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모르는 번호
* * *
“좋은 아침!”
친구들에게 파묻혀 있어서 벗어나기 위해 벌떡 일어났다.
오늘 컨디션이 제법 괜찮은 느낌이야.
물론 나노봇 덕분에 항상 일정한 컨디션을 유지했지만, 특별히 더 좋은 날이 있지 않은가?
그런 날이겠지!
“우음… 뭐야…”
“아직 잘 시간이잖아…”
정란이를 흔들어보지만, 이불 속에 고개를 파묻어 숨어버렸고 예화 쪽은 진작에 이불 안에 들어간 모양.
아직도 눈을 감고 있는 냥지를 이리저리 굴려보았다.
“살려주세요… 그만…”
“냥지야. 아침이야.”
“싫어…. 5분…”
흔들어 봤지만 일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내버려 두었다.
음… 친구들은 아직 잘 시간이 더 필요한 모양이다.
더 깨우기도 좀 그렇네.
심심한데… 아침 차려놓고 기다리기에는 너무 일찍 일어났고…
일단 내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닥에 놓여있는 델 리가 보였다.
“델하.”
반응이 없네?
AI도 잠을 자는 건가?
그럴 수도 있겠네.
오늘은 일찍 방송이나 켜볼까?
너무 시끄럽게 떠들지는 말자.
방음은 잘되지만, 너무 시끄럽게 떠들면 애들이 깰 수도 있겠지.
[아니, 출근하는데 왜 지금 방송을]
[ㄹㅇ]
[일하면서 보셈]
[사장님 억장 무너진다]
“안녕! 모두 좋은 아침!”
웃으며 인사하니 시청자들의 반응이 낯선 무언가를 보는 듯한 채팅들이었다.
[오늘따라 기운이 넘치네]
[기분 좋은 일 있음?]
[항상 볼 때마다 새롭네]
[원래 성격이 이랬다고 생각하니 슬퍼지네]
“기분 좋은 일이… 없으면 어때. 그냥 행복한 거야.”
굳이 따지자면 어제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 생겼었지만, 지금의 나는 행복하니 된 거 아니겠는가?
이 행복한 일상에 감사함을 느끼십시오!
그동안 왜 그렇게 무서워했는지 모르겠네.
역시 친구 없이 혼자 살면 그렇게 되는 건가.
아닌가? 내가 너무 소심해서 그랬던 걸지도…
[ㄷㄷ]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땅 파고 지하 끝까지 갈 기세던데 ㅋㅋ]
“시청자들은 친구 있어요?”
이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어떨까?
진짜 친구들을 만났을까?
혹시 나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데 도움을 받지 못하고 방 구석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닐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시청자들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나는 이 사람들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고 있는 걸까?
[갑자기 때리네;]
[아ㅋㅋ 킹받네]
[왜 딜을 하십니까…?]
“아니, 아니! 나는 시청자분들 도움을 많이 받아서 이렇게 좋아졌는데 시청자분들은 나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없는지 궁금해져서… 없으면 됐어!”
기껏 걱정해줬는데 뜻을 곡해해서 받아들이다니!
고개를 홱 돌려 내가 삐졌음을 강력하게 어필했다.
그런데… 진짜 그런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곁눈질로 채팅창을 힐끔 봤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귀엽냐 ㅋㅋ]
[참게비령 : 후욱… 후욱… 나의 예지쨩… 후욱]
“뭐야! 너 자고 있는 거 아니었어?”
분명 자고 있었을 텐데?
문을 열고 거실을 보니 이불에 돌돌 말려 예화와 냥지에게 안겨있는 정란이가 휴대폰을 한 손으로 들고 나에게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예지 귀여워!”
“깼으면 일어나야지 거기서 왜 계속 누워있는 거야?”
“이 포근함을 어떻게… 이불 속에 누워서 보는 방송이 최고야.”
다시 방에 들어와서 자리에 앉았다.
“음… 하여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말해줘. 여기서 말 못 하겠으면 메일이라도…? 치료가 필요한데 돈이 없다든지? 아니면 외로워 죽겠다든지?”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은데 외로워 죽겠습니다.]
[너 내 여친해라!]
