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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불쌍한 사람 아니라고-69화 (69/78)

〈 69화 〉 반가움

* * *

어… 냥지 몸이 많이 줄긴 했네?

닿지 않는 찬장에 손을 뻗으며 깡충깡충 뛰는 모습이 보였다.

“왜! 안 닿는 거야! 읏차!”

예화는 키를 재보니 조금 더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정란이는 키나 덩치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예화, 정란이는 고객만족도 100점 만점에 100점인데 냥지는 100점 만점에 70점 정도로 만족한 듯 보인다.

As 담당이 도망가버려서 어쩔 수 없지만 일단 만족했으니 괜찮겠지?

내가 손을 뻗어서 소금 통과 후추통을 건네주니 나와 자신의 키 차이를 가늠하는 것처럼 나와 자신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는 듯 보이다가 볼을 한껏 부풀렸다.

“나랑 너랑 키 비슷했거든!”

“응. 알아.”

“다시 올려!”

다시 올려놓으니 한동안 깡충깡충 뛰다가 지쳐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 내려달라고 부탁했는데 이럴 거면 굳이 다시 올릴 필요가 있었나?

“에이씨, 더 줄어들진 않겠지? 키 작은 사람은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 이렇게 불편할 줄이야.”

그렇게 말하지만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지 실실 웃고 있었다.

진짜 웃긴다면서 갑자기 웃음보가 빵 터져 깔깔거린다.

“어허. 발언 조심해.”

정란이가 살짝 발끈하면서 끼어들었다.

하긴 키 작은 사람이 듣기에는 좀 그런 말이었지.

“이제 나도 키 작은 사람인데 같이 좀 드립 치고 놉시다.”

“아직 나보다 한참이나 크면서! 기만자야!”

“난 이렇게 줄어들어도 너보다 크지롱~”

말싸움을 하는 둘을 보다 예화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근데 이제 나보다 작잖아.”

“야! 말 다 했어?”

“덜했다! 어쩔래!”

얘네들 처음에 만났을 때는 싸우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었지만, 이제는 이러고 논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무미건조하게 구경했다.

가끔 구경하다 보면 웃길 때도 있어서.

그런데 이 정도로 줄어들었으면 안는 느낌도 색다르겠는데.

줄어들기 전에는 나랑 키가 비슷해서 침대에서 같이 끌어안고 잘 때 냥지가 잠꼬대로 내 몸에 올라와서 잔다든지 아니면 다리나 팔을 올리면 잠을 조금 설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 정도로 작다면 품 안에 쏙 들어올 정도라 그럴 걱정은 없겠다.

내 몸 위로 올라와도 이 정도 덩치면 나쁘지 않겠어.

물론 그전의 냥지도 상당한 저체중이었지만 키 큰 사람이 몸 위에 올라오면 당연히 불편하니까.

냥지 캐릭터 키가 어느 정도지?

생각해보니 냥지 캐릭터 체격이나 키가 엄청 작던데 여기서 더 줄어들 가능성이 꽤 높지 않을까?

지금도 상당히 가벼워 보이는데 말이지.

의자에 앉아있는 냥지를 등 뒤에서 끌어안아 보았다.

품 안에 쏙 들어오는 게 잘 때 괜찮겠네.

“갑자기 뭐야?”

“모야모야?”

“이 정도면 잘 때 느낌 괜찮겠다 싶어서.”

갑자기 냥지가 조용해지길래 왜 그런가 싶어서 얼굴을 보니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개졌다.

아, 맞다.

냥지 스킨쉽에 많이 약했지.

애가 부끄럼을 좀 타는 걸 잊고 있었다.

“쏴리.”

“쏴리는 뭔 놈의 쏴리야!”

버럭 화를 내며 내 배에 주먹을 콩 찌르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근데 다른 애들이랑 스킨쉽은 그럭저럭 받더니 유독 나한테만 그러네.

내 몸이 문제인가?

그나저나…

우우웅

주머니가 울렸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머니 속에 스마트 폰이 울렸다고 해야겠지.

언니들이나 수양이가 보냈을 수도 있겠지만 왠지 느낌이 그 녀석들 같았다.

확인하니 그 녀석들이 맞았다.

이틀 뒤에 특정한 위치에 오라고 문자를 보내는데 그 의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굳이 폐공장에서 만나자고 하는 이유가 뭐겠어.

딱 봐도 우르르 몰려와서 수로 밀어붙이고 나를 붙잡아 지금보다 더 많은 약점을 만들려고 하겠지.

사진 하나만으로는 불안했나?

그들에게는 안타깝지만 테일리와 하나가 되지 못했을 때면 몰라도 지금은 수백 명이 한꺼번에 덤벼와도 여유롭게 상대할 수 있다.

적어도 그 시기에 단체로 덮쳤다면 승산이 조금이나마 있었… 생각해보니 그때는 델리가 있어서 오히려 지금이 더 승산이 있다고 해야 할까?

친구들은 내가 뭐 하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한 듯 여전히 떠들고 있었다.

그런 줄 알았는데… 정란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네.

물어보면 대충 둘러대면 되겠지.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다르게 희미하게 웃으며 못 본 척 넘어가 주었다.

저러니까 오히려 신경 쓰이는데…?

내가 뭐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길래 저런 태도가 나오는 거야.

