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크라이
* * *
아침이 되었다.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활동을 하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겠지만 갑자기 찾아온 강렬한 충동에 휩싸여 크나큰 고난을 겪고 있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려고 했지만 내 몸은 이불에서 좀 더 뒹굴기를 선택했다는 것…
10시인데 일어나기 귀찮다.
밥은 먹어야 하는데…
귀찮음을 무릅쓰고 화장실에서 씻고 나와 냥지 방의 문을 톡톡 노크했다.
반응 없이 잠잠한 걸 봐서는 아직도 자는 듯했다.
살며시 문을 열고 안을 엿보니 냥지는 아직 자고 있었다.
어제 분명 깨워달라고 말했으니까 깨워도 되겠지?
“냥지야…”
어깨를 붙잡고 살짝 흔들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일단 계속 탈탈 흔들어보니 드디어 반응이 나오기 시작한다.
“으음… ㅇ..ㅇ차……”
“일어나…”
“으으으으…살려주세요… 5분만…”
본인이 저혈압이라고 말하더니 진짜 맞긴 맞나보다.
무려 6분 동안 실랑이 끝에 비몽사몽 깨어나 자리에 앉아있었다.
“며..ㅊ..시..?”
“10시 20분이야…”
“알았어….”
이야기를 하면서 사이좋게 밥을 먹었다.
이쪽 세계는 내가 살던 곳과 미묘하게 다른 경우가 제법 있기 때문에 궁금했던 것을 질문하거나 상식들을 물어보곤 했다.
물어볼 때마다 표정이 시무룩해지는 이유가 뭘까?
이 바보를 어떻게 구제해야 하는 걸까 이런 심정?
힝…
배도 부르고 날씨도 따뜻하니 잠이 솔솔 오기 시작했다.
살짝 졸다가 깨기를 반복하다가 눈을 부릅뜨고 자세를 고쳐앉았다.
오늘은 일찍 방송이나 켤까?
나 근데 방송 시간 좀 불규칙한 것 같기도..?
테일리 Just Chatting
냥지 집에서 방송
[ㅎㅇ]
[냥지 집에서 방송은 무슨 소리?]
[이제 냥지랑 같이 삼 ㅋㅋ]
[ㄷㄷㄷㄷ]
[결국 납치됐네 ㅋㅋㅋ]
깡모코님의 10000원 후원!
그래도 잘 갔네 ㅋㅋㅋㅋ
[ㄹㅇ]
“안녕… 얘들아..!”
[오늘도 말을 잘 떠시는군요.]
[바이브레이션 장인 ㅋㅋㅋ]
[오늘도 노래 ㄱ? 노래 ㄱ? 노래 ㄱ?]
[렉카들 님 노래 막 훔쳐 가서 그걸로 조회 수 빨아 먹던 데;;]
“앗… 그건 좀 그런데…”
내가 만든 노래도 아니라서 내 것이라고 하긴 좀 그렇기는 한데… 어떻게 하지?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채널 신고 간다!]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그 정도까진 아니고… 자중은 해줬으면 좋겠어.”
[노래 정식 발매는 안 됨?]
[돈 많이 벌 텐데]
[제발…]
[노래 좋다. 그러나 예지 노래를 공개하지 않는다. 불만이다.]
“그건 좀 생각해보고…”
케이브 뉴럴님의 100000원 후원!
서예지 지난번 사고로 당신의 방송 알게 되었다. 우리 밸보는 고의가 아니었다. 그리고 밸보의 쇼크워에 초대해요.
아니 갑자기 여기서 케이브가 왜 나와...?
밸보의 CEO였다.
사람들한테 인지도가 높아 밈으로 자주 등장하기도 하는 사람이지.
[찐임?]
[요새 스트리머들 초대받긴 하던데 우리나라 사람도 초대할 줄 몰랐네]
[케이브 왜 VR 게임은 할인을 안 하는 거야!]
[시청자 많기는 많은데 케이브까지 관심 가지고 직접 올 정도임??]
[예지 지금 해외에서 엄청 유명함 ㅇㅇ 번역 틀어 놨으면 외국인들이 더 많아질 듯 ㅋㅋㅋ]
[지난번에 사고 터지고 밸보 욕 뒤지게 먹을 때 케이브가 자기가 직접 사과하겠다고 했음]
“어… 안녕하세요.. 근데 쇼크워가 뭔가요?”