[우욱]
“그런 거 말고 이 자식들아!”
다들 장난칠 생각 밖에 없는 거 보면 잘살고 있나 보다.
하긴 이렇게 좋은 세상에 힘든 사람은 많지 않겠지.
그런데 내가 처음 살던 곳은 좀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사람도 보였는데 아무래도 힘든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
메일로 보내겠지…
예전의 나 같은 사람들은 물론 그 용기조차 못 낼 가능성이 높겠지만… 나중에 고민 상담 같은 콘텐츠라도 진행하면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은 뭐할 건가요?]
[부장님 몰래 보고 있어요!]
“회사에서는 그냥 일하는 게… 오늘 콘텐츠는…”
시간을 보니 아침 먹을 시간이 됐네?
지금쯤이면 애들도 슬슬 일어날 거 같고 밥 먹고 나중에 방송 다시 켜야겠다.
사람들도 지금 일하느라 제대로 못 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지금 일하느라 제대로 못 보고 계신 분들이 많죠?”
[ㅇㅇ]
[??]
[아ㅋㅋ 제대로 보고 있어요]
[설마…]
“오늘 너무 일찍 켠 것 같긴 해. 아침 먹어야 해서 끄고 저녁에 다시 켤게요. 바이바이.”
[바이바이]
[갸아아아아악]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캠에 양손을 흔들면서 인사를 하고 방종을 했다.
저녁에 다시 켜야겠다.
거실에 나오니 예화랑 정란이가 서로 딱 달라붙어 휴대폰을 같이 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이없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왜 그래?”
“아니… 무슨.. 방송을 1시간도 안 하고 꺼?”
“아침 먹어야 하잖아?”
“맞긴 하는데… 음…”
둘은 나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뭐지?
말 안 듣는 여동생을 보는 저 눈빛과 표정은?
왠지 그에 걸맞게 깽판 쳐주고 싶은 기분인데…?
“왜 그렇게 보는 거야?”
“참 말 안 듣는… 꺄악! 뭐 하는 거야!”
순식간에 달려들어 둘을 이불로 둘둘 감아 못 움직이게 막고 발을 간지럽혔다.
“잘못했어? 안 했어?”
“잘못은 네가… 이히힣”
“야! 난 말 안 했다! 아하핳”
“그렇게 생각한 거 다 알거든?”
신나게 웃던 둘은 버티고 버티다 결국 항복을 외쳤다.
얼마나 웃었는지 색색거리며 몸을 축 늘어뜨린다.
“히이… 살다 살다 예지한테 장난도 다 당해보네…”
“나도 상상도 못 했다….”
근데 냥지는 이 정도로 시끄러운데 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실 기절한 게 아닐까…?
“냥지 살아 있지?”
“냥지 원래 아침에 못 일어나는 거 알면서 새삼스럽게…”
“오늘은 특히 더 그런 것 같아서.”
“네가 오늘 너무 일찍 일어나서 그런 거 아닐까?”
“아.”
그렇군.
그럼 일단 밥이나 시켜둘까?
“아침 뭐 먹을까?”
“간단하게 먹자! 죽은 어때?”
“죽 먹고 배는 차냐?”
“난 반만 먹어도 배 차던뎅.”
“대단하다.”
죽 한 그릇도 아닌 반만 먹어도 배가 찬다는 소리에 예화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정란이를 바라봤다.
“따로 시키면 돼. 정란이는 죽. 너는?”
“난 뭐 먹지… 음. 추천 부탁.”
“짜장면.”
“아침부터 느끼한 건 좀.”
그렇긴 하지.
“그럼 국밥.”
“냄새나.”
“스테이크?”
“아침부터? 부담스럽잖아.”
어쩌라는 거야!
“뭘 먹겠다는 거야! 그냥 회나 먹어!”
“그거 좋네.”
아직도 곤히 잠들어있는 냥지를 살짝 깨워봤다.
“으응… 싫다고…”
“냥지씨 밥 시키고 다시 자세요.”
“밥… 음….”
냥지는 잠시 생각하다 다시 잠들었다.
“냥지는 초밥. 가끔 잘 먹더니만.”
