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불쌍한 사람 아니라고-13화 (13/78)

〈 13화 〉 사과하는 사람들

* * *

정신을 차리니 체력이 완전히 탈진 상태라 친구들의 권유로 꺼버렸다.

방송 채팅도 분위기가 다들 이상하고… 하기야 사람이 쓰러졌다가 일어났으니 오죽할까.

게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너무 일찍 방종한 게 아닌가 싶어서 채팅창을 힐끔 엿보니 눈치 본다고 혼나고 방종하게 되었다.

초야 언..니라 해야 할지 누나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초야님은 왠지 모르게 부쩍 친근하게 다가오는 모습이다.

왜?

침대에 누운 채로 머리에 VR 기기만 빼서 바닥에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오늘은 그래도 꽤 재미있었어.

아침 햇살이 눈에 비집고 들어와 깨버렸다.

이곳의 유일한 장점은 햇빛이 잘 들어온다는 점이지.

입을 쩍 벌려 하품을 하고 일어났다.

시간이…?

10시쯤이네.

이 시간이면 항상 밥 먹기 애매해진다.

대충 비빔밥 하나를 배달시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송을 켰다.

어제의 여파가 있는지 좀 피곤하긴 했지만… 오늘은 소통 방송인 거로….

그런데 어제처럼 또 그런 일이 생길까?

되도록 그런 일은 없으면 좋겠는데 이런 불편함은 좀…

테일리 Just Chatting

밥 먹고 잡담

[테하!]

[테하]

[오늘은 몸 괜찮아요?]

[어제 깜짝 놀랐음;;]

[오늘 초췌해진 모습인데 좀 쉬다가 켜지]

초췌해진 모습?

피곤하지만 그 정도까진 아닌 거 같은데 다들 과장이 좀 심한 편이다.

“안녕… 오늘 피곤해서 VR 게임 못할 것 같아.”

[켜면 나락 도배할 거였음 ㄱㅊ]

[어제 그런 일이 생기고도 켤 생각이 남?]

“어제는 별일 아니야. 너무 신경 쓰지 마 다들…”

[트라우마 와서 쓰러진 게 별일 아니면 뭐가 별일임? ㅋㅋ]

[ㄹㅇ]

[근데 뭐 먹음?]

“오늘 비빔밥 시켰어.”

어제 쓰러진 것 때문인지 다들 걱정이 가득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의 걱정을 한 몸에 받으니 좋기는 좋았지만 신기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다… 나도 내가 아는 연예인이 아프다고 하면 걱정은 하려나?

근데 시청자 수가 끝도 없이 불어나고 있었다.

이거 혹시 뷰봇 그런 거 아냐?

“어제 내가 쓰러졌다고 하지만… 지금 시청자 수 너무 많이 불어나지 않아..?”

[안 불어날 거로 생각했음? ㄷㄷ]

[안 불어나면 그게 더 신기한 거 아니냐]

[테일리님 괜찮으세요? ㅠㅠㅠ]

“괜찮아요. 다들 와줘서 감사합니다.”

시청자 수 1.5만

평소의 두 배를 훌쩍 넘겨버렸다.

줄어들기는커녕 지금도 조금씩 오르고 있겠다는 게 무서울 지경.

“아, 잠시…”

나가서 배달원을 보니 눈이 큼지막하게 커지며 날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달라고 손을 내미니 그제야 주는 모습이 얼빠져 보인다.

문을 닫을 동안 계속 내 얼굴만 보길래 기분이 살짝 나빠져서 문을 쾅 닫아버렸다.

이해는 하지만 눈치를 줬음에도 저러다니.

앉아서 비빔밥을 한입 퍼먹으면서 채팅창을 살피니 다들 영상 도네를 감상하며 댓글을 달고 있었다.

­문은곰이야님의 25000원 후원!

[영상]

누군가 육즙이 가득한 고기를 칼로 썰어 조리하고 있는 영상이었다.

