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불쌍한 사람 아니라고-42화 (42/78)

〈 42화 〉 목소리

* * *

찾은 것 같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확실한지 재차 확인하고 상부도 모아놓은 증거를 토대로 분석해보니 맞을 확률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라는 말과 함께 이 일에 대한 결정을 유보하기로 했다.

이 일을 오래 해본 경험으로는 세 가지 이유가 떠오르는데 그 이유가 맞겠지.

첫 번째 최대한 적절한 상황에 사과하기 위해 상황을 보고 때를 기다리는 것.

사람과의 만남은 항상 첫 만남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상대가 오늘 무슨 일로 기분이 안 좋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그 사람은 평소와 똑같은 말을 들어도 꼬아 듣거나 기분이 상할 가능성이 커지고 첫인상은 그대로 망쳐버리고 만다.

그것도 과거에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고국에서 보내온 사람이 사과하겠단다.

가뜩이나 기분이 안 좋은 날에 가해자가 대리인을 보내 대신 사과를 한다.

피해자를 괴롭히려는 게 아닌 이상 그렇게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두 번째 고스트 부대원들은 대부분 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병사들을 조사한 적이 있다.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평범한 병사들은 98%는 첫 교전을 겪은 뒤 어떻게든 충격을 받는 것으로 나왔고 이는 전쟁을 겪은 장교들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10명 중 9명이 첫 전투를 치르고 어떤 식으로든 충격을 받는데, 나머지 하나조차도 정상인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전투에 연속적으로 투입되면 어떻겠는가?

그리고 죽을 때까지 작전에 투입되는 고스트 부대원이라면?

생존한 고스트들은 세계 곳곳에 숨어있는데 찾아가면 대부분 자살을 했거나 제정신이 아니었다. 심지어 사과를 듣고 자살한 경우도 있었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가 이것밖에 없다는 유언장만을 남기고 말이다.

사과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용서받을 때까지 사과하기는 절대 쉽지 않았다.

우리의 사과는 피해자들에게 오히려 폭력으로 받아 들여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테일리는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고 있었다.

심각한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어서 섣불리 접근하기도 어려운데 과거에 대한 기억도 일부만 존재했다.

다행히 최근에는 좋은 친구들을 만나 많이 좋아진 듯하지만 아직도 그 여파가 남아있었고 우리가 접근하는 것은 벌집을 쑤실 수도 있는 행동이다.

그리고 한국은 밤에도 활동할 수 있을 만큼 치안이 안전한 국가이고 우리의 동맹국이었다.

테일리의 재산도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넉넉하니까.

넉넉하다 못해 돈이 흘러넘치는 수준이지.

이러면 그냥 포기하는 게 맞다.

골치 아프군.

정말 골치가 아파.

옆에 큼직한 덩어리가 던져주는 맥주 한 캔을 받았다.

전투가 벌어진다면 든든하지만, 그 외에는 영 믿음직스럽지 못한 동료였다.

“아마 포기하는 방향으로 갈 것 같지?”

“그걸 아니까 이렇게 고민하는 거지.”

“내가 볼 때도 그게 맞지 않나 싶은데… 존, 네 생각은 좀 달라 보이네.”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들어. 그리고 이 맥주 오줌 같은데 잘못 사 온 거 아닌가?”

얼마 전에 창가에 얼굴만 내민 채 밖을 구경하던 그녀가 떠올랐다.

한쪽 눈으로 세상을 부지런히 담으며 모든 걸 신기하게 바라보지만, 밖에 나올 생각은 못 하는 그녀의 모습이.

최근 나아져서 외부 활동을 조금이나마 하지만 그마저도 밸보와의 일이 끝나니 밖에 나오지를 않았다.

예전에는 아예 나가지도 않았다는 정보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선한 사람들은 보상 받아야 한다.

선한 자들이 보상받지 못하면 그 누가 선한 사람이 되고 싶겠는가?

고스트들은 그 존재가 지워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지 못했지만 틀림없는 영웅들이었다.

그런 영웅들이 아직도 대우받지 못하고 끔찍한 삶을 살고 있었고 바꾸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옆에 앉아 서류를 보며 맥주를 마시던 매버릭이 감탄했다.

그 맛 없는 맥주를 잘도 마시는군.

여기 호텔은 방음 하나만큼은 마음에 드는군.

안 그랬으면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다 드러났을 텐데.

“워! 진정한 기부 천사로군. 이 정도로 통 큰 기부를 꾸준히 하다니!”

“그만큼 많이 벌긴 하지만 대단하긴 하지.”

“프라시스? 이 격투기 선수와 친분이 있는데 살짝 떠보면 안 되나?”

“우리가 조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거냐?”

“그럴 리가!”

오늘도 쉬기는 글러 먹었군.

****

그거 아는가?

오해로 부풀려진 친구의 기대와 그로 인한 약속은 매우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실력이 맞긴 하니까 오해가 아니기는 한데 오로지 내 노력으로 만들어진 실력이 아니라서 오해..?

