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친구
* * *
파일에는 텍스트 파일과 영상이 보였다.
텍스트 파일을 클릭했다.
깨진 문자들이 다수 보였지만 어느 정도 의미는 파악할 수 있었다.
XXXX년 X월 X일
테네브레 포르투나 행성계, 모르스 행성, 제국의 천국의 계단 심문실 (번역 되지 않음)
“내 노고를 알아주길 바라며 결과를 기록한다. 입을 열지 않았다.”
ㅇ…절..
파일의 손상도 매우 심각한 상태
극히 일부를 복구
XXXX년 2월 15일
“지독하군. …는 앞으로 반쪽의 세상 만을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입을 열지 않았다.”
손상
XXXX년 …월 20일
“도청기가 있었다. 그것도 ai가 있는… 꽤 오래된 것처럼 보인다. 이건…”
손상
XXXX년 2월 29일
“….은 포로도 대우해준다는 잘나신 보여주기 식 생색에 어울리는 내가 불쌍하다. ….에게 의수를 달아주기로 했다.”
손상
XXXX년 3월 02일
“더 이상의 심문은 그녀를 죽게 할 뿐이다. ….에서 심문을 계속한다.”
손상
XXXX년 3월 …일
“좆 같은 시발년아! 너의 대가리 안에 있는 것들을 싹다 토해내라고!”
손상
XXXX년 3월 23일
“지랄맞군! ….번으로도 그녀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다만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졌다.”
손상
XXXX년 ….월 ….일
“한계가 보인다. 이제 개인적인 기록을 여기서 끝낸다.”
장난….이지…?
어지러워진다.
열어선 안 되는 것을 연 것만 같았다.
어느새 내가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갑갑해져서 급하게 숨을 쉬었다.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화면을 바라봤다.
옆의 영상을 재생했다.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웃으면서 화면을 바라봤다.
어두컴컴해 음침한 방이 보였다.
방 한가운데는 예지가 묶여있었고 피범벅이 되어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떨고 있었다.
“아… ...년은 아직도 실토하지 않았다. ....을 버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이 될 것 같다!”
“끄…윽…으….”
“불면 무사히 고향으로 되돌려주지. 이 숟가락이 보여?”
제정신이 아닌 듯 기괴하게 웃는 남자는 화면을 보며 말했다.
화면이 검게 물들고 다시 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에서 유행하고 있는 노래다. 고향이 그립지? 오늘부터 이걸 틀면서 심문해주지.”
아련한 음악 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이던 그녀의 입에서 희미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제대로 돌아버렸군. 젠장!”
위이잉
희미한 비명이 들려온다.
“이봐. 이게 뭔지 알겠나?”
놀리듯 바나나를 내밀어 그녀의 눈앞에 흔들었다.
흐리멍덩한 눈으로 바나나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 그런 흐리멍덩한 눈빛.
“어…? 이게 뭐지…?”
“이런… 슬슬 끝을 보이는군.”
위이이이잉
“뭐지? 무슨 소리야.”
[…동…준비…]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경찰차로 추측되는 사이렌 소리 그리고 예지가 부르는 희미한 노랫소리와 함께 영상이 종료되었다.
왜… 이런 걸 가지고 있는 거지..?
이제는 끔찍하게 느껴지는 파일들을 휴지통에 넣고 삭제해버렸다.
“허억…헉…”
미친놈한테 붙잡혀서 끔찍한 일을 당하는 친구가 생각났다.
실성해서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닌 가사를 나지막이 읊조리는 친구가.
아
뭔가 가슴이 답답했다.
이제야 예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이해됐다.
사람을 대할 때 사람을 두려워하던 그 모습.
스캐빈저 콜에서 심문실을 보고 트라우마로 발작하는 이유를…
모르는 게 약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보지 말걸.
눈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고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버텼을까.
사람이 두려워 밀어내면서도 슬며시 다가오던 예지가…
지금은 행복할까?
침대에 앉아 예지의 머리를 쓸어 올리니 천사처럼 순한 얼굴로 자는 얼굴이 보였다.
그 모습에 울컥했다.
눈을 뜨니 냥지의 얼굴이 바로 앞에 보인다.
누운 채로 멍하니 그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내 방 아닌가…?
