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꿈
* * *
“윽….으으”
어두운 방의 구석에서 웅크린 채 고통을 억누르며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깨질 것 같이 머리를 조여오는 두통.
속이 메슥거려 구토를 수시로 했으며 온몸이 경련으로 벌벌 떨며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뒤따랐다.
청소한 지 오래되어 곰팡내가 가득한 방 안에서 먼지를 날리며 고통으로 바닥을 기었다.
지저분한 바닥을 구르며 먼지를 마시는 게 정말 싫었음에도 나는 청소를 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죽는데 청소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이 내 의지를 송두리째 앗아가 통증이 끝나기를 바라며 바닥에 누워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내가 멀쩡해도 청소를 안 했을지도 모른다.
난 글러 먹은 인간이니까.
진통제가 여기 어디에 있었을 텐데 뒤져봤지만, 진통제는 보이지 않았다.
상태가 좀 괜찮아지면 정란이와 카톡을 하거나 방송을 잠깐 켰었지만 내가 정란이의 연락을 의도적으로 피했던 이때에는 무척 우울했었지.
먼지 바닥에 누워 숨만 헐떡이며 종일 누워있는 내 모습이 어느 날 비참하게 느껴져 죽을까 생각했지만 그걸 행동으로 옮길 용기는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 좋아하던 모바일 게임도 정란이와 연락을 끊은 후로 그만둔 것 같았다.
그냥 살아있으니까 숨 쉬었다.
근데 모바일 게임…?
기억이 희미하게 떠오르려고 했지만, 생각을 그만두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이래서 미국인은 경찰을 이용해서 자살한다는 건가?
그런데 이 꿈은 언제 깨는 걸까?
꿈이 맞긴 한 걸까?
머리를 조이는 두통도 온몸이 경련으로 벌벌 떨면서 누운 채로 통증을 이기지 못해서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의문만이 가득했다.
꿈인데 이렇게 고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나?
먼지를 마셔서 따가워지는 목을 붙잡고 기침을 했다.
이게 정말 꿈..?
이렇게 누워있었는지 상당히 오래된 것 같은데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아니, 정말 꿈일까?
어쩌면 그 말도 안 되는 행운들이 따라주는 행복한 그때가 꿈이 아니었을까?
실제로도 가끔 꿈이 아닐까 생각했었잖아.
이래서 사람은 항상 밝고 좋은 생각만 해야 한다고 했던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아니 아주 무서워졌다.
그 모든 게 진짜 꿈이라고?
그럼 난 어떻게 해?
내 친구들은? 나는?
여기서 나 혼자 고통 받다가 쓸쓸히 죽어야 한다고?
왜? 내가 했던 그 모든 게 헛된 행동이었어?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된다고…
나는 서예지야.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더니 난 어느새 벽이 쩍쩍 갈라져 있는 작은 방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여긴 몸이 바뀔 때의 집?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거울을 보니 원래 내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니, 뭐가 내 원래 모습이지?
난 누구지?
잘 모르겠다.
테일리 눈매가 순하고 검은 머리카락이었으면 딱 이랬을 것 같다.
몸이 전체적으로 약간 살집이 잡히지만, 배에는 살이 없는 신기한 몸이었다.
이곳 세계의 서예지였을까?
눈 밑은 시커먼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손목에 뭔가 그려져 있는데…?
말 못 할 흔적들이 가득했다.
멍하니 보고 있다가 왠지 모르게 우울해져 침대로 돌아와 앉았다.
이제 눕는 건 싫어졌기에 침대에 걸터앉아 창밖을 하염 없이 바라봤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이게 현실은 맞는지 생각이 많아져서 그렇기도 하고 밑도 끝도 없이 몰려오는 우울함 때문에 무언가 하고 싶지도 않았다.
“꼬리치고 다니는 것 봐. 역겨운 년.”
“부모 없는 년이 그렇지.”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홱 돌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무슨 소리일까?
“야! 이것도 먹어봐. 꺄악! 진짜 먹었어! 지렁이가 그렇게 맛있어?”
“역시 벌레끼리 통하는 게 있나 봐. 진짜 미친년이네.”
“웨엑.”
책상에 앉아있는 나에게 두 명이 나를 붙잡고 손가락을 집어넣어 강제로 입을 벌리게 하고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어쩌면 젤리일지도 몰라.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기겁하며 고개를 뒤로 빼니 여전히 이 좁고 퀴퀴한 집 안에는 나밖에 없었다.
내 기억?
아니, 서예지?
모든 게 혼란스러워져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내 몸이 저절로 어딘가로 향하는데 나도 모르겠다.
푹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눈 부신 빛이 내 눈을 콕콕 찔러와 눈을 조심스레 떴다.
붉은 실타래들이 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나도 모르게 침을 질질 흘리고 있어서 후루룩 삼켰다.
위이이이잉
어?