[케이브 뉴럴 : 새로운 VR 게임 공개와 동시에 현장에서 플레이해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스트리머들을 불러서 이벤트 경기 예정이에요?]
[돈도 많으면서 번역 모드는 왜 그런 걸 ㅋㅋㅋ]
[칼 수집하느라 돈이 없나 봐 ㅋㅋ]
[재산이 얼만데 돈이 없다는 소리가 나오냐]
[넝담~]
“그렇군요…! 가겠습니다! 언제 시작하나요..?”
이건 가야지.
[케이브 뉴럴 : 일정은 안내 간다. 친구들 데려와도 좋아요. 준비 많이 했다. 지난번 일 사과하고 싶어요? 꼭 참석해주길 바란다.]
“참가하겠습니다.. 근데 그건 밸보 잘못이 아니에요...”
[케이브 뉴럴 : 오.. 의도치 않았지만 우리 게임에서 난 사고 우리 잘못. 성공적인 홍보 예상해요. 그때 만납시다]
“네…”
[ㅋㅋㅋㅋ 번역 모드 좀 바꾸라고!]
[이쯤 되면 저 번역 프로그램 회사에서 로비했다 ㅋㅋ]
보통은 CEO가 직접 이런 걸 했었나?
근데 누구 데려가지?
몇 명인지 말 안 했으니까 내 친구들 다 데려가면 되나?
저런 행사가 방송 콘텐츠로 얼마나 좋은지 알고 있기 때문에 일단 권유 해봐야겠다.
익명님의 1000원 후원!
[영상]
정란이 방송이네?
“아니~ 나만 빼고 만났어…. 근데 배고프당.”
“너 안 온다며!! 피곤하다며!”
“아뉘… 피곤한 걸 어떻게 해요… 서운하네…”
“아! 아!”
“생각해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넹.”
정란이가 히히 웃으며 예화를 약 올렸고 바짝 화가 오른 예화의 고함과 함께 영상은 끝이 났다.
나도 친구들이랑 이런 농담을 나눌 수 있어야 할 텐데 아직은 좀 힘들단 말이지.
그 왜 농담도 하면 되는 것이 있고 안되는 것도 있는 데다가 타이밍도 있지 않은가?
여러모로 친구와 농담을 나누는 것은 고도의 테크닉이라고 볼 수 있다.
친구끼리 농담하다가 싸움으로 발전하는 일이 생각보다 흔하게 벌어지니까.
[ㅋㅋㅋㅋㅋㅋ]
[정란이 밖에 나가는 거 진짜 피곤해 하더라ㅋㅋ]
[예지도 비슷할걸?]
“저는 피곤한 건 아닌데… 선호하지 않는? 그런데 사람들 다 그러지 않나?”
[응 아니야]
[예소리 on]
[전 안 나가면 더 피곤함]
그런 신기한 사람들이…. 활동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면 당연히 피곤해야 정상적인 생물 아닐까?
그 문제는 일단 됐고 크라이나 해볼까?
“오늘 나 크라이 그거 해볼 거야..”
[님 그거 스캐빈저 콜이랑 아주 달라요 ㅋㅋ]
[ㄹㅇ 뚜까 처맞으려고]
[근데 예지 스캐빈저 콜 하는 거 보니까 잘할 것 같은데?]
[해보면 알겠지ㅋㅋㅋㅋㅋㅋ]
VR에 접속해서 크라이를 눌러서 들어갔다.
격투가들이 화려한 기술을 뽐내는 영상과 함께 게임이 시작되었다.
랭크 모드
캐주얼 모드
연습 모드
[연습 모드 ㄱㄱ]
연습 모드에 들어가니 사람처럼 보이는 나무 인형이 덩그러니 서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나타났다.
“어떻게 해..?”
게임이 정말 불친절한 게 튜토리얼이나 안내도 없이 그냥 바로 랭크, 캐주얼, 연습 세 개 띄워 놓고 알아서 골라서 게임을 하라고 하다니.
괜히 진입장벽 높다는 소리가 나오면서 스캐빈저 콜보다 사람이 적은 것이 아닌 것 같네.
아닌가…?
생각해보니 스캐빈저 콜도 아무것도 안 떴는데 친구들이 가르쳐줘서 그렇게 느꼈겠지?