내가 실수한 거야…?
주변을 보니 내 방이 맞는데?
냥지가 잠버릇이 좀 고약하구나.
침대가 넓어서 딱히 불편하진 않았지만 좀 당혹스러웠다.
[사용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가 있음]
갑자기?
뭔데?
[누군가 사용자의 자료 열람]
무슨 자료?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한숨을 푹 쉬며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깨지 않도록 조심…
[사용자에게 삭제를 권유했지만 듣지 않음. 이것은 ai의 추천을 듣지 않으면 93%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
무슨 근거로 93%?
아까부터 무슨 소리야.
하품하며 거실로 나왔다.
[통계 중요치 않음.]
아… 혹시 지난번에 그 자료인가?
[긍정]
그게 무슨 자료였지?
대충 영화라고 넘기면 되지 않나?
[심문 영상. 지금은 삭제됨.]
누가 내 컴퓨터를… 아니, 어제 내가 그걸 껐었나?
그냥 씻고 침대에 누워 잔 것 같은데…?
어제의 기억이….
컴퓨터를 켜고… 잤네..?
냥지가 내 방에 들어와서 그걸…
나 어떻게 해.
[좋은 방법이 있음.]
뭔데?
빨리 말해!
역시 ai야!
미래 기술이 이렇게 대단합니다.
[기억 소거를 개시. 20mA]
의수의 손가락에서 번개 같은 것이 탁탁 튄다.
파지직
미친 새끼야!
이딴 거 말고!
[없음]
침착하자… 침착해.
일단 아침밥을 차려볼까?
맛있는 식사는 기분을 풀어준다.
문제는 내가 요리를 못한다는 것이지.
내가 요리 잘했었어?
[X]
그래 고맙다.
요리하는 기능 없어?
[존재하지 않음]
찬장을 살펴보자.
따뜻한 차를 마시며 차분하게 대화하면 되지 않을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부우우우우우우
부글부글 끓는 주전자를 보며 넋 놓았다.
어떻게 하징…
머그컵에 옥수수수염 차 티백을 넣어 뜨거운 물을 붓고 티백을 제거하니 고소한 향이 솔솔 풍겨왔다.
깨울까…?
식탁에 앉아 고민하니 냥지가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점점 식은땀이 흐르고 불안해진다.
이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문제야..?
냥지가 화장실에서 나와서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내 맞은편의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우린 한참을 그렇게 서로 마주 보며 앉아있었다.
말없이 한참 앉아있으니 분위기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했다.
그저 차에서 나오는 고소한 향만이 느껴졌다.
차를 냥지에게 내미니 호로록 마시길래 나도 따라서 마셨다.
어색하다.
“어제… 내가 네 방에 들어가서 컴퓨터가 켜져 있길래 끄려고 화면을 봤더니… 좀 이상한 게 보이던데. 혹시 나한테 말해줄 수 있어..?”
“어…. 그냥 본 그대로야…”
하으… 어떻게 설명해야 해…
다시금 찾아온 묵직한 침묵이 내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어쩌면 아까보다 더…
나도 모르게 손이 달달 떨리는 것… 아니 손이 아니라 어쩌면 몸 전체가… 그리고 아까부터 땀이 쉴 새 없이 흘러 입고 있는 옷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살면서 이 정도로 땀 흘려본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 들통난 일은 스케일이 커도 너무 컸기 때문에 땀이 비처럼 흘러내린다.
그렇게 찻잔을 붙잡고 달달 떨고 있으니 부드럽게 내 손을 잡아 채는 손길이 느껴졌다.
냥지의 눈을 보니 호의를 가득 담은 부드러운 눈매가 곱게 휘어 웃고 있었다.
“이젠 괜찮은 거지?”
“어….응.”
“다행이다. 그럼 이제 묻지 않을게.”
처음 사귀었던 친구들을 잃을까 두려웠다.
내가 막연하게 두려워했던 그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들키는 그 자체가 두려운 게 아니라 들켜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들을 잃을까 그게 두려웠던 것 아니었을까?
긴장했던 몸에 긴장이 풀리면서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며 알 수 없는 감정이 내 가슴을 가득 채우며 몸이 떨려왔다.
