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긴급 호출(2)
* * *
"이 꼬맹이가 마왕 후보자 맞지?"
"......"
이 자는 대체 누구지? 아니, 한눈에 신시아의 정체를 눈치챈 걸 보면 분명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광장 한복판에서 당당히 말을 건 점, 모든 걸 종합해봤을 때,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은 명확하다.
"신부님... 이 사람..."
"신시아, 뒤로 물러나세요."
철컥. 품 안에서 총을 장전한다. 무의미한 살생에 구원은 없으나, 이 역시 대의를 위해서다.
"철컥? 뭐야, 방금 뭘 한..."
"일곱 신이시여, 지옥으로 떨어질 제 영혼을 구원하소서."
"뭘 겨누는 거야! 나 모르겠어?"
알다마다. 너 역시 신시아를 노리고 접근해 온 불한당이 아니냐.
"나야, 나! 한스! 한스 크라운!"
"... 한스?"
* * *
카페 '카나리아'는 내가 성도에서 공부를 하던 시절부터 있었던 카페이다. 동기들끼리 자주 여기 들렸는데, 그 작던 카페가 이 정도로 커질 줄은 몰랐다.
"이야, 하마터면 몰라볼 뻔했어! 로렌스, 네가 사제복을 다 입고."
그래, 이 자식도 포함해서 말이다.
"신부님, 이 쇼트 케이크, 엄청 맛있어!"
"꼬마 아가씨, 그게 마음에 든 거야? 하하, 좋아! 오늘은 내가 쏠 테니 마음껏 먹으라고!"
"와아!"
금발의 장발을 뒤로 묶고, 턱수염은 제대로 정리하지도 않은 채 호탕한 웃음을 짓는 이 남자는 '한스 크라운'. 나의 수행 동기이자, 같이 세례를 받은 악우이다.
"그럴 때는 소꿉친구라고 하는 거야, 로렌스. 그게 오글거리면 불알친구는 어때?"
"신시아 앞에서 상스러운 말은 하지 마시죠."
"낯간지럽게 웬 존댓말이야, 로렌스. 신부가 되었다고 사람까지 달라진 거야?"
한스의 말을 들은 신시아의 눈동자가 여태 없던 초롱초롱한 빛을 발산한다.
"응? 무슨 얘기야? 신부님, 혹시 옛날엔 다른 모습이었어?"
"그렇고 말고, 특히 수행자 시절엔 말도 아니었는데, 글쎄 한여름에 더워죽겠다고 웃통을...!"
철컥.
"그래, 알겠으니까 그 흉물스러운 것 좀 치워줄래?"
"여전히 눈치는 가지고 있군요."
"협박하는 데는 아주 도가 텄어. 이단심문관 시절 어디 안 가네."
한스는 커피잔을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며 한 모금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한숨을 푸, 내쉬며 말을 이었다.
"뭐, 그래도."
"뭡니까."
"표정이 밝아져서 다행이네. 우리들도 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꼭 어디 죽을 자리 찾는 용병처럼 이곳저곳 위험한 곳을 떠돌던 녀석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한적한 시골에 성당이나 차린 거야?"
"... 저 나름대로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고 봐야죠."
"그래, 이 모습이 백 배 낫다. 심경 변화의 원인은... 이 아가씨겠지?"
이쪽의 대화는 듣는 채도 안 하고 세 접시 째 쇼트 케이크를 흡입하는 신시아를 보며 한스가 말했다.
"여전히, 눈치는 가지고 있군요."
"에델이 보면 분통 터져하겠어. 이렇게 예쁜 아가씨를 곁에 데리고 다니고 말이야."
"예, 예쁜?"
이런 말은 또 잘만 듣는구나.
"흠, 흠흠, 신부님의 옛 친구분, 엄청 착하신 분이네! 다시 한번 인사드릴게요, 저는 생크 마을의 생크 수도원의 견습 수녀이자 신부 로렌스 프랑의 후견을 받는 몸, 신시아라고 해요."
갑자기 다소곳한 자세로 정중히 자기 인사를 하는 신시아. 놀랍게도 저 인사말은, 수도원에서 몇십 번을 시켰음에도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말이다.
