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몬가몬가
* * *
냥지의 목을 잡으려는 순간 정란이와 예화가 들어와 나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 커지며 입을 쩍 벌렸다.
“안녕…”
“너희들 지금 뭐 하는 거야!”
“예지야 하지 마!”
정란이가 내 손에 대롱대롱 매달리고 예화가 냥지의 어깨를 붙잡아 뒤로 빼려고 한다.
이게 무슨 일이래…?
“방송까지 켜놓고 왜 싸워! 예지 네가 참아!”
“그래~ 냥지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야!”
“너희는 왜 내가 뭔가를 잘못했다는 전제조건을 깔고 시작하냐.”
“예지가 자기가 잘못했는데 손 쓸 애야?”
“아니, 뭔 소리야. 싸운 거 아니라고!”
정신없다.
예화랑 냥지가 서로 떠들썩하게 말싸움을 하고 있고 초야 언니가 옆에서 설명해주려고 하지만 서로의 말이 섞여서 그런지 뜻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방송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5시간 정도 방송한 기분이야.
정신적 피로…
내 팔에 매달려 있는 정란이부터 진행하기로 하고 들어 올려 의자에 앉혔다.
무슨 일인지 짐작도 못 하고 얌전히 의자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는 정란이의 목을 움켜 잡았다.
어차피 한번 체험하면 별 의도가 없다는 것을 눈치채겠지.
아까 초야 언니에게 했던 것처럼 정란이에게 똑같이 해주고 목을 짚어가며 어떻게 해야 할지 지시해줬다.
신기한지 정란이의 눈이 똥그랗게 커지며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연습하고 있었다.
[주작 아님? ㄷㄷ]
[이게 말이 되나]
[구라칠 이유가 없긴 한데]
[근데 스트리머가 저렇게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데 그걸 지금까지 숨길 이유가 없음.]
[저도 받고 싶어요 ㅠㅠ]
뒤늦게 들어온 수양이, 차향 언니, 임뿌님이 들어오셨고 다들 자리에 앉아 냥지와 예화의 목을 잡고 있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 같아도 신기하게 보긴 하겠지.
거의 도를 아십니까 수준 아닐까?
갑자기 목 잠깐 만지고 노래 좀 부르라고 시키길래 불렀더니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고 갑자기 재능도 생긴다니…
시청자들이 안 믿을 수밖에 없지.
냥지와 예화도 반응이 비슷했다.
그럴 수밖에 없나?
“예지야~ 정말 이게 맞아? 나 오기 전에 몰카 준비한 거 아니지?”
“아니라니까… 그럼 언니부터…”
“잠깐만! 잠깐 마음의 준비 좀!”
목을 살포시 감쌀 뿐인데 왜 다들 그렇게 겁을 먹는 거야?
겉으로 보기에는 강하게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손가락을 쫙 펼쳐 목에 손가락만 닿도록 했다.
이 정도면 안심하겠지.
어차피 목을 감싸는 건 의심을 피하기 위한 퍼포먼스에 가까웠기 때문에 굳이 이 행동을 고집할 이유도 없었다.
다만 이렇게 하면 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사람들한테 보여줄 필요가 있음으로 차향 언니가 실컷 노래를 불러도 손가락의 위치만 바꾸어서 짚을 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 나 뭔가 문제라도 있는 건가? 예지야…?”
온몸으로 걱정을 표현하며 시무룩해진 차향 언니를 달래며 곧바로 끝내주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파악하기 조금 어려워서… 딱히 문제라고 할만한 건 없어요..”
“와 근데 진짜 신기하다. 테일리님 혹시…”
“괜찮으시다면 우리 같이 말 놓아요..! 그래도 몇 번 만났는데…”
“아, 그럴까요? 근데 진짜 이렇게 목만 눌러봐도 다 되는 거야?”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나는 그렇지…?”
정확하게는 내가 아니라, 델리가 하는 거긴 한데 내 팔이 델리니까 결국 내가 하는 게 아닐까.
[사용자 양심 부족.]
넌 조용히 해.
이럴 때는 그냥 넘어가는 거야.
“나! 다음 나! 나는 오래 걸려도 살살 해줘.”
열 손가락을 수양이의 목에 짚으니 배시시 웃으며 뒤로 빼버렸다.
엥?
“손가락 진짜 부드럽다. 간지러워서…”
그러고보니 수양이도 키 엄청 작다.
정란이보다 더 작으려나? 비슷한 거 같은데 더 작게 느껴지네.
그런데 다 좋으니까 고개 좀 올려주면 안 되겠니..?
이제는 정신줄 놓고 깔깔 웃는다.
심지어 내가 아직 제대로 만지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목이 예민한가?
간신히 진정 시키고 시청자들한테 알려주듯이 여러 목소리를 내며 놀고 놔두고 남은 사람들 모두 끝내주었다.