“흐….”
나 왜 울지?
몸이 바뀌어서 눈물이 많아진 걸까.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는 손길에 마치 더 울라고 재촉하는 느낌이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괜찮다. 괜찮아.”
“아..안 무서웠어..?”
“무섭긴 했지만… 이젠 끝난 일이잖아.”
“나..나… 난 무서웠어…”
친구를 잃을까 봐.
사귄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소중해진 친구를 잃을까 봐.
그게 무서웠다.
너무 찐따 같은 내 모습이 바보 같지만 그래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봐도 진짜 찐따 같아….
이젠 무섭지 않다고 좋은 추억을 쌓아 나쁜 기억을 지우자는 말에 더 펑펑 울었다.
진정되고 얼굴을 한참 붉히니 냥지가 흐뭇한 얼굴로 손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았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좀… 찐따 같다…”
“누가 와도 울 수밖에 없지. 우리 떡볶이 시켜 먹을까?”
살짝 배가 고프긴 하네.
고맙게도 이번 일을 넘어가 주는 듯 보였다.
떡볶이를 정말 좋아하는지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떡볶이를 꼬챙이로 찍어 입에 날름 넣어 음미하며 먹고 있었다.
떡볶이 나름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원래 가격 대비 양이 너무 별로라서 난 안 시켜 먹었었는데 지금 먹어보니 꽤 맛있네.
다 먹은 쓰레기는 내가 다 버리고 왔다.
방송 쉬는 날을 맞추자길래 같이 월요일에 휴방 하기로 했다.
그런데 묘하게 배려 받는 기분이었다.
둘이서 TV를 보는데 냉장고에서 캔 음료를 꺼내서 준다든지.
내가 앉기 전에 의자를 살짝 빼서 내가 편하게 앉을 수 있게 해준다든지.
아니… 나 다리가 불편한 건 아닌데…?
그런데 요새 합방이 많아서 개인적인 방송은 없었단 말이지.
스캐빈저 콜 말고 다른 VR 게임인 크라이를 해보고 싶었는데 내일 한번 콘텐츠로 방송해볼까? 사실 콘텐츠로서 다루겠다는 느낌보다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내가 해보고 싶다는 의미가 더 강했다.
격투 게임이라니 어떤 식으로 싸우는 걸까?
내가 직접 격투 기술을 써가면서? 현실에서 못 싸우는 사람은 크라이도 못한다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럴 것 같기도 한데 정말 보정 하나 없을까?
소파에 몸을 기대 골똘히 생각하고 있으니 갑자기 냥지가 볼에 손가락을 콕 찍는다.
“어?”
“갑자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정란이가 이사 오게 한번 꼬셔 보자고.”
“그냥… 본인이 있고 싶은 곳에 있으면 되지…”
“아니 걘 지가 온다고 해 놓고 계속 미룬다니까? 분명 귀찮아서 미루는 거야. 아, 진짜…”
자주 우리 집에 와서 몰랐는데 사람들 말에 의하면 밖에 돌아다니는 것을 엄청 안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 거리가 먼 우리 집은 왜 그렇게 많이 찾아온 걸까?
“근데 평소에 방송에서 콘텐츠로는 어떤 걸 해..?”
“주로 저스트 방송으로 그냥 살면서 있었던 일? 아니면 그냥 가끔 친구랑 있었던 일 이야기 하면서 시간 보내기도 하지. 게임도 이것저것 해보고 가끔 고전 게임으로 PC 게임도 해보고… 어제처럼 노래 방송도 있네.”
“노래는… 좀 부끄럽던데…”
“잘 부르던… 혹시 좀 그래?”
“그건 아닌데… 부끄러워.”
“넌 자신감을 가져도 돼! 그렇게 잘 부르는데 부끄럽다고 안 부르기도 아깝다!”
가끔 방송 콘텐츠에 대해 조언을 받든지 아니면 같이 콘텐츠를 구상하기도 하면서 그날 하루는 푹 쉬었다.
****
몽롱한 상태로 일어나 화장실로 비틀비틀 걸어가서 씻고 나오니 예지가 식탁에 앉아 살짝 떨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아… 어제 내가 그걸 봤다는 걸 알았구나.