흠… 돈 벌면 고기부터 사 먹어야겠다.

친구들 덕분에 선물도 받고 방송도 흥했으니 나중에 밥 한번 사야겠어.

이제 곧 정산받을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으니까.

이번에 돈 많이 벌었으니 기대해봐도 좋겠지?

비빔밥을 한입 퍼먹으면서 영상을 구경한다.

[님 말 좀 하세요 ㅋㅋㅋㅋ]

[스트리머가 방송 진행을 안 하고 밥만 먹는 방송이 있다?]

[ㅓㅜㅑ근데 밥만 먹고 있어도 그림이다]

[나도 밥 먹어야지]

“아…맞다. 방송 중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신 차려!]

[그래도 밥 먹고 있어서 그런가? 아까보다 나은 듯]

[이거 완전 키 큰 참게비령…]

[키만 크다기엔 게임도 좀 ㅋㅋ;]

­얍시님의 1,000,000원 후원!

제 경솔한 행동으로 테일리님에게 상처를 준 점 깊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드디어 왔네 ㅋㅋㅋㅋ]

[네가 안 오는 게 사과임 굳이 와서 안 좋은 기억 들추는데 그게 사과임?]

[이번에 사과 못 하면 밸보에서 대회 출전 1년간 정지라서 온 것임 ㅋㅋ]

[무슨 일임?????]

[진짜 미안해서 온 게 아니라 자기한테 손해가 되니까 오셨다는 거죠?]

[눈치 진짜 ㅋㅋ 어제 발작해서 안 좋은 상태인데 굳이 오늘 오네ㅋㅋㅋㅋ]

“네…? 뭘요…?”

뭘 사과한다는 거지..?

100만 원이나 후원한 것을 보면 나한테 무슨 잘못을 하긴 했을 텐데.

혹시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인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지만 일단 모르는 사람 같다.

혹시 착각하고 잘못 후원한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100만 원이 너무 아까워졌다.

잠깐이지만 행복했어… 환불은 수수료 제외하고 주는 건가..?

잠깐 매니저를 줘봤다.

“저희… 아는 사인가요..?”

[얍시 : 잘 알지도 못하고 핵쟁이가 맞다고 경솔한 발언을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테일리가 용기를 내서 다행이지 집에 틀어박혔으면 핵쟁이 됐다 그죠?]

[ㄹㅇㅋㅋㅋ]

아, 예전에 해명하기 전에 나 욕했었구나.

근데 딱히 유감은 없었다.

요새처럼 스트리머가 스트레스 많이 받는 세상에 그 사건 덕분에 좋은 시청자들도 많이 생겼고 돈도 벌고 방송도 흥하고…

해명 방송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머나먼 과거의 일처럼 기억나네.

근데 욕했던 사람이 이 사람밖에 없던 것도 아니고 심한 발언이 아니면 괜찮지 않나.

“아… 괜찮아요. 오해할 수도 있죠… 저에게 욕했던 다른 분들도 보고 계신다면 괜찮다고 말하고 싶네요.”

이쪽 세계는 내가 있던 곳보단 다들 착한 느낌이어서 혐오의 시대라 불리는 그곳처럼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아.

[아니 근데 그렇게 넘기기엔 너무 악질적인 애들도 많았었음;]

[ㄹㅇ]

[테일리가 용서했으니까 뭐..]

[난 용서 못 해~]

다들 의견이 갈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납득이 가게 말해야 했는데…. 역시 난 말재주가 부족해.

내가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주면 되지 않을까.

근데 내 속의 말을 꺼내기엔 좀 부끄러웠다.

“내..내…”

[??]

[내?]

[네??]

“내…내..내가… 너..너..너무 잘하니.. 오해할 수밖에 없었지..! 암…!”

얼굴이 뜨겁게 화끈거렸다.

다른 스트리머들은… 다들… 뻔뻔하게 농담을 잘하던데…?

아직 방송 짬밥이 부족해서 그런지 너무 부끄러웠다.