노력으로 자기 실력을 쌓아 올린 사람들은 남들한테 가르쳐주거나 전수해줄 수 있겠지만 나는 그게 불가능하다.

나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이런 나를 더욱더 두렵게 만드는 소식은 소문이 퍼지고 퍼져 내가 아는 사람들은 전부 나한테 같이 들을 수 없는지 물어보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난 친구끼리 장난치듯 하면 되나 생각했지만, 어느새 강의 방송을 한다는 것으로 내가 한 말이 여러 사람의 입으로 퍼져 완전히 와전되어버렸다.

어제 메일을 한번 정리하려고 들어갔더니 신입에 무명 가수들이 팬이라고 이번 강좌 기대되고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내게 메일이 왔을 때 난 뭐라고 답변할지도 몰라서 방치했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의 기대가 나의 마음을 콕콕 찌르고 있어…

나는 소심하고 눈치도 없고 임기응변에 약하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넘기는 법을 모른다.

의수한테 맡기긴 했지만, 얘도 뭐든 잘할 거라고 생각하고 모든 걸 맡기기에는 유튜보 편집을 망쳤을 때를 생각해보면 나도 좀 준비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오늘 친구들의 방송을 보니 기대된다고 전부 왁자지껄했다.

정신 나갈 것 같아!

테일리 오랜만에 네가 친구들이랑 오늘 놀래?

너 노래도 잘 부르는데 친구들이랑 같이 노래 부르면서 놀면 되잖아.

[너의 노래 기대된다!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할지 기대 좀 할게..!]

도움 안 되는 녀석.

지금이라도 못하겠다고 사과할까 생각해봤지만, 차라리 안 한다고 했으면 모를까 일 벌여놓고 사람들 기대하게 해놓고 이런 식으로 마무리 짓기에는 좀 그렇지 않나.

의수야 어떻게 하지?

어제 너의 이름을 고민했는데 이제 너의 이름은 델리야.

델리!

[네이밍 센스 최악. 거부.]

내가 엄청나게 고민해서 지은 이름인데…

[라틴어 사전의 델리키아에서 따온 델리. 최선을 다한 게 맞는지?]

원래 이름은 옥자 아니면 미옥이였어!

[델리 매우 좋은 이름. 당신의 센스에 찬사를!]

엄청 좋은 의미가 있는 이름이지.

만족했다니 다행이야.

어쨌든 오늘은 어떻게 하지.

그렇게 고민하는 중 누군가의 노크에 깜짝 놀라 문 쪽을 바라보니 냥지가 고개를 삐쭉 내밀고 나를 보고 있었다.

눈에 빛이 난다고 느껴질 정도로 냥지는 기대감 어린 눈빛을 내게 보내고 있었다.

온몸으로 나 기대하고 있다고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냥지를 보니 절로 어색한 웃음이 내 입에서 비식비식 새어 나왔다.

다른 애들도 이 정도로 기대하면 곤란한데…

고민하는 동안 시간이 엄청나게 지났나보다.

“예지? 슬슬 애들 올 시간이다?”

“응… 오늘 너랑 예화, 정란이 이렇게겠지..?”

“아닌데? 지금 차향 언니랑 초야 언니, 수양이, 임뿌 이렇게! 일단 모르는 사람도 껴있으면 부담 느낄까 봐 친한 사람들만 받았어! 다른 스트리머 몇 명은 시청자로서 방송 보겠다는데.”

참… 많이도 오셨군요…!

부담 느낄까 봐 친한 사람들만 모았다는 건 좋은데 임뿌님이 나랑..?

들어보지 못한 일인데!

“왜 그렇게 많이 모였지…”

“친한 사람은 와도 된다고 했잖아.”

그 친군 사람이 정란이랑 예화만 올 줄 알았는데!

“임뿌님은..?”

“한번 팀은 영원한 팀이라고 우기면서 들어오긴 했는데 그냥 내보낼까?”

팀..?

설마 지난번에 같이 했던 스캐빈저 콜 합방 때?

“내보낼 것까지야… 일단 곧 준비할게.”

“그럼 그렇게 말해둘게. 빨리 거실로 나와.”

냥지가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바로 한숨을 푹 쉬었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좀 진정하고 들어가야겠다.

하…후…하…후….

쾅 소리를 내며 벌컥 열리는 문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마음의 준비한다고 사람들 다 왔는데도 안에 박혀있으면 안 된다?”

어떻게 알았지?

심리학자인가…?

“예지 어디 갔어? 허억! 설마 내가 1등이야?”

“초야 언니 어서 오세요. 예지 방안에서 마음의 준비하고 나온 데.”

“역시 프로는 달라!”

프로 아니에요…!

아닌가.. 노래 불러서 돈 벌었으니 프로는 맞나?

언니가 왔는데 방 안에 계속 박혀있는 것도 실례라 나와서 인사했다.