의자에 앉아 예지를 가만히 지켜보니 식은땀을 흘리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온몸은 땀으로 가득했고 축 젖은 잠옷 그리고 뭐가 무서운지 식탁으로도 그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크게 떨고 있었다.
“어제… 내가 네 방에 들어가서 컴퓨터가 켜져 있길래 끄려고 화면을 봤더니… 좀 이상한 게 보이던데. 혹시 나한테 말해줄 수 있어..?”
어떻게 대답할까?
분명 어제 내가 봤다는 것을 눈치챘을 텐데 예지의 안색이 파리 해지고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의 내용물이 안쓰러울 정도로 출렁이고 있었다.
“어…. 그냥 본 그대로야…”
그게 정말이었구나.
사실 장난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역시였다.
“이젠 괜찮은 거지?”
“어….응.”
“다행이다. 그럼 이제 묻지 않을게.”
그 떨던 몸도 멈추며 날 멍하니 바라보는 루비 같은 붉은 눈이 물이 가득 차올라 흐릿해졌다.
곧 울 것처럼 흐릿해진 얼굴에 눈물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흐….”
이젠 괜찮아.
“괜찮다. 괜찮아.”
“아..안 무서웠어..?”
“무섭긴 했지만… 이젠 끝난 일이잖아.”
“나..나… 난 무서웠어…”
비록 울고 있지만, 항상 자신 없이 흐릿하고 슬퍼하던 예지의 얼굴이 밝게 펴져 있었다.
마음속에 쌓아 두고 있던 고민을 내려놓은 듯 그저 펑펑 울고 있었다.
나한테 들켰던 것이 무서웠구나.
나쁜 기억은 좋은 추억들로 덮어버리면 된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을까?
펑펑 쏟아지던 눈물을 그치자 그녀의 얼굴이 타오르듯 붉게 달아올랐다.
차라리 이게 나아.
“내가 생각해도… 내가… 좀… 찐따 같다…”
“누가 와도 울 수밖에 없지. 우리 떡볶이 시켜 먹을까?”
그 누가 그런 일을 겪고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예지는 이제 떨지 않았고 편안하게 나와 일상생활을 즐겼다.
아직 울적한 기분인지 가끔 말이 없어지면서 침울해지기는 하지만 장난을 거니 금세 잊은 듯 보였다.
“어?”
“갑자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정란이가 이사 오게 한번 꼬셔 보자고.”
“그냥… 본인이 있고 싶은 곳에 있으면 되지…”
“아니 걘 제가 온다고 해 놓고 계속 미룬다니까? 분명 귀찮아서 미루는 거야. 아, 진짜…”
아니 걘 진짜 언제 한번 날 잡아서 꿀밤 한 대 때리고 싶다니까?
귀찮다면서 만나자는 약속을 몇 번이나 미뤘는지 진짜.
어휴… 어휴…!
“근데 평소에 방송에서 콘텐츠로는 어떤 걸 해..?”
“주로 저스트 방송으로 그냥 살면서 있었던 일? 아니면 그냥 가끔 친구랑 있었던 일 이야기 하면서 시간 보내기도 하지. 게임도 이것저것 해보고 가끔 고전 게임으로 PC 게임도 해보고… 어제처럼 노래 방송도 있네.”
“노래는… 좀 부끄럽던데…”
“잘 부르던… 혹시 좀 그래?”
내가 상처를 건드린 걸까?
어제의 끔찍한 영상에서 넋을 잃고 실성한 채 노래를 부르던 예지가 생각났었다.
나는 노래를 좋아해서 자주 부르고 심지어 작곡도 배워서 하기도 하지만 예지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상처 때문에 음악을 포기하고 싫어하면… 너무 슬플 것 같았다.
“그건 아닌데… 부끄러워.”
“넌 자신감을 가져도 돼! 그렇게 잘 부르는데 부끄럽다고 안 부르기도 아깝다!”
예지의 걱정과는 다르게 친구끼리 동거는 나쁘지 않았다.
혼자 있는 그 느낌이 싫었으니까.
야뭉이가 식탁에 있던 물통을 떨어뜨려 내 감성을 망쳤지만, 말이다…
“야뭉아!! 이놈! 요눔시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