은 매월 1일에 등록되어 28일에 정산금 지급이라고 적혀있음!]

“고마워! 그러면 지금 바로는 무리네.”

­의수간지님의 1,000원 후원!

눈나 의수 너무 멋있는데 요새 의수 다 그렇게 나옴?

“아니, 난 특별한 경우지. 멋있지?”

[씹간지;;]

[게임 캐릭터인 줄 알았음ㅋㅋ]

[어디서 했음??]

“안 알랴줌...”

[ㅡㅡ]

다 먹은 국수 그릇을 치워두고 의자에 등을 기대어 무엇을 할지 생각해본다.

슬슬 다른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조바심이 난다.

역시 방송은 어려워!

레오루나 할까?

레오루는 애들이 질린 느낌이…

“얘들아! 슬슬 지루하지? 레오루 할까?”

[?]

[갈고리 수집 좋아함?]

[레오루가 지루하긴 하네요 ㅎㅎ]

[그거 그만하라고ㅡㅡ]

[님 얼굴 보면서 잡담하는 게 더 좋음 ㅎㅎ]

“그래.. 알았어..”

예전에는 레오루 같은 게임이 없었는데 이곳에선 진짜 안 먹히는구나.

어느 정도 대책을 세워둬야겠다.

정산 받아서 VR기기를 살 때까지 저스트 채팅 방송만 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스캐빈저임님의 5,000원 후원!

님 근데 머리 색이랑 눈 색깔 자연임? 자연적으로 저렇게 가능한가 ㄷㄷ

“후원... 고마워...! 자연이지.”

대충 눈이 예쁘다, 머리 색이 예쁘다, 어떻게 자연이냐 이런 반응이 나왔다.

아, 근데 진짜 뭐하지.

­참게비령님의 200,000원 후원!

저.. 혹시…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가능한가요?

[참하~]

[오늘 참요일 아니었어?]

[근데 갑자기 참참이가??]

[갑자기 대기업이???]

[??????]

후원자의 닉네임을 보고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내 유일했던 친구.

내가 말 없이 조용해지자 채팅창도 분위기가 술렁술렁하다.

[??]

[갑분싸;;]

[무슨 일 있었음??]

­참게비령님의 1,000원 후원!

죄송합니다… 아는 사람 인줄 알고…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이대로 놓치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을 잇지 못했다.

참게비령은 한참을 나가지 않았다.

이대로 끝내기 아쉬운 건 너도 마찬가지였을까?

아니면 내가 너무 긍정적으로 생각 하는 걸까?

“네… 매니저 드릴 테니 물어보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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