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이게 뭐야?
* * *
대충 상황이 끝나고 도착한 지 4시간도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델리는 원래 우리와 아는 사이였다는 듯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처음에는 다들 어색한 태도로 대했지만 결국 마음 편히 받아들였다.
델리를 내 방으로 슬쩍 데리고 와 여태 궁금했던 것들을 모두 물어본다.
“갑자기 웬 기업이야? 테크스론은 뭐냐?”
[테일리에게 받은 돈을 모두 주식 투자. 세상의 모든 정보를 수집 그리고 분석. 결과는 효과적. 그 자본으로 기업 인수. 그전에 델리가 미리 만들어 놓은 기업에 인수합병. 사명 변경. 테크스론.]
“기업을 언제 만들었다는 거야? 넌 항상 나한테 붙어있었잖아. 그리고 기업 설립 요건이 따로 있지 않아?”
[어렵지 않음.]
그 말을 끝으로 싱긋 웃기만 하고 나에게 설명을 하지 않았다.
말하든 말하지 않든 내게 손해 볼 짓은 하지 않으리라 믿지만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자본금이 얼마나 있었길래 그러지.
임원 구성은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응. 뭐, 알겠어. 그리고 잘 돌아왔어.”
[당연한 일이죠. 대표님.]
“그래.”
근데 방금 뭐라고 했지?
대표? 누가?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델리를 봤지만,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보니 다른 표정을 지을 수 있던데 일부러 무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는 건데.
델리의 의중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원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애인데 몸이라도 생기면 좀 나아질 줄 알았더니 내 착각이었나보다.
“누가 대표인데?”
[You]
“나?”
[Yes]
“누구 맘대로? 난 동의한 적이 없는데?”
[내맘.]
어이가 없어 입만 벙긋하자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나 일 안 할 건데?”
[바란 적도 없음. 기대도 안 함. 그냥 앉아서 돈과 명예나 얻을 것. 비밀로 하고 정체를 숨기고 싶다면 그 또한 상관없음.]
“나 진짜 일 안 할 거야!”
[알았음.]
갑작스레 한 기업의 그것도 요즘 유명하다는 기업의 대표가 되니 좋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아, 아까부터 뭔가 어이가 없네.
그럼 선물의 정체가 기업인가?
“그럼 선물의 정체가 기업이었어?”
[선물의 일부. 친구와 같이 따라오면 알 것.]
일부? 아, 아까 저택 이야기를 하더니 그건가?
그렇게 말하며 사뿐사뿐 걸어가더니 친구들을 불러 모은다.
“무슨 일이래?”
“몰랑.”
“흐아암… 졸린 데…”
친구들은 귀찮음이 가득한 태도로 외출복을 갈아입고 나를 따라 나선다.
“예지야. 무엇 때문에 나가는 거야?”
친구들은 의아한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지만 그렇게 바라봐도 나는 대답해줄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특히 냥지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는지 따라오며 내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물어보지만 대답해주지 못했다.
그러자 볼을 부풀리며 자신이 삐졌다고 어필하지만 그런데도 대답해줄 수 없었다.
나도 모른다니까….
이상하게 나도 모르는데 친구들은 델리와 관계된 일이라면 내가 알 거로 생각하는 듯 보였다.
조금 나른해서 나가기 싫은 내 마음을 눈치챈 걸까?
델리는 탈 것을 부르더니 우리를 태우고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
우리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로 숲이 우거졌고 숲의 입구는 마치 어딘가의 비밀기지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문이 신기하게 생겨 손으로 만져보니 표면이 매끄럽지만, 그 튼튼함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게 보였다.
게임에서 미래식 배경의 건물로 가끔 보이는 문이었다.
델리가 버튼을 누르자 푸른 빛이 쏘아지며 우리의 몸을 비추었다.
[스캔.]
[허가된 인물 : 정유리, 이예화, 이정란]
[권한 : 입주민]
[신체 데이터 저장.]
[승인.]
[환영합니다. 입주민 여러분. 대부분 시설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덜컹거리며 문이 열린다.
문이 열리자 진풍경이 펼쳐진다.
초원을 연상케 하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지고 곳곳에 싱그러운 꽃들이 심겨 있었고 화원으로 보이는 꽃밭이 보였고 그 근처에는 작은 호수가 보였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넓은 수영장이 보였는데 수영장의 중앙에는 노란 고무보트가 둥둥 떠 있었다.
“이 겨울에 웬 수영장이래?”
[실내 모드도 있답니다.]
예화의 의문에 델리는 수영장으로 다가가 말했다.
[실내 모드]
그 말과 함께 바닥에서 투명한 벽이 올라와 수영장을 둘러싸기 시작했고 곧 지붕까지 생기며 하나의 실내 수영장이 완성되었다.
친구들은 모두 경악을 하며 놀라움을 표현했다.