"그리고, 신부 로렌스의 약혼녀 되는 소녀이기도 하답니다."
그래, 웬일로 잘 나가나 했다.
"약혼? 로렌스, 너 진짜로...?"
"철 안 든 꼬마의 시답지 않은 농담입니다."
"꼬마 아니야! 곧 있으면 성인식이야. 로렌스의 허락 없이도 결혼할 수 있다고."
"결혼할 상대는 찾았고요?"
"여기 있잖아! 신랑, 로렌스 프랑!"
신시아가 테이블에 있던 냅킨을 주워 들더니, 그대로 넓게 펼쳐 자신의 머리에 얹는다. 음... 면사포를 흉내내는 건가?
"올해가 성인식이라고? 로렌스, 그럼 이 아가씨, 너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네."
"아직 정신은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입니다."
"뭘, 귀여우니 좋기만 하구만."
"미친놈."
한껏 경멸스러운 눈으로 한스를 쳐다본다. 아직도 수행자 시절의 버릇을 못 고쳤나 보다.
"역시 뿌리는 변하지 않는 겁니까. 한스, 아직도 여자 뒤꽁무니나 쫓아다니고 있나요?"
"누굴 호색한으로 보는 거야? 나는 어디까지나 엔조이적인 느낌으로 데이트만 할 뿐, 몸에는 일절 손대지 않는다고!"
"퍽이나 그러겠습니다."
"정말이야! 그렇고 그런 건 오직 결혼할 사람만. 나도 신념 있는 사람이란 말이지. 성직자니까."
"신시아에게서 떨어지십시오. 이왕이면 2m 정도가 좋겠군요."
푸우, 하는 깊은 한숨과 함께 한스는 커피 한 잔을 그대로 비웠다.
"나, 나도, 신부님이 아니면 싫어... 몸에 손대는 건, 신부님만으로 정했으니까."
나를 고혈압으로 신의 곁으로 보낼 셈인가.
"한스, 이 정도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화포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친구로 생각은 하는구나."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죠. 선생, 아니 추기경 님이 저와 신시아를 부른 것, 그리고 저 말고 '다른 네 명'까지 부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일단은, 네 옆에 있는 아가씨가 일 번이지. 그런데 우리 다섯 명을 전부 부른 건 좀 과하다 싶지. 다른 이유가 생긴 걸 거야. 나도 따로 들은 건 없어."
추기경 님의 편지에서 '로렌스 외 4명'이라고 적은 것은, 분명 나와 내 동기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모두 그분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으니, 다른 사람은 생각할 수 없지.
신시아를 데려오라는 걸로 봐서 '마왕 후보자'에 관한 사안은 확실한데, 구체적인 내용은 아무리 생각해도 쉽사리 추측이 안된다.
"여기 가만히 있어서 해결될 건 없잖아?"
가게 종업원에게 팁과 함께 몇 장의 지폐를 건넨 한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행여나 뺏길 세라 신시아는 추가로 주문한 파르페까지 깔끔히 비웠다.
"자세한 이야기는 가서 하자고. 모두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
* * *
순은의 도시 한가운데, 고고한 첨탑이 우뚝 솟은 거대한 건물. 성도 닌우르타의 중심, 교황청이다. 그 앞에는, 수많은 신도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엄청... 크다."
"신시아. 이 정도는 약과입니다. 우리 성국은 청빈함을 강조하기에 교황청보다 큰 건물은 지을 수 없어요. 북왕국의 궁전이나 서연방국의 건축물, 마도 공화국의 마탑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겁니다."
"이것보다 더 큰 건물이 있다고?"
"그렇죠. 언제 한 번 보러 갈까요?"
"응! 꼭이야?"
교황청에 들어가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사전에 수많은 예약 서류를 작성하고, 몇 시간에 달하는 저 줄을 뚫고 들어가 성기사들의 감시 아래 지정된 장소만 보고 오는 것.
...이라고, 대부분의 신도는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자자, 가만히 있을 시간 없어. 가자, 로렌스."