사람들이 부끄러우면 얼굴을 왜 가리는지 알 것 같았다.

[ㅋㅋㅋㅋㅋ]

[핵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실력이었지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기 자랑 하는데 왜 그렇게 부끄러워하냐 ㅋㅋㅋ 부끄러우면 하지를 말지 ㅋㅋㅋ]

[귀엽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냥지 : ㅋㅋㅋㅋㅋ]

[참게비령 : 맞지~ 오해할 수밖에 없지 ㅋㅋㅋ]

[악여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희들은… 왜 방송 안 하고… 여기 있어….!!”

[냥지 : 켰는데?]

[참게비령 : 아ㅋㅋ 예지 방송은 못 참지 ㅋㅋ]

“하…하여튼 사과 안 하셔도 돼요..!”

[얍시 :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얍시님의 사과와 동시에 연달아 사과 후원들이 마구 터진다.

괜찮다는데 왜 자꾸 주는 거야..?

그냥 후원이면 모를까 사과 후원이라 그냥 받기는 좀 찜찜했다.

“오늘 사과 후원은… 후원하신 분들의 이름과 저의 이름으로 보육원에 기부하겠습니다..!”

아동 복지 센터 그런 곳에 하면 되나?

[와!]

[그 많은 돈을 ㄷㄷ]

[왜 제 눈이 멀어버린 거죠?]

[그건은 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초야 : 으악! 내 눈이..!]

[앞이 보이지…않아…!]

[눈이 부셔!]

“주…주접 멈춰…!”

[초야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너무 착하다 ㅠㅠ]

친구들과 초야님이 같이 기부 하자며 해버린 후원을 시작으로 수많은 사람이 후원하기 시작했다.

아…아니…! 사과 후원만 기부할 생각이었다고…!

어느새 오늘 벌은 후원금 전부를 기부하는 것으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그래… 이미지 좋아지고 난 좋지….

왜 근데 눈물이 나는 걸까?

그렇게 그날 방송은 기부를 위한 후원으로 끝이 났다.

후원할 곳이나 찾아야겠어…

****

어제 예지가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혀서 예지 방송에 들어가 봤다.

아직 어제의 여파가 남아있는지 초췌해진 모습으로 멍하니 앉아있는 모습이 보기 안타까웠다.

차라리 오늘 하루 휴방하지.

아무도 뭐라고 안 할 텐데.

[예지 좀 쉬라고 하자…]

[저렇게 피곤해 보이는데 왜 방송을…]

“너무 힘들어 보이긴 하네.”

상태가 영 좋지 않은 게 맞긴 맞는지 자기가 방송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그냥 가서 쉬라고 말하는 게 좋을까?

그렇게 말하면 좀 그런가.

아, 몰라 일단 말해서 아닌 거 같으면 괜찮다고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채팅을 치려는 순간 갑자기 큰돈을 후원하는 누군가가 채팅창에서 엄청 욕을 먹고 있었다.

누구지..?

“누구길래 이렇게 욕을 먹어요?”

[예지 하꼬일 때 핵쟁이라고 몰아간 프로 ㅇㅇ 얍시는 특히 프로라서 불길이 더 거셌음]

[가만히 있던 사람들도 얍시 말 믿고 중립 기어 부신 애들 많을 듯]

정말 악질이었구나.

예지의 표정이 살짝 흐려지는 것을 보니 맞네.

스트리머들은 항상 자신의 일상이 방송에 노출되기 때문에 잘못하지 않더라도 논란이 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런데 잘못을 하지 않은 예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예지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시청자 100명으로 소소하게 방송하고 있었다고 한다.

친구랑도 제대로 대화를 하지 못해서 떠는 애인데 수만 명한테 욕을 먹던 예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심지어 자기가 잘못한 것도 없었다.

예지의 성격상 해명하겠다고 나온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지 않을까?

이렇게 소심한 성격인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실제로 만나니 전혀 달랐지.

