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착각 담당 등장!
* * *
“오늘 모두 수고했어. 안녕~”
[ㅂㅂ]
[예지 방에 가보셈]
[지금 이상하던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 글을 읽자마자 덜컥 겁을 먹었다.
또다시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 급하게 방종을 하고 예지 방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의자에 앉아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뭐가 문제라는 거지?
일단 급하게 마스크를 쓰고 들어가 예지를 불러보았다.
“예지야…? 혹시 괜찮아?”
“응..? 헤… 냥지다…”
벌떡 일어나 나에게 안겨들었다.
평소에 스킨십은 엄청나게 부끄러워하면서 일절 없었는데 얘가 오늘따라 왜 이러지 싶었다.
확실히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왜 항상 예지 옆에 오면 상쾌하면서도 마음이 편해지지…?
달라붙은 예지의 볼을 두 손으로 잡아 내 눈과 마주치니 확실히 멍한 눈빛의 예지는 지난번의 다른 예지와 같은 느낌이었다.
“….?”
“예지?”
“네에…”
“너 지난번에 나랑 이야기했었지?”
“맞아… 기억해줬어…”
기분이 좋은지 볼을 살짝 붉히며 생글생글 웃고 있던 예지는 뒤를 돌아 허겁지겁 의자에 다시 착석했다.
“맞다… 나 방송… 해야 해..!”
“자, 방송은 많이 했으니까 그만하고 이제 끄자. 응?”
혹여나 사고를 칠까 봐 말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건 내가 아니야… 다른 나야… 나도 방송하고 싶어…”
“왜 그렇게 방송을 하고 싶은 거야?”
이건 내가 예지한테 묻고 싶었던 질문이기도 했다.
예민한 질문이 될까 봐 묻지 못했던 그 질문.
실례가 되진 않을까?
“방송하면 날 응원해주는 사람도 있고… 친구도 생겨… 괴롭히는 사람 없어…다른 나만 즐기는 건 치사해…”
나도 행복해지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예지의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쩌면 방금의 행동은 예지에게 큰 상처가 되는 짓이 아니었을까, 예지가 지난번 자신의 인격에 대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신경 쓰지 말고 평소처럼 대해주라고 잘해줬으면 좋겠다던 그 부탁이 생각났다.
그 말은 빨리 재우라는 뜻이 아니었을 텐데 나는 왜 보자마자 재울 생각을 해버렸을까.
다른 인격의 예지도 결국에는 예지인데.
“그럼 같이 방송할까?”
“진짜…? 여기 오고 나서 너무 좋아…”
여기 오고 나서?
괴롭히는 사람이 없어?
마음에 걸리는 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니, 안 좋은 생각은 하지 말자.
자꾸 그런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티를 내서 예지를 걱정 시킬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이것만은 확실히 알아야겠어.
예지의 손을 잡고 나와 방 밖의 거실의 소파에 예지를 앉혀 놨다.
내 진지한 표정에 당황한 예지는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내 눈치를 살피며 울먹였다.
마음이 약해졌지만, 다시 굳게 마음을 먹고 물어봤다.
“예지야. 널 괴롭혔던 사람 네 몸에 상처랑 관련이 있니?”
“흐으으으으 시..싫어..”
벌벌 떨기 시작한 예지의 볼을 양손으로 붙잡아 내 눈과 마주쳤다.
멍하니 내 눈을 바라보던 예지의 눈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다시 특유의 그 멍한 눈빛으로 돌아오자 안심이 되어 한숨을 푹 쉬었다.
“예지야. 관련이 있어?”
“으…응…”
그 영상에 미치광이가 다시 생각났다.
요즘 나오는 b급 영화에서도 안 나올 심문인 그리고 거기에 앉아있는 예지.
잊고 있었던 그 영상의 장면이 떠올랐다.
“널 괴롭히던 그 사람 이제 없어?”
“응…흐윽”
“아직도 널 괴롭게 만들 무언가가 존재해?”
눈물이 가득 고인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리던 예지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탓에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지만, 우리 둘 중 아무도 거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없어…”
“다행이다… 미안해. 이런 질문 해서 미안해.”
예지의 몸을 안아주니 어깨가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언젠가 확인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조급했을지도 모르지.
“흐으으으”
“미안해.”
예지를 다독이며 등을 쓸어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눈물이 그쳤다.
손수건을 꺼내 엉망이 된 얼굴을 닦아주었는데 엉망이 된 얼굴도 이렇게 예쁜 건 반칙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잘 거냐고 물어보니 방송을 하고 싶다고 말하길래 먼저 들어가라고 보내줬다.
이상하게 예지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골치 아픈 일은 금세 잊었기에 항상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질문을 하지 못했었다.