갑자기 몸이 이상하다는 사람들의 말을 못 들은 척 휘파람을 불며 무시했다.
일단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친구들을 시청자들은 쉽게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인데 당연하겠지.
화면에 뭐 하는지 보이지도 않는데 초청 온 사람한테 노래 부르라고 말하더니 목 좀 몇 번 짚었다고 바로 달인급 실력이 된다니, 아무리 이쪽 세계가 엄청난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만, 납득하기 어렵긴 하겠네.
어떻게 하면 할까 고민하다가 추첨으로 3명 정도 뽑아서 다음 주에 다시 할 테니까 메일로 신청하라고 말했다.
시청자들 상대로 보여주면 믿겠지.
그렇다고 나노봇을 심어줄 생각은 없다.
잠깐 투입해서 목만 바꿔주고 다시 회수할 생각이니까.
아무리 나노봇이 자가복제가 된다지만 그게 아무한테 뿌려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진짜인 듯 ㄷㄷ]
[아 제발 내가 되어야 하는데…]
[3명은 너무 적소. 4명으로 합시다.]
[ㄹㅇㅋㅋ]
[차라리 고정 콘텐츠로 새싹들 키워주기는 어떰?]
“나중에 생각해볼게요…”
이렇게 피곤한 짓을 고정 콘텐츠라니.
그런 끔찍한 소리를!
“아~ 수양아. 내 목소리 어때? 아아~”
“신기하당~ 아아~”
“야! 이예화!”
“응답 바란다! 응답 바란다! 에에에에에에에에엥~”
“그렇게 터프한 목소리로 부르지 마!”
“진짜 신기하다. 보이스 체인지 프로그램 쓴 것 같아.”
사람이 너무 많이 모여서 그런가 생각보다 엄청 소란스럽네. 다들 스트리머라서 목청도 크고 텐션도 엄청 높다.
난 왜 대기업이 되어도 저렇게 안 되는 거야?
근데 지금 끝내기에는 너무 짧은 것 같은데 다들 만족한 눈치긴 하지만 시작한 지 1시간 만에 끄기도 뭐하지 않나.
다들 번갈아 가면서 노래 부르려나?
이렇게 만나기 힘든 사람들이 모인 김에 다 같이 부를만한 노래 하나 골라서 다 같이 한 곡 불렀으면 좋겠는데 다른 사람의 뜻은 어떠려나.
차라리 음원이나 내볼까?
친구들과 기념 음원을 낸다고 생각하니 기대감이 부풀어 올라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쿵 뛰었다.
[어떤 곡으로 부를 거야? 기대된다! 이번엔 내가 나와서 부르면 안 돼?]
어딜 함부로 나와!
도움이 필요할 때는 숨어서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하네!
[그럼 첫 소절만…]
어차피 내가 느끼는 감정 그대로 느낄 텐데 굳이 직접 부르려는 이유가 있어?
[기념…!]
알아서 해.
어차피 하지 말라고 해도 나오고 싶을 때 나오면서…
[고마워!]
요즘 얌전하다 싶더니 친구들이랑 뭐 한다고 하니까 못 참고 바로 튀어나오네.
델리?
이젠 대답도 안 하네.
델리!
[용건만 빠르게. 쉬고 싶음.]
Ai도 휴식이 필요해?
[심각한 차별 발언.]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그 어떤 것이든 휴식은 필요함. 최근 사용자의 지적 능력이 매우 걱정되어 쉬지 않음.]
그렇구나. 푹 쉬어.
근데 가기 전에 친구들이랑 같이 부를 곡 하나만 주고 가지 않겠니?
[….]
아앙~ 델리야.
내 제일 친한 친구!
받아 적으라는 델리의 말에 A4 용지를 가져와 신나게 악보를 그렸다.
친구들이 갑자기 지렁이는 왜 그리냐고 물어보는 게 조금 마음에 안 들지만 귀찮다는 티를 팍팍 내며 수 틀리면 갈 것 같은 델리를 맞춰주기도 바빴다.
음… 레… 여기는?
도 아니었나… 지우고 시… 받아 적기도 힘든 것 같아.
이런 걸 안 해봐서 그런가?
내가 자꾸 틀리자 투덜거리며 나를 구박 하던 델리는 내가 다 쓰자마자 전원을 꺼버렸다.
끄자마자 축 늘어지는 내 오른팔이 힘없이 덜렁거린다.
“어? 괜찮아?”
“고장 났나. 갑자기 왜 그러지.”
“일시적인 거야… 가끔 그래…”
“새로 하나 사는 게 맞지 않아?”
[무슨 일임?]
[뭐가 고장 났다는데?]
걱정스레 나를 쳐다보며 새로 하나 맞추라는 친구들의 말은 고맙지만 그건 안될 소리였다.
얘가 다해주는데 미쳤다고 바꾸겠나.
