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깊어지는 착각
* * *
사람은 왜 범죄를 저지를까?
빈곤의 문제가 범죄로 이어진다는 주장도 있었다.
물론 경제적으로 풍족한 연쇄살인마가 나오고 이 주장은 틀린 것이 되었지만…
그렇다면 처벌 수위가 높으면 처벌이 무서워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까?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르거나 처벌이 심한 것을 알아도 저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충동, 욕심, 증오, 혐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
그래서 어려운 거다.
그리고 이 범죄자들을 잡는다면 당연히 교화하려고 한다.
각자 어쩔 수 없는 사연이 있으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이 교화될까?
지킬 것 지키며 착하게 살던 사람이 우발적인 범죄를 저질렀다고 치더라도 교화가 되겠는가?
사기꾼으로 예를 들어보자.
생활고 때문에 사기를 저질렀고 그것에 성공하여 평생 써도 모자랄 돈을 얻었다고 치자.
이제 힘들게 일해서 돈을 벌 필요가 없겠지.
그렇다면 이제 남들 속이는 짓을 그만둘까?
사기든 도박이든 이 돈을 다 날렸다고 가정해보자.
어떠한 계기로 이 돈을 다 잃는다면 성실하게 일해서 돈을 벌까?
정말 마음을 고쳐먹고 성실하게 일을 해서 돈을 벌고자 마음먹은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런데 사기로 한 번에 억대를 벌었던 사람이.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해서 번 돈 200만 원 정도로 만족할까?
사기로 크게 한탕 한 사람은 그때 짜릿한 쾌감과 셀 수도 없는 돈을 벌었을 것이다.
천.. 아니 억을 벌었을 수 있지.
그런데 힘들게 상사한테 욕먹어가며 한 달 동안 번 200만 원으로 그 어떤 사기꾼이 만족하겠는가?
분명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겠지.
‘아, 이번 한 번만…?’
이번에는 그 돈을 계속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한 번에 큰돈을 벌었고 쉽게 번 돈이다.
사실 누구나 결과를 예상할 것이다.
쉽게 번 돈으로 누가 남들처럼 아껴가며 평범한 일상생활을 누리겠는가.
그리고 다시 찾아온 한탕의 유혹을 어떤 사기꾼이 이길 수 있을까.
한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려울까?
두 번 저질렀다면 세 번은 더 쉽겠지.
뭐, 말은 이렇지만 실제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사람이 있긴 하겠지.
실제로 그런 사람이 제법 존재한다.
그런데 전과 4범이라면?
생각해보니 4범까지 갈 필요도 없겠지.
방금 말한 사기꾼의 예시처럼 전과 2~3범은 교화될 여지가 있을까?
낮지만 가능성은 있겠지.
그렇다면 전과 11범, 50범들도 교화될 수 있을까?
이 사람들이 출소해서 사회에 섞이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난 모르겠다.
그런데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날 협박하는 이 사람들은 적어도 수십번 이 일을 반복했고 반성 따윈 없다고.
아마 교화의 여지도 없지 않을까?
이곳의 서예지가 조금만 덜 소심했다면, 조금만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면 진작에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아마 저들도 그걸 알고 이용한 거겠지?
재판받았다면 이미 전과 20범은 그냥 넘겼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 맞지?
살아봐야… 흠흠.
내 속에 가득해진 증오심을 빠르게 비워냈다.
이곳의 처벌도 상당히 엄한데 내가 직접 힘쓸 필요는 없겠지.
여차하면 힘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진은 뿌려지면 뿌려지는 거고…
내가 좀 거칠게 다루더라도 그들이 이해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자신들도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고 그것이 범죄라는 사실도 알고 하는 일이니까.
나한테 느끼는 죄의식도 없을 것이고.
그들 같은 인간들의 사고방식은 괴롭힘당한 존재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괴롭힘당한다고 생각하겠지.
남을 괴롭게 만든다면 자신도 괴로워질 각오를 했다는 뜻이겠지?
음, 자꾸 과격한 생각이…
아까부터 직접 족쳐줄까 생각했지만, 이 세계는 겉보기와는 달리 처벌이 꽤 강해서 내가 직접 처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온건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상상 이상으로 무서운 형벌이 많았는데 같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게 아닌가 싶은 것들이 제법 많았다.
실수로 벌어진 사고 같은 경우는 저쪽이랑 비슷하긴 하지만 고의성이 조금이라도 보이거나 심각한 중범죄라면 가차 없이 처벌했다.
이제 내가 생각해야 하는 건 그놈들을 어떻게 족칠지가 아니라 일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그걸 고민해야겠군.
시간 끌어봐야 좋은 거 없으니 늦어도 이번 주 안에 처리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는 동안 있을 리가 없는 오른팔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가끔 찾아오는 환상통.