[님이 원하는 캐릭 골라서 하든지 아니면 환경설정에 들어가서 본인으로 설정해놓고 ㄱㄱ]
[본인으로 웬만하면 안 하는 게 좋음 ㅋㅋ 캐릭터 골라서 하면 동작 비슷하게 따라해도 기술 나가는데 본인은 그냥 아무것도 보정도 없고 기술도 없음]
[그거 UFC 선수나 복싱 선수들도 실력 동급이란 가정 하에 캐릭터 고른 사람이 더 유리함]
[본인으로 설정하는 거 가끔 이벤트 경기로 써먹음]
웨딩드레스 입은 금발 머리의 캐릭터를 고르니 내 복장이 웨딩드레스 복장으로 바뀌면서 포니테일로 묶었던 머리가 사르르 풀려버렸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나의 모습은 곧 결혼식을 준비하는 신부처럼 보였다.
복장 말고는 딱히 달라진 게 없지 않아?
아니... 근데 굳이 복장이...
좀 부끄러운데...
"이거 부끄러운데..."
[ㅓㅜㅑ]
[야 진짜 예쁘다..]
[내 신부야! 내 신부야! 내 신부야! 내 신부야! 내 신부야! 내 신부야!]
"이거 복장 없애는 방법 없어?"
[?]
[나]
[락]
[지랄 ㄴ]
[오늘 따라 예소리가 많다.]
[환경 설정에서 복장 제거 ㄱㄱ]
[저거 벤 ㄱ]
"미안... 나중에 언제 한번 풀고 할게..."
[이번만 입니다.]
[손해;;]
[ㅅㅂ...]
내가 아직 여성스러운 복장은 부끄러워서... 언젠가 익숙해지면 당당하게 입고 방송하겠지...
제자리에서 통통 튀어서 한번 점검해봤지만, 딱히 달라지지 않은 체력에 신장… 뭘까?
복장만 바뀌나?
“이거 복장만 바뀌나..?”
[커맨드라고 해보셈]
“커맨드!”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허공에 주먹질을 멋있게 휙휙 때리는 영상이 나왔다.
영상 목록에 기술 이름과 수십 개의 영상이 보이는 걸 보니 이걸 다 익혀야 하는 건가?
[안 쓰는 기술도 있음]
[콤보랑 주력 기술만 배워]
[대충 따라 해도 기술 발동됨]
영상을 따라 하니 몸이 저절로 움직이며 영상에 봤던 잽을 빠르게 나무 인형을 세 번 쳤다.
뭔가 답답하고 느려.
스캐빈저 콜보다 조작감이 떨어진다.
이러면 그냥 스캐빈저 콜에서 격투 게임처럼 싸우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그때의 움직임과는 확연히 달라.
허공에 주먹질을 해봤지만 역시 무언가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몸의 움직임이 수월하지 않았다.
“이거 움직임이 무언가에 막히는 기분이야…”
[???]
[그런 건 못 들어봤음]
[오히려 다들 자기 몸이 가볍게 느낀다고 함]
[보정 때문에 속도가 일정하긴 하지만 오히려 빨라져야 정상일 텐데]
다른 캐릭터로 바꿔봤지만 각자 조금의 차이가 있을 뿐 여전히 뭔가 답답했다.
본인 설정으로 바꿔볼까?
바꿔보니 확실히 아까의 답답함은 사라졌다.
자세를 잡아 왼팔을 움직여 스트레이트 펀치로 나무 인형을 때려보니 스캐빈저 콜보다 더 빨라진 속도가 느껴졌다.
주먹에 딱딱하고 거친 감촉이 느껴지면서 쿵 하고 진동이 부르르 떨려온다.
오… 느낌 좋다.
[자세 뭐임?]
[격투기 배웠음?]
[???]
내 생각대로 몸이 움직인다는 것은 내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으로 너무 즐거웠다.
옛날 격투 게임들 기술들을 재현할 수 있을까?
뛰어들어 서 있는 인형의 머리를 내 양 허벅지 사이에 끼워 몸을 회전해 바닥에 인형의 머리통을 처박았다.
큰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나무 인형의 목은 부러져 바닥에 뒹굴고 나는 자리에서 통 튀어 올라 자세를 바로잡았다.