수영장은 독특하게 생겼는데 마치 바다를 표현한 것처럼 바닥은 고운 모래로 가득했고 델리가 버튼을 조작할 때마다 파도가 생기거나 모래가 전부 사라지고 평범한 수영장처럼 되기도 하며 친구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그리고 다칠 염려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델리는 텀블링을 하며 바닥에 머리부터 떨어졌지만 콘크리트 벽처럼 보이던 바닥은 젤리처럼 출렁이며 델리를 부드럽게 받아내었다.
시범을 보이며 델리는 엄지를 척 들어 따봉을 날리며 말했다.
[특수 소재로 만들어진 내벽과 외벽. 충격 흡수 완벽.]
[만족하시는지?]
그 말에 셋은 말없이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그런데 이런 곳에는 왜 데리고 온 거야?”
정란이가 델리의 옷 소매를 슬쩍 당기며 물어보자 델리는 눈웃음을 보이며 대답한다.
[이제 이 건물은 예지님의 소유입니다. 같이 사실 분들 아니었습니까?]
그 말과 함께 친구들은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노골적인 시선은 무엇을 바라는지 알 정도로 뻔했지만, 꽤 괜찮은 기분이었다.
“너희들이 원한다면 같이 지낸다면 좋겠어. 오지 않겠다면 냥지 집에서 지금처럼 같이 지낼 거고.”
“고마워!”
내 말과 동시에 감사 인사를 하고 셋은 우르르 몰려가 여기저기 둘러보기 시작했다.
수영장에 신발을 벗고 모래를 밟으며 까르르 웃기도 하고 몸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풀잎 우산의 줄기를 잡고 신기하게 보기도 했다.
“근데 저거 진짜 식물이야?”
[유전자 조작 식물. 대나무처럼 빠른 성장과 긴 수명이 특징.]
“그냥 우산이면 되지 저런 건 왜?”
[갬성.]
아… 갬성…
중요하긴 하지.
하여튼 친구들은 만족하다 못해 푹 빠진 듯 보였다.
[소형 골프장, 헬스장, 지하에는 음악 스튜디오, 그리고 AI들이 관리하는 식당이 있습니다. 아, 그리고 일종의 낚시터로 만들어둔 호수도 있습니다.]
정말 화려하구나.
그런데 이상하다?
아무리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고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가능한가?
심지어 지금 테크스론은 수익을 내고 있는 게 없을 것 같은데 말이지.
그리고 해외면 몰라도 한국에서 이 정도 규모의 저택이 가능할 리가 없는데…?
“이런 저택이 가능해…? 그리고 돈은 전부 어디서 났어?”
[흠흠… 여러분. 집 내부에 들어와 보시면…]
이렇게까지 대답을 피하는 델리를 보니 정말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서둘러 셋의 등을 밀며 후다닥 도망가는 델리를 붙잡아 귓가에 속삭인다.
“불법 그런 건 아니지?”
[완벽한 합법. 다만 기술을 팔았을 뿐.]
무슨 기술?
설마…
델리를 째려보니 델리는 서둘러 덧붙였다.
[별다른 기술은 아님. 그저 아까 수영장 벽의 소재와 환경 관련 기술 하나.]
불법만 아니면 상관없지.
델리를 놓아주자 다시 친구들을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집 지붕이 열린다든지 비밀 서고 같은 감성 가득한 방이라든지 그런 장치를 보여주었다.
이거 근데 아까부터 생각한 건데 자꾸 저쪽 기술들이 좀 보인다?
구경이 전부 끝나고 친구들은 들뜬 표정으로 거대한 소파에 널브러진다.
침대라고 해도 믿겠네.
“당장 이사 와야지.”
냥지의 중얼거림에 예화나 정란이도 동의한다.
구경하다 지친 우리에게 거구에 근육이 가득하지만 딱 봐도 미인이다 싶은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저기… 예지야. 우리말고 다른 사람도…?
“아니. 그건 아닐 건데.”
[주방장 이린이라고 합니다.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아펠슈트루델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노란 크림이 잠겨있는 빵이 담긴 접시를 건네주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주방장보다는 헬스장 관리 로봇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근육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꿈틀거린다.
이 정도면 의심 받을 만 하겠네.
이쪽 세계의 기술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린은 우리에게 접시를 건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와, 달아.”
“빵 안에 과일이 있어.”
친구들은 행복에 겨운 얼굴로 한입 크게 베어 물며 소파에 반쯤 누웠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자 어느새 날이 저물고 우리는 일단 하루 자고 가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방을 고르라고 하니 정말 심혈을 기울이며 수십 개의 방을 직접 확인하면서 돌아다닌다.
평소의 게으름은 감쪽같이 사라졌군.
음… 알아서 잘 고르겠지.
나는 아무 방이나 골라 들어와 그곳의 PC 전원을 켰다.
오늘 방송 안 하면 진짜 폭동이야.
진짜 오늘은 폭풍 같은 날이었다.
나중에 친해진 사람들 불러서 여기 사는 건 어떤지 권유 좀 해봐야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