사랑해 델리야 내 마음 알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의수가 고장 났다고? 간지는 지리던데 겉보기만 그런가.]
[구려도 사고 싶게 생겼음 ㅋㅋㅋ]
“가끔 충전을 까먹어서 그래요…”
“근데 천재는 천재인가 봐.”
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까 목소리 조정할 때 이야기인가?
친구들의 눈빛이 특히 냥지의 눈빛이 엄청나게 부담스러워졌다.
“어떻게 쉬지도 않고 20분 만에 곡을 하나 만들지? 난 작곡하는데 며칠도 걸리는데 진짜 재능충이다.”
“난 낙서도 그렇게 빠르게 못 하는데, 막 휘갈기는 줄 알았는데 고치면서 쓰는 거 보고 진짜 즉석에서 만드는 거 바르구나 싶었어.”
[천재 ㅇㅈ]
[그러니 저 좀 뽑아주세요]
[10년 동안 데뷔도 못 하고 매달리고 있는 연습생입니다. 테일리님 제발 부탁 드립니다.]
[메일로 보내라]
정말 배울 게 많다며 너스레를 떠는 냥지도 냥지지만 그걸 진지하게 믿는 시청자들과 친구들에게 진실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번 기회에 톡톡히 알았다.
델리의 공을 내가 그대로 받아먹으려니 양심을 바늘로 콕콕 찔리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렇다고 아니라고 설명하면서 델리의 존재를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기꾼들은 이 양심의 가책을 어떻게 무시하면서 사람들을 속이지?
나쁜 의미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내 얼굴에 불이 붙었던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뜨겁게 느껴져 왼손으로 오른손을 들어 올려 볼에 대고 열을 식혔다.
어떤 재질인지는 모르겠지만 금속 특유의 시원하고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으며 표면은 신기할 정도로 매끄러웠다.
친구들이 평가에 의하면 대단히 여성스러운 행동이었다고 한다.
딱히 알고 싶지 않은데..!
“근데 갑자기 곡을 왜 씀? 천재들은 좋은 곡이 갑자기 떠오른다고 하더니 그게 진짜구나.”
“우리가 이번에 다 같이 한 곡 부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이걸 같이…? 진짜 감동이다!”
“역시 예지가 착해.”
“그만해…!”
내가 부끄러워하니 이제는 장난기가 감돌며 나를 놀리듯이 마구 칭찬하는 친구들이 얄미워졌다.
지금 당장 부르자고 악보를 팔랑팔랑 흔드니 친구들이 기겁하며 연습하고 나중에 제대로 부르자면서 나를 뜯어 말렸다.
그건 일리 있는 말이야.
결국 따로 한 곡씩 부르고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초야 언니와 차향 언니는 더 놀고 싶은데 할 일이 있다면서 눈에서 아쉬움을 뚝뚝 떨어뜨리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긴다는 듯한 태도로 나갔다.
스트리머라 리액션이 과해.
임뿌는 오늘 정말 고맙다며 같이 따라 나갔다.
그런데 너희 셋은 집에 안 가니?
최근 거의 눌러 앉다시피 있는 정란이랑 예화는 그렇다 치고 수양이는 왜?
“나 오기 전에 자고 간다고 물어보고 왔는데?”
“너 똑바로 말해! 누구한테 허락 맡았어?”
“냥지.”
“그럼 허락받았네!”
“음음 맞지 맞지!”
잘 곳이 있나?
오늘은 내가 거실에서 자고 두 명씩 침대에서 자면 딱 맞겠네.
내 생각을 말하니 깨끗이 씻고 침대에 누워있기나 하란다.
뭔가 어감이 이상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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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깃은?”
“추적자 둘이 타깃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확실해?”
“네.”
추적자 둘이서 여자 하나를 조사한 다라…
사냥개의 움직임이 수상하긴 하지만 요즈음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이상한 행보를 생각해보면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상등품을 구하기는 역시 쉽지 않군. 역시 혼자 살 때 잡아 와야 했나?”
“두목이 몸이 달아오르셔서 아주 난리입니다.”
“그럴만하지. 내가 살면서 그런 미인은 처음이었는데 빵즈가 맞는지 내 눈을 의심했지.”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던 모습을 보스가 보다니 그년도 운이 없군.
아니, 빵즈 따위가 차오밍의 여자가 된다면 영광으로 봐야 하지 않나?
“잘 처리해. 이번에 독수리한테 들키면 우리 중화제국 재건의 꿈은 끝이다.”
“그냥 포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차오밍 두목한테 죽고 싶지 않으면 입 다물어.”
가뜩이나 범죄 조직이 있는 것 같다고 특공대 몰고 와서 들 쑤시는데 차별은 범죄라고 말하는 빵즈다운 위선적인 행동이었다.
선량한 시민이 돈 좀 벌겠다는데 무슨 권한으로 막겠다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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