옛날에 퀸오파에 나왔던 셀미의 행복 잡기란 기술이었다.
[와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탄 밖에 안 나온다 ㅋㅋㅋ]
[뭐지? 보정보다 더 빠른데 인간이 가능한 움직임이야?]
[이거 그거 아니냐 셀미 행복 잡기?]
[그게 뭔데 씹덕아;]
[옛날 pc 게임에 퀸오파라고 있었음…]
[헤으응... 나도...]
[아까 그 복장 입고 했어야지 ㅡㅡ]
“아… 맞아요… 생각나서 해보니까 되네.”
생각나는 기술은 다 써보니까 몇몇 개 빼고는 재현해내고 말았다.
안되는 몇몇 기술은 이 몸으로도 안된다면 아예 현실에선 불가능한 기술이 아닐까 짐작해보지만, 세상은 넓은 법 어쩌면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
없을 수도 있고…?
뭐든 단정 지을 순 없는 법이지.
까놓고 나 같은 케이스가 더 있을지 어떻게 알겠어..
이렇게 몸을 움직인 적은 없는데 후련한 기분이야.
아… 생각해보니 내 몸은 지금 누워있을 텐데 몸을 움직여서 후련하다는 것은 육체적인 만족감일까 아니면 정신적인 만족감일까?
[야! 야! 야! 야!]
[갑자기 멍해져서 왜 그럼…]
[또?]
정신차려님의 20000원 후원!
신고하기 전에 정신 차려.
“엉? 왜…? 뭐..?”
[트라우마 온줄 알고 개쫄았네;]
[ㄹㅇ 가끔 넋 놓으면 불안해짐 ㅋㅋㅋㅋㅋ]
[야! 누가 넋 놓으래!]
“내가 잘못한 부분..? 미안..”
[그렇게 애절하게 말하면 어떻게 ㅅㅂㅋㅋ]
[우리 잘못이였어? 미안]
[아ㅋㅋ 우리 잘못인 줄 몰랐지]
[근데 츈리 기술도 가능?]
“어…어떤 기술이요..?”
[기공장!]
[기공장을 어떻게 써 무친련아 ㅋㅋㅋ]
[여기 스피 방송이었나요?]
[백열각 ㄱㄱ]
[스피닝버드킥]
백열 각이란 스피라는 격투 게임에서 츈리라는 캐릭터의 대표적인 기술 중 하나였는데 다리가 여러 개로 보일 정도로 허공을 빠르게 난타 하는 기술이었다.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린 채 서서 빠르게 왼쪽 발을 쭉 뻗어 나무 인형을 훅훅 걷어찬다.
팡팡팡팡
내 발에 복부, 허벅지, 어깨, 목을 차인 나무 인형이 이리저리 흔들리다 제자리에서 쓰러진다.
사람들의 열광과 칭찬에 흥분한 나머지 요구하는 모든 기술들을 따라 했다.
근데 팔이 하나 뿐이라 두 손을 이용하는 기술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만족하는 듯 보였다.
[오늘 미쳤다 ㄹㅇ]
[클립 엄청 많이 나왔네]
[정란이한테 보여주러 감 ㅅㄱㅋㅋ]
“야…. 안돼…!”
프라시스님의 10,000원 후원!
한 판 붙고 싶다. 친선 요구한다.
[오… 누구임?]
[와ㅋㅋ 크라이 프로 선수임… 얘가 소속된 프로 팀이 지금 5위였나?]
[잘함?]
[그럼 못하겠냐 ㅋㅋㅋㅋ]
[양학 논란 ㄷㄷ]
[근데 예지하는 거 보니까 할만할 것 같은데?]
[실전 경험이랑 같냐]
“어…안녕하세요… 친선이란 것도 있어요..? 없던데..”
프라시스님의 10,000원 후원!
친선은 지금 연습 모드에서 친선 전이라고 외치면 된다. 방송 잘 보고 있어요.
흠… 어떻게 하지?
무섭긴 한데… 한판 해보고 싶기도 하네.
이 몸이 아무리 강하다지만 싸움 경험이 전혀 없으니까 반드시 이길 거란 보장은 없다.
그래도 프로니까 어느 정도 조절하면서 싸워주지 않을까?
아니면 한 수 배워도 좋고.
“어… 지금 한판 하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