그 특유의 분위기에 휘말려 슬픔도 우울함도 분노도 예지 옆에 있으면 씻은 듯이 사라졌으니까.
다시 방에서 나와 내 소매를 잡아당기는 예지의 손길에 들어가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말하고 내 방의 의자를 질질 끌고 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시무룩하게 앉아있던 예지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그래 얘도 이렇게 웃는데 내가 슬퍼하면 이상하잖아?
[ㅠㅠ]
[친구는 더 늘리면 된다!]
[ㄹㅇㅋㅋ]
[무슨 대화하고 왔음?]
[눈치 없는 쉑;]
[영]
[차]
[영]
[차]
[시청자 만 명이니까 친구도 만 명인 거야]
“와아… 친구들이 만 명…”
행동거지가 애 같아서 그런지 친구가 아닌 귀여운 여동생 한 명이 옆에 있는 기분이었다.
평소의 예지를 보면서 여동생처럼 느껴진 게 한두 번이 아닌데 바뀐 예지는 아예 나보다 한참은 어린 동생을 데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보다 키도 큰데.
어쨌든 상당히 신난 듯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채팅창을 열심히 읽었다.
이걸로까까나머겅님의 10,000원 후원!
맛있는 거 사 먹어.
“와! 과자… 감사합니다…”
[초야 : 뭐야. 무슨 일이야?]
[예화 : 뭔데?]
“안녕~ 내 친구들 왔어요…!”
[우리도 보고 있음]
[ㅋㅋㅋㅋㅋ]
[안다]
“히… 그런가..?”
“예화 왔어? 언니 안녕하세요!”
[초야 : 어, 냥지 안녕. 근데 지금 상황 뭐야?]
[예화 : ㅎㅇ]
“아, 지금 다른 예지야. 인사해.”
[초야 : 앗! 지난번에 나랑 놀았던 그 예지인가?]
“네에… 언니 안녕…”
예지는 평소에는 얼굴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니,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예지는 순수하게 자기감정을 표현하며 보여주려고 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이렇게 웃어주면 좋을 텐데.
[웃으니 훨씬 더 예쁘네 ㄷㄷ]
[평소에 표정이 외모를 다 가리고 있었음ㅋㅋㅋ]
[가린 게 그 정도였음? ㄷㄷ 세계 최고의 미인 예지곤듀]
[앞으로 좀 많이 웃고 다녀라!]
[예지 공주님]
[생긴 건 공주 맞지 ㅋㅋㅋㅋ]
[초야 : 허어어어 너무 귀여워!]
“나 공주 아닌데…?”
[공주 맞음 ㅋㅋ]
[예화 : 냥지 카톡에 보낸 그것 좀 읽어봐.]
내가 예전에 방송에서 했던 애교 중 일부를 예화가 카톡으로 보냈다.
오늘 평소에 못 보던 예지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볼 수 있겠는데?
****
빠빠빠빠~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을 손만 뻗어 끄고 누운 채 눈만 깜빡였다.
내 옆에 왜 냥지가 누워있을까.
그것도 내 배 위에 손을 살포시 올리고, 말이지.
손을 살며시 옆으로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품하며 핸드폰을 읽어보니 친구들의 단톡방에 카톡들이 엄청나게 와있었다.
뭐지?
단톡에 무수히 많이 쌓인 카톡들을 누르려다 편집자가 보낸 카톡이 신경 쓰여 먼저 눌러봤다.
[편집자 : 영상을 보내주셔야… ㅠㅠ]
[앗… 깜빡했어요. 지금 보낼게요.]
컴퓨터를 켜 영상을 보내주었다.
그런데 왜 어제 영상이 두 개지?
두 번째 영상을 클릭해봤다.
또 다른 나의 존재를 알고 사람들과 친구들에게 설명한 적은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한테 그냥 평소처럼 대해 달라고 잘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었지.
“자, 이거 말해봐. 옳지!”
“사랑해에… 그런데 이거 왜 하는 거야..?”
“귀여워서 그렇지. 나도 예지 사랑해!”
“나도…! 냥지 사랑해에… 언니도 예화도 사랑해에… 이곳 너무 좋아…”
싱글벙글 웃으며 냥지에게 스스로 안겨들어 고양이처럼 비벼대는 나의 모습.
혀 짧은 소리로 친구들에게 애교를 부리는 모습.
행복한 얼굴로 나를 마주 안으며 서로 볼을 비비는 내 모습이 보였다.
꺄아아아아악!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멈춰!
[참게비령 : 우리 예지 잘한다! 잘한다!]
[초야 : 아고 귀여워… 이거 읽어볼래?]
[예화 : 와씨 존나 귀여워]
[ㅋㅋㅋㅋㅋㅋㅋ]
[오늘 혜자 ㄷㄷ]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애교 예지… 귀하네요…!]
