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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매님에게는 마왕의 소질이 있다-2화 (2/109)

〈 2화 〉 마왕 후보자

* * *

시장은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신시아를 데리고 외출하는 건 꼭 필요한 일이다. 언젠가 그녀의 모든 일이 해결되고, 사회의 일원으로 돌아갈 때 적응할 수 있도록.

"신부님, 지금 이상한 생각 했지?"

"아니요. 전혀요."

신시아의 감은 예전부터 정확했다. 조금이라도 그녀와 멀어지려는 생각을 하면, 여지없이 어두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시장에서는 여러 소문을 들을 수 있다. 누군가가 돈을 벌었네, 누군가가 죽었네, 누군가가 바람을 피웠네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말이다. 하지만 요즘 들리는 소문은 거의 한 가지 내용이다.

"그 소식 들었어? 마왕이 곧 나타날 거라는."

"그것 때문에 지금 교황청은 비상도 아니라던데?"

... 저잣거리를 가득 메우는 저 소문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마왕에 관한 것이다.

마왕, 고전 소설이나 평민들의 놀이에서 나오는 마왕 같은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악마도, 마족도 없다. 마수는 있을 지라도 말이다. '마왕'이라는 이름 그대로, 다른 인간과 차원이 다른 강대한 힘을 지닌 이들. 우리는 그것들을 마왕이라고 부른다.

"우리 성국에도 마왕이 들이닥치는 것 아닐까 두렵네."

"혹시 모르지. 이미 마왕이 될 자가 성국에 있을지."

마왕은 마왕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환경이나 특별한 이유, 혹은 특수한 혈통을 타고난 자들은 어느 순간 마왕으로 '변모'한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 그것이 마왕이 공포의 대상이 된 이유다.

다행히 성국의 교황청을 비롯하여, 각 나라들은 자체적인 방법으로 마왕이 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색출했다. '마왕 후보자'. 일급 기밀 내용의 대상자들을 감시하는 것으로 피해를 줄이려는 것이다.

"로렌스! 무시하는 거야!?"

"아, 미안합니다, 신시아. 잠시 생각에 빠지느라."

"아까부터 저 사람들, '용사' 얘기를 엄청 하던데 그게 뭐야?"

"아, 아직 그 얘기는 해드리지 않았나 보군요. 자세한 얘기는 성당에 돌아가서 하겠지만, 간략히 얘기해 볼까요."

신시아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수업 때도 이러면 좋으련만.

"이 세계는 약 900년 전, 멸망의 위협에 빠졌었어요. 온갖 마수와 마물이 산을 뒤엎고, 바다를 헤집고... 난리도 아니었죠."

"응! 응!"

"그때 우리를 구한 것이 초대 용사 일행이에요. 첫 번째 마왕이 목숨을 잃은 후, 모든 마왕이 자취를 감추자 용사 일행들도 불현듯 사라졌죠."

"호오..."

"오직 한 사람. 초대 용사를 제외하고는 말이에요. 그분이 사용하던 성검, '스펜타'가 우리 성국에 보관되어 있었으니까요."

"정말? 지금도 볼 수 있어?"

"아니요. 지금은 없어요. 누군가 그걸 뽑아 갔거든요."

"도둑? 도둑맞은 거야?"

이런. 아무래도 신시아를 너무 성당에만 둔 것 같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소식도 듣지 못하고 말이다.

"새로운 용사가 탄생했거든요. 지금은 아마... 북왕국으로 가셨겠군요. 그곳의 교역 도시에서 마왕의 전조가 나타났다는 보고가 들어왔으니까."

마왕의 탄생과 맞물려 나타난 용사. 그것 말고도, 지금 세간에는 격류가 밀어닥치고 있다. 마왕의 전조를 해치운 흑검사, 실종된 북왕국 왕가의 행방, 공국의 귀공녀가 납치되었다는 얘기...

"용사님, 보고 싶네."

"후후, 용사님에게 관심이 생겼나요?"