내가 그냥 아무거나 골라서 시켰다.
이 녀석들은 선택 못 하는 병에 걸렸나…
냥지를 이불에 돌돌 말아 안아 들어 냥지 방의 침대에 눕혀주고 오니 예화와 정란이가 이불을 정리했다.
밥 오면 깨워야지.
우리들은 TV를 틀어 뉴스를 봤다.
자기들이 보는 드라마는 이 시간에 안 한다던가?
하기야 안 깨웠으면 점심시간에 일어나서 밥 먹고 활동하는 애들인데 오전에 하는 드라마를 어떻게 보겠어.
아니면 재방송으로 보겠지.
[내일은 전쟁 종식 기념일이죠? 다들 즐거운 휴가 보내시길 바랍니다.]
[아, 그랬죠. 저도 내일 간만에 가족들 데리고 여행 좀 가볼까 싶네요.]
“아, 내일 쉬는 날이네.”
“그렇네.”
정란이가 무미건조하게 말하자 예화도 대충 맞장구쳤다.
분위기를 보니 전쟁이 끝난 기념일인가?
얼마나 엄청난 전쟁이었으면 끝난 날을 기념일로 삼을까.
음… 모르겠다.
쉬는 날이라니 좋은 거지.
근데 난 직장인이 아니라서 딱히 상관없지 않나?
내일 그럼 시청자들도 놀러 가느라 안 보려나?
휴일이라 더 많이 볼 수도 있겠네.
난 그럼 내일 언니들이나 수양이한테 좀 놀러 가볼까?
항상 그쪽이 놀러 왔는데 나는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아서 미안하네.
잠시 고민하는 동안 밥이 와서 작은 책상을 펼쳐 옹기종기 모여서 세팅했다.
역시 이 작은 책상에 넷이서 먹기 불편하다.
식탁을 주문했으니 오늘만 참으면 되겠지.
아닌가…?
생각해보니 내일 휴일이라 배달 안 올 수도…?
냥지 데리고 언니들 집에 놀러 가면 상관없지!
“냥지야. 밥 왔어.”
“으으… 몇 시야..?”
시간대가 확실히 냥지가 일어날 시간이라 그런지 아까보다는 정신을 차린 모습이었다.
그래도 잠에 덜 깨서 해롱해롱하지만…
“너 일어날 시간. 빨리 일어나! 초밥이랑 회라서 상해.”
“알았어…”
눈을 비비는 냥지는 하품을 하면서 따라 나온다.
밥 먹는 건 그냥 별일 없었다.
예화는 가끔 다른 사람 반찬을 집어 먹고 우리도 가끔 예화 반찬을 집어 먹기도 하고 그렇지.
정란이는 자기 것도 다 못 먹고 남기는 애라서…
“맞다. 내일 언니네 집에 놀러 가볼까 싶은데?”
“언니? 누구 언니?”
“음… 휴일이 정확하게 며칠이야?”
“3일?”
“그럼 물어보고 초야, 차향, 수양이 집에 가보려고. 냥지 너도 같이 갈래?”
“그럴까? 근데 일단 톡 보내서 물어봐. 혹시 다른 일정이 있으실 수 있잖아.”
말 나온 김에 바로 물어봤다.
[언니 내일 시간 되세요?]
[초야 : 왜?]
[내일 언니 집에 놀러 가려고.]
[초야 : !]
[초야 : !]
[초야 : !]
[초야 : 너무 좋아. 웬일이래?]
[보고 싶어져서?]
[초야 : 허어… 감동이야 ㅠㅠ 내일 무조건 가능해!]
[차향 언니도 시간 되나?]
[차향이 우리 집에 부르면 되지. 근처에 사는데!]
수양이한테도 물어보니 좋다는 반응이었다.
그럼 딱 됐네.
“너희도 갈래?”
“나도 가고 싶당… 난 부모님 집에 가야 해서…”
“나도!”
둘이서 갔다 오면 되겠지.
그런데 모르는 번호로 왜 이렇게 전화가 많이 온 거지?
나중에 혼자 있을 때 전화해 봐야겠다.
아무래도 무슨 볼일이 있는 것 같은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