“내…내..내가… 너..너..너무 잘하니.. 오해할 수밖에 없었지..! 암…!”

예지의 얼굴이 터질 듯 시뻘겋게 달아올라 손으로 가리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사과를 받아주고 사과 후원으로 기부하겠다는 통 큰 발언에 살짝 감탄했다.

지금 쌓인 후원들만 얼마야?

이 정도 돈이면 욕심이 생길 수도 있었지만, 고민 없이 툭 하고 내뱉는 그녀의 얼굴은 후련해 보였다.

스트리머들이 이미지를 위해 기부를 결정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렇다기엔 예지의 성격상 그렇게 계산적인 애는 아니니까.

좋은 친구를 사귀었구나.

후원이 쏟아지자 감동했는지 눈물을 글썽이는 그녀의 얼굴은 너무 아름다웠다.

생각해보니 이사 문제가 있지?

제대로 꾀어봐야겠다.

<오늘 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날이었다.=""/>

오늘 기부 예정인 후원금만 얼마냐.

누구도 기부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저 돈 전부 기부한다는 소리 듣고 감동했음

금태양 : 예지는 무적이고 신이다.

ㅇㅇ : 제발 예지야! 너부터 신경 써!!

­새싹 : ㄹㅇ

<이사부터 가라="" ㅅㅂ=""/>

기부가 필요한 건 불우이웃인 너야!

기부 금액 커지니까 감동하지 마!

냥냥펀치 : 그래도 오늘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얍시 : 이 정도면 얍시 봐줄 만하다.

<오늘 근데="" 몸이="" 너무="" 안="" 좋아="" 보인다=""/>

그래서 예화랑 냥지가 내일 강제로 이사 시킨다고 내려감 ㅋㅋ

내일 납치 계획 세우더라

무야호 : 오늘 몸 상태 진짜 안 좋아 보이더라.

예지단 : ㅇㅇ 방송 중에 가끔 정신 못 차리는 거 보면 쉬긴 해야 할 듯

이이잉 : 내일 끄집어내고 힐링시켜준다니까 ㄱㅊ

­짜잔형 : 같이 노래 부르러 간다는데? ㅋㅋㅋ

­공병 : 내일 방송 켤까? ㅠㅠ

<핵…/>

핵무새들은 오늘 축생에서 인간으로 인정받았다.

예지에게 감사하도록.

즈아악 : 오늘은 핵무새 해방의 날로 부르겠습니다.

병신을보면짖는개 : 오늘은 짖지 않겠다.

쓰레기봉투 : 핵무새들 이름도 같이 적어서 기부하겠다니… 예지가 핵무새를 사람으로 만들어줬어!

도끼코인 : 너무 착해서 걱정임

<정보) 예지="" 때문에="" 밸보팀은="" 패치를="" 3번이나="" 했다.=""/>

너무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것은 어떤 사람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심문실의 그걸 표현해도 재미와는 상관없는 부분이었다고 바꿨다더라.

패치 왜 이렇게 빨라 ㅋㅋㅋㅋ

심문실 이제 못 들어감 + 이제 심문실 NPC가 항상 문 앞에서 대기

예지는토끼야 : 남은 패치는 뭐야?

­루왁 : 힐링 모드인가? 그거 준비하겠다고 모드 ui만 미리 넣어놓음.

­예지는토끼야 : 그게 무슨 소리야?

­루왁 : 너무 전투 쪽에 치우친 것 같다고 전투 빼고 생활 콘텐츠만 있는 모드 만든다고 ㅇㅇ 디렉터가 고민하다가 이번 일로 결정했음.

­예지는토끼야 : ㄷㄷ

­배고프다 : 완전 게임 하나 새로 내는 수준인데 수익 구조는 어쩌려고 하냐

­루왁 : 스캐빈저 콜을 즐겨주신 유저를 위한 서비스로 생각하고 있대. 스킨 정도만 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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