그그그그그극뿌드득
눈을 뜨자마자 누군가 뒤통수를 보인 채 누워있길래 나도 모르게 꽉 끌어안았다.
이번에도 꿈이면 난 도저히 못 참을 것 같았다.
“엥? 뭐야. 숨 막혀!”
“뭐야… 예지야… 숨 막혀…”
사람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져 안심되었지만 또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강하게 끌어안았다.
어떤 내가 진짜 나인지 모르겠다.
자꾸 다른 사람의 기억들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것 만은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내가 끌어안아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는 수양이와 정란이가 사라질 것 같아서 놓아주지 못하겠다.
꽉 끌어안은 지금도 내 품에서 사르르 사라질까 봐 미친 듯이 걱정됐으니까.
“나 죽어… 예지야…”
“왜구루냥….”
****
자고 일어나니 예지가 이상해졌어.
분명 아무 일 없이 잘 잤는데… 이상하다?
팔 좀 치워주라고 톡톡 때렸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우리를 더 꽉 끌어안을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예지의 품은 너무 편안하고 기분이 좋았지만 내 머리에 물컹한 무언가가 존재감을 과시해서 마음이 아주 아팠다.
무언가 허전한 건 내 기분 탓이지?
편안하고 기분 좋은 느낌과 동시에 내 마음을 괴롭히는 물컹한 무언가.
얘 근데 힘 진짜 세다.
아무리 나랑 정란이가 작고 약해도 두 명이 발버둥 치는데 꿈쩍도 안 하네.
아닌가… 그냥 우리가 많이 약한 건가…
마음이 아파…
우린 작고 힘도 약해…
그렇게 우린 침대에 누워있었다.
갑자기 조용해졌다 싶어서 옆을 봤는데 정란이가 어느새 잠들어 있었고 예지는 멍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지난번에 다른 예지인가 걔인가?
“혹시 다른 예지?”
아이참 이런 말 하니 왜 이렇게 부끄럽지.
마치 어딘가의 카드 사기꾼들의 대사 같잖아.
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지는 무시하며 눈을 감았다.
어어… 내 말 들었는데도 그러는 거야?
눈을 감은 예지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니 항상 생각했지만, 동양적인 외모의 특징과 동시에 서구적인 외모도 동시에 보였는데 혼혈이라더니 진짜 맞구나.
짙고 긴 속눈썹에 뚜렷한 이목구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하여튼 예쁘다!
성숙한 외모 그리고 큰 키와는 달리하는 행동은 나보다 언니인데도 나이를 속이는 건가 싶을 정도로 동생처럼 보였다.
그나저나 어제 일을 되짚어 보았지만, 예지가 이러는 이유를 도저히 짐작하지 못하여서 그만두고 나도 눈이나 감았다.
그래 오늘은 푹 쉬는 셈 치자.
설마 종일 이러겠어?
같이 누워있는 나도 덩달아 졸려져서 눈을 감았다.
종일 이렇겠어 했는데 정말 종일 이럴 속셈인가 봐.
어느새 냥지랑 예화도 들어와서 예지를 달래고 타일러 봤지만 떼어내려고 시도를 하기만 해도 더 꽉 끌어안고 버텼다.
왜 그런지 말도 안 하고 으으… 난 배고파서 뱃가죽이 등에 붙을 지경이야…
점심시간인데…!
정란이도 배가 고팠는지 기분 좋고 편하긴 한데 그만 놔주라고 칭얼거렸다.
“아, 맞아. 예지 옆에 있으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니까? 진짜 신기해.”
“어? 너희들도? 진짜 체감이 확 온다니까. 얘 안고 자면 피로가 싹 풀려.”
“인간 테라피야…. 근데 이제 좀 도와줘…”
“난 배고파…”
어느새 예지를 안고 자면 얼마나 편한가 또 어떤 느낌으로 피로가 풀리는 기분인가를 토론하는 장으로 바뀌어버릴 것 같아서 제지했다.
냥지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왔다.
“어제 별일 없었어? 갑자기 이유 없이 이러지는 않을 거 아냐.”
“진짜 별일 없었는데… 그냥 이야기 좀 하다가 별일 없이 잤어.”
“아직 잠 덜 깬 거 아냐? 야! 서예지!”
예화가 예지의 어깨를 잡고 흔들자 붙잡혀있던 우리도 덩달아 탈탈 흔들려 어지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우린 왜…
“아닌가 봐.”
“말이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얜 맨날 이럴 때 말을 안 하더라.”
“도와줘…”
“얘 혹시 악몽이라도 꾼 거 아냐?”
“오! 예화야. 네가 머리를 쓸 줄 알았구나!”
“그게 무슨 뜻이야!”
정란이와 예화가 싸우는 동안 냥지가 예지의 등을 슬슬 쓸어내리며 속삭이듯 달랬다.
“예지야 계속 안고 있어도 되니까 일단 일어나보자.”