넘어가 주니 나야 좋지만, 나중에 이 일이 끝나고 꼭 확인해봐야겠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 되어서…

내 방으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으니 창문가에 새가 앉아 부리로 유리창을 톡톡 두들기고 있었다.

얜 뭐야?

창문을 살며시 열어보니 그 새가 굵직한 음성으로 사람처럼 말해서 깜짝 놀랐다.

[반가움.]

묘하게 익숙한 말투와 기계음.

“델리?”

[맞음. 선물의 준비가 거의 끝남.]

“그럼 돌아와. 귀찮은 놈들이 붙었어.”

스마트폰을 내밀며 말하니 그 새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스마트폰을 쪼았다.

[의문. 확인 작업.]

시간이 좀 지나 지루하게 느껴질 때쯤 그 새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확인. 보잘것없는 상대. 테일리에게 위협이 될 가능성 한없이 0%에 수렴. 계속 선물의 준비나 하겠음.]

“별거 아닌 상대이긴 하지만 사진이…”

[이쪽의 경찰은 바보가 아님. 쓸데없는 일로 부려먹는 것 사양하겠음.]

“아무리 경찰이라도 지금 바로 사진을 뿌리면 어떻게 막겠어.”

[답답함. 여긴 이미 리벤지 포르노에 대한 대응이 되어 있음. 이런 사진은 신고만 한다면 처리 가능.]

그렇게 말하며 새는 갑자기 모습이 희미해지더니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뭐야? 간 거야?

잠시 기다려봤지만 새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에이. 이왕 온 김에 좀 도와주고 가지. 매정한 녀석.”

경찰에 신고하라는 말인가?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그런데…

[뒷담 사절.]

“이…있었어?”

모습을 드러낸 새는 정란이 핸드폰을 입에 물고 내 옆에 다시 나타났다.

정란이 핸드폰은 왜 들고 온 거지?

“정란이 핸드폰은 왜 들고 왔어? 얼른 제자리에 되돌려놔.”

[확인. 그 일을 걱정할 필요 없음. 전부 처리 완료. 이제 그 인간들을 죽이지만 않는다면 상관없음.]

“무슨 말이야? 음… 일단 알겠어. 땡큐땡큐.”

더 물어보면 답답함을 넘어 화를 낼 것처럼 얼굴이 찡그려진 새의 시선을 피했다.

그나저나 새가 저렇게 인상이 찌그러질 수 있구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건 방금 델리가 전부 처리했다는 뜻인가?

[곧 돌아오겠음. 그리고 축하함. 그렇게 원하던 소원 이루었음. 친구 하나는 잘 뒀다고 평가.]

오늘따라 수수께끼 같은 의미 모를 말을 많이 하네.

그동안 심심했나?

친구를 잘 두긴 했지만, 갑자기 그게 왜?

그리고 소원?

무슨 소원이었지?

테일리 때의 기억을 살펴봐도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잘 가.”

기이이이잉

들어본 적 없는 엔진 소리를 내던 새는 빠르게 날아가 버렸다.

너무 요란한데 괜찮으려나.

그건 나랑 상관없겠지.

곧 돌아온다니 그나마 희소식이네.

뿌려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불안하긴 했었는데 이걸 이렇게 해결해주네.

정란이 핸드폰을 냥지 방의 충전기 근처에 슬쩍 내려놓았다.

아! 속 시원하다!

이제 마음 편하게 잘 놀다가 이틀 뒤에 만나서 두들겨주고 오면 되겠지?

“얘들아! 오늘은 먹고 싶은 거 아무거나 시켜! 오늘은 내가 쏜다!”

“갑자기?”

“난 치킨!”

“예지가 사주는 치킨!”

다들 돈을 잘 벌기는 하지만 남이 사주는 음식이 더 맛있는 법 아니겠어?

그런데 걱정거리가 하나 사라져서 그런지 그 선물의 정체가 더 궁금해졌다.

곧 준비가 끝난다는 소리를 들으니 더 그렇네.

얼마나 엄청난 선물을 주려고 하길래 자꾸 기대감을 심어주는 거야.

이런 앙큼한 녀석!

****

오늘 예지는 특히 더 밝은 모습이었다.

아니, 애써 밝은 척을 하는 거겠지.

우리가 신경 쓰이지 않게 연기하는 모습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기분이 퍽 좋아 보이는 모습이었겠지만 진실을 알고 예지의 미소를 보니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우리랑 대화하면서도 끊임없이 문자로 협박을 당하고 있었지.

오랫동안 이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예지가 얼마나 친구를 위하는지 알 수 있었다.

혼자서 얼마나 외롭고 아팠을까?

이 상황이 짜증 나.

저 미소를 진심으로 바꾸고 싶었다.

분명 그렇게 만든 줄 알았는데 내 착각이었다니… 괜찮아.

그 미소를 진심으로 바꿔줄 거니까.

“예지가 사주는 치킨!”

갑자기 왜 우리에게 저녁을 낸다는지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다고 본다.

적어도 기분이 안 좋다는 뜻은 아니겠지.

이 일은 조용히 끝나야 한다.

친구들도 이 일을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

친구들이 예지의 비밀을 알게 된다면 예지는 분명 상처받게 될 테니까.

그리고 예지는 이번 일의 끝은 재판에서나 잠깐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예지도 모르게 끝내고 싶다는 게 내 욕심이지만 이 일의 피해자라 그건 불가능하겠지.

곧 끝난다.

이 상황이 완벽하게 끝난단 말이야.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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