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불쌍한 사람 아니라고-76화 (76/78)

〈 76화 〉 택배

* * *

날은 푸르고 화창했으며 길거리의 사람들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출근하고 있었다.

여유와 행복함이 느껴지는 분위기.

지금의 날씨처럼 사람들은 그 분위기가 닮아있었다.

출근 시간도 제각각인지 창밖의 도로는 막힘이 없었다.

아니, 막히더라도 사람들은 여유롭게 기다리겠지.

그리고 옆의 차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곡을 틀었다면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지도 모른다.

그러다 취향이 맞으면 그 이야기를 하며 시간 가는지도 모르고 지루함을 잊고 대화하고 있겠지.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나와 냥지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밖을 잠깐 구경할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내 취미였지만 어느새 냥지도 합류했다.

내 취미는 나도 냥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평온한 일상을 보면 마음이 편해져서 이렇게 같이 구경하곤 했다.

굳이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때로는 복잡하게 생각하기보단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의미 없는 행동을 하는 게 나쁘지는 않겠지.

세상을 하얗게 얼려버릴 것 같은 기세로 내리던 눈도 언제 그랬냐는 듯 그치고 푸른 하늘에서는 노란 햇살을 비추었다.

따스한 햇볕이 집 안을 비추고 있었다.

바닥에는 아직 눈은 많이 쌓여있지만 냥지는 그동안 눈으로 신나게 놀아서 질렸는지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우리는 집 안에서 햇살을 만끽하며 뒹굴었다.

나는 거의 낫긴 했지만, 아직 조금 감기 기운이 남아있어서 소파에 편한 자세로 몸을 뉘었다.

“아직 감기 기운 남아있지?”

“나른하긴 한데 어제처럼 심한 건 아닌 것 같아.”

“어제 심하긴 했다는 소리구나. 그런데도 산책하러 가고?”

“앗… 그건 이제 좀 봐줘. 머리에 열이 올라서 제정신이 아녔나 봐.”

“흥.”

삐진 척 고개를 홱 돌리지만 내가 눈 감고 누워있기만 해도 슬금슬금 다가오겠지.

눈을 감으며 누워있으니 가벼운 발소리가 조금씩 들려온다.

냥지는 키가 줄어들면서 체중도 크게 줄었는지 다른 곳에 정신 팔고 있으면 언제 곁에 다가왔는지 모를 정도로 발소리가 나지 않았다.

키가 작아지고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하기도 했다.

냥지는 이걸 이용해서 요즘 친구들의 뒤로 몰래 다가가 놀라게 하는 장난을 즐긴다.

“자?”

“아니.”

“감기 기운 아직 남아있으면 좀 더 자.”

“싫어… 이제 잠이 안 와.”

우리가 한참 떠들어서 그럴까?

시끄러워서 그런지 이제 일어날 시간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 방의 문이 열리며 정란이와 예화가 비척거리며 걸어 나왔다.

“좋은…. 아침….”

“멍청아… 지금은 점심시간이야…”

“아닌 거든… 지금 10시거든…”

정란이는 비틀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나한테 안기며 다시 잠을 청했다.

여기서 제일 잠꾸러기는 냥지라고 했지만 사실 다들 비슷한 수면 시간을 자랑했다.

제일 잠 많은 냥지부터 시작해서 정란이와 나 마지막으로 예화.

냥지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지만 중간중간 졸음이 너무 많았고 정란이와 나는 그냥 오래 자는 편이었다.

원래 정란이의 수면 시간이 매우 불규칙했지만 그건 개선되었고 예화는 그냥 잠이 조금 많다.

“배게… 너무 푹신해…”

“야! 비켜! 내가 누울 거야!”

“너도 감기 옮아.”

무엇을 위해 말리는지 모를 예화와 냥지가 말리지만 정란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더욱 파고들었다.

가슴 사이에 정란이의 뒷머리가 파고들며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감기에 걸리고 이런 엄청난 잠자리를 얻는다… 그건 이득이지 않나?”

헛소리하는 정란이 머리에 턱을 콕콕 찍어 누르니 꽥 소리를 내며 잠잠해진다.

그렇게 우리는 평소처럼 뒹굴었다.

냥지는 내 발치 쪽의 소파에 누워 토위치를 보고 예화는 냥지 옆에 같이 누워 유튜보를 보고 있었다.

정란이는 다시 잠들었는지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고 나도 따뜻한 온도 때문에 잠이 온다.

그냥 평소와 별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다.

잠 오면 자고 그러다가 방송하고 콘텐츠 구상 좀 하고 배고프면 밥 먹고.

잠깐 잠들었나?

눈을 살짝 떠보니 냥지는 배달시켰는지 음식을 식탁에 정리하고 있었고 예화는 옆에서 그걸 돕고 있었다.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나보다.

자연스럽게 아침은 걸렀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원래 우리는 아침을 먹고 싶은 사람만 먹고 아니면 말았으니까.

가끔 내가 아침을 차리고 깨울 때도 있지만 보통은 그런 식이었다.

여전히 내 품에서 자는 정란이를 옆으로 슬며시 밀어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몸을 빼내어 냥지를 도왔다.

“뭐 시켰어?”

“일어났어? 비빔밥. 정란이도 얼른 깨워.”

평범한 식사였다.

비빔밥에 된장찌개 그리고 약간의 밑반찬.