과연 이 중에서 예지랑 제일 오래 살았던 짬밥이 있는 것인지 냥지가 예지를 살살 달래며 예지를 일으켰고 나와 정란이는 예지에게 백허그를 당한 상태로 소파로 걸어갔다.
이런 걸 원하는지는 않았는데요…!
우리를 앉혀두고 일단 밥부터 시키자면서 냥지가 말했다.
각자 먹고 싶은 거 있는지 물어보고 밥을 시켰는데 예지가 슬슬 힘이 풀리는지 아니면 안심이 되었는지 팔의 힘이 약해지길래 서둘러 팔을 풀고 속박을 벗어났다.
“프리덤!”
“와! 나도 풀려났다!”
많이 아쉬운듯한 태도로 한숨을 푹 쉬는 예지에게 우리는 궁금했던 걸 물어봤다.
“왜 그랬던 거야?”
“그냥 꿈일까 봐 무서워서…”
“어제 악몽 꿨어?”
“응…”
“무슨 꿈?”
그 질문에는 말하고 싶은지 우물쭈물 대답을 못 했지만 우리가 계속 대답을 기다리자 눈치를 보며 한숨을 푹 쉬던 예지는 눈을 질끈 감으며 우리가 원하던 질문의 답을 해줬다.
“내가 죽어갈 때…”
그 말이 나오자마자 분위기가 싸해진 기분인데…?
예지는 가끔 한없이 무거운 과거를 기반한 말과 분위기가 나올 때가 가끔 있었는데 요즘은 좀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빨리 나아지면 좋겠네.
주문했던 점심이 도착하고 식사를 거의 끝낼 때쯤에 약간 의기소침하지만, 예전의 예지로 돌아왔다.
시무룩해진 예지의 모습을 보니 이런 여동생이 있었으면 싶네.
****
이게 웬 민폐인가 싶어서 모두에게 사과했다.
내가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나 때문에 분위기가 이상해진 건 알고 있었다.
몇 시간이나 이러는 건 민폐긴 했지.
꿈 때문에 그런지 아까의 나는 평소의 내가 아니었다.
이름하여 예지 ver.3.
어쨌든 내가 사과하니 별거 아닌 거로 사과하지 말라고 한 소리 들었다.
얘네들 기준의 별거 아닌 거랑 별거인 거랑 구분을 못 하겠어..!
일단 고맙다고 했다.
일단 사과의 의미로 내가 오늘 저녁을 만들어 보겠다고 말해두었다.
아무리 나노봇이 있다고 해도 하루 세끼를 배달 음식 시켜 먹기는 좀 그러니까.
수양이가 이사할까 고민이 된다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내 대답을 듣고 수양이가 엄청 진지한 얼굴로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 피로를 못 느끼겠고 아침에 일어나는 게 기분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뭐라고 대답은 못 하겠다.
근데 원래 아침에 일어날 때는 기분 좋지 않아?
근데 내가 근처에 있으면 나노봇이 효율이 높아져서 더 좋다고 느끼는 거지 내가 없어도 나노봇이 일단 자체적으로 몸을 계속 관리해줘서 없을 때보다 덜 피곤할 텐데?
이제는 나 없으면 못 살겠다고 과장되게 말하며 징징거리는 걸 들으니 괜히 우스워져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몰래 웃었다.
확실히 내가 있으면 안 피곤하긴 하겠지만 내가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겠나.
그냥 사는 거지.
나 기분 좋아지라고 하는 말인 걸 알면서도 내심 기분은 좋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지.
그만큼 칭찬은 누구나 기분 좋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의미니까.
내 친구들은 확실히 칭찬을 좋아한단 말이지.
친구들 옆에 앉아서 칭찬을 수백 번 들으면 없던 용기도 샘 솟아날 것이다.
의외로 다들 상담사의 재능이 있는 거 아닐까?
고민을 이야기하고 해답을 듣고 칭찬을 수십번 들어서 용기가 생기는 거지.
얘네들은 항상 진심으로 칭찬하니까 더 그렇게 느끼기도 하고.
음?
“뭐지..?”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들어 창밖을 봤지만, 거긴 아무도 없었다.
저쪽 나무에서 무슨 시선이 느껴진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하긴 지금도 인간이 신체 능력이 인간이 아닌 수준인데 다른 사람의 시선을 감지해서 찾아내는 건 신체의 수준을 넘어서서 말도 안 되는 거지.
신경이 예민해졌나.
아까 꿈꾸고 어깨와 눈이 시리듯 아파져서 델리와 안대를 벗어두고 거실의 소파에 앉아서 친구들과 TV나 봤다.
추천하지 않는다고 델리가 반대했지만 그냥 이번만 봐주라고 말하고 벗었다.
여태 계속 껴와서 그런지 허전한 느낌이지만 썩 나쁘지는 않았다.
벗으나 안 벗으나 통증은 똑같았지만 그래도 기분 문제가 있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