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불쌍한 사람 아니라고-75화 (75/78)

〈 75화 〉 돌아온 자

* * *

지루하지만 주변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 최대한 티를 안 내며 앉아 있었다.

재판은 슬슬 끝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판사가 최종 판결을 시작했다.

“판결을 선고하겠습니다. 피고인을 수정형 100년을 선고합니다.”

“안돼! 제발…!”

주변 분위기가 굉장히 좋지 않았다.

도대체 수정형이 뭐길래?

울부짖으며 도망가려다 잡히는 아라도 그리고 누군지 모를 남성의 절규에 찬 고함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포 섞인 절규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며 정숙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 비명에 느껴지는 공포가 주변을 무겁게 짓눌러온다.

끝 모를 구렁텅이에 떨어지는 사람이 이런 비명을 지르지 않을까?

마치 모든 게 끝난 듯 절규하는 모습이 영 심상치 않게 느껴진다.

주변이 하도 시끄럽고 내게 설명해줄 사람은 보이지 않아 바로 옆의 변호사님에게 물어봤다.

“수정형은 뭐고 의식 여부는 또 뭐죠?”

나를 보는 눈빛이 조금 이상해지길래 서둘러 내 상황을 간략하게 알렸다.

“과거의 기억이 없어서요.”

“크흡.”

감수성이 풍부하신지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며 설명을 해줬다.

명칭 수정은 냉동 인간처럼 불치병에 걸리거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을 그 병의 치료법이 확실하게 나타날 때까지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었다.

다만 이것을 개발한 사람이 실험 중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는데 수정에 갇힌 기니피그의 육체는 노화되지 않고 완벽하게 보존되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정신은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추측으로는 의식이 있었지 않겠느냐는 둥 어쩌면 정신과 육체는 별개의 존재라는 둥 수많은 추측이 쏟아졌고 마침내 3차 전쟁 때 중국에서 밝혀진 사실은 의식이 있었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멸망한 중국에서 자신들의 국민으로 실험한 결과가 전쟁이 끝나고 드러나게 된 것.

문제점은 많지만 활용할만한 기술이라고 판단했고 그중 하나가 범죄자 수용 시설로 쓰인다는 점?

아직 연구하고 있지만 그다지 성과는 없다는 모양이다.

교도소에서 중범죄자들은 한 끼의 식사 시간과 잠깐의 운동 시간을 가진 후 바로 수정 안으로 집어넣고 가동한다고 한다.

그렇게 다음 식사 시간까지 몇 시간이고 풀어줄 때까지 눈만 깜빡이는 셈이다.

그들에게는 슬프게도 사람 한 명의 의식주를 책임지는 비용보다 수정 안에 가두는 편이 비용이 절약되기 때문에 이 형벌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고 이 때문에 중범죄자들은 수정형을 선고 받으면 법정에서 기절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그들의 말로는 수정 안에 갇히면 종일 온몸이 묶인 채로 가만히 있는 기분이라고 하는데 기분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지 않나?

형벌 중에서 그리 강하지 않지만, 수정형도 아주 무섭고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종신형에 가까운 형량인데 피해자가 용서한다면 1년의 정신 개조와 교육을 받고 풀려날 수 있다.

다만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야 사회에 풀려날 수 있고 테스트에 합격하지 못하면 다시 반복.

풀려나더라도 피해자와는 다른 지역에 살아야 하며 목에 감시형 AI 목걸이를 항상 차고 있어야 하고 이상한 마음을 품는다면 경고를 하는데 무시한다면 전기 충격을 가한다.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하네.

그 뒤로 설명은 끝났지만 이제 설명해주지 않아도 대충 이해가 됐다.

교화에 성공해서 착하게 살아도 이미 목에 걸린 목걸이는 낙인이나 마찬가지겠네.

여기는 범죄자 인권은 관심이 없나 보군.

좀 딱하긴 하다.

하여튼 가해자가 수감 중에 용서를 비는 편지를 많이 보낼 텐데 알아서 선택하면 된단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뇨, 이번 일은 워낙 쉬운 편이라.”

인사를 하고 법원 밖으로 나왔다.

이제 정말 다 끝났구나.

“푸취…!”

아, 맞다.

나 감기 걸렸지.

재판 때문에 잊고 있었다.

정신이 멍한 상태인데 조금 더 심해진 거 아냐?

많이 심해지면 나노봇이 고쳐주겠지만 일부러 상태를 악화 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우우웅­

응? 정란이한테 전화 왔네.

“여보세… 에에…. 취! 요?”

“감기 걸렸어?”

“응. 어제 밖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지 감기에 걸렸나 보네.”

“감기 걸린 채로 도대체 어디 간 거야!”

“재판이 있어서… 다른 애들은?”

“이제 일어났지. 어?”

잠깐 휴대폰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가 곧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감기 걸린 상태로 도대체 어디 간 거야!”

“….산책?”

“그래. 너라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뭐어? 사안채액? 개식끼야! 제정신이야? 이 겨울에 그것도 눈 오는 날씨인데 감기 걸린 상태로밖에 산채액? 야이!”

간만에 냥지가 화내는 걸 보는군.

엄청나게 흥분했는지 노발대발했다.

“집에 빨리 돌아갈게! 화 풀어. 응?”

“빨리 들어와! 다른 길로 새지 말고!”

“응. 알았어.”

더 화나기 전에 빨리 돌아가야겠네.