"아니! 신부님이 얼마나 멋진 존재인지, 그 사람한테 알려주고 싶어서!"

"절 용사 일행으로 만들고 싶은 건가요."

"아, 그럼 안 만날래... 신부님이랑 헤어지는 건 싫어."

하하, 하고 웃어넘긴 후 발걸음을 재촉했다. 대형 상단. 이곳에서는, 앞으로 사용할 밀가루를 매입해야 해서 시간이 걸린다. 특히나 중요한 거래라 신시아의 돌발 행동이 있다면.

'벌써 머리가 아파 오네.'

신시아를 돌아봤다. 음, 잠시 동안 만이면 그녀와 떨어져 있어도 괜찮겠지. 내가 '부탁'하면 말이다.

"신시아, 내 말 잘 들어요."

"어, 신부님?"

신시아의 양 어깨를 붙잡고 눈을 맞췄다. 그녀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는 이 자세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걸 며칠 전에 눈치챘다.

"가만히 있어요. 금방 돌아올 테니까요."

"금방? 몇 초쯤?"

"몇십 분, 아니, 몇 분 안에 끝낼게요. 저 안엔 중요 문서들이 많아서, 신시아가 들어가면 곤란합니다."

"몇 분... 알았어. 가만히 있을게."

"휴, 고마워요, 신시아. 일이 끝나고 나면, 같이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가죠."

* * *

"안녕히 들어가십시오! 신부님!"

"또 뵙죠."

다행히 거래 건은 무사히 끝났다. 한 가지 맘에 걸리는 거라면, 이미 15분 정도 소요됐다는 건데. 일단 신시아부터 진정시켜야 할 듯싶다.

"신시아. 저 왔어요."

음? 보통 내가 나오면, 2초도 되지 않아서 달려들었을 신시아가 보이지 않는다.

"신시아? 신시아!"

이건... 곤란한데.

* * *

어두운 골목가, 그곳에서 복면을 쓴 남자들이 한 소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두 손을 결박하고, 혹시 모르니 입에도 재갈을 채워놨다. 아무리 위험인물이라도, 마력을 봉인하는 특수 구속구가 있다면 갓난아이보다 못할 뿐이다.

"173호, 상부에 보고를 마쳤다."

"322호, 소녀의 감시는 어떻게 되고 있지?"

"상태 변화 없음. 그런데, 지나칠 정도로 반응이 없다. 우리가 숨어들었을 때도, 별다른 저항이나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마음이 부서진 것이던가, 아니면 강한 암시를 받은 걸지도 모르지. 54호, 상부에선 어떻게 답했지?"

"일단은 대기. 지정된 포인트에 표적을 갖다 놓으면 일은 끝난다."

가면의 남자들은 무미건조한 말투로 지시사항을 주고받았다. 그럼에도 소녀의 눈빛은 여전히 차분하다.

"그나저나, 이번 표적은 어째서 이렇게 어린 거지? 굳이 우리들에게 접선할 필요가 있었나?"

"173호. 넌 여전히 의문이 많다. 우리 '형제'들에게 호기심이라는 감정은 필요 없다."

"그래도 이런 임무는 맡은 적이 없지 않나. 노리개로 쓰려는 대부호의 의뢰인가, 그것도 아니면 더 깊은 상층부의 문제인가."

"누군가가 저 소녀의 죽음을 바라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거기까지다."

죽음. 그 날카롭고 차가운 말이 신시아의 귀에 들려왔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일말의 변화도 없다.

"54호, 상부의 새로운 지시다."

"뭐지, 322호?"

"그녀의 몸을 수색해라. 이상한 점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알겠다."

복면을 쓴 남자가 신시아에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신시아는 행동하지 않는다. 남자의 큰 손이 신시아의 옷을 풀어 헤친다. 그럼에도 신시아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

"이건 뭐지? 로자리오?"

"무언가 발견했나?"