“언니… 안녕!”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잘 지냈어요… 언니도..?”

“나는 건강하지! 오늘 초대해줘서 고마워.”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아니라 냥지가 초대했지만 냥지가 눈을 찡긋하는 것을 보니 내가 부른 거로 말해뒀나.

“너 연기 진짜 잘하더라. 평소랑 너무 달라서 깜짝 놀랐지 뭐야. 아, 근데 그 복장 진짜 끝내주던데?”

“입고 싶진 않았는데…”

“언니. 약속 시각 다 돼가는데 일단 방송 켜고 진행하고 있을까요?”

“그러자! 난 좋지!”

그러면서 거실에 설치된 컴퓨터 전원을 켠다.

어제 단체 합방 한다고 거실에 설치해뒀는데 내가 듣기로는 피셀에서 큰 작업 방이 하나 있다고 들었는데?

“시작해주세요!”

“어쩜 좋아. 너무 기대돼.”

[ㄹㅇㅋㅋㅋ]

[교수님 진도를 나가주세요.]

델리 도와줘…!

[인간은 여러 방법으로 목소리를 바꿀 수 있음. 익숙한 목소리 하나만을 이용할 뿐. 학습 시스템 가동. 다음 테스트의 지시를 따라주세요.]

어떻게?

[본 기기를 테스트 대상자의 목에 대어보세요. 의심을 피하려면 나머지 손도 같이 대세요.]

양손을 들어 초야 언니의 목을 붙잡았다.

이거 모양새가 좀 이상하다?

“허어억… 예지야! 내가 뭐 잘못했니…?”

화들짝 놀라 기겁한 초야 언니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려고 했지만 나에게 목이 붙잡혀있었다.

힘을 준 건 아니다!

캠을 켜지 않았지만 초야 언니가 자꾸 목을 반복하며 불러서 사람들이 무슨 상황인지 대충 눈치챈 모양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예지한테 목 졸릴 정도의 잘못…? 도대체…]

[놀래라 ㅋㅋㅋㅋ]

사람들의 반응을 무시하며 델리는 계속 진행했다.

[속성 교육. 대상자에게 일상적인 대화부터 시작해서 노래까지 시켜보세요.]

“언니… 일단 내가 알아볼 게 있으니까 이대로 잠깐 이야기하자..”

“응..? 도대체 이게 무슨 강좌래…? 오늘 애들이 좀 늦다?”

“노래도 불러봐…”

부드럽고 다른 여성들처럼 높은 고음의 노랫소리.

[나노봇 투입 대상자의 목 구조를 확인 및 회복.]

회복은 무슨 소리야?

다치시기라도 했어?

[인간의 몸은 어떤 부위든 쓰면 쓸수록 점점 상태가 나빠짐. 더 좋은 소리를 위해서 완벽한 회복 필요.]

“어? 뭐지?”

[이곳에 의미 없는 힘 감지. 이곳 근육의 긴장을 풀 것. 그리고 좀 더 입에 바람을 적게 낸다는 생각으로 말할 것. 나노봇의 보조가 있음으로 실패 걱정할 필요 전무.]

의수의 팔이 저절로 움직이며 목 어딘가를 짚어냈다.

그렇게 말하니 긴가민가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내 지시를 따랐다.

“아~ 어, 뭐야!”

[목에 가장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이 신체에서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

[그리고 이것이 낼 수 있는 저음.]

[이번은 이 목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고음. 이 이상은 신체에 무리가 가며 인간 기준 듣기 싫은 소리.]

[이제 신체가 기억하고 자유자재로 목소리를 변경 가능. 우리는 이를 스위치라고 부름.]

델리의 말을 전했지만 내가 들어도 너무 추상적인 말들이었는데 초야 언니는 곧잘 알아듣고 따라 했다.

사람 눈이 이렇게 커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커진 눈이 나를 바라봤다.

“와! 프로는 프로구나! 오길 잘했다. 예지야 정말 고마워…”

초야 언니는 이해가 안 되는 듯하면서도 신기하다며 계속 목소리를 바꿔가며 말해본다.

“예지는 신인가? 못 알아듣겠는데 왜 이렇게 금방 익히지?”

초야 언니는 처음에 알려준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계속 내본다.

[??????]

[교수님 진도가 너무 빠릅니다!]

[아니ㅋㅋㅋㅋ 알아듣지도 못 하겠음;;]

[초야님 목소리 진짜 좋다 ㄷㄷ]

[근데 어떻게 따라 해야 함???]

[예지가 말하는 거 해봤는데 난 안됨]

[안 보이니까 답답함;]

“사람마다 목소리를 내는 방법이 다 달라요… 저는 초야 언니한테 맞는 방법을 가르쳐드렸을 뿐입니다…”

델리가 그렇다고 합니다….

여러분 저는 잘 모르겠어요.

냥지가 호기심이 생겼는지 자기도 해보라며 목을 내밀어 온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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