얼른 AI 택시를 콜로 불러서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 택시는 더운 편이네.

“택시가 좀 더운데 히터 좀 꺼줄 수 있나요?”

[히터는 틀지 않았습니다. 손님 몸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병원으로 갈까요?]

“아뇨. 아까 불러드린 주소로 가주세요.”

도착하고 헐레벌떡 내려 집으로 뛰어 올라가려고 하니 친구들이 화가 난 얼굴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어, 언제부터 기다렸어?

내 말을 무시하며 냥지가 내 머리에 손을 올렸다.

“얘 좀 봐. 이렇게 열이 있는데 밖에 산책? 너 진짜 한 번만 더 이러기만 해봐. 나을 때까지 집에 꽁꽁 묶어둘 거야.”

“헤헤. 내가 이렇게 아픈 줄 몰랐지.”

“그걸 말이라고! 으이구, 못 살아.”

셋에게 등짝을 맞으며 서둘러 내 방 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한 손으로 코트 자락을 잡아 벗으려고 하지만 왠지 모르고 나른하고 몸이 무거워 쉽지 않았다.

겨우 코트를 벗어내고 하의를 벗으려고 했지만, 다리에 바지가 엉켜 침대 위로 자빠져 쓰러졌다.

“아… 이런 건 오랜만이네.”

다시 일어날 생각이 없어 그냥 누운 상태로 눈만 감았다.

누군가 몸을 흔들고 있는 느낌에 눈을 살짝 떠봤다.

“…야. 옷…”

“응…?”

“옷 갈아입고 자야지.”

예화가 물이 담긴 그릇과 수건을 가지고 들어왔고 정란이는 내 옷장을 뒤적이며 잠옷을 꺼내고 있었다.

“졸려… 피곤해..”

“옷 갈아입고 자. 에휴.”

갈아입고 자야 하는 건 알지만 움직이고 싶지 않아…

내가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자 예화가 내 두 다리를 잡아 들어 올리고 냥지가 내 바지를 벗기고 새 잠옷으로 갈아입힌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어리광을 피우고 싶어졌다.

다른 사람한테 간호받은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아픈 나를 누군가가 보살펴 준다는 건 정말 괜찮은 기분이야.

고생시켜서 미안하긴 하지만… 정말 움직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나를 너무 괴롭혀…

미안하지만 이건 불가항력에 가깝다.

멍하니 정신을 팔고 있으니 어느새 옷은 갈아 입혀지고 이불을 목까지 덮은 상황이었다.

“얘들아… 미안…”

“알아서 다행이다. 감기 걸렸는데 갑자기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그냥 집에서 약 먹고 푹 쉬지.”

“그러게…”

“어허, 서예지. 죄인은 조용히 해.”

“다음에 아픈데 밖에 나가기만 해봐. 내 집으로 데리고 가서 못 나가게 할 거야.”

“왜 네 집인데!”

“으하하하핳. 냥지 집에 오래 살았으니 이제 바꿔서 살아볼 때도 되지 않았나 싶어서.”

정란이와 예화의 걱정 섞인 농담에 피식 웃자 냥지가 내 코를 쥐고 흔들며 머리 위에 물수건을 올려주었다.

“넌 웃지 마.”

“웃을 자유를 달라…”

“아직 말할 힘이 남아있나 봐.”

“조용히 있을게…”

죽 좀 사 오겠다며 예화는 밖에 나갔고 정란이는 종이처럼 둘둘 말아 놓은 페이퍼 TV를 가지고 와 벽에 붙였다.

“이제 잠 다 깬 거 같은데 TV 좀 보다가 자.”

옆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나와 같이 TV를 보았고 정란이와 냥지는 가끔 농담이나 TV 내용에 대한 평가를 나누기도 했다.

졸음이 몰려와 슬슬 졸고 있을 때쯤에 예화가 돌아왔고 예화가 사 온 죽과 약을 먹으며 넷이서 영화를 봤다.

영화 중반부에…..

깨어나니 주변은 어두컴컴했고 친구들은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고 있었다.

고맙지만 감기 정도로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손으로 머리의 열을 체크하니 내 이마는 차갑게 식어있었다.

열이 떨어져서 물수건을 뺀 거구나.

똑똑

무슨 소리지?

소리가 난 곳을 보니 창문에 뱁새처럼 생긴 귀엽고 통통한 하얀 새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혹시 델리?”

말을 걸어도 아무 반응 없이 나를 보고 있으니 조금 무안해지네.

다시 자리에 누우려고 하니 새가 입을 열어 말을 했다.

[재미있었는지?]

“응? 재미?”

[간호받는다는 기분. 어떤지?]

“음, 좋네. 근데 이제 돌아온 거야?”

[이제 모든 것을 마무리.]

“그럼 들어와. 창문 열어줄게.”

[내일 돌아올 예정. 선물 기대할 것.]

“응..? 알겠어.”

그렇게 말하며 뱁새는 뽀르르 날아간다.

지난번에는 엔진 소리가 조금 났었는데 오늘은 진짜 새처럼 날아가네.

창문을 닫고 다시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는 느낌이… 설마 방금 그 모습을 친구들이 본 건가?

자리에 벌떡 일어나 방안을 살펴보니 친구들은 자고 있고 유일하게 깨어있는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야옹

“야뭉아. 놀랬잖아.”

대충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이번에야말로 자리에 누웠다.

선물이라… 이렇게 오래 준비한 선물은 도대체 뭘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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