"로자리오다. 강한 마력이 느껴지는데... 마법적 특성은 봉인에 가깝다."

"마력을 절제해라."

복면의 남자가 단검을 들고 조심스레 로자리오에 다가갔다. 단검의 날이 신시아의 가슴에 가까이 온다.

그러자.

"멈춰."

우우우웅­. 강렬히 울려 퍼지는, 마력이 담긴 목소리가 골목을 가득 메운다. 소녀의 로자리오를 건들던 남자의 복면 안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54호?"

무슨 일이지? 다른 두 명의 남자가 소녀를 쳐다보았다. 재갈이... 부서져 있다. 아니, 부서졌다기 보단 재가 되어 '흩어졌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미안해, 신부님. '가만히 있으라'라고 했는데, 아무리 해도 안 되겠어."

"너는 대체."

"신부님이 주신 소중한 로자리오야. 거기에 소녀의 몸에 손을 대려 하다니, 글러먹은 사람들이네."

"무슨 존재지?"

"아쉽지만, 내 몸을 볼 수 있는 건 신부님 뿐이야. 이 안에 담긴 속살, 은밀한 부위, 더 안 쪽, 모두 신부님을 위한 거니까."

신시아가 그녀의 가슴에 손을 얹고 고혹적으로 말했다. 손? 분명히 묶여있었을 텐데.

"언젠가 신부님이 나를 어른이라고 인정해주면, 그러면. 첫날은 역시 성당이 좋을까. 다른 자매님들은 모두 휴가를 보내고, 나와 신부님만이 예배소에 남아. 그리고는 일곱 신이 보는 앞에 가장 큰 죄를 저지르는 거야."

대체 우리는 무엇을 표적으로 삼았던 걸까.

"그렇게 신부님을 몸 안에 품고, 그이가 도망치지 못하게 증거를 내 배 안에 품을 거야. 태어날 아이는 분명 신부님을 닮아 있겠지. 신부님처럼 회색 머리카락에, 부드러운 눈빛, 호박색 눈동자."

"일이 틀어졌다. 목표를 빈사상태로 만든다."

"알겠다."

두 남자가 신시아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미래에, 너네들의 흔적은 필요조차 없어."

푸확. 신시아의 앞에 서있던 54호의 몸이 터져나갔다. 뿜어져 나오는 피보라에 잠시 시야가 멈췄다.

"목표를 놓치면 안 돼! 그대로 달려라!"

322호의 외침에 173호가 비수를 내밀고 신시아의 목을 향했다.

"후훗."

신시아가 손가락을 굽혔다. 마치 무언가를 할퀴려는 기세로. 그리고는, 허공을 크게 휘저었다.

"크흑, 억,,,?"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173호의 몸이 갈퀴 모양 그대로 찢겼다. 순식간에 두 명. 이미 임무의 수행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판단한 322호는 재빨리 몸을 돌려 달아나려고 했으나.

"여기 있었군요, 신시아."

"신부님?"

신부님? 이 자가 바로 목표가 말한 신부일 것이다. 이 자를 죽이면, 잠시 동안 감정의 틈이 생기겠지. 그때를 노려서 도망친다.

"비켜라!"

"허술하군요."

퍼억. 정통으로 내지른 로렌스의 무릎차기에, 복면의 남자가 굴러 넘어졌다.

"모습을 보아하건대, 남왕국의 사막에 거점을 둔 암살단이네요. 또 신시아를 노리고 온 건가요? 이번엔 어느 집단에서?"

터벅, 터벅. 신부가 322호의 곁으로 다가온다. 소녀는, 어느새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가 있다. 로렌스가 남자의 멱살을 잡아 들어올렸다.

"이번엔 어떤 명령일까요?"

"말할 수, 크헉, 없다..."

"괜찮아요. 당신에게 직접 들을 생각은 안 했어요."

로렌스가 손가락을 뻗어 남자의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선명한 푸른빛이 번쩍거리더니, 남자의 입이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표의... 죽음을... 원한다... 위협의... 제거. 커헉!"