비빔밥은 딱히 자극적이지 않고 평범하지만 그만큼 먹기 편한 맛이었다.

된장찌개도 신경 썼는지 조금 짭조름 하지만, 맛이 있었고 밑반찬들은 평범한 편이었다.

다 차리고 정란이를 흔들어 깨웠다.

부스스 일어나 크게 입을 벌리며 하품하는 정란이는 예화와 정란이 몫에서 조금씩 나눠 받은 밥을 조금씩 먹었다.

먹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중 중요한 소식은 멤버들의 합창 연습이 끝났다는 것과 이제 날짜를 정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토위치 파티가 정말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이야기였다.

“토위치 파티는 참여할 거야?”

“가긴 갈 건데 처음이라 그런가? 조금 부담스러워.”

“또 소심해지지. 신경 쓰지 말고 따라와. 거기서 사람들 좀 알아둬야 나중에 친해지지.”

“야, 서예지. 근데 합창은 언제 할 거야?”

“아무래도 다들 스케줄 한번 맞춰봐야 하지 않을까?”

예화의 질문에 정석적인 대답을 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니 납득한 듯 보이고.

“배불러…”

“넌 진짜 그 정도 먹고 배가 차는 게 신기하다.”

우리에게 나눠 받은 밥만 먹고 배부른지 배를 두드리는 정란이를 우리는 모두 신기하게 바라봤다.

몸에 문제는 없다지만 저 정도 먹고 만족하는 모습이 항상 신기했다.

본인이 저렇게 먹겠다는데 터치할 이유도 없지만, 신기하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지.

띵동.

쿵 소리와 함께 벨 소리가 함께 울렸다.

택배 왔나?

“누구 택배 시킨 사람?”

“난 안 시켰는데?”

“나도.”

“미투.”

내 것도 아닌데… 일단 나가서 상자를 확인하니 생각보다 컸다.

얼핏 보면 사람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크기.

한번 들어보니 무게도 그 크기에 걸맞게 묵직했다.

적힌 이름은 내 이름?

나한테 이런 걸 보낼 사람도 없을 텐데.

보내더라도 연락은 하고 보낼 사람들이라 짐작 가는 사람이 없었다.

“뭐 시켰어?”

“몰라. 난 시킨 적이 없는데 누가 보냈는지 모르겠네.”

예화가 칼을 들고 다가와 상자에 붙어있는 테이프를 잘라낸다.

테이프를 자르자마자 갑자기 상자가 저절로 열리며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이 몸 등장.]

튀어나온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애매하지만 예쁜 미인이 메이드 복을 입고 튀어나왔다.

익숙한 말투 하지만 그렇지 못한 고운 미성.

델리?

“뭐야!”

“누구세요?”

친구들의 경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식탁에서 내려와 자신을 소개한다.

[테크스론 사의 신제품인 가정용 로봇. 이름은 델리. 안녕하세요?]

“테크스론?”

“어디서 들어봤는데?”

곰곰이 생각에 빠진 예화가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아! 최근에 사람의 겉모습을 완벽하게 흉내 낸 로봇을 개발한 그 기업.”

“무슨 소리야?”

“최근에 뉴스에 나왔던 기업 있잖아. 사기가 아닌지 의심스러운 기업이라고. 아직 실현이 불가능한 기술이라 말이 많은 기업 있잖아.”

냥지와 정란이는 들어본 적이 없는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 너희들 뉴스 같은 거 안보지. 근데 방송에서 시청자들이 한 번은 도네로 언급할만한데?”

“아직 못 들음.”

“나도.”

[그렇습니다. 천재적인 크리스 델리가 만든 역작. 그 역작이 바로 저 델리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업이 갑자기 왜 이런 걸 우리한테 보내는 거야?”

자칫 곤란한 질문이 될 수 있지만, 델리는 미리 대답을 준비했는지 겉보기로는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테일리와 친분이 있기에… 친구에게 선물을 보내겠다고 저를 보내신 겁니다.]

“단순 친분으로 이 정도 제품을…? 얼마나 친했길래?”

냥지의 정당한 의심에 델리가 상냥하게 웃는 얼굴로 중얼거린다.

[귀찮게 의심 많음.]

“네?”

[아무것도. 저는 모르겠지만 정말 친하신 것 같았습니다. 오죽하면 저를 보내고 저택까지 선물하시겠어요?]

“이야. 예지 너 은근 인맥 좋구나.”

“엥? 그런데 왜 우리랑 만날 때는…”

[그것은 가슴 아픈 사연이…]

델리가 나를 제외한 모두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나도 따라 들어가려고 하니 델 리가 내 귓가에 이런 말을 속삭여서 얌전히 기다렸다.

[눈치 없음. 제발 얌전히 기다릴 것.]

식탁 의자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니 친구들이 울먹이는 얼굴로… 펑펑 울며 방에서 나왔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갑자기 다들 나에게 안겨 오길래 얼떨결에 그들을 안았다.

“흐이잉.. 예지야… 그런 사고를…”

“어떻게 그런 일을 겪고도…”

“지금부터 행복하게 살면 되지!”

정란이, 예화, 냥지 순으로 나를 위로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오늘은 정말 어질어질하네….

이 난리 통은 도대체…?

평화로운 일상이었는데 갑자기 왜 분위기가 이렇게 바뀐 거야…?

친구들이 내 품에서 울고 있지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몰라 아쉽지만 공감할 수 없었다.

그저 내 옷을 빨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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