나와 신시아는 한스의 뒤를 따라 교황청의 뒤편으로 이동했다. 이것이 '허락받은 자'들이 교황청에 들어가는 두 번째 방법. 매일 다른 곳에 무작위로 지정되는 비밀 출입구를 이용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높으신 분들의 생각은 이해가 안 된단 말이야. 마법사들의 마법은 그렇게 혐오하면서 정작 이런 보안은 성법이 아닌 마법에 의지하지."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낫지 않습니까. 이번 교황은 마법에 관대하니까요."
벽을 따라 걷던 한스가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섰다. 손가락을 벽에 갖다 대더니, 이윽고 보라색 빛이 우리를 환히 감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주위는 샹들리에의 불빛만이 은은히 빛나는 중앙 홀이었다.
"이 향기, 그립네요."
"별 일이네, 네가 이 곳을 다 그리워하고."
만나기로 한 장소는 아마도 오를란도 추기경 님의 개인 사무실일 것이다. 요 근래 일이 많아 은사를 찾아 뵙지 못했는데, 선물이라도 준비해 둘 걸 그랬나.
"저기, 한스 사제님."
"한스 오빠라고 불러. 난 그쪽이 편해."
"나한테 오빠는 로렌스 신부님 밖에 없어. 한스 신부님,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뭔데?"
여기 오기 전까지 한참을 우물쭈물거리던 신시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질문이길래 저리 고민하는 것일까.
"로렌스 신부님의 동기분들은, 그, 다들 어떤 분이셔?"
"아아, 너 그런 걸 걱정했구나?"
"아니, 저기, 로렌스 신부님의 친구분들이 나쁜 사람이면 곤란하니까..."
"어디 보자, 나와 로렌스를 포함해서 동기들은 모두 다섯 명이야."
다섯 명. 그 말을 들은 신시아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다른 세 명은 에델이랑 크리스, 그리고 로제야."
이름을 들은 신시아의 반응이 묘하다. '에델'이라는 이름에는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고, '크리스'라는 이름에서는 안심했으며, '로제'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는 죽은 눈을 했다.
"셋 모두 좋은 녀석들이야. 에델은 조금 성격이 험악하지만, 할 때는 하는 시원스러운 성격이지! 로렌스랑 같은 이단심문관 출신이라 같이 팀을 이루었던 적도 있고."
팀을 이루었다, 라는 말에서 신시아의 표정에 절망감이 묻어 나왔다.
"여자한테도 인기가 많았지. 받은 연애편지가 나보다 더 많았을 걸?"
그 말을 듣고는 천사 같은 표정으로 바뀌어 간다.
"크리스는 듬직한 녀석이야. 과묵하고 성실한 성격이라 성기사로 지원했는데, 주위에서의 평판은 우리 다섯 중 가장 좋을 걸? 근육도 장난 아니야. 팔씨름에서 이겨 본 적이 없거든."
"헤헤, 헤헤헤. 신부님, 좋은 친.구.들을 뒀구나!"
"마지막은 로제인데... 아, 오해하지 마. '로제리오'를 줄여서 로제라 부른 거라, 이 녀석은 남자거든."
'남자거든'이라는 말에서 신시아는 '휴우'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왜?
"지금은 수도산데... 사실 나도 어디 있는지는 몰라. 동기인 나도 아직 걔를 잘 모르겠거든."
담소를 나누던 끝에, 우리는 방문 앞에 섰다. 신시아는 아까부터 뭐가 즐거운 지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신부님, 신부님.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난 여자를 모르는 신부님이 더 사랑스러우니까."
내 옷깃을 부여잡으며 이런 말이나 하고 말이다.
끼이이익. 문이 열린다. 그 안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있다.
"안녕하세요, 전 생크 수도원의 견습 수녀 신시...아?"
저기 검은 포니테일에 제복을 입은 여자는 에델바이스. 이단심문관이자, 나와 한 때 콤비를 이뤘던 친구다.
"로, 로렌스? 흥! 너무 늦은 거 아니야?"
"신부님? 에델이라는 분, 남자 아니었..."
"로렌스!"
그리고 저기 웃으면서 달려오는 여자는 크리스티나. 성기사이자, 나와 가장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이다.
"둘 다... 여... 자?"
* * *