"어이가 없군."

"커헉! 허억, 허억. 너, 전투사제였군."

"반은 맞아."

로렌스가 남자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철컥. 그의 허리춤에서 금속의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총...? 설마...?"

탕!

총연은 뿜어져 나오지 않는다. 성법을 바탕으로 신성력을 탄환으로 삼은 한 발의 총성. 복면의 암살자는 절명했다.

"이단심문관 출신이거든."

* * *

"로렌스!"

신시아가 로렌스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그래, 이 느낌이었지. 이것이 은근히 그리웠다. 다행히 그녀를 데리고 간 건 일반인이 아니라 암살단이라, 무고한 생명의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신시아! 걱정했잖습니까. 왜 아무런 도움을 청하지 않은 거죠? 호신용 신호기는 줬잖아요."

"그치만, 신부님이 '가만히 있으라'라고 했는걸."

아. 설마 그런 식으로 해석했나.

"이런 심한 짓을 당할 때는 가만히 있지 않아도 돼요."

"신부님이 심한 짓을 하는 거면, 나는 가만히 있을 자신이 있어."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일단은 이 정도로만 해둘까. 추기경에게 보고할 일이 또 늘었다. 또 신시아가 '징후'를 발현해버렸다. 다행히 주기는 늘어난 편이다.

"......"

"왜 그래, 신부님?"

신시아가 저지른 현장을 바라본다. 역시, 교황청의 판단은 옳았다.

신시아는 '마왕'의 소질이 있다. 성국의 '마왕 후보자' 중 하나. 그녀가 마왕으로 각성하지 않게 감시하는 것이 나의 새로운 역할이자, 유일한 임무이다. 그리고 만약 마왕으로 각성할 징조가 뚜렷하다면.

'아니, 생각하지 말자.'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미 각오하던 일이었으니.

"빨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나 배고파."

"그러죠. 응? 신시아, 머리핀이..."

그녀의 앞머리를 묶고 있던 머리핀이 부서져 있었다. 하긴, 이 정도로 강대한 마력을 뿜어냈는데 버티는 것이 용할 정도이다.

"아, 아. 부서졌어. 어떡, 어떡하지?"

신시아의 눈이 방울지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영략 없는 평범한 소녀인데.

"가죠. 마침 오는 길에 가게를 하나 발견했거든요."

* * *

"예쁘다!"

"기뻐해 주시니 제가 다 좋군요."

옅은 제비꽃 모양의 머리핀. 그것이 한껏 마음에 들었는지, 몇 번이고 신시아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정말 고마워, 오빠! 아니, 로렌스 신부님... 헤헤."

"둘만 있을 땐, 가끔은 오빠라 불러도 괜찮아요."

"고마워, 로렌스 오빠."

계속해서 제비꽃 머리핀을 만지작거리는 신시아의 모습에, 나도 괜스레 뿌듯함이 느껴진다.

"오빠, 아니 신부님. 혹시 제비꽃의 꽃말 알고 있어?"

"음... 아뇨? 그래도 이렇게 예쁜 꽃이니, 분명 좋은 뜻 아니겠어요? 친애라던가, 순수함이라던가 뭐 그런."

"헤헤, 헤헤헤."

신시아가 계속해서 웃는다. 오늘은 자매님들이랑 같이 신시아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해줄까.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신시아가 내 옷깃을 끌어당겼다.

"신부님. 난 신부님을 좋아해."

"저도 신시아를 좋아해요."

"응, 난, 신부님이, 좋아."

그녀의 순수한 미소에 웃음이 지어진다. 노을이 지고 있다. 서둘러 가지 않으면 모두가 기다릴 것이다.

"신시아, 업히세요. 뛰어야 될 것 같습니다."

"...응."

신시아가 내 허리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어느 정도 달렸다 싶을 때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잠에 빠져있었다. 무슨 꿈을 꾸는 걸까? 부디 악몽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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