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불쌍한 사람 아니라고-78화 (78/78)

〈 78화 〉 친구 부르기

* * *

“안녕.”

방송을 켜자마자 채팅창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요즘 예전만큼 방송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런가 반응들이 격하구나.

물론 방송이 질려서 그런 게 아니라 요즘 좀 사건·사고가 많고 바빴으니까.

음음, 맞지맞지.

내가 힘들 때 큰 힘이 되어준 방송과 시청자들인데 어떻게 내가 저버리겠어?

시청자는 이런 내 사정을 모르니 이제 배가 부른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다소 기분이 상할 수 있긴 하지만… 잘 설명해봐야지.

[추워요… 왜 이제 문을 여신 겁니까…]

[추우면 난방을 트세요. 당신의 몸은 소중하니까.]

[스윗 ㄷㄷ]

[허허… 예지님… 공지로만 보던 분을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해명해]

[네가 선택한 스트리머다. 악과 깡으로 버텨라.]

“어… 공지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최근 일이 생기고 이사 문제 때문에 방송을 별로 못했죠..?”

[별로? 선생님 별로라는 용어의 정의가 바뀐 것 같습니다.]

[별로가 아니라 전혀가 맞지 않나 싶습니다.]

[별로 X 전혀 O]

[근데 이사는 처음 들어봄]

[휴방 공지에 이사는 없었는데요?]

[이사함?]

[ㅇㄷ?]

[어딘지 알아서 뭐 하게 ㅅㅂㅋㅋ]

나를 반기는 환영 인사가 매우 격하군.

아무래도 오랜만에 나를 만나서 반가운 모양이다.

“오랜만에 봐서 나도 반가워~”

[??]

[????]

[우리 같은 대화를 하고 있던 것 맞나요?]

[보고 싶을 뻔했습니다.]

[제발 꾸준히 해주세요… 내 낙인데…]

보고 싶었다는 사람들이 많네.

역시 내 방 시청자들은 장난기가 많아.

그런데 이사는 어떻게 설명하냐.

아무리 생각해도 대충 둘러댈 만한 뭔가가 없는데…

델리가 말한 크리스 델리라는 사람이랑 막역한 친구였는데 어떤 기구한 사연으로 헤어졌었고 이제 다시 만나서 나에게 집을 선물했다.

좀 개연성이 없지 않아…?

비슷한 이야기로 정란이 때 그런 일이 있었는데 지금 또 이렇게 써먹기도 뭐하고.

항상 이럴 때 고민이란 말이야.

델리도 이런 남들을 설득하거나 변명하는데 좀 약한 느낌이고 가끔 보면 대충 구색 맞추기용으로 변명하는 감이 없잖아 있다.

이번에는 친구들이 워낙 내 과거를 잘 알고… 비록 착각하는 부분이 있거나 다른 인격의 과거지만 어쨌든 그런 것 때문에 델리의 변명이 먹혔다고 보는 것이 맞다.

착각한 부분도 도저히 고쳐서 설명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라 난감하긴 하지만 잘 넘어갔으니 굳이 그 문제를 들출 필요는 없겠지.

“옛날에 절친한 전우가 있었는…”

[전우?]

[????]

[예지님 나이 때 전쟁이 있었나?]

[왜 거기 크림반도는 아직 뒷세계에서 치열하자너]

“아! 전우가 아니라...제가 말실수 했어요. 말실수! 어쨌든 옛날에 친하게 지낸 막역한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좀 사연이 있어서 연락이 끊겼죠. 지금은 서로 생존 신고하고 잘 지내고 있고 그 친구가 집을 선물해줬습니다. 끝!”

[???]

[설명을 들으니 더 모르겠는데요?]

[0개 국어 신가 ㄷㄷ]

[참게비령 같은 케이스?]

“네, 맞습니다! 정란이랑 사귀기 전에 있었던 일이고 제가 무슨 일이 생겨서 연락이 끊겨서 친구랑 이제 연락이 된 거죠. 제 과거에 친구는 딱 둘이고 이제 더는 없어요.”

[??? : 그 둘만 친구다.]

[나머지는 직장 동료 선 긋기 ㄷㄷ]

[냥지, 예화 버려?]

[수양아…]

갑자기 내 친구들을 부르짖으며 하소연하는 시청자에게 당황해 필사적으로 손을 휘저으며 언성을 높였다.

“아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 과거에 둘밖에 없었다는 거고 이제 친구 많다고!”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이사한 집인가요? 뒤에 뭐가 번쩍번쩍하넼ㅋㅋ]

“넹. 좋은 집으로 줬는데… 잠시만요.”

잠시 좋은 생각이 났다.

나중에 팬 미팅 같은 행사를 할 때 소규모로 우리 집에서 하면 어떨까?

요즘 친구들도 자신감이 부쩍 늘었는지 가끔 캠 방송을 할 때가 있는데 꽤 괜찮은 느낌이 들지 않나?

수양이나 차향 그리고 초야 언니는 최근 캠을 켜고 방송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가끔 이야기를 나눌 때 캠 이야기가 부쩍 는 것을 보면 이제 공개되는데 별 거리낌은 없는 것 같고 언젠가 팬 미팅을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때는 우리 집에 초대해서 하는 거지.