거울 치료로 그나마 나아졌다고 하던데 그런데도 꽤 아픈 통증이었다.
델리한테 치료법은 없는지 알아본 적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그쪽 세계도 환상통 치료법은 거의 발전하지 않았다고 한다.
관심이 없기도 하고 애초에 환상통을 느낄 때마다 강제로 행복하게 만들면 된다고 하니 상관은 없나?
그렇게 말했지만, 델리는 내가 아플 때마다 딱히 그런 처방은 해주지 않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이유가 있겠지.
잠깐 끙끙 앓다가 환상통이 진정되고 손을 부들부들 떨며 문자를 보냈다.
통증 탓인지 다시 슬금슬금 존재감을 드러내는 분노의 감정을 억누르며 말이다.
[만나서 이야기해요.]
나는 분명 기회를 줬다.
****
오늘은 냥지와 예화가 밥을 차린다고 하면서 부엌에 들어가고 나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을 때였다.
그런데 왜일까?
분명 냥지가 예화보다 키가 커야 하는데 더 작아 보이는 느낌은?
예화가 슬리퍼라도 신고 있나 싶어서 발치 쪽을 슬그머니 봤지만 둘은 맨발이었다.
“유리야. 잠깐만 제자리에 서봐.”
“응?”
온몸으로 의아함을 표현하며 멈춘 냥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니 더 확연하게 드러난 키 차이.
“너 키가 줄어들고 있지 않아?”
“무슨 소리야.”
“옆에 예화랑 같이 서봐. 지금 예화랑 키가 비슷해.”
“그러고 보니… 원래 냥지가 훨씬 커야 하는데?”
영 내키지 않는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뒤돈 냥지와 등을 맞대는 예화.
그리고 내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예화의 키가 조금 더 컸다.
“야! 이것 봐! 예화가 더 크잖아!”
“뭐? 거짓말이지?”
“와! 진짜? 설마 내 키가 큰 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허둥지둥 다시 예화와 어깨를 맞댄 냥지는 바뀌지 않는 진실에 큰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아니, 이게 말이 돼!”
“응. 말이 돼~”
“허리가 굽은 거 아냐?”
“하긴 그동안 운동을 안 하긴 했지.”
“다시 재!”
몇 번이고 다시 쟀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그 키는 도대체 어디 간 걸까?
올 거면 나한테 오지!
“에잉. 땅꼬마~”
“야…이…! 누구보고 땅꼬마래! 진짜 땅꼬마는 너잖아.”
“응~ 아닌데~ 곧 나한테도 따라 잡힐 것 같은데~”
“아…아니걸…? 아니… 근데 왜 키가 줄어들었지..?”
예화가 신나게 냥지를 놀리는 동안 난 예지의 방에 노크했다.
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기는 하는데 반응이 없었다.
못 들었나?
“예지야. 냥지가…”
슬쩍 문을 열며 안을 들여다보니 땀범벅이 된 얼굴로 어깨를 붙잡으며 고통스러워하는 예지의 모습이 보였다.
“예…지야…?”
고통 때문에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하고 있었다.
그때 그 사람들한테 보내는 문자일까?
그 떨리는 손은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통증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 모습에 과거의 예지를 본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는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내 착각일 뿐이었다고 말하는 듯한 예지의 모습.
그 사람들의 예지를 예전 모습으로 되돌리려고 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괴롭힘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지속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점 잡혀서 벗어날 수 없는 지옥에서 헤매고 있는 예지의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고 내가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더 화가 났다.
지금 생각해보니 분명 예지는 끊임없이 도움의 손길을 바랐던 것 같았다.
예전부터 예지는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세상이 나를 괴롭게 만든다며 카톡으로 가끔 속마음을 토로할 때가 있었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눈치챘더라면 달라졌을까?
좀 더 주의 깊게 봤었다면 이 상황을 바꿀 수 있었을 텐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도움의 요청을 알아보지 못한 거야?
내가 멍하니 보고 있던 걸 눈치챘는지 예지는 깜짝 놀라 핸드폰을 든 손을 등 뒤로 숨기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내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더 안타까워졌다.
“언제 왔어?”
“방금. 뭐 하고 있었어?”
“음… 그냥 모바일 게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제 더 망설일 수는 없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고통받고 있는 예지가 내 눈에 밟혔으니까.
이제 뭐라도 해야 한다.
분명 예지는 내가 나서길 바라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
멋대로 나섰다고 나에게 화를 내도 좋아.
그런데 네가 고통받아 괴로워할 바에는 차라리 내게 화내는 게 더 좋아.
예지의 품에 안기며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갑자기 품속으로 달려들자 당황하지만, 예지는 말없이 나를 안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순수하게 웃는 예지의 모습을 보며 다시 결심했다.
예지야.
그동안 너의 신호를 눈치채지 못해서 미안해.
이제 너를 지켜 보고만 있지 않을 거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