평소처럼 대해라 잘해주면 좋겠다 이렇게 말했지만… 그게 이런 의미가 아니었다고…!
나의 비명에도 영상 속의 나는 멈추지 않고 평소에는 부끄러워서 못했던 수많은 행동들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테일리…!
일단 기다리고 있는 편집자를 위해 그 영상을 빼고 모든 영상을 넘겨줬다.
[편집자 : ??]
[왜요?]
[편집자 : 하나 빠졌어요!]
이상하다?
하나도 빠짐없이 줬는데 편집자님이 피곤하셔서 무언가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이다.
친절하게 진실을 알려줬다.
[빠진 거 없어요!]
[편집자 : 아, 예지님은 모를 수도 있겠구나. 어제 영상 빠졌어요! 다른 인격 분이 방송하시던 그 영상!]
갸아아아악!
벽에 던질 뻔한 휴대폰을 꽉 붙들고 부들부들 떨었다.
내 완력으로 벽에 던진다면 휴대폰과 벽 모두 무사하지 못하리라.
[그건 안 올려도 되지 않을까요?]
[편집자 : 그 영상 대박이던데 올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마치 보내라는 듯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편집자 : 에이, 편집할 건 편집해서 내죠.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 그렇죠?]
듣고 보니 알아서 편집해줄 것 같은 근본 없는 신뢰감이 생겼다.
알아서 해주겠지…?
결국 마지막 하나의 영상도 보냈다.
컴퓨터를 끄고 양손으로 볼을 감쌌다.
달아오른 볼에 뜨끈한 열기가 내 손을 데웠다.
다시 보기를 삭제할까 했지만 어떤 영향이 생길지 몰라 일단 놔뒀다.
냥지가 일어나기 전에 간단하게 닭가슴살 샐러드로 쓸 채소들을 씻어 그릇에 담고 닭 가슴살을 찢어서 흩뿌린 뒤 소스를 넣었다.
간단하면서도 아침에 부담스럽지 않은 식사다.
냥지를 깨우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일어났다.
가끔 날 묘하게 동생 취급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오늘은 확실히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어제의 나…!
“잘 잤어?”
“응… 어제 무슨 일 있었어…?”
“별일 없었어. 그냥 다른 인격의 너랑 좀 놀았지.”
“영상 봤는데 좀 말려주지…”
“뭘 말려. 어차피 넌데.”
피식 웃으며 내 손을 붙잡고 부엌으로 향하는 냥지의 손길에 이끌려갔다.
“오늘은 샐러드네!”
포크로 자기 몫의 샐러드를 담아서 먹고 있는 냥지에게 조심스럽게 어제의 일을 캐냈다.
“무슨 이상한 말을 하지는 않았지..?”
“없어. 그냥 귀여웠어.”
“흐으으… 그러지 말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이라도 말해주면 안 돼..?”
“신경 쓰지 말고 밥이나 먹어. 오늘 샐러드 괜찮네!”
나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답답해…!
그냥 무미건조한 냥지의 태도를 봤을 때는 아무 일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의수야.
어제 무슨 일 있었어?
[나노봇의 극히 일부를 복제해 인간의 세 가지 신경 전달 물질 중 도파민의 긍정적인 마음, 세로토닌의 행복을 유발. 몸의 불순물 제거와 스트레스 지수 낮춤. Gastroesophageal Reflux Disease 발견 정상화 완료.]
무슨 소리야..?
마치 교수님이 나한테 하는 말 같네…
[인간의 감정은 세 가지 신경 전달 물질로 형성. 그것을 조절했고 몸의 문제들을 개선함. 앞으로 나노봇은 대상자 냥지 즉 정유리의 몸을 지속해서 케어.]
오, 그거 좋네.
근데 문제는 없는 거지?
그 영어는 또 뭐야?
[세로토닌 수치가 너무 높을 경우 뇌가 과하게 반응하여 세로토닌 증후군이 생길 수 있음. 적절하게 조절하므로 신경 쓸 필요 전무. Gastroesophageal Reflux Disease 역류성 식도염. 사용자의 지적 능력 심히 염려스러움.]
어쨌든 좋은 거겠지.
나노봇은 문제가 없어?
[나노봇 스스로 정비하고 임무를 수행함. 그렇지만 사용자와 멀어질 때 적극적이지 않음. 사용자와 가까워지면 본 AI가 직접 제어. 나노봇 크기가 작은 만큼 많은 명령 저장 불가. 그렇기에 본 AI가 직접 제어함. 물론 나노봇 그 자체의 AI만으로도 건강 유지 문제없음.]
다행이네.
야, 근데 어제 무슨 일 없었냐니까?
[에너지 1% 긴급 충전 모드]
맨날 그렇게 도망치네.
변명이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니야?
그렇게 말했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