음… 아닌가?

집 주소를 알리는 행위 자체가 좀 위험할 수도 있겠네.

나중에 델리랑 좀 상담해 봐야겠다.

안전 문제랑 프라이버시 문제만 해결된다면 괜찮겠는데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잠시 문을 열어 델리를 찾아봤다.

이것저것 고급스러운 가구들이 복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었다.

어디에 쓰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존재 만으로 집 안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걷다 보니 앞쪽에서 약간의 소란스러움이 느껴진다.

역시 스트리머라 그런지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군.

그런데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복도에 있는 건가?

이곳의 방음은 엄청난 수준을 자랑하던데 말이지.

우리가 스트리머라 그걸 감안하고 만들어진 집이라는 느낌이 팍팍 드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방음이었다.

그리고 저택의 다양한 시설들은 어떠한 컨셉의 방송이라도 가능하게 만들겠지.

“이 방은 진짜 바닷속에 있는 느낌이야!”

“난 이 방이 마음에 들긴 하는데 이거 막 깨져서 물고기들 다 튀어나오고 그런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아주 철저한 관리가 되어 있고 삼중으로 처리를 해뒀기 때문에 그런 사고의 위험성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냥지는 귀엽게 생긴 관상어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고 예화는 마음에 드는지 물이 들어 있는 어항 같은 느낌의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다.

정란이는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시큰둥한 표정으로 다음 방을 가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진짜 어항인 줄 알았네.

“얘들아, 뭐해?”

이제 좀 친해졌는지 델리와 친구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또래의 친구들이 만나서 노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델리의 외형도 나이가 어려 보이는 타입이었고 사람으로 보이니 같이 외출한다면 사람들은 델리가 휴머노이드라고 상상조차 못 하겠지.

“어? 방송하는 줄 알았는데?”

“아, 뭔가 물어볼 게 있어서.”

구경하고 있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델리만 방 밖으로 데리고 나온다.

[용건이 무엇?]

“아, 혹시 나중에 시청자 팬 미팅 초대 같은 이벤트를 해도 되는지 물어보고 싶어서.”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함]

“그냥?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그런 느낌? 친구들 안전 문제도 있어서 상관없어.”

[추천하지 않음. 이곳에서 무슨 짓을 저지르기는 불가능하지만 일일이 관리하기 귀찮음.]

그러면 뭐… 하지 말지.

굳이 귀찮음을 무릅쓰고 하고 싶은 건 아니었고 그냥 추첨 이벤트 같은 거나 해봐야겠다.

그건 그거고 친구들 안전 문제 이야기가 나온 이상 확실히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곳 세상이 아무리 살기 좋고 여유롭다지만 스트리머 직업 특성상 스토커 같은 경우를 아예 배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갑자기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너무 과한 걱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전에 살았던 곳도 그렇고 나한테 범죄 조직원이 찾아온 걸 보면 아예 없는 일은 아니지 않겠어?

내 경우가 특별한 상황이라고 하지만 그런 일의 발생 가능성이 있긴 있다는 거니까.

“친구들 안전 문제는 어떻게 해결 못 해?”

[말 안 해도 이미 조치가 끝남. 어쨌든 시청자 초대는 없던 일로 알겠음.]

딱히 기대하지는 않았으니 돌아가서 방송이나 마저 해야겠다.

나중에 나도 진지하게 내 방을 골라야겠다.

방마다 컨셉이 다르다니 그것 참 구미가 당기는 소식이야.

“내가 다시 왔다.”

[이제 오셨군요….]

[오래 기다렸습니다…]

기껏해야 10분밖에 안 걸렸는데?

생각해보니 오래 걸리긴 했네.

“쏘리. 그 대신 오늘은 크라이를 하려고 합니다. 많은 분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크라이는 ㅇㅈ이지]

[아ㅋㅋ 지각이 아니라 준비한 거지.]

[ㄹㅇㅋㅋ]

[크라이 팬들 소원 성취했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유튜보로 입문한 팬인데 채팅창이 조금 무섭네요;;]

“아, 그리고 집이 좀 커서 친구들이 같이 살면 딱 좋겠는데 나중에 한 번 물어보려고.”

그 말을 하자마자 내 휴대폰에 문자가 왔다.

[은초향 : 언니! 저! 저요! 저!]

정말 오랜만에 보네.

팬이라고 하더니 정말인지 항상 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초향이도 모습이 바뀌었을까?

얘는 그동안 못 만나서 그런지 확인을 못 했는데 이번 기회에 확인해봐야겠다.

초향이 정도면 만난 시간은 짧지만 빠르게 친해진 애였고 나도 마음에 드니 괜찮겠지.

우리 중 반대할 사람도 없고.

[음, 그러면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와. 짐은 꼭 필요한 것만 들고 오고. 여기 있을 건 다 있어서…]

[은초향 : 그런데 꽤 넓은가 봐요? 분명 언니들은 같이 살 거고 그러면 셋인데?]

[네 상상 이상으로?]

[은초향 : 헉…! 빨리 가야지!]

너무 많으면 좀 그런가?

뭐, 내가 아는 친구들 각자 방 4개씩 차지해도 남아도니 상관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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